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7화 〉47. 제이와 수상한 산부인과(8) (47/145)



〈 47화 〉47. 제이와 수상한 산부인과(8)



“오, 오빠아. …아, 안녕.”

갑작스런 육서윤의 등장에 대략 정신이 멍해졌다. 얘가 여기 왜 있지.

―딸랑

그때, 가게 문이 벌컥 열렸다.

“서윤아!  했어? 이제 가자. 나 배고파 죽겠어. 벌써 6시다.”
“응? 으응… 다 했어. 이제 나갈게.”
“그게 네일 새로  거야? 보여줘.”

낯선 여자는 가게 안으로 들어와 육서윤의 손가락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나는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한 남미풍 미녀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쁘지?”
“응. 되게 괜찮다. 나도 다음에 때 한  와봐야겠네. 네일  번도  해봤는데, 보니까 끌려.”
“학생도 이스트 블루 생도야?”
“네. 서윤이 룸메이트에요.”
“아하! 역쉬~ 이쁜 친구들끼리는 서로 몰려다닌다니까. 둘  너무 이쁘다.”
“주인 언니가 제일 예쁘신데요 뭘.”
“아하하! 이 친구 성격도 좋네. 서윤이랑 같이 자주 놀러와. 싸게 해줄게.”

나는 세 여자의 대화를 들으며, 육서윤의 룸메이트라는 여자의 정체를 그제야 눈치챘다.

‘아나 코스타. 그 여자다.’

아나 코스타Ana Costa.

작년, 1학년 여학생도 중 유일하게 구룡칠봉에 오른 강자다. 16강에서 아이린을 꺾었고 8강에서 생도회장에게 패한 바로 그녀.
아나는 화봉火鳳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화끈한 전투 스타일을 구사하는 근접전투의 달인이다.
섹시하고 아름다운 그녀의 라틴계 외모보다, 오히려 전투 실력과 털털한 성격으로 더욱 주목받는 A급 헌터.

‘허벅지랑 엉덩이 진짜 개쩐다.’

몸매 라인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레깅스를 입은 탓에, 그녀의 두껍고 개꼴리는 허벅지와 존나 빡세게 조여진 거대한 골반 및 엉덩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 여자가 서윤이랑 같이 시내에 나온거구나. 어쩐지, 서윤이가 호위도 없이 혼자 돌아다녔을 리가 없어.’

나는 서윤이와 친하게 지내주는 듯한 아나 코스타가 소문대로 괜찮은 사람인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서윤아 이리와 봐. 네일 잘 됐으니까 우리 셋이 사진 찍어서 가게 홍보해드리자.”
“응!  인스타에도 올려야지.”
“사장님도 빨리 오세요.”
“아이참, 학생들! 이러면내가 너무 고맙자너어~!”

아나 코스타의 지시에 따라 세 여자가 가게 중앙을 배경으로 나란히 사진을 찍어댔다.
그러다 서윤이가 내게 다가왔다.

“오빠. 사진 좀 찍어줘… 요….”

그녀가 반존대 비스무리하게 부탁을 해왔다. 이번 주 중 말을 놓게 되긴 했는데 아직은 좀 어색한 모양.

“폰 줘.”
“오빠? 서윤아,  분도 생도셔?”
“…으응? 어! 자매반 선배야.”
“흐응.”

3월 초의 날씨임에도 헌터인 덕에 검은색 탱크 탑과 회색 레깅스만을 입은 아나 코스타다.
그녀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다 진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 사람… 이구나. 김제이 씨라고 했었나. 저기요, 맞아요?”
“네. 아나 코스타 씨 맞죠. 저도 2학년이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나도.저기요, 사진 좀 부탁할게요.”

가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준 뒤.
세 여자가 사진이 잘 찍혔다는 둥, 지들끼리 예쁘다는 둥, 옆에 새로 생긴 파스타집이 치즈가 어떻다는 둥 서로 한참동안 잡담을 나눴다.

[인간 여자들은 어떻게 된  1600년이 지나도 변한 게 하나도 없지.]
‘그러게. 하리나 아이린이랑 패턴이 너무 똑같아서 소름이 돋을 정도네.’

나는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내가 지금여기서 뭘 하고 있었나’ 하고 자아성찰을 하다가, 악마 군주에 생각이 미쳤다.

‘메리야 어때. 송유빈이 숙주 같아?’

―우우웅

귓불에 붙어 내내 귀걸이인 척을 하던 메리가 확신을 안고 떨려왔다.

[쎅쓰. 90% 확률로 숙주라고 본다.]
‘어떻게 알아. 감이 와?’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부분이 절반. 논리적 추론과 경험에 의한 추측이 절반이다. 전자는 이 몸이 인간이아닌 검령이니, 네놈은 이해하기 힘들 거야.]
‘그렇겠지.’

메리가 너무 사람 같아서 자주 잊어버리긴 하지만, 이 녀석은 시스템 캄비온을 컨트롤하는 검령劍靈이니까.

‘얼굴과 이름을 알았으니 샥스의 권능을 쓸  있겠군. 오늘 밤에 해치우자.’
[쎅쓰. 보물찾기 권능을 빨리 얻은 것이 행운이었다. 불필요한 시간 낭비가 확실히 줄었어.]
‘그러게. 내균열 던전에서는 개쓰레긴 줄 알았는데, 현실에선 확실히 쓸만해.’
[오늘 밤 저 여자의 뷰지가 네 좆의 검집이다.]
‘큭큭큭! 검집이래.’

우리는 오늘 밤 꿈속에서, 악마 군주 푸르푸르의 숙주인 송유빈을 자빠트리겠다는 앙큼한 계획을 세웠다.


“아, 맞다! 남학생!”

한참동안 나를 방치플레이하던 나의 검집 후보, 송유빈 사장이 돌연 깜짝 놀라 나를 불렀다.

“학생 친구들이 가게 홍보 도와준다고 해서. 내가 정신이 완전히 팔려버렸네? 미안해서 어쩌지.”
“괜찮습니다.”
“풀코스 지금 바로 시작할게. 학생도 괜찮지?”
“…아 그게.”

나는 잠시, ‘이미 송유빈이 푸르푸르의 숙주임을 확인했는데 굳이 쌩돈을 날려야 하나?’ 하고 생각했다.
그때 송유빈이 선수를 쳤다.

“맞다, 맞다! 서윤 학생이랑 아는 사이랬지. 그럼 DC도 해줘야지. 5만 원에 해줄게.”
“…….”

서윤이도 그녀를 지원사격했다.

“오, 오빠 꼭 받아봐. 손톱 정돈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져.”
“…….”

아나 코스타까지 그녀를 두둔했다.

“혹시 우리끼리만 많이 얘기했다고 삐진 건 아니죠. 그런 스타일은 아닌 거 같은데. 아, 그리고 나도 말 편하게 할게. 괜찮지?”
“…….”

나는 결국 눈물을 머금고 손을 내밀 수밖엔 없었다.

**

밤이 되었다.
나는 거금 5만 원을 들여 네일 아트를 받은  3관 기숙사로 향했다.

―이스트 블루. 로. 가는. 셔틀. 버스. 는. 5. 분. 뒤에. 도착. 합니다.

서귀포시 터미널 버스 정류장에서 학교 셔틀을 기다리며, 피눈물을 흘리는 마음으로 새끼손톱을 바라보았다.

‘이게 5만 원이 말이 돼?’

봉숭아물이 든 것처럼 분홍색 그라데이션이 된 손톱은 뭐… 이게 남자손이 아니라 여자 손이라 생각하면 꽤 귀여울 것 같긴 했다.
하지만 고작 손 좀 다듬어주는데 5만 원이라니.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자가 예쁘지만 않았어도 중간에 됐다고 하고 나왔을지도 몰라.’

송유빈.
클레오네일아트의 점장이자 사장인 그녀는 확실히 주변에서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육서윤이나 아나 같은 절세의 미녀는 아니었지만, 운동량 부족하고 노화가 빨리 오는 일반인치고는 상당한 외모였던 것.
 엄마임을 감안하면  그랬다.

‘그렇게 예쁘니까 결혼을 빨리했나.’

서윤이와 아나가 가고 난 뒤, 둘만 남았을때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

그녀가 21살에 결혼한 기혼자라는 점.

애가 무려 여섯이나 된다는 점.

더구나  여섯이 남자 쌍둥이 셋으로 이루어진 여섯 형제라는 점 등.

[과연 푸르푸르가 숙주로 삼을만하다. 28살 나이에 6형제의 엄마? 자신을 육아 지옥으로 떨어뜨린 남편을 저주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아. 이젠 죽어도 다시는 임신하고 싶지 않을 걸.]
‘그러게.’

20대 나이에 6형제의 엄마라니.
남자 애 한  키우는 것도 빡센데, 무려 여섯이다 여섯!

―빵! 빵!

불현 듯 들려온 경적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빨간 스포츠카가 보인다.
썬팅이 짙게 된 창문이 내려갔고, 아까  여자가 나를 불렀다.

“야, 타!”

밝은 갈색 머리와 건강하게 그을린 구릿빛 피부가 섹시한 그녀.
아나 코스타였다.

“오빠아. …같이 가자.”

운전석에는 수줍은 표정의 서윤이가 있었다.
나는 아나가 조수석을 당겨 만들어준 공간으로 들어가, 스포츠카 뒷좌석에 몸을 눕혔다.

―부우우웅

우렁찬 엔진 소리와 함께 차가 출발했고, 나는 안전벨트를 매며 감사를표했다.

“고마워, 서윤아. 아나도. 둘  지금 가는 길이야?”
“응. 오빠는 네일 잘 받았어?”
“볼래? 여기.”

새끼를 둘 사이에 내밀자, 서윤이와 아나가 엄청 좋아하며 평가질을 했다.

“와, 손이 예뻐지니까 확실히 다르다. 전사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굳은살만 빼면 피아니스트 손 같애.”
“그건 좀 오바 아니냐.”
“아, 아니야! 오빠 손 이뻐. 너무 고생한 티가 나는 손이라 그렇지…. …와, 아나야. 손톱 채색된 거 봐. 그 언니가 확실히 잘하지 그치?”
“이쁘다. 이렇게 하기 어려운데. 서윤이  언제 이렇게 될까? 너한테 네일 받고 싶어.”

나는 여자들 틈바구니에 있으면 늘 그렇듯, 그녀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조용히 기다려주었다.
차 구경이나 하면서.

‘차 정말좋다. 광고에서 봤던 신소재로 만들어진 나노 어드밴스드 카구나.’

서윤이의 것으로 보이는 스포츠카는 이세계인 유로파산産 기술이 적용된 최신형 모델로 보였다.
수소동력, 완전 자율주행, 차 외형 변경, 이음매 없는 선루프, 창문 썬팅 조절  현재 순수 지구의 기술만으로는 양산하기 어려운 미래 과학의 집합체.

“서윤이 차야? 차가 참 좋네.”
“고마워, 오빠. 입학 선물로 겨울에 받았는데, 타긴 오늘이 처음이야.”
“제이야, 이거 20억이래. 옵션 빼고.”
“비싼 만큼 좋은 값 하는구나.”

20억이면 이보다 비싼 차는 컨셉츄얼 카에 가까운 모델이나, 수제 명품카 혹은 특수 제작된 차량 정도다.
대량 양산 모델 중 20억보다 비싼 차는 내가 알기론 없다.

‘역시 서윤이는 나랑 사는 세계가 다르다.’

20억짜리 스포츠카를 고작 아카데미 입학 선물로 받다니.
이 정도 차면 돈 깨나 있는 일반인은 물론이고, B급 이하 헌터도 마음대로  수 없다. A급 헌터인 아나 코스타 또한 아직 학생인 지금은 꿈도 꾸기 어려울 것.

―부우우웅

우리를 실은 차는 한라산 국립공원에 진입해 아카데미로 쏜살같이 달렸다.
나는 지나쳐가는 풍경을 보며  생각, 악마 생각, 훈련 생각 등을 했다.

“제이야, 자?”

그때 아나 코스타가 나를 불렀다.

“아니.”
“서윤이는 잔다.”

좌석 틈으로 힐끔 보니 서윤이가 살포시 눈을 감고 있었다. 오전 일찍부터 돌아다녔다더니, 피곤했던 모양.
아나가 서윤이의 금발머리를 정돈해주었다.

“어제 우리 호텔에서 잤어.”
“호텔?”
“어. 잠시만?”

그녀가 커다란 가슴을 압박하는 안전벨트가 답답한지, 가슴 아래로 벨트를 내린 뒤에 말을 이었다.

“화장실 때문에. 서윤이 아직도 우리  화장실 못 쓰거든. 근데 주말만이라도 니 방  찾아가고 마음 편하게 있고 싶다고 해서, 어제 호캉스 했어.”
“너랑 둘이서는 괜찮나보구나.”
“응. 사실 우리 안면이 있거든.”
“그래?”

아나 코스타가 차 전조등이 밝히는 정면을 보며 이야기했다.

“우리 언니가 삼원 그룹 경호팀장이야. 그래서 예전에 서너 번 정도 본 적이 있어. 이스트 블루 입시 상담도 해줬고, 언니가 서윤이 실기 과외도 해줬지. 우리 언니도 여기 출신이거든.”
“아아.”
“착한 애야, 서윤이.”

잠든 육서윤을 바라보는 아나의 눈이 자상해졌다.

“많이 착해졌어. 이젠 미워하지도 못할 정도로.”
“…예전엔 어땠는데?”
“더럽게 까칠했지. 아카데미에서 재회하기 전이랑 같은 사람이라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나 솔직히 얘 싫어했어.”
“성격 때문에?”
“아니.”

아나가 뒷좌석을 보며 피식 웃었다.

“남자랑 같이 있는 자리에서 서윤이랑 함께 있으면 어떤 여자라도 얠 싫어하게 될 수밖에 없을 걸.”
“너도 예뻐. 정말 많이.”
“그게 문제야.”

그녀가 어이없다는  머리를 이마 위로 쓸어 넘겼다. 슬쩍 보인 겨드랑이와 가슴골이 자연스럽게 음심을 자극했다.

“나 솔직히 한 번도 어떤 여자보다 못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거든. 아이린 정도가 위기감 많이 줬나? 그 여자 지도교수나 너랑 친한 김하리도 예쁜데, 걔들은  꾸미잖아. 그래서 괜찮았지.”

21세 아나 코스타.
그녀는 이런 말을 뻔뻔하게 내뱉어도 좋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래서 지금의 말이 우습다기보단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보여 더욱 매력적이었다.

“근데 서윤이는 달랐어. 외모만이 아니라 아우라랑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그런 거. 그리고 헌터지만 한계가 뚜렷해 보이는 자질까지. 여자로서 이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어.”

나는 아나의 말을 이해할  있었다.
남자는 ‘통계적’으로 알파걸을 선호하지 않는다.
C등급 이상 여성 헌터나 일반인 고연봉자 여성 중 골드 미스가 유독 많은 이유는 별 게 아니다. 그녀들 동급 이상의 남성이, 하향 선택을 하기 때문.
나조차도 같은 값이면 나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여자가 대하기 편했으니까.

“그래서 더 싫었어. 차라리 얘가 강했으면 패배감이라도 들 텐데, 엄청 약해버리니까 오히려 질투가 나는 거야.”
“지금은?”
“아하하! 사실 지금도 좀 그래.”

―부우우웅…

우리를 태운 차가 아카데미 대주차장에 들어섰다. 그녀가 털털하게 웃으며 안전벨트에 손을 얹었다.

“그래도 이젠 괜찮아. 서윤이랑 이제는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야. 이제는, 인간으로 느껴져.”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됐는지 물어봐도 돼?”
“물론. 넌 자격이 있지.”

―딸깍

아나 코스타가 벨트를 푸르며.
아주 고혹적인 미소를 머금었다.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김제이. 네 덕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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