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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화 〉55. 제이의 도둑질 첫 도전!(6) (55/145)



〈 55화 〉55. 제이의 도둑질 첫 도전!(6)

“나랑 한 번 하자.”

에바의 밑도 끝도 없는 제안에 대답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에바 리샤르 씨.”

선우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녀를 노려봤다.

“제이 형님은 남창이 아니십니다. 사과하시죠.”
“반선우.  재미있다? 왜 니가 민감하게 반응해. 둘이 사귀어?”
“사과하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사아아아

실내에서.
절대 불  없는 바람이 불어왔다.
선우가 정령을 부르는 조짐이었다.

―철컥!

에바 옆에서 시중을 들던 소피아가 어디서 꺼냈는지 모를 은색 리볼버로 선우를 겨눴다.

“반선우님. 멈춰주시기 바랍니다.”
“사과를 한다면요.”
“사과? 무슨 사과. 내가 왜 사과를 해. 남녀 사이에 한 번 자자는 말도 마음대로 못 해? 하여간 한국인들 재밌어. 뒤로는 호박씨  까고 다니면서.”
“에바 리샤르. 당신 실수하는 겁니다.”

선우가 그렇게 말한 순간, 에바의 우측 허공이 갈라지며 검은 색의 무언가가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씨팔! 저거 쿠루루잖아!’

실습 때도 안 꺼내는 암속성 정령까지 불러낸 걸 보면 선우는 진심이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쿠루루에게 아는 채를 했다.

“야아! 반갑다! 들어가, 괜찮으니까 빨리 들어가! 너도 주말엔 쉬어야지!”

―Ooooo… oooooo…?

쿠루루가  개소리냐는 느낌으로 울다가, 내가 마구 손을 휘젓자 그제야 다시 정령계로 귀환했다. 아마 선우가 돌려보낸 거겠지만.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와 여전히 선우에게 총을 겨누고 있는 메이드에게 물었다.

“소피아. 총 멋있다. 대헌터용이지? 구경 좀 해도 돼?”
“드려, 소피아.”

소녀가 내 손의 반도 안 될 작은 손으로 쥐고 있던 리볼버를 건넸다.
은색 총신이 아름다운, 고전미가 느껴지는 권총이었다. 재질은 아마도 프레이야산 미스릴에 유로파의 야장술을 섞어 보강한 특수강 소재. 아마 총알은 총보다 더 귀하겠지.

“콜트 싱글 액션 아미를 오마주한 모델이니? 예쁘다.”
“제이 넌 총도 잘 알아? 신기하네. 보통 냉병기를 쓰는 전투계 헌터들은 총기를 백안시하는데.”
“각성하기 전에.플랜B는 있어야 하니까 틈틈이 공부는 했었지.”

총신을 내 쪽으로 돌려 소피아에게 돌려주었다.
소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리볼버를 받고, 들릴  말 듯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M1873의 간결함에 대헌터용 특수제작 모델인 KH912의 야수성을 섞은 아이입니다. 실탄 발사로 위력을 보여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군요.”
“소피아!”
“죄송합니다, 주인님. 농담이 기분 나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반선우님.”
“신경 쓰지 마세요.”

웃음이 나왔다.
자기가 커스텀 제작한 총이 얼마나 쎈지 자랑하고 싶어 안달 난 아이 같은 소피아의 일면을 본 기분이었으니까.

저게고도로 계산된 알고리즘에 의한 행동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인간도 유전자 보존을 위한 생체 알고리즘으로 움직이는 생물학적 기계에 불과한데 뭐.

‘진짜 볼수록 너무 귀엽네.’

흐뭇한 얼굴로 소피아를 뚫어져라 바라보자, 눈이 마주친 소녀가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피했다.
에바가 식사를 재개하며 짧은 사과를 건넸다.

“조크가 과했어. 식사들 들지.”

그렇게 오늘의 점심은.
평화로이 마무리되었다.

**


식사를 마친 토요일 오후.
나와 선우는 청담동을 벗어났다.
내가 자란 늘푸른희망원을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일정보다 빨리 움직이게 된 배경에는 에바 리샤르의 도움이 있었다.

―어차피 소피아가 경과를 체크할 거야. 내일 전시관 문 닫기 전까지만 들러. 그때 누적 데이터까지 줄 테니까.

100명의 여자가 어느 순간 갑자기 101명이 됐다가, 또 언제다시 100명으로 돌아올지 알  없는 일.
차라리 초고성능 영상기록기능이 탑재된 소피아가 보초를 서는 편이 효율적이었다.

[아무래도 저 그림이 수상하다. 이 몸도 기계 계집과함께 동향을 살피지.]

전시장에서부터말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던 메리 또한 청송미술관에 남았다.
나는 『101명의 창부들』과 관련한 괴이 현상이 악마 군주와 관련된 일일 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수락했다.


“형, 얼마나 사신다고 하셨죠?


희망원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고르러 들른 마트.
선우가 평소보다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물어왔다.

“지금 인원이… 한 서른 명은 될 거야. 다 맞춰 살 필요는 없고, 먹을 거 중심으로 사면 돼. 옷이나 이런 건 차라리 돈으로 드리는 편이 낫고.”
“제가 그럼 기부금을 좀 낼까요? 저 겨울부터  되게 많이 벌었는데.”

착한 새끼.
나는 마트 과자코너에서 카트를 밀고 있는 선우의 뒤로 가 녀석의 남자치고 너무나 가냘픈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괜찮아. 우리 희망원, 기부금 많이 들어와. 원장 아버지가 헌터들 사이에서 인맥이 있으시거든.”

166cm의 키라 나와 15cm도 차이가 나는 선우다. 우악스런 내 손길이 어색한 모양인지,녀석이 어깨를 크게 움츠러트렸다.

“…워, 원래 헌터… 라고 하셨었죠?”
“어. S급이셨는데, 마력회로가 박살나서 은퇴하셨어. 원래 우리 돌아가신 부모님 친구 분이시래.”
“형한테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형이 S급을 노리신다고.”
“맞아.”

내가 S급 헌터가 되고 싶어 하는 이유. 그것은 다른 무엇보다, 원장 선생님의 뒤를 쫓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더구나 창槍은 그 분의 무기.

어린 시절, 현역 때의 원장님 헌팅 동영상을 보며 헌터의 꿈을 키웠다.
그분이 휘두른 창이 나의 소망이었고, 원장실에 지금도 걸려 있을 그분의 창이 내게는 전설의 무기다.

“저어, 형.”
“응?”

희망원 아이들에게 줄 장난감을  고른 뒤, 문득 떠오른 소피아의 것까지 고르고 있을 때였다.
선우가 미안한 기색으로 에바와 얽힌 상황을 얘기했다.

“아깐 죄송했어요. 리샤르 가문이 지금 저희 어머니 클랜이랑 프레이야에서 협업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끼리 트러블을만들면 조금 곤란해질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아시다시피 지구에서 클랜 백업은 제가 하고 있고, 그쪽은 에바 씨가 통솔하는 상황이라서.”
“그런 것 치곤 쿠루루까지 꺼내던데? 나 식은땀 흘렸어 새끼야.”
“아하하…. 에바 씨가 워낙 대가  분이셔서. 저도 모르게 강하게 나갔던 것 같아요.”

객관적으로 남자가 봐도 반할 정도의 아름다운 하프엘프가 녹발의 머리를 긁적이며 선하게 웃었다.

“됐어.  기분 맞춰주는 거야 별거 아니었으니까. 이런 일 한 두 번이냐.”

나는 귀여운 메이드 소녀에게 줄 적절한 선물을 골라 카트 안에 담았다.

“근데에바 걔는 소피아한테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아까 전시장에서  받아버리려다가 참았네.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그딴식으로 행동하는 거지. 영 교양 없는 애는 아닌 것 같았는데.”

―따르르릉

그때 선우의 폰이 요란하게 울었다.

“…형. 긴급호출이요. 잠시만요?”
“편하게 받아.”

한동안 진지한 얼굴로 통화를 하던 선우가 드물게도 불만스런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형, 죄송해요.”
“왜. 어디 가?”
“프레이야 게이트에. 배달을 가야할 것 같아요….”
“아아. 포탈까지 쓸 정도로 급한 일인가보구나.”
“네. 장長급 인원 중에 시간이 되는 사람이 저밖에 없어서.”

선우가 눈동자를 잠시 굴리다가,  얼굴을 올려다보며 생긋 웃었다.

“형.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시면 반드시 연락하시구요. 저는 내일 비행기 시간까지는 꼭 되돌아올 테니까 먼저 가시면  돼요?”
“잘 다녀와. 얼른 가, 늦겠다.”
“네. 내일 봬요.”

선우를 마트 입구에서 배웅한 뒤.

나는 양손 양어깨에 과자, 음료수, 사탕, 초콜릿, 장난감 등의 선물을  아름 안고 희망원으로 향했다.

이것도 고작 일부라서 나머지는 또 저녁 때 배달이  예정.

‘마트 지출에다 원장님이랑 쌤들 홍삼 세트까지  2백 50만 원. 이제 2천 600정도 남았구나. 아직 괜찮아. 한  생활비를 100만 원 넘게 써도 졸업까지 여유가 넘치니까. 졸업반 애들한테 용돈만 주고 한동안 지갑 닫자.’

나는 새삼 내균열 사건에 휘말려 3천만 원을  행운에 감사하며 버스에 올랐다.


**

<늘푸른희망원>.

반  만에 찾아온 내 고향은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 소리로 떠들썩했다.
저출산 시대라 애들 울음소리 듣기 힘들어진 서울이었지만, 이곳만은 언제까지나 예외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제이야!  제이 맞지?”
“쌤, 안녕하셨어요.”
“아이구 어쩐 일이야! 원장 쌤한테 온다는 말은 들었는데. 저녁에 온다며? 아직 해도 안 떨어졌는데.”
“그렇게 됐어요. 이거 좀 받아주실래요? 화이트데이라길래 이거저거 샀어요.”
“아휴! 뭘 이런  다 사와.”

나는 희망원 사람들과 차례대로 인사하며 해후를 나눴다.
새로 온 아이들과 안면을 트고, 원래 잘 알던 사이인 고등부 애들에게는 용돈을 주며 격려했다.
그렇게 저녁식사까지 모두 마친 후에야, 나는 원장님과 둘만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래. 아카데미 생활은  만하고?”

50대 중년 남성이라기엔 건장한 풍체와 밸런스 잡힌 몸을 가진 원장님이  냄새를 풀풀 풍기며 물어왔다.

“덕분에요.”
“그런 것 같다. 우리 김제이 성공했는데? 수백씩이나 돈 들여서 선물도 사오고.  임마, 거기서도 알바 하냐.”
“아뇨,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내균열 던전에서 블루울프와 얽힌 썰을 풀자, 원장님 얼굴을 좌우로 가르는 흉터가 크게 씰룩거렸다.
참고로, 이게 웃는 거다.

“아깝다! 그 아이웨이라는 친구 말대로 더 뜯어먹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다 체해요.”
“그건 네놈 말이 맞다. 과욕은 화를 부르는 법이니까.”

입맛을 다신 원장님이 소파에 몸을 기대며 나른한 얼굴을 했다.
아까 삼겹살 파티  과음을 한 탓에 그의 얼굴은 붉게 물든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좋은 날이야. 니가 이렇게 선물도 사서 찾아오고, 뜬금없이 기부금도 많이 들어오고.”
“기부금이요? 어디서요.”

원장 쌤이 턱수염을 긁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리샤르 재단이라던가? 프랑스 대기업 산하 복지 재단이라는데. 오늘 갑자기 연락 와서 기부 절차 좀 알고 싶다고 하더라. 얼굴도 안 비치고 돈만 툭 보내더라고? 우리야  땡큐지.”
“…잘 됐네요.”

에바 리샤르….
너 무슨 꿍꿍이야.

“왜. 짚이는 데라도 있냐?”
“아니요. 그냥, 유명한 데라서.”

나는 원장님이 잠 드시실 때까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밤 9시 무렵이 되었을 때 자리에서 일어났다.

―딸깍

“제이야.”
“네.”

방 불이 꺼진 원장실 안.
주무시는  알았던 원장 아버지가 나지막이 물어오셨다.

“아직도 창을쓰냐.”
“그럼요.”
“고집할 필요 없대두. 대인 상대가 아닌 대몬스터용이면, 창은 더는 만병지왕이 아니야. 무기란―.”
“상황에 맞춰서 그 어떤 종류의 것이든   있어야 한다. 그것이 프로 헌터의 자세다. 이 말씀이 하고 싶으신 거죠. 저 아카데미 필기랑 면접 만점인 거, 설마잊어버리셨어요?”
“잘 났다 임마. 실기는 과락에 간신히 걸친 주제에.”
“그래도 이제 각성했으니 됐죠 뭐.”

원장님이 얼굴에 난 흉터를 긁으며 웃었다.

“어디 네놈 마음대로 해라. 지 놈도 창쟁이랍시고 고집하고는.”
“그럴 거에요. 쉬세요.”

나는 눈을 감은 그의 모습과.

원장 집무실 벽에 걸린 낡은 창 한 자루를 눈에 새기고 방을 빠져나왔다.

그러나 따뜻하게 데워진 마음과 달리.

―철컥

원장실 문 유리에 비친 내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니가 감히 여길 건드려?’


에바 리샤르… 이 씨발년아.

**

청담대교가 내려다보이는 5성급 호텔, 메이지 인터콘티넨탈 스위트룸.
거품 목욕을 하며 레드 와인을 마시던 에바 리샤르의 입에 가느다란 미소가 걸렸다.

“왔네.”

폰과 연동된 욕조 위의 홀로그램에서 김제이가 보낸 메시지가 출력되었다.

[→김제이: 너 지금 어디냐.]

기대보다 무척 짧고 간결한 메시지.
에바 리샤르의 아름다운 얼굴에 의문이 피어올랐다.

‘말투가 왜 이래?’

뭔가를 오해한 걸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지.
기부금 액수가 적었나. 10만 유로면 낮에 범했던 실수에 대한 사과표시 치고는  많은 돈 아닌가?

‘일단 돈을 썼으니 얼굴은 봐야겠지.’

에바가 발끝으로 욕조의 디스플레이를 터치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

그는 말이 없었다.
에바 리샤르는 뭔가 싸한 기분을 느껴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하얀 거품이 관능적인 그녀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김제이. 통화 들리니.”
―[너 어디야.]
“…나 아까 말한 호텔. 이제 자려고.”
―[얼굴 좀 보자.]
“지금?”
―[보고 싶어.]
“…….”

보고 싶단다.
에바 리샤르가 윗니로 아랫입술을 섹시하게 깨물었다.

‘그럼 그렇지. 너 쫄았구나?’

그녀가 발랄한웃음을 지으며, 순진한 애인을 달래듯 사근사근하게 대답했다.

“그러엄~ 음… 30층 B실로 와. 나 이미 씻어서 밖에 나가기 싫어. 와인이나 한 잔씩 하자. 어때?”
―[와인 좋지. 니가  알려줘.]
“제이는 와인 잘 안 마셔봤구나? 그래. 맛있는 게 있어.”
―[기다려. 금방 갈게.]
“응. 조심해서 와야 돼?”

통화가 끝난 뒤.
에바 리샤르가 길고 길었던 목욕을 마무리했다.
그녀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어떤 속옷을 입을까,  남자의 섹스 스타일은 어떨까, 부드러울까 거칠까를 생각했다.

‘이건 너무 싸보이겠지?’

그녀가 가운데가 뻥 뚫린 5천 유로짜리 속옷을 들고 고민했다.
지금 심정 같아서는 이것보다 더 야한 것도 입고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안달  여자처럼 보이고 싶진 않았다.
아무렴. 그와 그녀는 만난 지 불과 하루가 되었을 뿐인데.

하루. 그래, 단 하루다.

에바 리샤르가 손을 써 ‘방해자’ 반선우를 게이트로 배달 보내고, 10만 유로의 사비를 들여 김제이에게 호감을 사려 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단 하루.

‘제이는 정말 특이한  같아. 아주 잘생긴 건 아닌데 뭔가… 야해.’

그때, 스위트룸의 벨이 울렸다.

―띵동

에바의 늘씬한 몸이 기대감에 떨려왔다.
결국 방금 고른 음란한 속옷과 목욕 가운을 급하게 착용한 그녀가 거울 앞에서 몸가짐을 정돈했다.

‘어떡해! 벌써 젖었어!’

그의 거기는 얼마나 클까.
동양인은 거기가 작은 대신 무척 단단하다던데, 그도 그럴까.
그는 어떤 체위를 가장 좋아할까.
설마 동정은 아니겠지? 아닐 거야.
하지만 선우랑  것 같진 않았어. 그러니까 내가 이긴 거지.

―띵동

그런 상념들을 끊고, 에바 리샤르가 비밀의 문을 열었다.

“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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