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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화 〉26. 제이의 두근두근 데이트(8) (26/145)



〈 26화 〉26. 제이의 두근두근 데이트(8)

―지금이 조난을 당한 게 아니라, 우수에 젖은 미녀와의 데이트라 여겨라.

메리의 이 조언은 아주 유용했다. 당장 육서윤을 대하는 마음가짐부터가 달라졌으니까.

“오빠. 지금 그 빵은 어때?”

서윤이가 건네준빵을 뜯어먹으며 마음에도 없는 말을 건넸다.
…아니지, 아니지. 마음에서 우러나오도록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맛있어. 크림치즈도 마트 봉지 빵이라기엔 풍부하고. 2400원에  퀄리티면 자주 사먹을  같아.”
“진짜? 그거 우리 회사 신제품이야. 이번에 처음 샘플 나와서 제주 부대에 보내는 거.”

나는 2400원이면 1/3 국밥인데 이딴 애기 주먹만 한 케이크를 절대 사먹을 리 없다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심이야. 식감도 부드럽고, 양도 여성들 식사대용으로 괜찮을 거 같네. 되게 괜찮다.”
“…사실 그거 제품 테스트  내가 의견 많이 냈어. 내가 조각 케이크를 워낙 좋아해서.”

서윤이가 가늘게 웃으며 기쁨을 표현했다.
친해지기 전까지 관심이 없어 몰랐는데, 그녀는 인터넷에서 ‘자기회사제품덕후’ 라고 불릴 정도로 삼원 제품 좋아하는 걸로 유명하다고.

“그랬구나. 니가 워낙 빵에 애정이 있으니까 개발팀도 의견을 수렴해준 거겠지. 서윤이 너 능력 좋다.”
“내가 뭘….”
“내가  입장이었으면 니네 회사 빵이나 우유 안 먹었을 수도 있을것 같아. 아무리 삼원 제품이 괜찮아도, 그래봐야 공장제 기성품이잖아. 근데  진짜로 너희 회사 빵이나 유제품을 좋아해서 그런 거니까. 대단한 거지.”
“…그냥. 아빠 집 들어가기 전부터 삼원 우유랑 호빵 엄청 좋아했어. 내 아빠가 삼원 회장인 줄 모를 때도. …엄마 살아계실 때 둘이서 두유에 빵 먹으면서 TV 보고 그랬던 게 나한텐 제일 행복했던 기억이야.”

그녀가 펌 들어간 금발머리를 머리 위로 기분 좋게 쓸어 넘겼다.  운동화에 감싸인 발을가볍게 동동거리는 모양이 꽤 기분이 좋은 듯했다.

‘조심해야 돼. 여기서 또 지난주 같은 실수를 해선 안 된다.’

보름 간 겪어본 바, 서윤이는 자신의 외모를 칭찬하면 오히려 싫어했다. 내가 그녀의 외모에 얽힌 인기를 빗대 장난스럽게 농담을 걸어도, 그것조차 받아주지 않을 정도로 질색한 것.

반면 그녀의 능력이나 그녀 자체에 대한 칭찬에는 약한 편이었다.

평소 너무 외모와 배경에만 주목을 받아왔고, 주변 인간관계가 완전히 파탄나 있기 때문에 그런 칭찬을 들은 경험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나는 이런 점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기로 마음먹고, 요 며칠 계속 그녀의 기분을 좋게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오빠, 물 조금 더 줄까? 내가 따라줄게.”

그리하여 어제부터 서윤이가 나를 확실히 더 신경써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계적이었던 그녀의 반응이 점차 온기를 품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 좋은데. 재고 얼마 없다며.”
“오빠 목마르잖아. 그리고 이제 나 여기 온지 한 달이나 됐는데, 조만간 구조대가 오지 않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시간 배율이 달라서 많이 늦을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래도. 오빠 목마르면 안 되지.”

서윤이가 다소 슬픈 미소를 지으며 딱  모금만큼의 물을 컵에 따라주었다.

“고마워.”
“뭘…. 오빠가 힘들지. 나야 던전 안에서도 먹을 게 많지만, 오빤 아니잖아. 오빤… 그렇잖아….”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나또한 마음이 무거워졌다.

물이
떨어져가고 있다.

서윤이의 아공간 ―정확하게는 삼원식품과  공동 소유의― 에는 빵과 과자는 차고 넘쳤지만 물이 거의 없었다. 가지고 있던 우유는 서윤이가 OT에서 모두 협찬으로 꺼낸 뒤여서, 원래 있었던 물이라곤 500ml 생수 묶음 한 짝이 전부였다.

“오빠.”
“응.”
“우리, 탈출구 찾을 수 있을까.…구조대가 오기 전까지, 버틸 수… 있을까?”

나는 거짓말을 해서 그녀에게 희망을 줄까, 아니면 진실을 말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듣기 좋은 소리는 이미 많이 했다는 생각에, 처음으로 본심을 얘기했다.

“지금까지 말을 아껴왔는데, 솔직히 말해서 탈출구는 찾기 어렵다고 봐. 그렇다고 던전코어를 찾기에는 동굴이 너무 방대해. 마핵魔核을 보유했을 거라 추정되는 보스 몬스터는 그림자도 안 보여. 그리고  상황에서는 그런 몬스터가 나오는 상황 자체가재앙이지. 던전 규모로 미뤄봤을 때, S급 이상의 몬스터일 가능성도 크니까.”
“…내가 너무 약하네.”
“나도 D급인데 뭐.”

서윤이는 E급의 서포팅 계열 헌터고, 나는 이제 막 D급이 됐다. 우리 둘이 힘을 합쳐봐야 B급만 나와도 몰살이다.

“그리고 이제 슬슬 돌아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돌아가? 저번에 말한, 나나 오빠가 처음 떨어진 그 공간으로?”
“응. 우리가 출구를 찾는답시고 너무 멀리 나오면, 구조대가 와도 길이 엇갈릴 수 있어. 던전 환경이 인적을 금방 지워버릴 수가 있거든. 처음 장소까진 안 가더라도 이쯤에서 수색을 멈추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 생각해.”
“아아. …오빠, 그러엄.”

서윤이가, 내 얼굴을 보며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우리…  만들까?”

**

육서윤과 나의 보금자리 만들기가 시작됐다.

“여기 어때?”
“나는 좋아. 오빠는?”
“응, 적당한 것 같아.”

우리의 거처는 이틀 전 지나온 동공洞空에 마련됐다. 내가 첫째  메리와 야영을 했던 것과 같은 이유였다.

이어진 굴이 많아 도피가 쉽고, 적당한 구릉지와 암굴이 있어 시야와 은신처 확보가 모두 용이한 곳. 마지막으로 풍부한 양의 지하수가 흐르는 곳.

이곳이 앞으로 우리의 집이다.

―카가가가가가가강!

둘 중 보다 강한 마력을 가진 내가 바위를 잘라 돌로 된 파티션과  울타리 재료 등을 만들었다.
E급 헌터인 서윤이는 암굴과 은신처 근처에 홈을 파 준비를 도왔다.

“오빠, 여기. 이거 거기에 끼워줘.”
“이게 다지?”
“응. 일단 내 굴은 그게 다야.”
“서윤아 고기 탄다. 먹고해.”

거처를 허투루 만들 수는 없었다. 외부와 이 던전의 시간 차 때문이었다.

‘나와 서윤이의 진입 시간차가 불과  분이었는데도 2주 차이가 났어. 서윤이 기준으로 4주가 흐른 지금도 현실 시간으로는 불과 몇 분이  지났을 뿐이다. 구조를 기다린다는 선택을 한 이상, 이건 초장기전을 예상해야 돼.’

이 기묘한 던전은 누가 봐도 매우 특수한 던전으로 추정된다. 더구나 크기도 무척 방대해서, 던전 해석과 균열 입구 강제 해제 및 구조대 파견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예측불가능했다.

‘만약 이 던전이 아스모데우스가 구현한 공상계가 아니라면, 나와 서윤이는 어쩌면  년을 여기에서 살아야 할지도 몰라.’

우리는 만 나흘을 꼬박 거처 정비에 소비하고 나서야 썩 그럴싸한 공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가장 큰 암굴은 서윤이의 방 겸 공용 공간. 이곳에는 한 개의 돌침대와 석재 소파 및 의자와 탁자 등이 놓였다. 또한 파티션으로 침실과 거실 등의생활공간이 간략하게 구별된 곳이었다.

그리고 커다란 돌침대 하나만 놓인  굴. 원래 있던 거대한암석을 깎아 만든 거라, 크기가 무척 컸다.

그 외에 식당, 잡은 몬스터 고기를 보관할 창고나, 그림 그리길 좋아하는 서윤이를 위한 다목적 암굴 등이 있었다.

우리의 거처 만들기는 지하수 근처에 화장실과 도축장, 빨래장을 만들고. 생활에 필요한 자잘한 도구들을 만든 후에야 완전히 마무리 되었다.

“드디어 끝났다! 와아! 오빠 진짜 고생 많았네! 이걸 언제 다 했지?”

서윤이가 만세를 부르며 활짝 웃었다.
마력과 신체등급이 낮으며, 험한 일을 한 번도 안 해본 그녀는 나를 잘 도와주지 못한 걸 많이 미안해했다.
폴짝 폴짝 뛰는 그녀의 아이 같은 행동 덕에 그녀의 거대한 폭유도 덩달아 흔들렸다. 나는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눈을 돌렸다.

“그래도 서윤이가 많이 도와줘서 금방 끝났네. 청소도 깔끔하게  해줬고. 니 덕이야, 서윤아.”

육서윤의 가녀린 어깨를 가볍게 쓸어내리며 감사를 표했다. 그녀는 내 손길을 피하지 않았다.

“내가 뭘.”
“내가 지금 이렇게 몸 건강히 있는 것만 해도 네 덕인데. 이런 일까지 도와주니까 고마워서.”
“…아니야…….”

새집 완성의 기쁨 때문인지 나와 워낙 가까워진 친밀감 때문인지. 서윤이의 차가운 얼굴에는 보기 드물게도 미약한 홍조가 피어있었다.

‘해볼까.’

나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한  더 제파르의 권능을 발동해보았다.

[▶ 성감 고조 lv.3> 시동]

[▶강력한 외부적 간섭의영향으로 발동 실패.]

역시 실패했다. 이걸로 딱  번째.
제파르의 권능은 서윤이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었다.

[육서윤에게 네놈처럼 특수한 고유능력이 있는 게 아니라면, 높은 확률로 아스모데우스의 숙주일 거야. 잘하고 있다, 파트너. 테스트는 충분히 끝났고 신혼집도 마련 됐으니 이제 다음 스텝이야.]

그래. 이제부터가 본방이다.


**

우리의 보금자리가 완성된 저녁.
나와 그녀는 밤늦게까지 ―서윤이의 아날로그시계 상으로 인식한 시간대가 그렇다는 뜻이다― 그간 우리가 겪었던 고생들을 이야기하며 회포를 풀었다.
이제는 불침번을  필요도 없었기에 가능한 모처럼의 여유였다.

“집이 생기니까 확실히 좋다. 마음이 놓이는 기분이야.”

서윤이가 석재 화로에 따뜻하게 데운 물을 마시며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는 나와  만들기를 하면서 예전보다 많이 밝아졌다. 몸을 움직이고, 고된 일에 집중하면서 그간 마음을 누르고 있던 것들을 어느 정도 떨쳐내게 된 모양.

일례로, 그녀는 집 만들기에 돌입한 이후부터  한 대의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 생각이 안 난다나.

“참 신기해.”
“뭐가?”
“…오, 오빠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꼭… 악마에 씐 듯한 기분이었는데.지금은 머리가 많이… 맑아졌어. 오빠 덕분이야.”

나는 많이 감동했다.
솔직한 성격 덕에 속내는 잘 드러내더라도 나에 대한 직접적인 호감은 피해왔던 서윤이였는데.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온 그녀의 마음에 너무 당황해서, 이야기를 돌려버렸다.

“크흠! 악마라. 그러고 보니 니가 카톨릭이었지. 그 사람들이랑 있었던 일이 악마의 소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겠다.”
“아니…. 그때 일 말고도, 던전에 들어오기 전에도 그랬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상해졌어….”

나는 뭔가 서윤이의 입에서 악마 군주에 대한 중대한 단서가 나올까 싶어 숨을 죽였다. 하지만 그녀는 금세 머리를 흔들며 딥한 얘기를 피했다.

“…으응! 아무튼. 그 사람들이 윤영 언니랑 그랬을 때는 무슨, 엑소시즘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었어. 나 되게 엉뚱하지?”
“엑소시즘? 혹시 그 사람들이 바포메트나 아스모데우스 같은 악마한테 홀린 거 아닐까 싶었다는 거지. 성적인 거.”
“응. 근데 그건 아닐 거야.”

서윤이가 주머니에서 금색의 작은 십자가를 꺼냈다. 내 귀에 걸려 있는 소형화된 메리 정도 크기의 귀여운 십자가였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날 보고 계실 테니, 감히 잡스러운 악마 따위가 그런 사태를 만들 순 없지않을까.”

―파삭

그녀가 앉고 있던 평편한 바위에서 써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래도 내 마력 활용이 아직은 미숙하다보니, 매끄럽게 깎이지 않은 면이 있는 모양.
나는 마침 악마 얘기가 나온 김에 서윤이와  얘기를 자연스럽게 이어볼 요량으로 아스모데우스 얘기를 꺼냈다.

“근데 서윤아, 바포메트는 내가 잘 모르는데. 아스모데우스는 마냥 허접한 악마는 아닌 걸로 알고 있어.”
“어떻게?”
“음, 예를 들면.”

나는 서윤이에게 구약에 등장하는 조잡한 악마 아스모데우스 이야기보다는, 탈무드에 등장하는 그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당연히 일부러 그런 거였다. 그를 혹시라도 자극할 수 있을까 싶어서.

“십계명을 아는 인간을 영리하다며 보호해 주거나, 테트라그라마톤을 지키는 인간을 좋게 평가해서 사위로 삼는 모습도 있어. 그런 행동을 할 때는 아스모데우스를 악마가 아니라 정령이라고 칭하기도 한대. 어때? 마냥 악마가 아니라 일종의 정령에서 기원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상식을 벗어난 힘을 쓰는 것도 이해할 수 있을  같지 않아?”
“별루.”

서윤이가 단호한 얼굴로 십자가를 목에 걸고 옷 속에 집어넣었다.

“토빗기 말씀에, 아스모데우스는 저열한 호색한이라고 나와 있어. 내가 성경 말씀을 잘은 모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악마가 신비한 정령 같은 모습일 거라곤 생각 안 해. …오빠가 해준 말은 되게 재밌었지만.”

그때였다.

―파사사삭!

“꺄아아아!”
“서윤아!”

서윤이가 앉아있던 바위가 기다렸다는 듯 쪼개졌다.
그녀의 하체가 완전히 반으로 갈라진 작은 바위 사이에 끼어버린 것이다.

“너 괜찮아?!  다쳤어?”
“하아 깜짝이야. …응, 바위결이 갈라졌나봐.”
“…….”

서윤이의 생각은 틀렸다.
저 돌은 결이 없는 마냥 짱돌이다. 내가 마력으로 돌을 깎다 힘들어 죽을 뻔했기 때문에  안다.

즉, 절대로 저렇게 반듯하게 둘로 쪼개질 리가 없는 돌이라는 뜻.

‘이건….’

색욕의 군주 아스모데우스.

탈무드 혹은 유대 설화에 따르면 그(혹은 그녀)는 올바른 지식을 추구하는 자에게 상을 준다.

반면 하느님의 말씀. 즉, 진리에서 벗어난 말을 하는 자에게 벌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즉, 아스모데우스가 우리들의 말을 모조리 귀담아 듣고 있었고 그를 통해 지금 이 상황을 초래한 것이라면.

‘그 새끼 나한테 낚인 거 맞지.’
[쎅쓰. 놈의 행동 패턴과 같다. 놈은 유독 본인의 평판과 지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

서윤이가 앉아 있던 바위가 갑자기 두 조각난 것은, 그를 허접스러운 잡귀 취급한 서윤이에게 내린 ‘벌’이라고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오빠,  손 좀.”
“어?”
“나 엉덩이가 끼었어.”

상념을 잠시 접고 서윤이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워주었다.
아스모데우스의 ‘벌’을 받은 그녀의 매끈한 종아리는 온통 먼지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에이, 다시 씻어야겠다.”
“그러게. 찝찝하겠네.”
“…근데 오빠.”
“응.”
“같이 가주면…  돼?”
“어딜? 지하수?”
“응.”

옷에 뭍은 흙을 털어대던 서윤이가, 고개를 살짝 떨구며 창피해했다.

“귀신 얘기 들었더니… 나, 무서워.”
“…….”

나는 이 순간, 하루라도 빨리 아스모데우스를 봉인해야할지.
아니면 이 귀여운 생물과 굶어 죽을 때까지 던전에서 사는 게 좋을지 정말 심각하게 고민했다.



성감 고조 lv.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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