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화 〉58. 제이의 도둑질 첫 도전!(9)
메리는 비네의 숙주를 살해해 악마 군주의 권능을 아예 포기해버린 외에도.
단지 발견하는 데에만도 무려 세 번의 전쟁을 치러야했다고 말했다.
“…계속해봐.”
[이 몸도 어쩔 수 없었다. 칠죄종이 비네를 병합해 미래시를 보유하게 된다면, 그땐 이루 말할 수 없는 재앙이 닥칠 수 있었으니까. 비네는 잠재력이 대단한 절대악 계열의 악마야. 잠재력만으로 따지면 아스모데우스 못지않다.]
45위 악마 군주 비네Vine.
영혼을 가진 실제계의 여자가 아니라, 그림 속의 여자들 사이에 숨어든 것만 봐도 상당히 포착하기 어려운 악마임은 확실해보였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지금 바로 다이브 하자. 아니다, 불사조의 눈물을 쓸까? 지금 나 정력이 거의 오링이야. 피곤하기도 하고.”
[그럴수록 아껴야 돼. 비네가 지배하는 공상계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니까.]
“네 말이 맞다.”
나는 6번 사정과 5번의 삽입섹스 때문에 후들거리는 다리를 누르며, 에바가 잠든 침실을 나와 옆방으로 갔다.
최상층 스위트룸이라서 침실이 여러 개라는 점이 다행이었다.
―파아아아아아앗!
메리가 딜도로 변했고, 나는 녀석을 잡으며 시동어를 읊었다.
[▶<제69위 악마 군주 데카라비아Decarabia의 정수> 확인. 공상계 다이브 허가 완료]
**
하얗게 탈색된 백색의 서울.
공상계에 진입한 우리는 허공을 빠른 속도로 유영해 청송미술관으로 갔다.
옥상 벽면을 뚫고 6층으로 들어서자, 그림 앞에서 가지런히 손을 모으고 감시하고 있는 소피아의 모습이 보였다.
‘근데 얘도 하얀색이네.’
신기한 사실은 소피아조차 백색으로 탈색되어 있다는 점.
보통 내가 드나드는 공상계에 생명체는 존재조차 하지않는다.
타깃으로 삼아 이미지의 구체화가 끝난 해당 여자와 그 주변인 정도만이 컬러로 존재했을 뿐.
[저 계집은 기계다. 일원론적 존재지. 공상계는 이원론적 세계에 살고 있는 존재들만 실존할 수 있는 세상이야.]
“존나게 어려운 해설 고맙다.”
들어도 이해 못할 것 같아서 말을 말았다.
밤새 어두컴컴한 전시관에서 고생했을 소피아의 어깨를 두드려주고, 그림을 향해 손을 뻗었다.
『101명의 창부들』.
물기라곤 모두 말라버린 유화 물감의 거친 표면이 손끝에 닿았다.
[거기, 좀 더 오른쪽. 그 여자다.]
“얘? 아놔, 101명이나 되니까 여자들이 구분이 안 가네.”
[실제로 부딪혀보면 더 구별이 안 될 거야. 그래도 용모파기는 기억해 놔.]
나는 하얀 코르셋과 틀어 올린 머리가 인상적인 여자를 기억하며 인드라이브 권능을 발동했다.
악마 군주 비네를 내 꿈으로 초대해보려는 시도였다.
[▶초대 실패: 공상 침식을 방해하는 강력한 간섭의 영향]
그러나 권능은 통하지 않았다.
“역시 안 되네.”
[그럼 플랜B다.]
마음을 굳게 먹고, 손을 그림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내 팔이 텅빈 허공이나 벽면이 아닌, 기이한 느낌을 주는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비네의 진지로 들어가는 건 가능하군. 1600년 전과 똑같다. 우릴 우습게 여기고 있는 거야.]
―fondant… fondant… fondant…
아주 고운 모래의 늪에 빠져드는 듯 내몸이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정신을 똑바로 유지하기 위해 혀를 깨물며 액자 안을 통과했다. 그리하여 발끝까지 그림 안에 잠겨버렸을 때, 메리가 마지막 전언을 남겼다.
[이 몸은 존재감을 최대한 지우겠다. 계획대로 여벌 목숨이 떨어지면 바로 도망치자. 그때는 플랜C로 가야 돼.]
‘걱정 마.’
메리의 말이 끝나고 놈의 기척이 완전히 지워짐과 동시였다.
―파앗!
주변이 환해졌다.
강렬한 노란색, 빨간색, 주황색의 전등들이 눈이 아플 정도로 밝게 빛났다.
웅성거리는 여자들의 수다소리가 정신없이 들려왔다.
“어머, 언니. 오늘은 분칠이 제대로 되셨네. 피에르 영감님께서 또 도이체스 라이히로 출장을 다녀오셨나 봐요?”
“말해 뭐하겠니. 새앙쥐 같은 늙은이. 이번에는 또 어떤 싸구려 선물로 단내 나는 입술을 나불댈지. 생각만 해도 먹었던 콩소메가 올라오는 기분이야.”
“아하하! 언니도 참. 프랑소와즈만하려구요. 오늘도 그 사형집행인이 프랑소와즈의 그곳에 오줌을 싸고 갔다지 뭐에요. 정말 별꼴이라니까?”
나는 내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깨달았다.
‘여긴….’
『101명의 창부들』의 배경이 되는 바로 그곳.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파리.
프로방스 122번지의 고급 저택.
속칭 엉두두.
“손님? 혹시 예약을 하고 오셨나요.”
이곳은, 매음굴이다.
**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아무리 잘생긴 분Monsieur이셔도, 돈이 없으시면 어쩔 수 없죠.
―고맙게 생각하세요, 변태 신사님! 당신 고추가 조금만 덜 실했어도 바로 경찰에 신고했을 테니까요!
―꺄하하하! 언니들 너무 야해~!
나는 매춘소에서 쫓겨났다.
가진 돈이 그냥 없는 수준이 아니라, 옷조차 입지 못한 거지였으니까.
‘그 여자들이 옷을 줘서 그나마 다행이네.’
고급 저택 골목길 옆에서 옷을 입었다. 쉰내가 풀풀 풍기는 회색 정장에 중절모, 그리고 맨발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몰골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골목을 지나는 행인들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이야, 저 원숭이 놈은 엉두두에서 새로 일하는 노예인가? 알제리 놈들이랑은 피부색이 다르네.”
“응우옌 쪽에서 온 놈인 듯 해. 커피가 많이 나는 그 나라 원숭이 놈들이 저런 생김새라고 하더군.”
“고놈 고추 한 번 실하다, 하하하!”
나는 그들의 말을 통해 내가 우선 뭘 해야 할지 확실하게 깨달았다.
‘너무 튄다. 일단 몸을 숨기자.’
맨발로 오물 가득한 골목길을 빠르게 빠져나와, 프로방스 외곽에 있는 마구간으로 숨어들었다.
코를 삽시간에 마비시키는 분뇨냄새와 푸드득 꼬리를 움직이는 말들의 모습에서 소름 돋는 현실감을 느꼈다.
또 하나의 현실.
비네가 만든 이곳은, 현실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이세계였다.
‘…존나 빡센데?’
막막했다.
공상계 속에서 실제계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다만, 내 마음속 이미지가 실제계에 고정된 탓인지 체력과 마력은 유한했다. 고유 스탯인 정력은 당연했고.
그러니 행동에 제약이 걸릴 수밖에.
‘비네가 숨어든 여자가 누군지도 도통 모르겠어.’
아까 여자들과 만났을 때 얼굴을 슬쩍 확인했었다. 그러나 기억하고 있던 그림 속 용모파기와 실제가 너무 달라서 아무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엉두두에 무단침입해서 비네를 봉인할 때까지 여자들을 마구잡이로 강간할 순 없어.’
엉두두. 즉, 프로방스 122번 매춘소에서 성감 고조의 권능을 믿고 깽판을 치는 것은 한계가 뚜렷했다.
101명의 여자들에게 단시간 내에 모두 질싸를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고, 정력이 떨어져서 성감 고조 스킬이 풀린 순간 경찰을 부를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 세상에는 총과 대포가 있을 거야. 대규모 군대라도 출동하면 나는 도망자가 된다. 외모가 튀니까 추적을 쉽게 뿌리칠 수도 없겠지.’
비네가 이 공상계를 얼마나 크고 구체적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니 섣부른 행동은 금물.
‘계획만 세우고 오늘은 쉰다. 지금 상태로 엉두두에 침입해봐야 몇 번 섹스 하지도 못해. …CP는 필요 정보를 수집한 뒤에 쓰자. 믿을 건 CP 뿐이야.’
나는 소모된 정력과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말똥 냄새가 진동을 하는 짚단을 베고 눈을 붙였다.
**
누군가 어깨를 콕콕 찌르는 느낌에 잠에서 깼다.
찌뿌둥한 몸과 정신이었지만, 정령과 마력이 온전히 채워져 있어 만전의 상태가 되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우웅
전신에 마력을 돌리며 고개를 들었다.
“어? 다, 당신 누구야?!”
날 깨운 이는 작은 소년이었다.
갈색 머리와 주근깨가 귀여운, 대략 14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
짚더미를 치우고 마른세수를 하며 인사했다.
“안녕.”
“…이 노예 새끼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와?!”
부지깽이가 날아왔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퍽! 퍽!
말똥이 묻은 쇠막대가 머리를 세게 쳤다. 별로 아프진 않았다. 마력으로 대비를 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멍청한 노예 녀석아! 니가 머물 곳은 여기가 아니라 오물 냄새 나는 관사 노예 창고라고! 사람들 눈에 그 추한 꼴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해!”
소년의 손속에는 전혀 사정이 없었다.
19세기 말이면 인권이고 지랄이고 없을 때니까, 유색인종은 말하는 동물이랑 크게 다르지 않을 때였겠지.
‘얘를 이용하자. 아직 어리니까 훨씬 꼬득이기 쉬울 거야.’
무표정한 얼굴로 한참을 맞아주고 있자, 씩씩 거리던 소년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뒷걸음질 쳤다.
“너 뭐야?! 왜 아파하질 않지?”
“나는 마구간의 요정이다. 제이라고 하지. 너의 친구가 되기 위해 왔어.”
“…마, 마구간의… 요정?!”
“그래.”
오른손에 마력을 둘러 마굿간 바닥을 거세게 후려쳤다.
콰직, 소리와 함께 단단한 돌에 큰 금이 갔다. 주먹이 존나게 아팠다.
나는 고작 D급 헌터라 이 정도가 최선이라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전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뻥을 쳤다.
“봤지? 사람이 이럴 수가 있겠냐. 다른 것도 보여줄 수 있어. 잘 봐.”
“어… 어어?”
자리에서 일어나 당황한 소년을 지나쳐 차력쇼를 했다.
‘19세기 말이면 아직 퍼스트 컨택트가 이루어지기 전이야. 사람들이 각성은커녕 마력이 있는지도 모를 시기지.’
마력의 힘으로 녹슨 부지깽이를 한 손으로 구부리고, 떨어진 작은 동전을 찢어버리는 등 개지랄을 떨었다.
내가 하는 양을 멍한 눈으로 보던 소년이 짝짝 박수를 쳤다.
“우와, 너 아주 대단한 노예구나? 그러고 보니까 키도 몹시 크고몸도 튼실한데? 보통 노예가 아닌 것 같아.”
“노예가 아니라 요정이라고 임마. 너만의 마굿간 요정. 오직, 너만의.”
“…정말?”
소년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메리와 처음 만났을 때 저런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그래. 이 마굿간 요정님과 계약하면, 좋은 점이 있지.”
“뭔데?”
“섹스하게 해줄게. 존나 많이.”
“…섹스?”
소년의 어깨를 짚고 녀석을 유혹했다.
“엉두두 누나들. 이쁘지 않냐?”
“…예, 예쁘… 지.”
생각만 해도 쩔겠지.
엉두두. 즉, 파리 프로방스 122의 매춘소는 당시 기준으로 존나 비싼 최고급 텐프로나 다름없다.
TV도 없는 이 시절. 농사일과 공장 일에 찌든 길가의 아낙들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미모를 가진 이들이 엉두두의 창부들인 것.
“엉두두 누나들이랑 하게 해줄게. 진짜 존나 많이. 물론 공짜로.”
“고, 공짜로?”
“어. 나중에는 수십 명이랑 동시에 하게 해줄게.”
“진짜?!”
정말이다. 만약 내가 계획한 시나리오대로 흘러간다면, 이 꼬마에게 수십 명의 창부를 붙여주는 일이야 땅 짚고 헤엄치기가 될 테니까.
다만 그 전에 확인이 좀필요할 뿐.
“당연히 진짜지. 대신 너는 내가 먼저 잔 여자들이랑만 해야 돼. 어때, 괜찮겠어?”
난 비위가 약해서 니가 쑤신 곳에 내가 쑤시는 짓은 못 하거든.
“큭큭!”
소년이 웃었다.
“이 몸을 뭘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해? 쥘리의 아들이 사실 누구 자식인지를 니가 아직 모르는 모양이구나. 그때 그 정박아년을 돌려먹을 때 제일 마지막까지 박아댄 사람이 나야!”
“…….”
이 새끼 존나 쓰레기였네.
차라리 잘 됐다.
“계약할 거야?”
소년이 악수를 청했다.
“나는 폴. 잘 부탁해, 요정님!”
**
비네의 공상계인 이곳에서 현지인 조력자가 된 폴.
그는 반전 있는 남자였다.
“니가 21살이라고?”
“그게 왜?”
“아니야. 폴이 너무 잘생겨서.”
“내가 좀 생기긴 했지.”
영양과 수면이 부족 탓인지 중1 정도로 보였던 폴은 사실 21살이었다.
나는 오히려 잘 됐다 생각하며 폴과 함께 파리 시내를 거닐었다.
“신발은 크지 않아? 알제리 노예용인데. 그 깜둥이 완전 거인이야.”
“내가 키가 있어서 그런지 잘 맞아.”
“하하! 아무리 생각해도 요정님의 몸은 참 대단해. 너처럼 단단한 몸을 가진 사람은 이 대륙에 아무도 없을 거야. 뭐해, 친구! 빨리 오라구!”
폴은 램프의 지니처럼 힘세고 특별한 나와 친구를 먹은 사실에 잔뜩 신이 난 모양이었다.
도심을 지날 때도 폴짝폴짝 뛰며 내 주위를 뛰어다녔으니까.
나는 노예 위장을 위해 수갑을 찬 채 폴을 따라 파리 경계까지 나왔다.
“자! 여기가 150만 인구가 바글바글 거주하고 있는 파리의 끝이야.”
“잠깐만.”
폴이 기대고 서 있는 나무 표지판 근처로 다가갔다. 설마 했었는데, 그곳에 결계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관사 말단직원인 폴에게 물어보니, 그는 지난주에 니스 출장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비네의 공상계는 최소 파리 너머까지 이어져 있는 것 같다. …너무 넓어.’
이번에는 폴을 따라 몽마르트 언덕 정상까지 올라갔다.
에펠탑 전망대에 올라갔다면 좋았겠지만, 식민지민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다.
대신 폴의 도움으로 몽마르트 언덕 위에 있는 사크레쾨르 성당의 굴뚝 위에 올라갈 수 있었다.
‘지평선.’
넓고 고른 대지에 펼쳐진 파리 정경 너머에는 확연한 지평선이 보인다.
대기 오염이 아직 심하지 않은 파리라, 지평선 경계까지 선명히 눈에 담겼다.
“어이, 요정님! 찾으시는 건 보여?”
“…….”
말이 안 나올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이게 말이 돼? 인드라이브 만랩을 찍어도 이렇게는 안 돼.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시공간을 이렇게까지 구체화할 순 없어.’
아무리 공상계라고는 해도 어떻게 이렇게 넓고 생생한세계를 구축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비네가 힘을 더 키워 실제계인 현실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면?
아스모데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균열 던전이라도 잡아먹어버린다면?
그리고 그 균열을 어마어마하게 키운 다음 던전 브레이크라도 일으킨다면?
‘비네 이 새끼… 안 되겠는데.’
결론을 내렸다.
‘CP를 써야 돼.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비네를 봉인한다.’
업그레이드 할 권능은 정해놓았다.
[▶40CP 사용: 성감 고조 lv.5 -> 성감 고조 lv.Max]
[▶54CP 사용: 애욕의 화신 lv.1 -> 애욕의 화신 lv.Max]
[▶잔여CP: 127]
94의 CP가 한순간에 녹아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