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46. 제이와 수상한 산부인과(7)
알렉세이 스몰로프.
27세의 러시아 출신 B급 헌터 생도다.
3학년이고, 4년째 학교를 다니는 중.
평소 침착하고 어른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친구라, 또라이 많은 3관 거주민 사이에서 은근히 중재자 역할을 하는 친구였다.
개인적으론 왜 얘가 3관에 있는 모를 정도로 괜찮은 애.
‘알렉세이가 유부남이었구나.’
그런 그의 꿈에도 몰랐던 사정을 알게 됐다.
‘혹시 이거 아까 병원에서랑….’
[물어봐라. 촉이 온다.]
알렉세이의 옆에서 술을 함께 마셔주는 브랜드의옆에 앉아 자세한 사정을 물었다.
“어떻게 된 건데. 나도 들은 얘기가 있어서 물어보는 거야.”
“들은얘기? 뭔데.”
“그건 이따 얘기하고. 혹시 나도 사정을 들을 수 있을까 알렉세이?”
어두운 얼굴로 보드카를 마시던 알렉세이가 “넌 빠져.” 라고 얘기하는 브랜드의 팔을 잡고 얘기했다.
“세 번째 유산이다. 첫 번째는 임신 초기에 그녀가 헌팅을 나갔다가 신체에 충격을 받아 사산됐고. 두 번째는 자궁 외 임신이라 수술을 했지. 그리고 세 번째가 이번이야. 이번에는 자연 유산.”
“아내 분이 헌터셨구나. 그럼 자연 유산이기 쉽지 않은데.”
“임신 직후부터 일을 쉬었는데도 그렇게 됐다. 헌터 전문 병원에서조차 원인을 모르겠다고 하더군.”
“안타깝다….”
비록 E등급의 헌터라고 해도 비각성자 일반인보다 훨씬 건강하다.
F등급이 불완전 각성자의 대명사 격임을 상기하면. 그리고 던전에서 몬스터를 잡아 생계를꾸릴 정도의 헌터임을 감안하면 알렉세이의 아내는 최소 D~C등급.
집에 가만히만 있는데 자연 유산이 된다는 건, 일어나기 쉽지 않은 일.
“이번에는 병원이 문제다.”
“그, 그런 것… 가, 같아…….”
“병원?”
낸시와 미아가 심각한 얼굴로 호두과자 포장지를 까며고개를 끄덕였다.
“알렉세이의 와이프가 다녔던 산부인과. 그 병원에 좋지 않은 소문들이 돌고 있다. 그리고 나와 미아는 그 병원에 뭔가가 있다는 추측을 하고 있다.”
“…저, 저주…조, 종류, 같아…….”
―탁!
브랜드가 유리잔을 탁자에 세게 내려놓았다.
“또 그 소리냐? 하여간 오컬트에 미친년들 집착은 알아줘야 된다니까. 이년들은 진짜 돌았어. 저번에재수씨 유산했을 때는 고대 정령을 불러서 강령술을 해야 된다느니 개지랄병을 떨더니. 니들이나 정신과 가봐. 요즘 정신분열증은 보험도 된다며?”
브랜드가 두 여자를 극딜했다.
평소 브랜드의 억제기 역할을 하는 알렉세이조차 그 의견엔 동의하는지, 브랜드를 말리지 않았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그 병원… 혹시 서귀포시에 있는 믿음산부인과 맞아? 중정로에 있는 큰 거. 7층 건물 3층.”
내 말에 두 여자가 반색을 했다.
“역시 우리 총무다! 나와 미아가 신입 부원 하나는 정말 잘 뽑았다!”
“후, 후후후….”
…니네 되게 뿌듯해 보인다.
“내 아내는 나이가 많아.”
알렉세이가 침울한 얼굴로 보드카를 들이켰다.
“이번에도 1년 만에 정말 어렵게 임신이 된 거지.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조심했는데. 결국 결과가 이렇게 되고 말았다. 잦은 유산과 나이 때문에, 이제는 여성 헌터라고 해도 앞으로 임신이 가능할지 의심스러운 상황이야.”
“많이 힘들겠다. …나도 한잔 줄래?”
“에이, 술도 없는데.”
브랜드가 투덜거리며 자신의 잔에 싸구려 보드카를 따라주었다.
나는 브랜드와 하킴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처럼, 함께 술을 마시며 그를 위로해주었다.
한편으로는 메리와 함께 믿음산부인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뭔가 있는 것 같다. 무려 B등급 여성 헌터조차 유산을 시킬 정도의 뭔가가.’
[악마 군주일 가능성이 높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불임을 유도하는 그 놈.]
역시 악마 군주일까.
‘누군데?’
[34위 푸르푸르. 특이계 악마지. 호전성이 강하거나 전투력이 세지는 않지만, 불임 컨셉을 지옥 끝까지 추구하는 아주 좆같은 사슴 새끼야.]
진짜 좆같은 놈일 것 같았다.
만약 푸르푸르가 맞고, 그놈이 이곳 지방 소도시인 서귀포가 아닌 서울 같은 곳에 있고. 다년 간 급속히 힘을 키워 영향력을 확대한다고 가정해보면.
‘이천만 대도시에출생자가 0명. …국가 재난 상황이 올 수도 있겠는데.’
나는 오늘 오후를 위해.
취하지 않도록 보드카를 꺾어 마셨다.
**
알렉세이가 만취하고 자리를 파한 뒤.
옷을 갈아입고 서귀포시로 향했다.
‘몸이 찌뿌둥하네.’
[전사의 휴식이라 생각하고 참아라.]
야외 활동을 하느라 자율 훈련을 이틀이나 재껴버렸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주말은 일주일에 단 이틀뿐이니.
‘믿음산부인과라.’
서귀포시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낸시와 미아가 보내준 링크를 타고 커뮤니티 사이트로 들어갔다.
과연 제주 맘카페에는 해당 병원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들이 무성했다.
―[불임병원. 믿음산부인과 건물 리모델링한 이후에 요즘 서귀포시랑 남원 창천 이쪽에 임신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함. 무서워요ㅠㅠ]
―[→ ㅇㅇ 제 남편이 제주시 병원 남자 간호산데 팩트래요. 그래서 요즘 무슨 전염병 도는 거 아니냐고 의심 중.]
―[그거 원장이 딩크족 중혼자라 벌 받은 거 아니냐고 해요ㅋㅋ 사람들 진짜 웃기죠? 작년 여름까지만 해도 원장님 칭찬 자자했는데 이제는 첩인 주제에 애도 안 낳는다고 욕함ㅋㅋㅋ]
―[→ㅂㅅ 알바년아. 그럼 애 싫어하는 원장이 산부인과 운영하는데 애가 좋다고 들어서겠다. 국회의원 좆집 첩년이 하는 병원 너나 많이 가.]
―[→→ 알바? ㅈㄹ하네. 21세기에 아직도 무슨 비과학적인 얘길해. 그리고 양심적으로 중혼자라고 욕하지는 말자. 원장 남편이 잘나가니까 배 아픈 거겠지 중혼자타령은 무슨ㅋㅋ]
중혼자重婚者.
삼원 회장인 육서윤의 아버지처럼 여러 명과 결혼한 사람을 말한다. 비유적 의미가 아니라, 법적인 의미의 결혼.
60년 전 발생한 퍼스트 컨택트로 인해 생산가능인구가 ―특히 남자― 감소한 점과, 중혼제도가 기본인 이세계 프레이야와의 문화교류 등 다각적인 요인 때문에 이제는 상식이 된 결혼 제도다.
물론, 과거에 비해 중혼하는 사람의 수는 크게 줄었다. 하지만 돈 많은 사람들 ―보통 남자― 중엔 여전히 중혼을 하는 케이스가 많아서,딱히 흠이라고 할 만 한 얘긴 아니었다.
당장 대통령도 남편이 셋인 마당에.
‘만약 원장이 악마 군주의 숙주라면, 그럼 문제는 딩크족 쪽인가?’
나는 우선, 가장 범인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소문의 ‘원장’에 집중해보고자 했다.
이 여자 얘기가 사람들 사이에 제일 많이 오르락내리락 했으니까.
[그럴 가능성도 있다. 본인이 아기를 원하지 않으니 그 욕구가 푸르푸르를 불러들였을 가능성이 있지.]
‘그래. 일단 내려서 알아보자.’
나와 메리는 정보 취득과 악마 탐색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샥스의 <보물찾기 lv.1> 권능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띵동
―지하 1층입니다
우리는 믿음산부인과 원장 소유의 건물을 지하부터 차례로 올라가며 수상한 점들을 찾았다.
[▶ 보물찾기 lv.1> 시동]
[▶대상 <최민주>의 현재 위치: 소망 빌딩 옥상정원.]
그러다 샥스의 권능을 통해 옥상에서 산부인과 원장과 조우했다.
‘어때. 저 여자한테 이상한 거라도 느껴져?’
메리가 우웅, 떨며 부정했다.
[아니. 푸르푸르가 아무리 은밀한 놈이더라도 지근거리에서 못 알아챌 정도는 아니야. 저 여잔 숙주가 아니다.]
‘그래?’
[쎅쓰. 원장이 잠에 든 밤이 되면 더 확실해지겠지만, 일단 아니라고 본다.]
‘젠장.’
녀석이 살펴본 바, 첫 용의자로 삼았던 원장은 악마의 숙주가 아닐 가능성이높았다.
하지만 우리는 실망하지 않았다.
지치고 포기하기엔 푸르푸르 ―가 맞을 경우― 가 가진 권능이 너무 위험했으니까.
―띵동
―3층입니다.
우리는 주 수색 공간인 믿음산부인과 내로 들어가, 이번에는 일반 직원들을 유심히 관찰했다.
그러던 중, 단서를 찾아냈다.
“짜증나! 내일도 예약자 한 명도 없어. 환자들 다 제주시에 뺐겼나봐.”
“야, 그 네일 집 사장. 예전에 술집여자였다는 말도 있던데. 그 여자한테 뭐 안 좋은 기운 있어서 우리 병원이 이러는 거 아닐까?”
“맞아, 맞아. 네일하는 사람들 중에 그쪽 출신 많데. 혹시 알아? 하도 지은 죄가 많아서 주변까지 이럴지.”
스테이션에서 근무 중인 간호사들이 2층에 있는 네일아트집 사장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아까도 간호사들이 그랬었지.’
―야. 이거 올 초에 아랫집 이사 오고 나서부터 계속 이러는 거 같지 않아?
―네일 집? …어, 듣고 보니 그렇네. 이런 일 작년에는 하나도 없었잖아. 오히려 우리 병원 용하다고 소문도 났었는데.
이걸로 그 여자 얘기가 귀에 들어온 것이 두 번째.
원장이 아니라, 건물 리모델링 후 입점한 네일집 사장이 숙주라면 갑작스런 이상 현상도 설명할 수 있다.
원장은 이 믿음산부인과에서 10년 넘게 일했던 사람이니까.
‘이거구나!’
[빨리 가보자!]
나와 메리는 2층에 위치한 <클레오네일아트>로 향했다.
**
―딸랑
유리문을 열고 가게에 들어갔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부드러운 인상의 미녀가 나를 반겼다.
“어서오세요! …어? 남자 분이시네.”
“안녕하세요.”
“어떻게 오셨어요?”
“네일 좀… 받아 보려구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둘러댔다.
<점장 송유빈>이라는 명찰을 단 여자가 머리띠로 갈색 머리를 곱게 정돈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 앉으세요. 손님 혹시 네일은 처음이세요?”
“네. 완전 처음입니다.”
“그러시구나. 그럼 어떤 거 받으시려고 오셨어요?”
“서비스 종류가 다양한가 봐요.”
“그럼요?”
송유빈, 이라는 네일아트집 점장이 카탈로그를 펼쳐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고객님 손톱, 발톱 모두 케어 가능하시구요. 가볍게 큐티클 관리만 하시는 것도 가능하시고, 여기 보시는 것처럼 다양한 형태로 꾸미는 것도 가능하세요.”
나는 반짝이를 붙이거나 손톱에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온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와 대면 시간이 짧으면, 메리가 악마 탐색을실패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풀코스를 선택했다.
“풀코스요? 후훗! 손님.”
“네?”
송유빈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헛소리를 날렸다.
“저 유부녀에요.”
…어쩌라고.
“그래서요?”
그녀가 유리 테이블에서 상체를 떼고 팔짱을 끼었다. 염료가 묻어 있는 갈색 앞치마가 살짝 펄럭거렸다.
“저 그런 거 하나도 관심 없거든요? 조용히 손톱 손질만 받고 가시던지, 아니면 경찰 부를 테니까 지금 가시던지 선택하세요. 손님은 재수 좋은 줄 아세요? 저니까 바가지 안 씌우고 바로 말해주는 거니까. 여우같은 애들 얼마나 많은데.”
“…….”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한 것 같았다.
내가 자기를 꼬셔보고 싶어서 괜히 풀코스를 선택한 게 아니겠느냐는 뭐 그런 종류의 착각.
[미모가 출중하니 그런 경험이 왕왕 있었다고 해도 이상하진 않겠군.]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장님 혹시 도끼병 있다는 소리 못 들어보셨어요?”
“어떻게 알았데?”
“이마에 그렇게 쓰여 있어요.”
“아하하핫! 들켰네.”
나는 얇은 봄 점퍼를 벗고 반팔 차림으로 그녀에게 손톱을 내밀었다.
입으로는 아무런 뻥을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면서.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네일 공부를 시작한다고 해서요. 저도 조금이나마 알아두면 그 친구랑 가까워지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그래서 한 번 받아보려고 왔어요.”
“아하! 그런 거구나. 아, 뭐야 나 완전 쪽팔려, 큭큭큭!”
송유빈이 소녀처럼 웃었다. 그러더니 내 손을 유심히 잡고 보다가, 생긋 웃으며 안내를 해주었다.
“그럼 남성분이시니까 맛만 보세요. 컬러링은 그라데이션으로 새끼손가락 하나에만 해드릴게. 대신 큐티클 관리랑 젤이랑 나머지는 전부 포함. 발톱은 안 해도 되지? 헌터 같은데, 어차피 금방 땀 차서 말짱 도루묵이야.”
“네. 총 얼마에요.”
“음… 7만 원만 줘.”
“바가지 아니죠?”
“아하하하! 맞어. 바가지야. 나 창피하게 했으니까 벌금 내셔야지. 잠깐만. 앞 손님 안내 좀 도와드릴게.”
그녀가 내 손을 놓고 커튼이 쳐진 가게 안쪽으로 향했다.
“학생, 손 다 씻었어?”
“네?! 네, 네에…….”
“그럼 나와야지. 찬물에 2,3분만 씻으면 된다고 했잖아. 더 오래 씻으면 폴리시 벗겨질 수도 있어. 가게엔 기계가 있으니까 쉽게 말리는데, 혼자서 할 때는 그런 걸 유념해야 돼.”
“…네.”
“괜찮아. 공부 막 시작할 때는 그런 거 까먹기도 하고 그러는 거지 뭐. 그래도 학생은 처음치곤 되게 잘한 거야. 이제 물기만 닦고 오늘은 이만 가도 되겠다. 나 손님 왔거든.”
“……네.”
나는 뭔가 익숙한 목소리에 설마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 오빠아.”
커튼의 안쪽, 세면대 앞에는 캐쥬얼한 사복을 근사하게 입은 육서윤이.
새빨개진 얼굴로 내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안녕.”
보물찾기 lv.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