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9화 〉69. 제이와 그라비아의 추억(4) (69/145)



〈 69화 〉69. 제이와 그라비아의 추억(4)


신이사건조사연구부 조직도

-부장: 낸시

-부부장 겸 1연구팀장: 미아
-1팀 주임연구원: 서윤

-수석연구원 겸 2연구팀장: 라라

-총무: 제이


“앞으로 1연구팀의 활동은 미아 주도로 진행된다. 공동 연구 외, 1연구팀의 주 존재 목적은 점성술을 통한 미래 예지다.”

미래예지. 더럽게 거창하네.
가끔 가다 뭔가 맞는 것 같기도 하니까 태클 걸기도 뭐하고.

[일단 두고 보자. 부부장년의 점성술이 뭔지도 슬슬 알아볼 수 있겠지.]

떫은 감을 씹은 듯한 내 표정과 반대로, 네 여자는 자못 흥분된 기색.

“와아…! 점성술이다! 드디어 배우네.”
“서, 서윤아…. 내, 내가 자, 잘… 아, 알려… 줄게. 재, 재미, 있어….”
“서윤 군의 지원 덕에 앞으로 연구부 활동에 박차가 가해지겠어.”
“그간 초시공의 카르마를 포착하느라 미아의 어깨가 무거웠습니다. 육 주임의 도움으로 큰 도약이 있을 겁니다.”
“…….”

낸시가 빨간 포인터로 라라가 맡게 된 2팀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공동 연구 외, 2팀은 비공개 연구를 진행한다. 공개 전까지, 헤드인 나와 미아를제외한 부원들은 수석연구원의 연구 내용을 알 수 없다. 이와 관련한 질문 또한 받지 않겠다. 총무와  주임, 이의가 있다면 지금 말한다.”
“저는… 괜찮아요.”
“마음대로 해.”

무척 궁금하지만 참겠다는 서윤이의 옆에서,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낸시가 그런 나를 묘한 눈길로 보다가, 나머지 직무 정리를 마쳤다.

“말했듯, 이 조직도는 공동연구를 제외한 개별 활동과 관련되어 있다.따라서 현재 당면한 공동연구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한다.”
“그럼 부장인 너는 평소처럼 마이튜브 채널 관리랑 보고서 작성만 해?”
“나는 네가 언급한 대외 활동 외, 모든 연구의 진행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며 활동 방향을 정한다.”
“그럼 난.”
“너?”

낸시가 좋은 질문을 했다는 듯, 검정 뿔테 안경을 올려 꼈다.

“총무 김제이는 개별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연구원들의 니즈를 유동적으로 지원한다. 이는 신연에서 가장 다채로운 분야에 우수한적성을 보이는 총무만이 가능한 일이라 사료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할 말을 잃었다.

“마, 맞아! 제이야, 부, 부탁해!”
“제이는 우수해.  부서에 독점적으로 두기엔 인력의 낭비가 있지.”
“제이 오빠는 앞으로 여러 가지 일을 다 해보겠네? 부럽다.”
“…….”

미사어구야 화려했고.
착한 부원들이 나를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이건… 그냥 머슴이잖아.’

그런다고 진실이 가려지진 않았다.


**


바쁜 수요일이 지나고 목요일이 찾아왔다.
내 시간표는 화금이 널널하고 월수목이 아주 빠듯하게 짜여있다.
덕분에 나는 화요일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야동 한  볼  없이 바빴다.

‘아, 그저께 라라랑 했어야 했는데.’

신연 정기모임이 끝난 그저께 저녁.
식사를 마친  라라에게 ‘불완전 각성 고유능력 탐색’을 빙자한 ‘촉진’을 받으려 했었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아가야. 나는 2팀 연구 문제로  얘기가 있어.  예쁜 아가는 서윤 군을 바래다주는 게 어때?

시간은 늦은 밤. 걸어 다니는 색기 폭탄인 서윤이를 혼자 기숙사에 보낼 수는 없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라라와의 즐거운 시간을 떠나보내게 된 것.

그날 서윤이를 꼬시지 그랬냐고?

바래다주는 길에 마중 나온 아나 코스타와 마주쳐서 그럴 수가 없었다.

“하아….”

끓어 넘치는 성욕과 폭풍처럼 몰아닥친 과제. 그리고 오늘부터 이어질실기 테스트의 압박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툭 툭

연습용 창을   훈련장 입구에 주저앉자, 아이웨이가  발을 찼다.

“웬 한숨?”
“피곤해서. 두 시간 잤거든.”
“딸쳤냐?”
“과제 멍청아. 카를로스 월말 페이퍼 이번 주말 마감인  잊어버렸냐.”
“아 씨발!”

아이웨이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좆됐네. 이번 금요일부터 여행 동아리 해남으로 MT가는데.”
“재껴. 니 동아리 주말마다 싸돌아다니는데 한 주 빠지는 게 대수냐?”
“이번에는 안나도 온다고!”

안나 살라예바.
아이웨이가 짝사랑하는 3학년 생도회 서기이자 구룡칠봉의 일원이다.
그녀는 다수의 동아리를 가입한데다 생도회 일까지 바빠, 그가 속한 여행 동아리에는 이따금만 나온다고.

“하여간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동아리가 문제다.”
“제이 너도 바쁘냐. 맞다, 너 신연 총무라며. 그거 뭐하는 직책이야?”
“머슴.”
“큭큭큭큭! 너는 씨팔, 큭큭! 어딜 가든 남 치다꺼리만 하고 다니냐, 큭큭!”

아이웨이의 실눈이 완전 사라졌다.
녀석이존나게 좋아하다가, 내 옆에 앉아 어깨동무를 해왔다.

“야. 그래도 신연은 물이 죽이잖아.”

…그 부분은 확실히 인정한다.

부장인 낸시는 숏컷 단발이 어울리는 시크한 미녀에다 I컵 폭유의 소유자다.

서윤이와 라라야, ‘그’ 아이린과 순위를 다투는 초미녀다. 탑급 연예인 뺨을 갈겨도 집행유예를 받을 정도라는 뜻.

부부장이자 무슬림인 미아는 전신을 가린 새까만 니캅 때문에 용모를 알아볼 수 없지만, 레바논에서 온 중동 여자이니 최소 평타는 칠 거라고 본다.

“우리 부원들이 다들 이쁘긴 하지.”
“그치? 제이 너, 솔직히 말해봐.”
“뭘.”
“너 육서윤이랑 진도 못 나가는 거. 신연에 좋아하는 여자생겨서지.”

에라 이 새끼야.
서윤이랑은 이미 그저께 물고 빨았고, 라라와는 산부인과까지 갔다 온 사인데 누구를 순정남 취급해.

‘나 존나 쓰레기야 임마.’

말없이 고개만 젓자, 아이웨이가 채근을 해왔다.

“빨리 말해봐. 누구야, 낸시? 아니면 그 미각성자 IS?”
“IS는 개새끼야. 미아는 그런 무슬림 아니라고. 걘 종교 권유도 안 해.”

순수하고 착한 미아를 중동에서 한창 난리인 헌터 군벌 집단에 비유하자 짜증이 났다.

“아 씨발, 그럼 누군데. 라라 교수? 설마 너 백마 취향이냐. …아니지! 라라 정도면 백마라도 킹정이지. 취향을 초월할 정도로 예쁘잖아.”
“쫌 조용히 해. 곧 수업 시작한다.”
“김제이 이 새끼 이거되겠네!”

아이웨이가 폰을 꺼내 빠르게 화면을 두드렸다.

“아이린을 향한 순정을 버렸다 이거지?  다 일러바칠 거야.”
“하지 마!”

놈의 폰을 억지로 빼앗았다.
화면을 켜보니 다행히 장난이었다.

“큭큭큭! 그래도 아직 아이린한테 마음이 있나보네? 난 니가 요즘 신연 애들이랑 하도 친하게 지내길래, 아이린 포기한 줄.”
“몰라 임마.”

장난으로 그쳐서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아이웨이의 폰을 돌려주려했다.
그러다 문득, 놈의 폰에서 낯익은 여자의 사진을 발견했다.

‘이 여자….’

아이웨이의  배경화면은 나도 알고 있는 여자였다.

차수진.


00년대 초반의 그라비아 아이돌이다.
20여 년 전. 일본의 대형 기획사가 한국에 정식으로 청년 잡지를 런칭하면서 뽑은, 일한日韓 합작 그라비아 제1기.

‘이 누나 진짜 오랜만이네.’

나야 차수진 활동 시절에 갓난아이 때라서 나중에야 알았지만, 당시 그녀는 남자들 사이에서 전설이었다고 한다.

J컵이라는 개미친 폭유와 169cm에 달하는 늘씬한 기럭지에서 오는 S라인 몸매. 그리고 00년대 최고의 여배우들과 비견될 정도의 아름다운 얼굴까지.

만년 B급 취급인 그라비아 모델이면서도, 그 유명한 ‘라라라라라라라라’ 이온 음료의 광고까지 찍을 정도로 단기 임팩트 역대 최고였다고.

‘J컵이 과하게 보이지 않는 이유가 순전히 몸매와 얼굴 때문일 정도로 사기지. …그래, 서윤이나 아이린처럼. 차수진 정도면 그 급이라고 봐도 돼. 라라랑 비교하기엔 가슴이 너무 크니까.’

나는 동지를 발견한감격스런 얼굴로 그에게 폰을 돌려주었다.

“아이웨이, 너 다시 봤다. 취향 아주 고상한데.”
“…차수진 누나? 제이 너도 좋아해?”
“당연하지.”
“아우, 씨발. 역시 넌 말이 통해.”

아이웨이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자신의 차수진 사랑을 자랑했다.

“차수진 누나가  첫사랑이잖아! 초딩 때 인터넷에서 누나 해변 화보 보고 처음으로 성에 눈을 떴다 이거야! 그때 씨발, 모니터 존나 핥았어. 이렇게, 이렇게!”

아이웨이가 혀로 폰 액정을 핥는 시늉을 했다.

존나 더럽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이었지만, 약간은  심정이 이해가 갔다.

‘차수진 해변 화보 나도 잘 알지. 나도 그거 보고 중딩 때 처음으로 자위를 했으니까. 그 이후로 내 취향이 거유로 고정된 거고.’

아이웨이나 내가 유별난 게 아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어린 시절 차수진의 그라비아 화보를 보고 성에 눈을 떴다는 신앙(?) 고백이 끝을 모르고 나올 정도.

“제이 너… 근데 그거 알아?”
“뭐.”
“차수진 누나, 갑자기 은퇴하셨잖아. 그 이후론 소식도 완전 끊기고.”

아이웨이가 놈답지 않게 아주 아련한 얼굴을 했다.

“형한테 들은 얘긴데. 차수진 누나,  때문에 은퇴한 거래. 완치한 이후엔 소속사 야쿠자한테 협박당해서 상류층들 상대로 성매매하다가 지금은 이탈리아에서 수녀로 살고 계시대.”

이 새끼 또 시작이네.

“니네 형이 또 뻥친 거 아니냐?”
“그럴 수도.”

그는 웬일로 순순히 수긍했다.

“누나가 어디에 살든. 행복하셨으면 좋겠어.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 구여친의 행복을 빌어주는 느낌이랄까.”

…젠장! 나는 아이웨이의 마음이 너무 절절히 공감됐다.

차수진에게 신세진(?) 지난날의 빚을 생각하면, 설사 그녀가 병에 걸린  사실이라 해도 꼭 건강해야만 했다!

혹여나 그녀에게 해를 끼쳤을지 모를 악독한 일본 출판사 야쿠자 사장은 천벌을 받아야 마땅했다!

만약 차수진 누나가 수녀가 된 것이라면, 그녀는 반드시 천국에 가야만 했다! 차수진이 아니면 누가 천국에 가!

“다음! 4조. 2학년 C반 잭슨 구연하 반선우 김제이. 1학년 4조는 2학년이 진입한 뒤 안전이 확보되면 들어간다.”
“네!”
“지금 갑니다!”

잡담을 끊고 실기 테스트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 밤은 간만에 차수진으로 친다. 초심으로 돌아가는 거야!’

벌써부터 웅장해지려는 자지를 연습용 장창으로 가렸다.

**


E급 실습용 던전. 속칭 ‘아다굴’.

매년 학기 초, 2학년의 주도로 자매반인 1학년들을 이끌어 돌파하는 곳이다.

나또한 미각성자였던작년. 자매반 선배들의 도움으로 이곳을 체험했다.

‘그땐 여기가 왜 그리 무서웠지.’

어마어마한 규모의 아스모데우스의 내균열 동굴형 던전을 체험했던 탓일까.
너비 10m, 깊이 2km남짓의 어두컴컴한 E급 던전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딱 1년만이구나.”
“그러게요.”

생도복이 아닌 실습용 전투복을 입은 선우가 생긋 웃었다.
작년 이맘때도 나는 선우와 같은 조였고, 그때 처음으로 녀석과 말을텄다.

“벌써 그때부터 일 년이나 지났네요.”
“그때 내 꼴이 엄청 웃겼었지.”
“아하하.”

이 ‘아다굴’은 선우와 내가 친해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 벌어졌던 곳이다.

당시 통신 장비의 이상이 생겨서, 보스방에 우리 조가 한 시간 정도 대기하는 일이 생겼다.

―야. 넌 근데 꼬추냐 보지냐?
―…네?
―남자 새끼가 더럽게 예쁘게도 생겼네. 바지  까봐. 확인 좀 하게.

그때 2학년 미친 새끼들 중 몇이 선우에게 성추행조로 시비를 걸었다.
나는 그걸 말리려다가 개처맞았고.

―니들 좆이나 까, 엄한  괴롭히지 말고.
―이 미각성자 새낀 뭐야.  꺼져?
―으헉!
―……후우. 그만들 하시죠.

그리하여 결국, 3년 동안 힘숨찐 생활을 하려 했던 선우가 진면목을 드러내면서 상황을 정리했다는 이야기.

“나 그때 추했지.”
“전혀요. 오히려 멋있으셨어요.”
“새끼, 말은.”
“정말인데. 그때처럼… 그랬는데.”
“응? 그때라니.”
“아하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선우가 거짓이라곤 한 점도 보이지 않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여자라고 해도 철썩 같이 믿을 녹발녹안의 하프 엘프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1학년 생도들을 기다렸다.

“시야 체크 완료. 몬스터 없음.”
“입장 허가 신호 보낸다.”

궁수이자 길잡이인 잭슨이 확인을 끝내자, 오퍼레이터를맡은 구연하가 밖으로 OK사인을 보냈다.

잠시 후.
네 명의 여자생도가 차례로 던전에 입장했다.

“안녕하세요! …와, 우리 조 대박!”
“진짜네? 반선우 선배잖아!”
“저 사람이… 김제이, 맞지?”
“잘 부탁드립니다.”

넷 모두 아는 얼굴이었다.
저번 대면식 때 안면을 익혀두기도 했고, 특히 한 명은 아주 낯이 익었다.
나는 초보 마법사용 완드를 들고 있는 소녀에게 다가갔다.

“서루이 오랜만이다. 그때 삥 뜯어간 5만원은 잘 썼어?”
“호구님 덕분에.”
“그거 참 보람찬 소식이네.”

일주일 만에  서루이는 여전히 싸가지 바가지였다.

‘말을 말자.’
[잘 생각했다. 진성레즈인 저년은 하렘왕일 될 네놈과 극상성이야.]

어깨까지 오는 흑발을 하나로 곱게 땋은 레즈비언 꿈나무를 등졌다.
나와 선우의 눈빛을 받은 구연하가 브리핑을 시작했다.

“안녕, 후배 생도님들. 아다굴에 온 걸 환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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