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77. 제이와 그라비아의 추억(12)
‘이 모지리… 대체 언제…. 설마 최근 들어 더 강해진 색기色氣 때문에?’
‘김제이개새꺄! 너 백마보다 동양인이 취향이라며! 이 빵쯔자식아!’
‘대박, 대박! 엘리사 깝놀이야! 우리 제이 오빠… 아이린 언니 좋아하는 거 아니었나? 아니면, 교수님이 오빠를 일방적으로 좋아하시는 건가?’
최근 들어 생긴 라라 교수의 변화를 평소부터 알고 있었던 아이린.
그녀가 지도교수를도와주기 위해 손을 썼다.
“교수님. 제이 오빠에게 미열이 있나보죠? 얼굴이 붉어졌어요.”
“…자네 말이 맞아.”
실수를 깨달은 라라 마르티넥이 황급히 표정을 굳혔다.
“서윤 씨도 그러네요.
김제이에 대해서라면 어떤 면에서 김하리보다 더 소상히 알고 있는 반선우.
그가 육서윤의 이마를 조심스럽게 짚으며 아이린을 지원사격 했다.
“37.9도. 큰 이상이 벌어졌다고 확신할 정도는 아닙니다.”
“…뭐야. 그럼 그렇지.”
“김하리 선배님. 무슨 말씀이세요?”
“아냐. 선우야 나와 봐, 내가 볼게.”
김하리가 라라와 선우 옆으로 가, 두 사람의 마력 흐름을 체크하려 했다.
“으음…!”
그때 마침, 육서윤이 깨어났다.
미열이 오른 얼굴이.
완전히 새빨개진 상태로.
“육 주임. 정신이 들어?”
“…교수님.”
“응. 자네가 더 눈을 뜨지 않으면 강제로 깨우려고 하던 참이었어. 몸은 괜찮니?”
육서윤이 화려한 금발 염색 머리를 넘기며 간신히 고개를끄덕였다.
“…네.”
“다행이야. 그리고 자네 말이 맞았어. 신이 현상은 실존했어.”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희도 경험했거든요. 신비한 환상.”
라라와 아이린이 육서윤 또한 겪었을 것이라 추정되는 ‘좋은 꿈’. 즉, 에서 벌어진 신이 현상에 대해 설명했다.
‘엄마가 도와주셨나보구나.’
총명한 육서윤의 생각이 맞았다.
이건 차수진이 그들을 배려해 준 환상이었다. 오늘의 만남을 위해 그녀의 딸을 도와준 친구들을 위한, 작은 선물.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서윤 씨는 어떤 꿈을 꾸셨는지 여쭤볼 수 있을까요? 참, 저는 부모님 꿈이었어요.”
아이린이 햇살 같이 투명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아이린 씨는 정말 천사처럼 예쁘네.’
육서윤은 순간적으로, 그녀의 맑고 선한 이미지가 꿈에서 봤던 수호천사 차수진과 비견될 만 하다고 생각했다.
“저는… 두 개의 꿈을 꿨어요.”
“두 개나요?”
“네. 하나는 엄마 꿈.”
하얀 날개를 달고 있었던 엄마의 모습을 떠올린 육서윤. 그녀의 차가운 얼굴에 따스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리구요?”
“…그, 그리고…….”
육서윤의 얼굴에 당황이 스쳤다.
엄마의 품에서 잠이 든 뒤, 그녀는 꿈속에서 또 다른 꿈을 꿨다.
차수진이 크로셀의 권능으로, 아스모데우스의 내균열 던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었는지 돌직구로 보여준 것이다.
‘엄마……, 나 어쩜 좋아……!’
그녀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어졌다.
제이 오빠와 불처럼 뜨거운 사랑을 나눴던 장면에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
―흐으응… 너무, 깊어어….
―오빠아. 이러다, 임신하겠어….
―…오빠 예쁜 애기, 낳을… 게.
―응! 으응! 난, 오빠! 여보야, 꺼니까! 살게! 하응! 야, 약속! 지킬… 게!
―나는… 오빠만 사랑할 거야. 무슨 일 있어도…. 난 오빠 꺼고. 여보는, 내 꺼니까.
행복함과 설렘과 벅참과 흥분과.
그런 감정들을 모두 덮을 정도로 크게 느끼고 있는 부끄러움에.
“~~~~~~~~~~~~~~~~~~~!”
육서윤은 질식할 것만 같았다.
“서윤 씨. 괜찮아요? 무슨 꿈을 꿨길래 그러세요. 두 번째 꿈은 심한 악몽이었나요?”
악몽?
처음에는 지독한 악몽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아니요.”
육서윤이 몸을 일으킨 뒤.
자신의 옆에서 잠들어 있는 김제이를 힐끗 보며 대답했다.
“너무 많이… 달콤한… 꿈이었어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우러나온 진심이었다.
지금 그녀는 자신의 엄마. 그리고 과거의 자신에게 크게 감사하고 있었다.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그럴 거니까.
자신은 기억하지도 못하는 사이.
그 소중한 약속을 지키게 해줬으니까.
‘우리… 오빠아….”
억지로 정인情人에게서 눈을 뗀 육서윤이 라라에게 김제이의 상태를 물으려 할 때였다.
“…헐?”
“……어어?”
“…….”
아이웨이와 엘리사의 단발마가 던전 보스룸에 울렸다.
왠지 묘하게 조용해진 분위기에, 육서윤이 사람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 응시했다.
“!”
수면 발기 때문인 걸까.
김제이의 전투복 위로 거대한 음경이 대형 텐트를 치며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
“…….”
“…….”
“…….”
“…….”
“…….”
다섯 여자와 아름다운 하프엘프의 말수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꿀꺽
누구 것인지 모를 목 넘김 소리가 침묵을 갈랐다.
“아… 아놔, 이 자식!”
고요를 견디지 못한 아이웨이가 개드립을 치며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하려 했다.
“하여간 못 말려. 크다고 자랑하나, 17cm면 다야? 그렇게 건강을 자랑하고 싶으면 여친이라도 빨리 만들던가!”
“완전 발기 시 19.1cm야, 아이웨이 군.”
은발 머리의 초미녀 의학 박사 라라 마르티넥이 팩트를 정정해주었다.
“……?”
“……?”
“……?”
‘…잘 못 들었습니다?’ 하는 얼굴로.
던전 안 모든 이의 이목이 그녀에게 쏠렸다.
그러나 라라는 진지했다.
“제이와 친한 자네들도 알고 있겠지. 불완전 각성자인 제이의고유능력이, 성적인 부분과 관련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네에, 뭐.”
김제이는 불완전 추출 권능 이 lv.2로 상시 발동되어, 주변인에게 위화감을 줄 것을 염려했다.
그래서 사전에 떡밥을 던져두었다.
불완전각성 탓에자기도 알지 못하는 고유능력이, 그런 쪽일 수도 있다고.
그리고 이시카와 교수의 추천에 따라, 라라에게 도움을 받기로 했다고.
“첫 진찰 때 이미 남성기의 성장이 이루어져서 18.0cm였지. 아이웨이 자네가 언급한 17cm대를 한참 초과한 상태였어. 그리고 현재는 19.1cm. 각성을 마쳐 신체능력이 증가해도 남성기는 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려해보면, 제이의 미확인 고유능력은 특수한 것임이 분명해.”
라라가 외투를 벗어 김제이의 하부를 가려주며 담당의로서의 소견을 밝혔다.
“아이린과 신연의 3학년들에게 들었어. 이번 학기 들어 여학생도들 사이에 제이의 인기가 눈에 보일 정도로 많아졌다고. 제이는 워낙 성실해서 그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는 듯하지만, 그래서 더욱 자네들 도움이 필요해.”
그녀가 미아와 낸시를 제외한, 김제이의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이들의 면면을 보며 당부의 말을 남겼다.
“제이는 잠재적 환자야.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변 여성들에게 성적인 영향력을 행사해버릴지도 모르는. 그러니, 자네들이 제이가 불안해하거나 불편해하지 않도록 받쳐주었으면 해.”
라라 마르티넥의 아름다운 얼굴이 살짝 내려갔다.
의사로서만이 아닌, 그의 여자로서 부탁하고 싶은 바를 조금의 말 돌림 없이 솔직하게 드러낸 것이다.
그녀는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라라는 발키리의 신혈 때문에, 의 영향을 조금도 받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를 매료시키는 아주 자연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니. 믿어지지가 않아.’
그러니 아이린이나 신연 두 여자의 증언을 듣고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에게 많이 미안했다.
‘아가야. 네 여자는… 너무 둔해.’
다락방에 고개만 빼꼼 숨기고 아기 토끼처럼 비밀스런 고민을 홀로 이어가고 있는듯한 그에게.
함께 놀아주거나 공감을 해주기는커녕,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는 듯해서.
“오빠를 진심으로 걱정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꼭 그럴게요.”
“염려 놓으세요~! 뭔 일 있겠어요?”
“제가 형 곁에 늘 있을게요.”
하리, 아이웨이, 선우 등 김제이의 친우들이 흔쾌히 그러겠노라 다짐했다.
‘좋은 아이들이야.’
라라가 흐뭇한 얼굴 ―김제이와 아이린 외의 남들이 보기엔 똑같은 멍 때리는 표정이지만―을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용기를 낸 자신이 대견했던 것이다.
‘잘했어, 라라. 이렇게 하나씩 시작하는 거야. 내 아가를 위해서라도. 그래야 더 행복해질 수 있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진심은.
곧이곧대로 닿지 않았다.
청자들의 머릿속에 남은 것은 오직 하나.
‘…1, 19.1cm? 저런게… 내 안에 드, 들어왔었던 거야? …어뜨케에……. 엄마아… 나 어뜩하면 좋아아……!’
15cm남짓한 자신의 휴대전화 길이와 방금 들은 김제이의 성기 크기를 비교하며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심지어 눈물까지 글썽이는 육서윤.
‘19.1cm? 우리 모지리 진짜… 많이 컸구나. …이야아 남자다, 야.’
어릴 때 알던 우리 오빠가 어느새 늠름한 수컷이 된 듯한 느낌에 왠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을 받은 김하리.
‘안 대 안 대! 그런 거 절대안 대’
떡줄 사람은 전혀. 조금도 생각 안 하는데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도리도리 고개를 돌리는 엘리사 등.
“…….”
“…….”
“…….”
“…….”
“…….”
“…….”
다섯 여자와 아름다운 하프엘프가 각양각색의 묘한 분위기를 풍기며 힐끔힐끔 김제이를 바라보는 이 분위기에.
‘썅… 어색해서 도무지 견디지를 못하겠네. 김제이 19쎈치 말자지 새끼 언제 일어나는 거야! 확 걷어 차버릴라.’
꿔다놓은 보릿자루가 되어버린 아이웨이는, 차라리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안나야! 지금 자면 또 주냐?!’
환상 속에서라면, 그가 오매불망 짝사랑하는 안나 살라예바와 또 좋은 시간이라도 보낼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풀발기한 거 보니까 아무래도 수상한데. 김제이 이 새끼도 환상 속에서 나처럼 떡치는 거 아니야?’
그래. 혹시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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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이번 화부터 94화까지 전개 될 외전 에피소드는 스킵하셔도 됩니다. 95화로 점프하셔도 위화감이 없으실 겁니다.
*해당 이야기는 외전이고 본편과 분위기가 다르며, 다량의 고구마가 사이다 없이 들어가 있습니다. 배경은 주인공 인생에서 가장 암울했던 중1 시절이어서 그 탓에 전개 상 발암 요소가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가벼운 떡타지 분위기와 외전 분위기가 다르니, 읽다가 나랑 안 맞는다 싶으시면 95화로 점프하시기를 추천합니다.
*또한 본 에피소드는 ‘성인’인 남성과 ‘성인’인 여성이 일종의 역할 놀이를 위해 잠시 기억을 지우고 의태하였을 뿐, 본문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본래 성인임을 인지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