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3화 〉73. 제이와 그라비아의 추억(8) (73/145)



〈 73화 〉73. 제이와 그라비아의 추억(8)

“귀걸이가 예쁘다. 십자가니?”
“네?”
“그거.  쪽에만 찬 귀걸이.”

얼핏 십자가처럼 보이는 귀걸이.

“아니요, …검인데요.”

즉… 메리를 얘기한다.
새끼손가락  마디보다  작은 크기로 줄어든 채, 귀걸이인  내 귓불에 붙어 있는 신검 캄비온.

“그러고 보니 봄방학쯤부터였나.”

20대 후반의 지적인 미녀 이시카와가.
새삼스럽게 뭔가를 깨달은 얼굴로 메리를 가리켰다.

“그때쯤부터 귀걸이 찬 모습을 본 같은데. 내가 무신경해서 칭찬을  했네. 잘 어울린다 제이야.”
“각성 기념으로 분위기를 다져보고자 귀를… 뚫어봤어요.”
“패셔너블해보여서 그런지 섹시해.”
“감사합니다.”

십년감수했다.
그동안 친구들이 물어볼 때마다 준비한 답변을 읊으며 곧잘 변명하긴 했다.
하지만 질문 상대가 깐깐한 이시카와 교수다보니 나도 모르게 위축됐던 것 같다.

[걱정마라.  몸이 마음만 먹으면 유로파산 최신형 감지 기기에도 안 걸리니까. 공상계와 관련한 힘이 없는 존재들은 이 몸을 포착할  없어.]
‘쎅쓰.’
[ㅋㅋ]

적당히 대화를 마무리하고 이시카와 교수에게 인사했다.
오늘 밤 당장 E급 실습 던전에 가려면, 시간이 얼마 없었다.

“제이야. 사소한 질문이 하나 있어.”
“말씀하세요, 교수님.”

문을 닫기 전이었다.
이시카와 레이가 물었다.

“그런데 왜 창이 아니라 검 모양의 귀걸이를 차고 있는 거니? 김제이  창을 쓰잖아.”
“선물 받은 거라서요.”
“그렇군. 선물… 인가.”

그녀가 보일 듯   한 가는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검이 더 신체적성에 맞지만 구태여 창을 쓰는 너에게 검 모양 귀걸이를 선물한다, 라.”

잠시 말을 끊은 이시카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 사람. 참 취미 나쁘구나?”

나는 침묵했고.
메리는 화를 냈다.

[이 아둔한 계집! 네년은 눈에 단추 구멍을 달고 다니냐?! 이 몸의 파트너한테 지금 뭐라고 지껄인 거야?! 제이는 누가 뭐래도 우수한 창술사다!]

이시카와가 곧바로 실수를 인정했다.

“선물은 마음이 중요한 법인데 내가 실언을 했어. 진심으로 사과하마.”
[보지나 까라고!  씨발년아!]
“아닙니다, 교수님. 허가증과 조언 감사합니다. 주말  보내세요.”
“월요일에 보자.”
[개허벌지옥으로 냉큼 떨어져버려!]

**


시간은 금요일 점심.
이시카와 교수의 연구실을 나와 3관에서 홀로 식사를 하는 와중에도.
메리는 분노를 멈추지 않았다.

[이 좆같은 학관에는 남한테 관심 많은 씨발년놈들이 대체 왜 이리 많은 거지? 남이 창을 쓰든 검을 쓰든 그거야 자기 마음인데  자꾸 지랄들이야.]
“진정해. 난 괜찮으니까.”
[생도회장 등신 새끼부터 시작해서 창술교수 틀딱 새끼에, 오늘은 저년까지 개소리로 짖네. 하여간 오지랖들 안 부리면 인생이 글케나 노잼인가 보지?]

나는 소형화된 귀걸이형태로 자신의 전용 컵에 몸을 담구고 있는 메리에게.

콜라를 부어주었다.

―치이이익

콜라는 검신에 여전히 약간의 녹이 남아있는 메리가 가장 좋아하는 세척액이다.

악마를 벌써 8기나 봉인했는데도 메리의 몸. 즉, 신검 캄비온은 본래 힘의 1할도 찾지 못한 상태라 했다.
뭐, 날카로운 예기銳氣야 진즉에 찾았지만.

‘악마 봉인이 진전될수록 메리가 멋있어질거라고 했지. 녹도 조만간 완전히 없어질 거야.’

나도 이 ‘녹’이 일종의 고대마법 개념과 연관된 거라서, 콜라 따위로 지워질 리 없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메리를 위해 이런 일이라도 해줘야  마음이 편했다.

[흐어어어…. 이게 쎅쓰야, 쎅쓰.]

열 받는 와중에도 기분이 좋은지, 메리가 작은 몸을 웅웅 떨어댔다.

[어엌… 페어리 마사지 받는 것 같닼.]
“그게 뭔데.”
[궁금하면 이 몸께서 정령체를 회복한 뒤 몸소 시켜주도록 하지. …영광인  알아? 얼간이 아서는  몸과 수십 년을 함께 했어도 이 몸의 고결한 정령체에 손가락 한  대지 못했었으니깐.]
“너무 고마워서 좆물이 다 나온다.”
[어어엌…! 그만 싸! 흘러넘치겠어! 이러다 이 몸의 소중한 곳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져버린다구우~!]
“큭큭큭큭.”

―치이익…

200ml 콜라캔을 마저 다 부은 뒤 식사를 재개했다.
수영하듯 콜라 속을 헤엄치던 메리가 진지한 말투로 충고했다.

[파트너, 절대 신경 쓰지 마라. 무도에 정진하는 자는 자신만의 동기와 자신만의 형形으로 경지에 이르는 법이다. 창의 길을 걷는 네놈이 남의 말에 흔들릴 필요 없어.]
“흔들린 건 내가 아니라  아니냐.”
[짜증나니까 그러지 씨팔. 아으……! 좀 이따 뽀록으로 크로셀이나 봉인하고 뽕이나 따면 좋겠다.]

나는 묵묵히 밥을 먹었다.
최근 들어 종종 듣는, 주무기 교체 제안에 대해 생각하면서.

‘창槍과 검劍이라. 사실 뭘 써도 상관은 없다. …미련이 남아서 문제지.’

인간의 적이 인간이 아니라, 몬스터가 되어버린 시대다.
그러므로 근접전투계열 헌터가 대인전에 적합한 무기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결국, 마력魔力이니까.

냉병기의 만병지왕萬兵之王인 창은 대인전에서 검보다 많은 이점이 있지만.
마력을 활용한 화력 중심의 대對몬스터전에서 창은, 오히려  가지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다.

창은 평균 마력사용량이 검보다 많고. 여전히 깊게 뿌리박힌 장창제일주의 때문에, 근접냉병기 중 가장 비싸다는 등의 여러 단점들이 있다.

하지만 이것들보다 더 중대한 고려사항이 있다. 바로 내 경우인.

<신체적성> 문제.

이세계 프레이야와 유로파와의 교류를 통해, 마도공학과 과학이 발전하면서.
각성자들은 자신의 신체 포텐셜과 적성을 보다 정확히 파악하게 되었다.

여기서 도출된 개념이 황금신체비.

즉, 해당 직업에 가장 어울리는 이상적인 신체적성 기준표다.

높을수록 좋은 체력/마력을 빼고, 근접전투계열 직업의 중요사항인근력/민첩으로만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양손 대검) 1.15 : 1
-일반장창) 1.1  : 1
-한손 단창) 1.05 : 1
-한손 장검) 1  : 1.15
……


처음 봤을 때는 이따위 미세한 차이를 나타내는 표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귀납적 자료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S급 이상 근접계열 헌터들의 신체점수를 가지고 통계를 돌렸더니, 그 분포가 거의 저런 식으로 나타났다는 뜻.

얼핏 생각해봤을 때 비과학적이고 말이 안 될 것 같지만. 추후 과학자들이 연구한 바, 놀랍게도 여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마력이라는 변수.

마력을 썼을 때, 전용무기의 효율성이 신체적성마다 다르게 적용됐던 것.

즉, 근력-민첩이 1.1 : 1인 사람이 1의 마력을 가지고 장창을 쓰는 것과.
: 1.1인 사람이 동일한 마력을 가지고 창을 휘두르는 게, 효율이 달랐다는 이야기다.

‘내 경우엔 오히려 검이 신체적성에 가까워. …좆같지만 사실이다.’

시스템 창을 열었다.

〓〓
[신체능력]
근력48
체력59 ▲
민첩54 
마력60
정력50
〓〓

60의 마력을 얻은 이후, 근력의 성장이 더뎌졌다.
<뇌신> 권능의 영향으로 민첩이 두드러지게 오른 점은 있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다.

‘내 근력의 잠재 한계는 민첩보다 낮아. 창쟁이의 황금비에서 벗어난다.’

현재 나의 근/민 비율은 1 : 1.125
잠재성장 최종 예측치는 1 : 1.15

과학은 내 몸이, 창보다 검에 어울린다고 말하고 있다.

물론 당연히 통계적 예외는 있다.

 첫사랑인 아영 누나만 해도 근민 비율 1 : 1.23으로 잘만A급에 올랐고, 5년 내 S급 진입이 확실시 되고 있다.

‘그치만….’

창을 그렇게 잘 쓰는 아영 누나조차, 종종 이런 농담을 하곤 했다.


―내가 처음   창이 아니라 검이었으면… 벌써 S급 달아서 명예졸업까지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하….


그녀의 지도교수였던 S랭크 창술사 에비뉴 할배는 신아영에게 이런 말까지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아영 군이 검사였다면, 그리고 마력 성장에 기연이 따른다면. 자네는 SS랭크까지 능히 바라볼 수 있었겠지. 전사로서 자네의 재능은 그 정도로 탁월해.

―그러나 창쟁이 신아영은 천운이 따라주더라도 S급이 한계일 게야. 이 늙은이가 그랬듯 말일세.

―미세한 차이는 경지가 올라갈수록 결정적 격차로 다가온다네. 진정한 천재들의 세계인 SS랭크 이상에 닿는 일은 노력과 운만으론 턱없이 모자라.

―몸뚱아리身體.

―우리의 몸은 정답을 알고 있다네. 이 늙은 창잽이가 50년  창을 쥐며 내린 서글픈 결론이 바로 그것일세.

―스물넷이면 아직 늦지 않은 나이지. 신아영 군, 지금이라도 검을 쥐게. 이 늙은이의 간절한 바람이야.

아영 누나는 그 제안을 거절했다.

창쟁이로서의 자존심, 소망, 동경, 꿈, 정, 예전보다 낮아진 성장에 대한 기대감 등의 복합적인 마음이 작용한 결정이었다.

‘나랑 똑같아. 그래서 내가 아영 누나를 더 많이 좋아했던 거고. 나랑… 닮아보여서.’

목이 탔다.
밥을 국에 말아 빠르게 마시고, 냉장고에서 콜라를 가져다 원샷 했다.

‘나는 창쟁이다. 창으로 반드시 S급에 오를, 창쟁이. 마력이 일류 근접전사급인 60에 달한 이상, 더는 꿈이 아니야. 나는 꼭 할  있어.’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가지 의문을, 나는 차마 지워버리지 못했다.

―그럼 S급 창쟁이가 된… 후에는?


그에 대한 답을 나는 모른다.

그것은 살면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그저, 뜬구름 같은 생각이었으니까.

**


타 반의 실습이 모두 끝난 오후 6시.
나와 메리는 실습 던전과 가장 가까운 아카데미 북문으로 향했다.

[어제 말했듯, 크로셀Crocell일 가능성이 꽤 높다. 확률은 반반.]

메리가 어젯밤 홀로 조사한 악마 군주의 흔적에 대해 다시 브리핑했다.

[72악마 중 49위인 극우호 계열 악마야. 극우호 성향인 만큼 발견하기도 어렵지만, 놓쳐도 전혀 상관없는 년이지.]
‘특징은?’
[그년은 본래 천계의 능품천사能品天使였다. 지금도 악마라기 보단 천사에 한없이 가까워. 다만 최초의 봉인 때와 1600년 전에는 마검을 소유하고 있었던 탓에 악마로 규정됐지.]

메리는 서윤이가 겪은 신이현상이, 크로셀의 권능이 빚어낸 환상일 가능성이높다고 했다.

환상과 치수의 권능은 천사 시절부터 크로셀이 갖고 있던 고유 권능이라고.

[마검이야 예전에 이 몸이 완전히 부숴버려서, 이제는 그냥 날개 잃은 천사라고 보면 돼. 예전에도 그 강대한 마검의 소유자였던 주제에, 제대로 힘을 휘두른 적이  번도 없었다.]
‘한 마디로, 크로셀이 맞다면 이번 봉인 임무는 꽁으로 먹는다는 말?’
[쎅쓰. 저번 비네  그리 고생을 했으니 쉬어갈 때도 됐지. 크로셀이 맞다면 그렇다는 얘기지만.]

아무튼 듣던 중 반가운 얘기였다.

긴장을 풀고 메리와 봉인 계획을 얘기하며 10분쯤 기다렸을까.

E급 실습 던전, 속칭 아다굴에 가기 위한 멤버들이 하나  모여들었다.

“교수님! 식사하고 오셨죠?”
“응.”

치유술전공 라라 마르티넥 교수.
오늘 그녀는 감시관 및 지도 역으로 함께 하게 됐다.
발키리의 신혈을 머금은 아름다운 라라의 은발이 노을을 받아 반짝거렸다.
그녀가조용한 미소를 머금고 물었다.

“아가도 먹고 왔니?”
“네. 교수님… 보고 싶었어요.”
“나도. 서로 바빴지. 조만간 중간고사 기간이라 시간이 더  나겠구나.”
“교수님 자주 뵈려면 없는 시간이라도 내야죠.”
“…응. 이렇게라도 봐서 참 좋아.”

서로를 보는 눈에 애틋함이 가득했다.
마음 같아서는 사흘 만에  거라 잔뜩 애정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멀리서부터 보이는 인영들 탓에 짬을 내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저 아시죠!”
“하리 군,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교수님. 아까 뵀을 때보다 얼굴이 밝아보이세요. 오후 중에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나요?”
“글쎄, 아이린을 또 봐서 그런 걸까.”

라라 교수와 마찬가지로 단출하게 전투복을 입은 하리와 아이린까지.
공식 랭크 A++인 이 두 친구는 혹시 모를 이변에 대비해 넣은, 일종의 보험 역할이다.
특히 하리는 S랭크 힘숨찐이니 뭔 일이 터지면 알아서 어떻게든 해줄 거다.

“제하! …오우, 멤버가 화려하네.”
“오빠~ 엘리사 왔어!”
“형! 죄송해요. 제빵부 모임이 늦게 끝나서. 대신 간식 싸왔어요, 헤헤….”

 외에도 어제 일어난 신이 사건의 목격자인 선우, 엘리사, 아이웨이가 함께 하기로 했고.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분. 마력전투지원 전공 신입생도 육서윤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주인공인 육서윤까지, 모든 멤버가 모였다.

“오빠. 신연 부장이랑 부부장은?”
“안 온대. 자기들은 브레인이라나.”
“아, 대박 웃겨. 그 여자들 이러려고 우리 모지리 스카웃한 거구나.”

하리가 3관이 있을 동쪽을 바라보며 실실 웃었다.

“그 여자들답다. 고학년들 사이에서 둘, 유명하거든.”
“뭘로.”
“알잖아, 방구석 폐인들인 거.”

오늘, 낸시와 미아는 오지 않았다.

걔들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3관과 연구부실. 즉, 그들만의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했다.

알래스카와 레바논에서 온 그녀들의 부모님을 뵈러 갔을 때가 아카데미 밖으로 2년 만에 나간 거라고 했었으니,  폐쇄성을 짐작할  했다.

‘날 자꾸 밖으로 돌리려 할만도 해.’

밖에서 일어나는 신이 사건들이 궁금해죽겠는데 지들이 나가긴 싫으니, 총무인 나를 눈귀 삼아 막 굴리는 거다.

“오빠, 슬슬 출발할까?”

하리의 말에 고개를 돌려 출발을 알렸다.

“지금부터 던전으로 이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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