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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화 〉24. 제이의 두근두근 데이트(6) (24/145)



〈 24화 〉24. 제이의 두근두근 데이트(6)

 10분을 빠르게 달려 육서윤의 행방을 쫒던 와중이었다. 우리는 마침내 그녀를 발견했다.

[저기 있네. 완전히 캠핑을 하시는군.]

말마따나 그녀의 팔자는 대단히 좋아보였다.

―타닥 타닥
―그게 키스야? 슝밍아, 그게 키스야? 키스라는 건 말이야~ 걔 혀에 니  이렇게 자연스럽게 만나는 거라고. 스르르~ 들어가는 거야.

어디서 났는지 모를 화섭자火攝子에 불을 지핀 채, 무릎을 모은 자세로 조용히 앉아 스마트폰 홀로그램으로 영화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푸흣.”

얼핏 봐도 때깔이 곱고 먼지 하나 묻지 않은 꼴이었다.
화려한 금발의 펌이 들어간 머리는 여전히 아름다웠고, 브라운색의 가디건을 걸친 흰 티셔츠는 깨끗했다.
무지 티셔츠를 뚫어버릴 듯 솟은 그녀의 탐스러운 폭유는 먼지  점 묻어 있지 않았고, 청핫팬츠와 살결이 살짝 비치는 검정 스타킹 역시 청결을 유지하고 있었다.

‘저게 다 유로파산産 나노 소재 옷이구나. 진짜 다이아 수저는 일상복도 저런 걸 입고 다니네. 쩐다.’

 마디로 이틀 간 개고생을 한 내 꼴과는 천양지차였다.
나는 굳은 결심을 했다.

‘던전 내에서 얘 시종 짓을 계속하게 되더라도 비위를 맞춰주자. 얘 없으면 난 100퍼센트 죽어.’

나는 약 50m 떨어진 거리에서 그녀에게 큰 소리로 인사했다.

“서윤 생도, 무사했었구나!”

육서윤의 아주 작게 웃는 소리와 배경음처럼 들려오는 영화 소리. 그리고 아득한 분위기를 감돌게 하는 모닥불 소리 사이로 반가움이 울려퍼졌다.

“얼마나 찾았다구요! 어디 다치신 데는 없죠? 혼자서 괜찮았어요?”

―탓!

날 발견한 육서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옆에 세워둔 검을 들고 외쳤다.

“다가오지 마!”

동굴 벽에 그녀의 째지는 음성이 메아리가 되어 울렸다.
나는 여전히 30m 거리를 유지한 채로 양 손을 들어올렸다.

“김제입니다. 어제 서윤 씨를 방에 안내해드렸던. 서윤 씨랑 민간인분들이 떨어지고 난 뒤에, 아이웨이를 돕다가 저도 휩쓸리게 됐어요. 아이웨이 아시죠? 서윤 씨 도와준 그 친구.”
“…….”

육서윤의 아름다운 얼굴에 주름이 잡혔다. 그녀가 몹시 불안정하게 들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쩌다가 지금 오게 됐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뭐하다가 지금왔냐구요!”
[이 육시랄 년 싸가지 보소.]

나는 그녀의 질문이,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를 의미하는 것이아님을 눈치챘다. 얘가  기다렸을 리 없잖아.

“음… 혹시 서윤 씨 여기 온  얼마나 됐어요? 저는 이틀 됐습니다.”
“……이틀?”

육서윤이 차가운 얼굴로 뭔가를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휘휘 저으며 나를 노려봤다.

“거짓말! 거짓말이죠?”
“정말인데요. 제 옷을 보세요.”
“…….”

그녀가 아직 그리 더러워지지 않은 내 옷을 살피다, 아주 천천히 입술을 뗐다.

“저는… 이 주 정도… 됐어요.”
“이 주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 보름째인 것 같아요.”

눈앞이 캄캄해졌다.

‘이거시간 배율 왜곡된 던전이잖아!

그런 것 같았다. 현실에서 육서윤이 내균열에 빨려 들어간 시간은 아무리 빨라봐야 나보다 5분 남짓 이른 시간.

즉, 현실 1분 = 여기 3일.

육서윤의 말이 진실이라면, 대충 이 정도의 시간 차이가 발생하는 것.

“하아…….”
[난리났군.]

나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어차피 육서윤이 날 경계하고 있으니, 대치해봐야무의미하니까.

“…뭐죠.”
“계산할게  있어서 그래요. 영화 계속 보세요. 생각 정리되면 말씀드릴게요. 좀 충격적인 내용일 수도 있어요.”

내가 던전 밖의 사람들이 던전 분석에 걸릴 시간, 구조대가 꾸려질 때까지의 경과, 그들이 도착한 뒤 우리를 찾을 때까지의 시행착오 따위를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또르르르

무언가가 내게 굴러왔다.

‘헉.’

삼원의 대표 상품, 삼원호빵이었다.

놀란마음에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이거 나 주는 거에요?”

육서윤이  쪽이 아닌 다른 쪽을 바라보며 입술을 비죽였다.

“…그쪽, 굶었을 거 아니에요.”
“흠.”

육서윤이 내가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녀도 던전 내에서 먹을 걸 아무것도 찾지 못 했기 때문에 그걸 예상한 걸까.
나는 그녀의 사정이 궁금해졌다.

“서윤 씨. 혹시 여기까지 오면서 지하수에 표식 남긴 사람 서윤  맞아요?”

그녀가 작은 머리를 주억거렸다.

“저 보라고 남긴 건 맞는  같고. …혹시, 서윤씨가 왔던 방향이랑 다른 방향으로 표시한 이유가 뭔지 물어봐도 돼요?”
“…….”

육서윤이 자신의 풍성한 금발머리를 헤집듯이 쓸어 올렸다. 그리고 감정이 짙게 밴 눈으로 입을 열었다.

“…사람이, 싫어서 그랬어요.”

나는 그녀의 말투에서, 그녀가 정말로 사람을 싫어한다기보다는 무슨 일이 있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질문을 바꿨다.

“그럼 왜 물에 먹을  있다고 표시했던 거예요? 아참. 나는  됐어요. 내가 측정했을 땐,  마신다고 나왔어요. 그래서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자는 마실 수 있는 물이니까.”
“네?”

육서윤의 눈에서.

“여자는… 마실  있는… 물이니까.”

투명한 물이흘러내렸다.

**

육서윤.그녀가 겪은 일은 이러했다.

지금으로부터 보름 전, 그녀는 4명의 민간인과 함께 내균열에 휩쓸려  던전에 갇혔다. 그러나갑자기 낯선곳에 떨어진 그들의 패닉 상태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비록 생도에다 각성한지 얼마 되지 않은 육서윤이지만, 그래도 헌터가 있다는 점에 민간인들은 크게 안심했다고.

그런데, 이변이 발생한다.

―서윤 씨! 물이… 우웨엑!
―상철 오빠, 괜찮아?! 병수 오빠는  그래! 한열아, 너도 못 마시겠어?

눈을  장소에서 가까운 지하수를 발견한 그들은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남자 셋은 물을 마실 수 없었고.
여자 둘은 물을 마실 수 있었던 것.

 뿐만이 아니었다.

―서윤 씨, 말씀하신 레드뱃이라는 몬스터를 죽었다 깨나도 못 찾겠는데요?
―서윤 씨. 병수 오빠도 그렇대요. 몬스터는커녕 버섯이나 이끼 하나 보이지가 않는다는데…. 이상하죠? 저도 찾는  오빠들이 못 찾는다니.
―서, 서윤씨! 서윤 씨가 아까 발견했던 버섯 군락지가 제가 가니까 사라져 있었어요!

남자들은 생명체의 그림자조차 발견할 수 없었고, 서윤이 사냥을 해와도 먹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또한, 남자들은 코앞조차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방이 어둠 속에 가득 차 있었다고.

이와는 반대로 여자들에게 이 거대한 동굴형 던전은 다소 척박해도 생을 이어가기 어렵지 않은 환경이었다. 시야도 남자와 달라서, 여자들은 마치 달빛이 스며든 저녁 풍경을 보는 것 같은 감각으로 주변을 살필  있었다는 것이다.

―…….

 타이밍에 육서윤은 결단을 내렸다.

―제가 아공간이 있어요.일단은 이걸로 구조대가 오기 전까지 버티죠.

육서윤은 정말 운이 좋게도 전략물자인 이동식 초대형아공간을 보유하고 있었다.
제주 국제헌터군부대 납품 및 이번 OT 협찬을 위해 천문학적 규모의 식료품 재고를 수납한 채,  던전에 떨어지게 된 것이었다고.
그녀가 삼원 식품의 오너 일가였고, 종종 회사 일을 도왔으며, 삼원이 국제헌터연맹이 지정한 군납품 기업이었기에 가능한천운이었다.

―서윤  덕분에 살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평생 삼원  먹을게요.
―서윤 씨는 쉬세요, 저희가 식사 준비를 하겠습니다. 윤영아, 같이  길러 가자. 서윤 씨 목마르시겠다.

처음 이틀은 순조로웠다고 한다.
남자 셋은 여자 둘을 잘 보필했고, 서윤과 윤영이라는 여자는 남자들이 불편함 없도록 그들을 도왔다.

그러나 평화는 길지 않았다.


**

―타닥 타닥

모닥불이 타들어가는 동굴의 한 구석에서, 육서윤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사흘 째였어요. 물을 길러온다던 윤영 언니와 병수 오빠가 한참을 안 왔어요. 걱정이 돼서 가보니 병수 오빠가 윤영 언니를… 범하려 했어요.”
“…….”
“저는 처음에 강간일 줄 알았어요. 그래서 막으려 했죠. 그런데 자세히 보니 아니었어요. 처음에는 거부하는 듯하 언니가 금세 병수 오빠를 받아들였죠. 아주 기쁘게….”

나는 민망한 기분에 대꾸 없이 듣기만 했다. 웬일로 육서윤이라면 극혐을 하는 메리 역시 말을 삼갔다.

“다음 날이었어요. 식량에 쓸 몬스터를 잡으러 야영지를 떠난 사이에, 한열 오빠와 상철 오빠가 윤영 언니를 덮쳤어요. 그날 밤, 저는 정신병에 걸릴 것 같은 기분이 되서 윤영 언니에게 물었죠. 혹시 어제랑 똑같이 처음에는 싫었는데 나중에는 받아들이게 됐냐고. 그렇지 않냐고.”
“그랬더니요?”
“맞대요…. 자기도 이상할 정도로 기분이 좋았대요. 던전 밖에 남자친구가 따로 있는데도, 강간처럼 시작한 그 행위가 너무 기분이 좋았고, 두 명에게 동시에 범해지는 게 짜릿했대요. 그 말을 하면서 언니가… 울었어요. 자기, 미친 거 같다고. …한열 오빠는 윤영 언니와… 혈연관계였거든요.”
“…….”

등골이 오싹해졌다.
별의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마약, 항정신성 디버프, 저주 등등. 그게 아니라면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다음부터였어요. 저는 파티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 때문에 야영지에 있기가 어려웠어요. 더구나 호시탐탐 그 남자들이 제게도 손을 대려 기회를 보고 있었거든요. …언니도좀 이상했어요. 항상 친절했던 언니가 저를 너무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거에요. 그래서, 8일 째 되는 날 너무 답답한 마음에 정찰을 핑계로… 나갔다 왔더니….”

그녀가 잠시 말을 끊었다.

“윤영 언니가…… 죽어 있었어요……. 오빠들은…… 그 짐승 같은 놈들은, 죽은 언니의 엉망진창이 된 시체에 그 짓을 하고 있었어요……. 제 잘못이에요. 제가, 불편한 마음에 자리를 비워서…….”

육서윤은 생각하는 것조차 고통스럽다는 듯 말을 잇지 못했다. 나도 듣기 힘들었지만, 사태 파악과 대비를 위해 억지로 입을 열도록 도왔다.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때  사람들은… 마치 인간이 아닌 것처럼 보였어요. 뭔가에 깊이 홀린… 악마들 같았죠.”

육서윤이 바닥으로 고개를 떨어뜨리며 아주 힘겹게말을 이었다.

“그 짐승 같은 사람들은 그 후에…… 저를, 덮치려 했어요. …그, 그래서…….”

나는 그녀의 말을 끊었다.

“서윤 씨 잘못이 아니에요.”
“…….”
“절대 그런 생각하지 마요.”
“…….”

성욕에 정신이 돌아버린 세 남자의 최후가 어떻게 되었을지는뻔했다.
미친 사람이 힘이 세다고 한들 어차피 민간인. 마력을 사용할  없으니, 그들은 뜻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이쪽으로… 와도 돼요.”

육서윤이 내게 자신의 공간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나는 거절하지 않았다.

―타닥 타닥

이틀 만에 본 자연적인 빛 ―땔감을 태워서 나는 불빛이었지만― 에 뭔가 위로를 받는 기분이 되었다.
기분 전환을 위해 화제를 돌렸다.

“신기하네. 나는 화섭자로 쓸만한 거 하나도 못 찾았었는데.”
“이거 많아요.”

육서윤이 모닥불에 어둔접시동굴버섯을 넣었다. 동굴형 던전에서 쉽게 발견되는 대표적인 버섯종이다.
나와 메리가 던전 내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없었던, 생명체.

“빵 더 줄까요.”
“그럼 저야 좋죠.”
“무슨 맛.”
“고기만두  호빵 있어요? 전 그게 제일 좋던데.”

육서윤이 허공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비닐 포장에 쌓인 편의점용 삼원고기호빵을 꺼내주었다.

“이동식 아공간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정말 신기하네요. 감사합니다.”

나는 그녀가 전략물자인 초대형 이동식 아공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하면서도, 일용할 식량을 얻었다는 사실에 만족해 괜한 호기심을 껐다.

“맛있다.”
“물은 아껴 마셔요. 별로 없으니까.”
“네, 고마워요 정말로.”

육서윤이 건네준 음식으로 배를 채우며 그녀가 겪었던 일에 대해 생각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성욕에 미친 인간들이 지들끼리 붙어먹다가 애꿎은 육서윤만 괴롭히고,  이후에는 여자를 죽인 뒤 그녀까지 범하려다 죽임을 당했다니.

‘사람이 싫다고 할 만하네.’

나는 노란 모닥불 빛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육서윤을 안쓰럽게 여겼다.
내 눈길을 느낀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김제이, 라고 했죠.”
“네.”
“…당신도 날 원하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품에서 담배를 꺼냈다.

―치이이익
―후우우우

하얀 담배 연기를 허공으로 날려 보낸 육서윤이 다시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힘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목소리로 애원했다.

“그러지 마요. 나… 너무 힘들어….”

어두운 동굴을 밝히는 미약한 빛에 마음을 뺏긴 육서윤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위태로워보였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정말 정말 너무나 미안하게도.

‘…….’

나는 무릎을 모아 앉아 고스란히 보이는 그녀의 환상적인 허벅다리와.
거기에 눌려 터질 것처럼 삐져나오는 미친 폭유를 보며 크게 발기한 상태였다.
씨팔… 머리와 마음은 그녀가 안쓰럽고 고마운데, 몸과 본능이 계속 그녀에게 이끌리고 있는 것이다.

‘이래서 정력높게 찍는 걸 자제했던 건데. …환장하겠네.’

어쩐지 그녀와의 동행이 순탄치만은 않을 거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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