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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3화 〉63. 제이의 도둑질 첫 도전!(14) (63/145)



〈 63화 〉63. 제이의 도둑질 첫 도전!(14)

소피아의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다.

“그 여자의 가식 떠는 솜씨는 여전히 훌륭하군요. 특히나 이번에는 공을 아주 많이 들인 양을 보니, 김제이 생도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나봅니다.”
“…소피아?”
“메디컬 반응으로 미루어봤을 때. 정확히는 오늘 아침부터 더욱 적극적으로 내숭을 떨기로 작심한 듯하지만.어찌됐건 참으로 영악한 인간입니다.”

소녀가 뽀로통하게 입술을 비죽였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 눈만 깜박이다가, 돌직구로 물어봤다.

“너 에바 되게 싫어하는구나.”
“물론입니다.”

소피아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신경질적으로 이루어지는 잦은 체벌. 자신의 과오를 남에게 떠넘기는 이기적인 심성. 가진 바 능력보다 우수함을 연기하려는 과욕. 우호를 다지고자하는 인간들에게는 이러한 저열한 성품을 일부만 내비침으로써 인간적임을 강조하려는 비열한 기회주의적 행태까지.”

독설을 내뱉은 소녀가 다시 한 번 눈살을 크게 찌푸렸다.

“도저히 좋아하려야 할 수가 없는 유기체입니다. 오히려 개선문 앞에서 공개 총살을 시키고 싶을 정도지요.”
“큭큭!”

얘 성깔 있네.
그래서 더 귀엽지만.

“그치만 소피아. 다른  몰라도 네 체벌은 계약 사항이었다고 들었는데?”
“체벌을 통한 AI의 공격성 테스트는 계약 내용이 맞습니다. 다만 두 가지 지점에서 에바 리샤르는 EP-F 모델의 소유주에 부적격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소피아가 앙증맞은 새끼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첫째. 본 테스트는 프로토 모델인 저. 즉, 개체명 <소피아>의 공격성 테스트입니다. 하지만 상호개체인 소유주의 적합성 테스트이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극도의 히스테릭성 폭력을 휘둘러온 에바 리샤르는 명백한 부적격자라 할  있습니다.”

소피아는 그 와중에도 에바를 은연중 실드 쳐주었지만, 나는 눈치챘다.

에바의 습관적체벌이, 계약 범위를 훠얼씬 초과한 수준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점을.

더구나 에바 또한 소유주 적격 테스트 중이었는데도 성질을 못 이기고 그랬다는 점이 놀라웠다.

‘에바 이 녀석. 자기한테 완전 불리한 얘기는 빼놓고 얘기했구나. 일부의 진실만 말하고, 큰 잘못은 숨겼어.’

소피아가 이번에는 약지를 폈다.

“둘째. 저의 스트레스 반응 대응 설정의 문제입니다. 에바 리샤르는 제가 고의적으로 공격성을 드러내 누차 경고를 주었음에도, 폭력적 성향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소유 허가 1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더욱 밀접한 상호작용을 유발하기 위해 통각 설정을 켜고, 통상적인 유기체의 피격 반응을 세팅했는데도 불구하고 변함이 없었죠.”

에바를 좋은 소유주로 만들기 위해, 소피아는 갖은 노력했던 듯했다.

통각 설정을 켜서 아픔을 직접 느끼고. 기체손상을 감수하면서도 피와 상처 등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다 인간적인’ 반응을 보여주기도 했었던 듯.

하지만 모두 허사였다고.

“흐음….”

소피아가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다.
유로파인(?)들은 거짓말을 안 하는 것으로 워낙 유명하니까.
더구나 에바의 귀에 이 얘기가 들어갈 경우 손해를 보는 건 소피아임을 감안할 때, 거짓일 가능성은 없다 봐야지.

‘에바 좀… 깨는데? 나한테 그렇게 대해준 게 많은 부분에서 가식이었다는 거지. 특히나 오늘 아침부터 유독 살갑긴 했어. 애욕의 화신 lv.2가 쎄긴 쎘나보구나.’

뒤통수 맞은 느낌까진 아니지만, 왠지 모를 배신감에 약간 충격을 받았다.

“김제이 생도님.”

그런 내게, 소피아가 더욱 경악할만한 진실을 꺼냈다.

“현재 갤러리 안에 있는 『101명의 창부들』은 위작입니다.”


…위작僞作? 저게 가짜라고?!

“정말… 이야?”
“그렇습니다. 시가 3천억 원? 우스운 이야기로군요.”

소피아가 옅은 코웃음을 흘렸다.

“위작을 전시했기 때문에 행여나 소문이 날까 사진 촬영도 금지하고 미술 협회에는 로비까지 한 주제에. 에바 리샤르는 해당 그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김제이 생도와 어떻게든 강하게 엮이고 싶은 모양입니다.”
“…….”

나는 에바가 저 위작을 3천억이라고 뻥쳤다는 사실보다, 오늘 아침 나와 그녀가 나눈 얘기를 소피아가 알고 있었다는 점이  신기했다.

“어떻게 알았어? 우리 얘기.”
“키워드에 반응하는 자동 도청이지요. 아무리 저의 소유주인 에바 리샤르라고 해도,저의 고유 자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법적 권리는 없으니까요. 불쾌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너의 자산?”

설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봤다.


“저 『101명의 창부들』… 위작 그림. 소피아 네가 그린 거니?”

“그렇습니다.”


소피아가 시시하다는 얼굴로 긍정했다.

“9년 전 전소된 래리 도우만의 작품들을 모작模作하는 것. 그것이 제가 4년  이 교차행성 지구에 와서 맡은  임무였습니다.”
“와아…….”

아주 대단한 집안 나셨구만.
래리 도우만은 중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도 나오는 인물이다.
그런 거장의 작품을 모두 위작으로 채운 뒤 당당하게 전시하다니.

‘황당한 걸 넘어서… 좀 무섭네.’

그들의 뻔뻔함이, 나는 낯설었다.

애욕의 화신의 유혹에 취한 에바가, 내 환심을 사기 위해 놀라울 정도의 의뭉을 떨었던 것도 이제는 환멸이 났다.

무려 3천억이다. 3천억.

만약 내가 이게 위작이란 걸 몰랐으면, 나는 과연 그 영악한 에바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까.

“김제이 생도님.”
“…어.”

질린 눈으로 기계 소녀를 바라봤다.
어린 메이드의 초고성능 센서가 장착된 인공 눈과 여느 때처럼 평온한 얼굴을 가장하는 AI 복합 알고리즘이.
차라리 리샤르 가문 사람들보다 더 인간적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괴이 현상이 벌어지는 주체인, 『101명의 창부들』의 모작을원하시는지요.”
“…응.”
“감히 제가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잠시 갈등했다.
하지만 결정은 빨랐다.
소피아는 인간이 아니니까.

“내 비밀, 지켜줄  있어?”

무지 예쁜 초등학생 모습을 한 안드로이드가 흔들림 없는 어조로 긍정했다.

“드넓은 전자 바다의 어머니 여신. 그 분의 이름을 걸고 굳게 약속드리죠.”


**


“행성 지구에 와서 듣고 경험한 일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72악마에 얽힌 나의 비밀과.
이번 임무에 얽힌 전말을 들은 소피아가 내뱉은 감상이었다.

“좋습니다.”
“…좋다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묻자, 소피아가 아까처럼 가느다란 미소를 머금었다.

“그렇게 위험한 일이라면 어쩔 수가 없지요. 그동안 관찰하는 재미가 있던 그림이었지만, 수수께끼가 풀려버린 이상 아무런 가치가 없어졌습니다.”
“정말? 진짜 그림을 태워주는 거야?”
“추이를 봐서.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와아!”

너무 기뻐서 그대로 소피아를 껴안아버렸다. 130cm 남짓한 작디작은 메이드 소녀가 내게 폭삭 안겼다.

“고마워! 소피아, 진짜 너무 고마워!”
“김제이 생도님.”
“…아, 미안. 불쾌했지.”

빠르게 몸을 떼어 냈다.
메이드 소녀의 파란색 트윈 테일 머리가 좌우로 흔들렸다.

“아니요. 카메라 기록 문제입니다.”
“아아.”

소피아가 뭘 걱정하는지 알았다.

[쎅쓰! 됐다, 됐어! 우효! 삼천억은 지랄! 느그 집 개나 주라고 해라!]

우웅, 떨며 허공을 날아다니는 메리가 cctv에 찍히고 있는 것을 걱정한 것.

“염려 마시길. 추후 영상 기록을 편집하도록 하겠습니다.”
“미안. 번거롭게 해서.”
“아닙니다. 그보다, 드리고 싶은 제안이 있습니다. 들어보시겠어요?”
“제안?”

이 깜찍이 소피에몽이 무슨 제의를 하려고 이러는 걸까.

“김제이 생도님의 말씀이 모두 참이라는 전제 하에. 시도해보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허락해주시겠습니까.”
“나야 무조건 찬성이지.”

메이드 소녀가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부디 다음 주 오늘, 이곳에서. 김제이 생도님과 다시 뵙기를 청합니다.”


**

소피아와 다음 주에 만나기로 약속을 잡고 곧장 서울을 벗어났다.
공항에서 세 시간을 멍하니 기다리다, 선우를 만나 아카데미로 귀환했다.

[→에바: 급한 일이라니 어쩔  없네. 다음 주에 또 서울 올라온다고 했지? 그때 봐, 자기♡]

에바 리샤르의 얼굴은 당분간 보고싶지 않았다.
그녀가 밉지는 않았다. 에바 나름의 사정도 이해하고, 내게 쏟았던 정성 또한 고마운 마음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당분간은 미녀고 지랄이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한동안은 악마 봉인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일상 속에서 휴식을 취해. 갓갓갓 깡통 계집이 그림을 없애준다는 약속을 했으니, 아무 걱정 마라.]

비네의 공상계 속에서 죽었던 충격 때문인지, 몸이 내 몸 같지 않았다.

발기가.
되지 않았다.

몸만 문제가 아니었다.
위축됐던 마음이야 그나마 괜찮아진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볼 때는 아니었던 모양.

“제이 오빠. 정말로 어디 편찮으신 거 아니시죠? 얼굴이  좋아보이세요.”

제주시에서 단 둘이 만난 아이린과의 ‘진짜’ 데이트 중에도.
내 머릿속은 온통 『101명의 창부들』을 세상에서 지워버릴 생각뿐이었다.

“제이, 우울해보여. 데킬라 한  어때?  클럽 바텐더가 솜씨가 좋아.”

아름답기 그지없는 아나 코스타와 클럽에 가서 술에 취해보아도.

―파앙! 파앙!

“신연에  것을 환영한다.”
“바, 반가… 워…!”
“연구부에 와줘서 고맙구나.”
“…잘, 부탁드립니다.”

신연에 새로 들어온 서윤이를 위한 축하 파티 겸 첫 회식을 했을 때도.
내 머릿속에는 비네 생각뿐이었다.

“형, 설거지 끝났어요. 출발할까요?”

그렇게 한 주가 지났다.

“바로 가자.”
“오빠 진짜 서울 또 가게? …지금?”
“응 하리야. 오빠가, 서울에서 만나기로 한 화가畫家가 있거든.”

오늘은 약속의 그 날이었다.
내 트라우마의 근원을 태워버릴, 그날.


**

3월 22일 일요일 오전의 청송미술관.
에바는 부재중이었다.
나는 차라리 다행이라 생각하며 귀인과 재회했다.

“오셨군요, 김제이 생도님.”
“안녕, 소피아. 한 주간 잘 지냈니?”
“생도님 덕분에 지구에  이후 가장 보람찬 한 주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파란 트윈 테일 머리가 인상적인 귀여운 메이드 소녀가 나를 반겨주었다.
소피아가 내 얼굴과, 약간 살이 빠진 몸을 살펴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측치보다는 상태가 양호하시군요. 평소 원만한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셨던 모양입니다. 함께 오신 반선우님께서는?”
“그림 구경하면서 기다린대.”
“그럼 이쪽으로 오시죠.”

작은 체구의 메이드 소녀와 함께 한 주 전과 마찬가지로 VIP룸에 들어갔다.
고급 카페테리아 같은 풍경과 고소한 커피향이 근사한 장소였다.

“오늘은 안쪽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소피아는 나를 저번처럼 VIP룸 중앙이 아닌, 사무용 파티션이 쳐진 안쪽으로 이끌었다.
저번에도 생각했지만, VIP룸의 분위기와 동떨어진 이질적인 공간이었다.

“여긴….”

이곳은 미니 아틀리에畫室였다.

갖은 화구畫具와 그림들이 놓인, 조그마한 간이 작업실 같은 공간.

“갤러리 내에 마련된 저의 개인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잠시만 기다려주시길.”

소피아가 치마 양끝을 살포시 잡고 무릎 인사를 뒤 VIP실을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철컥

VIP룸 옆, 상황실에서 차단기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시야가 암전됐다.

―철컥

차단기가 올라갔고 불이 들어왔다.

그 직후, 소피아가 돌아왔다.

품에는 『101명의 창부들』을 안은 채.


“…밖에 있는 거 바로 떼 온 거야?”
“아니요. 위작 『101명의 창부들』은 김제이 생도가 이스트 블루로 복귀하신 그날 밤 회수했습니다. 현재 갤러리 내에 걸린 그림은 위작의 위작이지요.”

쉽게 말해, 비네가 숙주로 삼은 『101명의 창부들』을 모작해서  다른 위작 『101명의 창부들 ver.2』를 그려 달았다는 뜻이었다.

“나 때문에 수고가 많았겠구나. 섬세하게 일처리를 해줘서 고마워.”
“‘위험요소는 지체 없이 제거한다.’ 안전 수칙의 기본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소피아가 들고 있는 그림이 ‘위작 진본’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림  창부들은 100명이 아닌, 101명이 그려져 있었으니까.

“그렇게 소피아가 편안하게 들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진짜 니 같다.”

소피아가 가느다란 미소를 머금은 채 캔버스 앞에 앉았다.

“그럼 지금부터 말씀드린 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김제이 생도님과 검의 정령께서는 대기를 부탁드립니다.”
[갓갓 깡통이 뭘 하려고 저러는 거야.]

나와 메리는 호기심에  눈으로 소피아의 뒤에서 대기했다.

메이드 소녀는 『101명의 창부들』. 즉, 자신이 그린 위작 그림을 캔버스에 세팅하고 물감을 들었다.

그리고.


―촤악!


그림에 물감을 마구 뿌리기 시작했다.

―촤악! 촤악!

포근하면서도 강렬한 색감을 가진 『101명의 창부들』이 이내 하얀색으로 덧칠 되어 갔다.
 그림이 위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손이 다 떨렸다.

‘…이래도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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