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화 〉66. 제이와 그라비아의 추억(1)
<청송미술관 괴이 사건>이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나는 사건의 진상을 한동안 밝히지 않기로 했다.
‘그럼 다음 연구 과제로 넘어가게 될 뿐이니까.’
[쎅쓰. 이년들은 그러고도 남는다.]
3월 말이 코앞인 지금. 이제 곧 중간고사 시즌이다.
벌써부터 쪽지 시험, 과제, 실기 시험의 폭풍이 몰아닥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또 저번처럼 제주 외 지역으로 파견 조사를 나가게 된다면?
‘시험 무조건 망한다.’
―보글보글
미역국 끓는 소리가 이른 새벽의 제3기숙사 식당에 울려 퍼진다.
힐끔 돌아보니 역시나 어제도 밤을 새운 낸시와 미아가 식탁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니들 그럴거면 들어가서 자.”
“안 된… 다…….”
낸시가 흘러내린 안경을 올리며 A4용지 다발을 응시했다.
<청송미술관 신이사건 파견 조사 보고서>라는 제목의 서류를.
이건 당연히 내가 작성한 보고서다.
그저께인 일요일 밤 아카데미로 귀환한 뒤. 『101명의 창부들』과 관련한 답사 정보에다, 소피아가 건네준 데이터를 추가해 완성한 자료.
“흐음… 역시 어렵다.”
낸시의 졸린 눈에 난감함이 떠올랐다.
100명의 창부가 왜 101명이 되는지.
언제 101명이 됐다가 돌아가는지.
어떤 여자들이 추가됐다 없어지는지.
그 패턴을 도무지 알기 어려웠던 것.
[당연하지. 갓갓갓 깡통 계집이나 통계학자들조차 패턴이 없다고 할 정도였는데. 비네 그놈이 공상계를 정비하는 와중 간간히 실제계에 흔적이 드러났던 것뿐이라, 의미나 패턴이 존재할 수 없어. 있다고 하더라도 백사장에서 바늘 찾는 수준의 난이도겠지.]
고뇌에 빠진 낸시 옆에서, 오늘도 새까만 니캅 차림인 미아 파레스 또한 고개를 저었다.
“너, 너무… 무, 무질서해…. 프, 프렉탈? 그런 거, 보, 보는… 느낌…….”
“프렉탈이라. 미아, 좋은 의견을 내주었다. 그쪽으로 분석을 재개해보자.”
“조, 좋아.”
나는 다 끓인 미역국이 담긴 솥을 들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좋긴 뭐가 좋아 이것들아. 밥이나 먹고 잠이나 자. 맨날 그렇게 밤새면 피곤하지도 않냐?”
“밥 더.”
“고, 고마워… 제이야.”
“많이들 먹어. 니들 생일이라며?”
낸시 전용의 큰 대접에 고봉밥을 퍼주고, 미아의 접시에 특별히 구해온 요구르트를 잔뜩 올려주었다.
―짝짝짝짝
―짝짝짝짝
두 녀석이 피곤에 쩐 얼굴로도 환하게 웃으며 물개 박수를 쳤다.
“미역국 고맙다, 엄마!”
“자, 잘 먹을게요 어, 엄마!”
“누가 엄마야.”
생일상을 받은 두 놈이 고개를 식탁에 처박고 야금야금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사이좋은 자매같아서, 나는 진짜 어린 딸들을 키우는 부모라도 된 듯한기분을 받았다.
‘이것들 둘이 전생에 뭐 있었나? 어떻게 생일까지 똑같지.’
[생일이 똑같아서 친해졌을 수도.]
‘하긴. 흔한 일은 아니니까.’
그때, 낸시가 미역을 후루룩 입 안으로 넘기며 고개를 들었다.
“김제이 엄마. 질문이 있다.”
“맞고 싶냐.”
“요사이 신입부원 육서윤에게 괴이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게 무슨 소리야.”
“꾸, 꿈에… 자, 자꾸… 어, 엄마가, 나오… 신대.”
요즘 들어 육서윤의 꿈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자주 나오신다고?
“아아, 그거.”
생각해보니 여러 번 들었다.
지지난 주 서울를 갈 때 서윤이가 이런 톡을 보내기도 했었고.
[→육서윤: 사실 요즘 꿈에 엄마가 자주 나와서 마음이 싱숭생숭했거든요…. 근데 마음에 든 동아리 가입하고 나니까 그런 거 싹 다 풀렸어 :D]
그 이후에도 서윤이는 몇 번씩이나 엄마 꿈 이야기를 꺼냈었다.
“그래서. 내가 보기에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냐. 그거야?”
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수저로 허공을 가볍게 저은 뒤 미역국을 떠먹었다.
“돌아가신 엄마가 꿈에 나오는 게 대수냐. 누구나 그럴때가 있어. 균열 고아라서 엄마 얼굴 기억도 안 나는 나조차도 가끔 그런 꿈꾸는데 뭘. 미아도 지난주에 꿨다며?”
“역시 총무는 허접이다.”
낸시가 젓가락으로 나를 가리켰다.
“괴이는 언제나 드라마틱한 사건만을 일으키진 않는다. 일상 속의 작은 단서들에서 시작된 신이 사건들이 크게 모이면, 그것을 일컬어 기적이라 한다.”
“오, 옳소!”
메리가 코웃음을 흘렸다.
[또 시작이네 이것들. 이년들을 이제야 이해하겠다. 요 두 년은 감이 좋고 안 좋고를 떠나, 이상한 일들은 무조건 쑤시고 보는 아주 귀찮은 성격들이야.]
평소 같으면 나도 메리의 말에 깊이 동감하며 두 여자를 놀렸을 거다.
하지만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아스모데우스의 화신이었던 육서윤의 일.
나는 일단 신경을 써보고자 했다.
“네에. 오늘부터 저도 주의 깊게 서윤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여자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미아. 우리 총무는 만사가 대충이다. 서울에 이주 연속 출장을 간 일이 그렇게나 억울했던 모양이다.”
“제… 제이, 너, 너무해….”
두 여자가 구시렁거리든 말든 우리 셋의 이른 아침은 ―두 여자에게는 시간관념이라는 게 없어서 아침이 아니겠지만― 빠르게 마무리됐다.
“나 아침 훈련 간다. 오늘은 설거지 잊어먹지 마? 지난주처럼 그릇에서 곰팡이 피면 니들한테 다 처먹일 거야.”
“총무는 정말 너무하다!”
낸시가 웬일로 울상을 지으며 귀여운 척을 했다. 양팔을 모아 강조된 I컵 폭유가 내 눈을 어지럽혔다.
“나는 오늘 생일이란 말이다!”
미아를 바라봤다.
그녀의 황금색 눈에 그렁그렁한 물기가 차올랐다.
아마도 눈곱이 녹은 거겠지만 비쥬얼적으론 억울함이 가득해보였다.
“나,나두! 나두… 새, 생일이잖아!”
…이년들아.
설거지가 뭐라고 생일까지 들먹여.
―딸그락 딸그락
나는 결국 아침식사의 뒷정리를 하며, 하루 빨리 다음 주가 오길 기대했다.
선우와 나의 일상을 책임져 줄, 사랑스런 메이드 소녀가 올 그 날을.
‘소피아! 니가 너무보고 싶어!’
**
평소처럼 찾은 아공간 B 훈련장.
비네의 권능인 <뇌신>을 얻고 난 뒤부터. 나의 새벽 자율훈련은 루틴이 바뀐 상태였다.
스트레칭을 하고난 뒤, 곧바로 뇌신 적응 연습을 해야 했기 때문.
―C형 장애물 주파 코스 준비 완료
기계음이 들려옴과 동시에 마력을 움직이며 비네의 권능을 발동했다.
[▶뇌신 lv.1> 시동]
[▶마력 45 -> 35]
약 1/4에 달하는 마력이 한꺼번에 빠져나갔다.
―시작
호각소리에 시선을 옮겼다.
목적지는 바닥에서부터 올라온 시뮬레이션 바위 너머.
‘왔다, 이 감각.’
몸이 엿가락처럼 늘어지는느낌이 듬과 거의 동시였다. 바닥을 크게 구르며 전방을 향해 탄환처럼 몸을 움직였다.
나는 이미 바위 뒤편에 위치해있었다.
‘됐다!’
2m에 가까운 높이인 바위 장애물 하나는 넘었다.
다음에 날 기다리고 있는 것은 거대한 동체를 가진 E급 몬스터 순한동굴곰.
―끄냐아아아아!
귀여운 울음을 터트리며 돌진하는 4기의 순한동굴곰의 사이로, 틈이 보인다.
[▶마력 35 -> 25]
‘지금.’
재차 발을 굴러 허공과 수평이 되게 몸을 날렸다.
직립보행 시 체고가 3m에 육박하고 발톱 길이 또한 1m에 가까운 순한동굴곰들 사이로 내 몸이 쾌속하게 빠져나갔다.
‘좋아!’
이걸로 두 번째.
나는 다음 장애물들까지 차례로 돌파했다. 그리하여 잔존 마력이 5가 남아, 더는 비네의 권능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발을 멈췄다.
“하아! 하아….”
너무 힘들었다.
10이나 되는 마력이 한꺼번에 쭉쭉 빠지는 이 감각은, 뇌신雷神을 얻기 전까진 한 번도 느껴보질 못했으니까.
화요일은 오늘은 그나마 5라도 남기고 멈췄지.
일요일과 월요일에는 뇌신을 펼치던 중 마력 탈진 상태가 되서 세 번이나 기절했었다.
[네놈은 그 정도 큰 마력을 소모할 스킬이나 기술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맞다. 45의 마력은 D급 치고 높은 수준이라서, 마력방출 몇 번에 마구 낭비될 정도의 양이 아니었던 것.
“조금만 더 적응하고 권능 레벨을 올리는 게 낫겠지? 회당 마력10 소모는 효율이 너무 안 좋아.”
[당연하다. 다만, 적응에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거야. 네가 S등급 이상의 고위 헌터였다면 바로 만렙을 찍고 적응해도 무리가없겠지만, 네놈은 D급이니 신체가 충분히 따라올 수 있도록 레벨을 천천히 올려야겠지.]
요지는, 비네의 권능인 뇌신에 비해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부족한 부분은 다름 아닌 마력이다.
“메리. 이쯤이면 현재 마력량에 잘 적응한 것 같은데. 슬슬 올려볼까.”
[쎅쓰. 지금 해줘?]
“하자.”
막대한 CP를 사용했다.
곧이어 내가 더 강해졌음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출력됐다.
[▶100CP 사용: 마력45 -> 마력60]
[▶잔여CP: 47]
[▶※공상계 적응도가 E 랭크로 경신되었습니다. 실제계에서의 CP 사용 효율이 미세하게 상승하였습니다.]
보유마력 60.
나는 뛰어난 근접전투계열 헌터들의 평균 마력량에 달하는 힘을 불과 한순간에 얻게 되었다.
“와아….”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노도와 같은 마력이 회로를 따라 거칠게 휘돌았다. 금방 소모된 탓에 뚝 떨어졌던 마력이 빠른 속도로 회복 되어갔다.
“여섯 번. 이제 1레벨의 뇌신을 여섯 번이나 쓸 수 있어.”
[뇌신을 쓴다고 가정했을 시, 이제 네놈의 전투력은 순간적이나마 B급에 육박한다고 봐야겠지. 조만간 신체점수도그에 걸맞게 될 테니, 어엿한 일류 헌터로 불릴 날도 머지않았군. 축하한다.]
“모두 니 덕분이야.”
웃음이 절로 나왔다.
메리를 얻은 지 이제 약 두 달.
나는 아카데미의 천덕꾸러기 열등생 미각성자에서, 불과 두 달 만에 C-에 가까운 헌터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게다가 아이웨이 못지않은 일류 헌터. 즉, B급에 도달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듯했고.
[파트너. 지금 그 기분, 빨리 지워버리도록 해. 오히려 공상계 랭크가 오른 사실을 더 기뻐하는 편이 좋을 거야.]
현명한 나의 검이 우웅, 떨며 고양된 내 기분을 진정시켰다.
[재능 있는 근접전투계열 헌터의 마력 평균치인 60을 넘겼으니, 앞으로는 CP로 마력을 올려도 재미를 못 볼 거야. 1000CP를 넘게 들여 봐야 고작 70 찍기도 버거울 거다.]
“알아. 이미 끝난 얘기잖아.”
CP 사용 효율은 신체점수가 올라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내려간다.
공상계 랭크를 단시간 내에 아주 급격히 올리지 않는 한, 이제 CP로 마력을 올리기란 어렵다고 봐야했다.
그렇다고 내 일천한 마력 재능을 믿고 60 이상으로 쭉쭉 성장하리라 기대하는 건, 솔직히 무리다.
“일단 혼자서 한계까지 노력해보고, 그 다음 수단을 찾아야지.”
[좋은 생각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네놈과 이 몸이라는 검劍이 아니야. 검보다 좆집. 즉―]
늘 그렇듯, 나의 음란한 검이 바른 소리를 해왔다.
[우리에겐 <검집>이 더욱 중요해.]
…그래.
우리에겐 메리의 검집이나 마찬가지인 악마 군주의 정수가 있다.
상식을 초월하는 권능을 추출해낼 수 있게 해주는, 우리 힘의 근원이.
‘내 마력 재능의 한계를 뚫어버릴 권능도 분명 있을 거야. 그런 권능을 얻을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자.’
나는 60의 마력에 어울리는 몸과 정신을 만들고자 다시 훈련에 집중했다.
〓〓
[계약자: 김제이]
실제계 등급: C- / 공상계 등급: E
[신체능력]
근력48 ▲
체력58 ▲
민첩53 ▲
마력60 ▲
정력50
[보유CP]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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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계에서 C등급. 그리고 공상계에서도 이제는 E등급에 오른 감흥을 완전히 잊어버린 채. 나를 갈고 닦았다.
**
아침 자율 훈련을 마친 후의 하루는 빠르게 흘렀다.
점심시간 직전인 현재, 남은 공통 수업은 하나 뿐.
“―이렇듯. <만물의 소리>라는 숨겨진 고유 능력이 일반인과 각성자. 그리고 프레이야와 유로파를 가리지 않고 모든 지적 생명체들에게 생겨났다. 바야흐로 차원, 인종, 국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진정한 소통의 시대에 접어들게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지.”
공통과목인 『마력운용사III』 시간.
담임교수인 이시카와 레이의 수업이 한창 끝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모든 지적 생명체들이 퍼스트 컨택트 이후 공통으로 가지게 된 고유 능력인 <만물의 소리>와 관련해서.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게 무엇인지 얘기해볼 사람?”
이시카와가 생도들과 눈을 마주쳤다.
모범생인 엘리사가 손을 들었다.
“엘리사 비티. 너는개인 질문을 통해 답을 이미 알잖니.”
“히잉.”
엘리사가 시무룩한 얼굴로 손을 내렸다. 그러나 오늘의 이시카와는 단골 질문 답변자에게 기회를 주고 싶지 않은 듯했다.
“좋아. 아이웨이? 대답해 보도록.”
“…저 말씀이십니까?”
“우리 반에 아이웨이가 너 말고 또 있나. 졸지 말고 일어서서 대답해.”
아이웨이가 쭈뼛거리며 일어났다.
“어… 그러니까…. <만물의 소리>라 명명된, 텔레파시와도 같은 자동 통번역 능력이 뜬금포로 왜 생겨났는가. 이 능력이 어떤 원리로 발현되는 것인가, 그런… 질문들 말씀이십니까?”
“근접했어. 답변을 구체화해보도록.”
“끄응….”
아이웨이가 짱구를 굴렸다.
그러다 이제야 생각났다는 투로 답변했다.
“아! 마력魔力. 마나-기-차크라 같은 형태로 기존에도 세상에 존재했지만,신대와 고대의 시대 이후 쓸 수 없게 된 힘. 그것을 퍼스트 컨택트 이후로 자각하게 됨과 동시에 <만물의 소리> 역시 생겨난 것 아닐까요?”
아이웨이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마력의 재발견을 통해, 모든 지성체 사이에 소통 장애가 없어졌다! 그러니 지구-프레이야-유로파의 지성체가 한 단계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결론에 대한 증거가 바로 <만물의 소리>다! 바로 이거 아니겠습니까?”
“어디서 인류원리에 관한 마이튜브 몇 개 보고 와서 잘도 그런 소리를 내뱉는구나.”
이시카와 교수의 눈꼬리가 내려갔다.
“완전히 빗나갔어. 자리에 앉아.”
“히잉~♡”
“우웩!”
“아이웨이 미쳤나봐!”
엘리사를 따라한 아이웨이의 귀척에 반 생도들이 헛구역질을 했다.
이시카와 교수가 나를 바라봤다.
“김제이. 대답해봐.”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이시카와 레이 교수의 질문을 어절별로 찢어놓고 보면 다음과 같다.
-세 차원의 모든 지적 생명체들이.
-퍼스트 컨택트 이후.
-모두 다 가지게 된 <만물의 소리>.
나는 그녀의 질문에서 강한 위화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언급했다.
“<만물의 소리>가 누군가에 의해 디자인되어 의도적으로 지성체들에게 배포된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가정if… 말씀이십니까?”
이시카와의 입에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정답이야.”
뇌신 lv.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