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42. 제이와 수상한 산부인과(3)
대면식장으로 향하는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마지막 원인.
그것은 다름 아닌, 육서윤의 치명적으로 예쁜 생도복 차림이었다.
‘…이건 좀 너무하다.’
[괜히 아스모데우스의 화신이 아니다.]
마치 맵시 있는 사복처럼 커스텀한 육서윤의 생도복 차림은 폭력적일 정도로 귀엽고 섹시했다.
눈에 확 띄는 풍성한 염색 금발머리에는 평소에커스커 못 보던 하얀색 진주 머리핀이 있었는데, 이 장식 때문에 그녀의 분위기가 더욱 여신 같았다.
청록색 체크가 들어간 멜빵 치마는 흰색 셔츠가 감싸고 있는 그녀의 H컵 폭유를 더욱 강조했고.
타이트하게 줄인 기장 덕에 비치는 검정 스타킹이 조이고 있는 탄력적인 허벅지는 그대로 노출되고 있었다.
굽이 낮은 감색 로퍼도 귀엽고 작은 발과 부러질 듯 가느다란 발목과 잘 어울려서, 서윤이는 이 차림 그대로 생도복 화보 촬영을 해도 될 수준이었다.
“…생도복.”
나는 조금 쑥스러웠지만, 그래도 느낀 바를 솔직하게 말해주었다. 이런 건 지나가면 다시말할 타이밍이 없으니까.
“생도복 잘 어울린다.”
“고마워요.”
“줄이는 건 어느세탁소에 맡겼어? 솜씨가 아주 좋은 사람 같네.”
“저희 집 디자이너요.”
“…아하! 그렇군.”
[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했어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으면 그녀의 손재주와 꼼꼼함 같은 걸 띄워주려고 했는데 실패했다.
‘오늘따라 학교가 왜 이리 커 보이냐.’
나는 육서윤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대면식장인 상점가 고기 뷔페 집에 들어갔다.
―딸랑
“이제 왔냐! 제…… 하….”
은색 쟁반을 들고 나를 반기던 아이웨이가 내 뒤에 이어서 들어온 육서윤을 확인하고 굳어버렸다.
나는 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준 뒤, 선우와 엘리사가 있는 테이블 쪽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제야 나는 육서윤이 주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식사 맛있게 해.”
“길 안내 수고하셨어요.”
“…….”
육서윤이 1학년 생도들 틈바구니에 자리를 잡고 잠시 뒤, 대면식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마지막이었던 모양.
사회 겸 진행은 1학년 C반의 담임교수인 도노반 교수가 도맡았다.
“자! 오늘은 명색이 대면식이니까, 니들끼리만 붙어 있지 말고 1학년들이랑 섞어 앉고 그래! 거기, 너! 그쪽 테이블.”
“저희요?”
도노반이 식당 맨 구석자리에 있는 우리 쪽을 가리켰다.
“그래, 너희. 너희부터 한 사람씩 차례대로 창가 쪽 자리부터 끼워 앉아. 1학년 사이에 2학년 한 명씩. 무슨 말인지 알지?”
“네.”
“네에~!”
나와 엘리사와 선우와 아이웨이를 시작으로 2학년 생도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1학년 생도들은 쭈뼛거리면서도 재밌다는 기색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 만났네. 반갑다, 서윤아.”
“글쎄요.”
“…….”
어쩐지 오늘 밤에는 고기가잘 안 넘어갈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
―지글지글
불판에 고기가 구워지는 소리와 함께.
대면식 자리는 시끌시끌한 생도들의 목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두어 시간을 후배 생도들과 엘리사에게 고기를 구워주다, 잠시 소화도 할 겸 화장실에 들러 폰을 확인했다.
[→라라 마르티넥: 응, 개강 첫날은 잘 보냈구나. 나는 금요일 오후 2시 반쯤 제주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야.]
‘라라 교수님은 금요일에 오시는구나. 맞다, 교수님은 이번 학기 수업 없이 연구만 하신다고 하셨지.’
금요일 오후. 마침 그때는 전공 수업이 하나밖에 없는 날이다. 더군다나 첫 주니까 OT만 하고 끝나기가 십상.
[→나: 그럼 제가 마중 갈게요 :D]
[→라라 마르티넥: 정말?]
[→나: 너무 보고 싶어서요.]
[→라라 마르티넥: (작은 하트 이모티콘) (작은 하트 이모티콘) (작은 하트 이모티콘)]
오는 금요일. 나의 썸녀와 재회한다.
나는 벌써부터 자지가 웅장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진짜 빨리 보고 싶다. 정력이 50 때문인지 요즘은 딸딸이로도 성욕이 제대로 안 풀리는 기분이야.’
라라 교수를 만나 회포를 제대로 풀고 싶었다. 물론 그녀가 그럴 마음이 든다면 그렇다는 이야기긴 하지만.
게다가, 그녀가 출장을 간 사이 찾아놓은 ‘타임캡슐’을 하루라도 빨리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컸다.
‘되게 좋아하겠지.’
노래를 흥얼거리며 손을 씻고 화장실에서 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이거 안 놔?!”
그때, 고기집과 조금 떨어진 골목 쪽에서 희미한 음성이 들려왔다.
귀에 팍 꽂히는 여자의 미성이.
“씨발년, 존나 튕기네. 누가 뭐 어떻게 한대? 번호나 좀 달라는데 뭐가 그리 까칠해.”
“놔.”
“야야, 이년 쫀 거봐. 손목 떨리네.”
“큭큭큭! 쫀 게 아니라 느끼고 있는 거 아냐? 존나 웃기네, 떨면서 젖탱이도 흔들리는 거 보소, 큭큭큭!”
나는 빠르게 코너를 돌아 골목길 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내가 잘 아는 여자가 세 명의 남자들 사이에 둘러싸여 곤혹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알싸한 담배냄새와 옅은 술 냄새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서윤아, 무슨 일이야.”
“…오, 오빠!”
팔에 힘을 주느라 얼굴이 새빨개진 서윤이가 그렁그렁한 눈으로 날 불렀다.
나는 2학년 생도 배지를 착용하고 있는 세 남자를 지나, 그녀의 앞에 서서 그들에게 물었다.
“무슨 용건이야. 애가 싫어하는 거 같은데. 내 눈깔이 삐었나.”
“아, 씨발. 넌 뭐야?”
“얘 아는 사람.”
“아는 사람이면 그냥 알기만 하고 지나 가. 남 연애에 관심 갖지 말고.”
셋 중 담배를 꼬나물고 있던 남자가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찔러왔다.
나는 가볍게 뒤로 피하면서 고기집 안쪽에 있는 사람들이 들을 수 있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소리를 내질렀다.
“아!! 여기 헌터 생도가 사람 친다!!”
세 남자가 귀찮게 됐다는 얼굴로 내게서 멀어졌다.
“하아….”
“이 씹새끼 폭탄이네.”
“사내새끼가 벨도 없나.”
좀 더 실랑이를 벌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바로 발을 빼버리니 당혹스러운 모양이었다.
나는 아직도 서윤이의 손목을 붙잡고 있는 키가 큰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손목을 꽉 잡았다.
“이거나 빨리 놔. 너 교내 성추행은 단 1회도 학사 경고감인 거 몰라?”
“…너 개새끼, 밤길 조심해.”
“가자. 씨발년, 너도 두고 봐.”
키 큰 남자가 서윤이를 놓았고, 세 남자 모두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나는 몸을 돌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육서윤에게 위로를 건넸다.
“괜찮아? 초저녁부터 학교 내에서 헌팅질이야. 별 또라이들이 다 있다.”
“…….”
서윤이는 말이 없었다. 단지 억울하고 분할 뿐인지, 한참을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그러다 눈물이 고였던 빨개진 눈을 훔치고, 생도복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치이익
나는 그녀가 담배를 태우는 동안 옆에서 기다려주었다.
서윤이는 장초하나가 절반 즈음이 되어서야 입술을 뗐다.
“…고마워요.”
“뭐가. 여기 어차피 대로변 옆이라 괜찮았을 거야. 쟤들도 많이 취한 것 같진 않고.”
“하아…….”
회색 담배연기 사이로 깊은 한숨을 내쉰 육서윤이 벽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공허한 눈빛으로 남색의 초저녁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한동안은 이런 일… 없었어서 마음 놓고 있었나 봐요. 기사님 차로 학교 집, 학원 집만 왔다 갔다 했었는데….”
나는 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서윤이와 함께 갇혔던 내균열 던전 안에서, 그녀가 이런 얘길 했었다.
―오빠, 나 저주 받은 거 같아.
―저주?
―응. 밖에 나가기만 하면 시비가 걸려. 주로 남자들한테. 시비가 안 걸려도, 오래 같이 있으면뭔가 이상해지고. …오빠 빼곤, 전부그랬어. 오빠만 빼고…….
아스모데우스의 화신인 서윤이는 어릴 적부터 셀 수조차 없을 정도의 잦은 성추행과 위협을 받아왔다고 한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부잣집 자제들만 다니는 국제중/고를 다닐 때조차 화장실 한 번 마음 놓고 가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동화율이 지나치게 높아서다. 아스모데우스가 봉인 되서 떠난 지금조차 육서윤이 풍기는 색기는 <애욕의 화신> lv.3 수준이야. 네놈에게 봉인되기 전에는 더 강했을 테니 말도 못했겠지.]
새 장초 하나를 또 꺼내 문 육서윤이 넋두리 하듯 자신의 처지를 자조했다.
“그래도 아카데미는 양반이에요. 자기 수양을 쌓는 무도인들이 많아서 그런지, 아니면 아직 때가 덜 묻은 어린 생도들이 많아선지. 사람 눈 없는 곳도 적어서, 그나마 마음은 편해요. 룸메이트들도 좋고. …그래봐야 오늘도 이 꼴이지만.”
나는 예전에 던전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서윤이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뻔한 말을 해봐야 위로가 될 리 없었고, 오버를 해서 그녀를 달래봐야 어색하기만 할 뿐이니.
“제이 오빠.”
“어.”
육서윤이 담배를 든 팔을 힘없이 늘어뜨리며 나를 바라봤다.
“…저, 이상하죠.”
나는 이쯤에서 침묵을 깰 때가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균열 던전에서 여러 번 겪어 봤던 상황이기도 해서, 대처 방법도 감이 왔다.
‘농담이라도 하는 게 낫겠다. 애가 또 굴 파고 들어가려고 하네.’
나는 가볍게 고개를 흔들며 손가락으로 그녀의 담배를 가리켰다.
“응, 이상해. 너처럼 장초 그냥 피우다 마는 사람 처음 봐. 너 겉담배지.”
“아니에요.”
“뻥치지 마. 꼭 너 같은 겉멋충들이 겉담배 피면서 분위기 잡더라. 끊어 그럴 거면. 장초 아깝게. 다른 흡연자들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내 도발에 육서윤이 크게 발끈했다.
“아니거든요? 나 완전 꼴초에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무시하고 있어.”
“겉담배 피운다고 하면 무시하는 거냐. 어차피 담배 처음 시작할 때 다들 멋있어보여서 피우는 거잖아. 겉. 멋. 때문에.”
“아휴!”
그녀가 답답해 죽겠다는 듯이 자신의 윗가슴을 팡팡 쳤다.
“이거라도 안 피우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데! 그럼 어떡하라구요!”
“가슴은 이미 터진 거 같은데.”
“뭐 이 새끼야?!”
“어쭈, 너 지금 오빠한테 반말해?”
“그래, 했다!”
육서윤이 예쁜 눈매를 팍 찌푸리며 나를 노려봤다.
나는 그녀를 계속해서 놀렸다.
차라리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는 그녀 모습이 아까보단 나았으니까.
“반말해 그럼. 허락해줄게.”
“니가 뭔데 허락을 한다 만다야?”
“그럼 반말하지 마.”
“싫은데?”
“싫으면 시집 가.”
“…순 미친놈 아니야, 이거!”
나는 아까보다 다채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서윤이를 향해 손을 내저었다.
“야! 너 담배 냄새 존나 나. 너 이따 우리 엘리사한테담배 냄새 풍기기만 해봐? 올 때 꼭 손 씻고 와.”
“니가 뭔데 자꾸 이래라 저래라냐고!”
“너한테 관심 있어서.”
“…허, 헛소리 하고 있네! 관심 꺼!”
“응.”
나는 그대로 등을 돌려 골목을 빠져나왔다.
“야! 김제이! …아, 짜증나!”
째지는 미성이 3월 2일의 저녁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에는 적어도, 울음기는 남아있지 않았다.
**
하나도 안 바쁜 것 같으면서도 돌이켜보면 더럽게 일이 많았던 개강 첫 주가 쏜살 같이 지나갔다.
그리하여 때는 바야흐로 금요일 오후.
“교수님! 여기요!”
나는 나의 사랑스러운 썸녀, 라라 마르티넥과 재회하기 위해 제주국제공항을 방문했다.
“제이야! 오래 기다렸지?”
커다란 은색 캐리어를 끈 라라 교수가,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와, 씨발… 존나 예쁘다.’
3주 만에 재회해서 더 그런가.
라라는 오늘따라 정말 예뻤다.
옷차림은 사실 그녀의 외모에 비해선 썩 수수했다. 기다란 검은 가디건에 몸에 완전히 달라붙는 베이지색 폴라티. 그리고 청스키니 바지를 입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라라에겐 옅은 화장이 들어간 아름다운 얼굴과 찬란하게 빛나는 은발 머리, 173cm에 달하는 기럭지와 S라인 몸매가 있었다.
공항에 있는 모든 이들의 시선을 한 순간에 집중시킬 정도의 천상의 미모가.
“미안. 착륙은 아까 했는데, 기내에 문제가 생겨서. 임산부가 있었거든.”
“아니에요.”
나는 라라 교수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환하게 웃었다.
이 여자가 내 썸녀라니, 이 여자 처녀를 내가 가졌다니, 이 여자가 내 총각딱지를 떼어줬다니, 생각하면서.
“교수님 식사는 하셨어요?”
“응. 제이는?”
“아카데미에서 먹고 왔어요. 참, 교수님 볼티모어 얘기 좀 해주세요. 미국은 어때요? 전 외국을 아직 한 번도 안 가봤거든요.”
“그렇구나. 볼티모어는 말이야―”
나와 라라는 그녀의 학회 얘기, 내가 들어간 동아리 얘기 등을 하며 공항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의도한 바대로, 라라가 이야기에 푹 빠져 공항버스 터미널을 그냥 지나쳐버리게 만들었다.
“아.”
“왜 그러세요, 교수님?”
“우리 버스. 지나갔잖니. 어떡하지.”
라라가 미안하다는 듯 아랫입술을 살짝 올려왔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고개를 내려 라라의 분홍 입술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쪽
뽀뽀. 이건 뽀뽀였다.
“…….”
라라의 얼굴이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이목구비야 동양인이 선호하는 동안형의미인상이라지만, 그녀는 순수 백인이다. 하얀 피부가 붉어지자 천연 은발까지 색체 대비 돼서 더욱 빨개보였다.
“교수님, 예뻐요.”
“…제이가 더 예뻐.”
“저 손잡고 싶어요.”
“……그래.”
들고 있던 내 짐을 라라의 캐리어 위에 올렸다. 그리고 빈 손으론 그녀의 차갑게 식은 손을 잡았다.
“교수님. 그럼 이왕 버스 지나간 김에, 날씨도 좋은데 저기 공원에서 데이트나 하다 갈까요?”
“…데이트?”
“네. 오늘 서귀포시에 가서 저녁도 먹고 타임캡슐도 찾기로 했잖아요. 그럼 바쁠 테니까, 여기에서는 순수하게 데이트만 하는 걸로.”
어차피 이따가도 데이트 여기서도 데이트지만.
라라는 아직 나와 그녀 사이의 교수-학생 간 상황을 꽤나 신경 쓰고 있는 듯해서 그리 말해주었다.
“……좋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대답과 동시에 잡은 손으로 깍지를 꼈다. 살짝 땀이 밴 라라의 가느다란 손 또한 힘을 주어 내 손가락 사이를 꼭 감싸 안아왔다.
나는 한순간에 꼴려버렸다.
‘아 씨발.’
발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라라 교수와 공원으로 향했다.
<기억의 정원>.
제주도국제공항 옆에 조성된, 『블루돌핀 테러 사건』을 추모하는 그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