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8화 〉78. (외전) 먼 바다에 있는 낙원(1) (78/145)



〈 78화 〉78. (외전) 먼 바다에 있는 낙원(1)

*공지: 이번 화부터 94화까지 전개 될 외전 <먼 바다에 있는 낙원> 에피소드는 스킵하셔도 됩니다. 95화로 점프하셔도 위화감이 없으실 겁니다.

*해당 이야기는 외전이고 본편과 분위기가 다르며, 다량의 고구마가 사이다 없이 들어가 있습니다. 배경은 주인공 인생에서 가장 암울했던 중1 시절이어서 그 탓에 전개  발암 요소가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가벼운 떡타지 분위기와 외전 분위기가 다르니, 읽다가 나랑  맞는다 싶으시면 95화로 점프하시기를 추천합니다.

*또한  에피소드는 ‘성인’인 남성과 ‘성인’인 여성이 일종의 역할 놀이를 위해 잠시 기억을 지우고 의태하였을 뿐, 본문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은 본래 성인임을 인지해주시기 바랍니다.

*********************



200X년 7월 31일오키나와.

날씨는… 아주 맑음!

“와아!”

작은 모래가 섞인 바닷바람이 볼을 스친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드디어 외국에 왔음을 알았다. 공기가 엄청 달랐다.

“…진짜 온 거 맞지?”
“맞아, 임마! 왜 쫄아 있어. 쌤~! 제이 쫄았대요.”
“야아! 하지마아! 쌤은 바쁘시잖아.”
“하하하! 김제이 바아보~. 해외여행 처음이라 쫄았대요, 쫄았대요.”

멍청이 같은 놈.

이놈은 신윤수.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자곡제일중학교까지  같은 반인 친구다.
아주 얄미운 녀석이지. 아마 우리 1학년 3반 애들 중에 제일 그럴 거다.

“윤수야. 해외여행 미리 경험한 게 자랑은 아니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수 있는  해외여행이야.”

해외 탐방 인솔 교사이신 담임쌤이 내 편을 들어주셨다. 하지만  그러시듯, 말을 쪼금… 막 하셨다.

“킥킥! 그럼 김제이는 돈 없어서 못  거네? 엄마 아빠가 없어서 그래.”
“애미 리스~ 애비 리스~! 부.럽.다. 킹.제.이!”
“킹.자.지.제.이!”
“킹.자.지.제.이!”
“조용! 조용들 해! 누가 남중 새끼들 아니랄까봐 입만 열면 꼬추 꼬추야!”

애들이 실실 웃으며 날 놀렸고, 쌤은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셨다.
나는 원장 아버지가 아름다울가게에서 사다주신 야구 모자를 푹 눌러썼다.

‘공부도  하는 주제에…. 야동이랑꼬추 크기에만 관심 많은 멍청이들.’

쟤들이 틈만 나면 나를 놀리는 이유는 별 게 아니다. 내가 부러워서 그런다.
나는 우리  1등이고, 1학년 1학기 때 전교 3등을 했다.
다른 애들처럼 학원 과외도 안 다니고 혼자 공부했는데도 이 정도 성적이라 이거야.

‘부러워서 저래. …그런 거야.’

입술을 삐죽이고 있어서 그런가.
133cm인 나보다 훨씬 큰, 165cm인 윤수가 내 머리를 꾹꾹 눌렀다.

“김제이, 자지만 큰 난쟁이 새끼야. 꼽냐? 우리가  놀렸다고 꼬와?”
“…꼽다 씨발놈아.”
“개새끼가 걔기네. 너 죽을래?”
“쳐! 쳐 봐 능지처참한 새끼야!”
“……?”

윤수의 움직임이 멈췄다.
‘능지’는 지능의 반대말인  알겠는데, 능지처참이 뭔 뜻인지 모르니까 이해를 못하는 거 같다.
아마 쟤는 ‘능지’가 ‘처참’하다는 내 고차원적인 농담을 이해도 못하고 있는 것일  분명하다.

‘내가 이겼어.’

나는 승리자처럼 웃었다.

“…김제이  거지 고아 새끼가!”

윤수가 큼지막한 주먹으로  옆구리를 팍! 쳤다. 물론, 쌤이 보지 못하실각도로.

너무 아파서… 비명도 나오지않았다.

“한 주먹도  되는 게 맨날 걔겨.”
“조, 좆 까….”
“병신. 깡만 쎄면 뭐해? 키도 좆만한게. …조용히 짜져 있어, 최진현이 이번 탐방 때 너 완전 벼르고 있으니까.”

신윤수가 손바닥으로 내 머리를 퍽 소리 나게 치고 다른 애들 곁으로 갔다.
아마 일진 애들한테 간  거다.
나처럼 시시한 균열 고아 출신 학생은  명도 안 섞여 있는, 최진현이나 신윤수처럼 ‘잘 나가는 집’ 애들이 있는 곳으로.

“셔틀 왔다! 얘들아, 모두 타. 숙소에가서 짐부터 풀어야지!”
“네에!”
“쌤, 뭐 나와요?”
“쌤이 무당이냐. 차에나 빨리 타.”

배낭을 고쳐 메고, 쪽팔리게도 빨개졌을 게 분명한 눈을 닦았다.
버스인지 봉고차인지 모를 조그마한 셔틀에 앉아서 벨트를 매자마자, 차가 출발했다.

―부우우우웅

창밖으로 보이는 낯선 오키나와 풍경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윤수한테 맞은 옆구리랑 애들한테 놀림 받은 쓰라린 가슴이 콕콕거렸다.

‘괜히 왔어.’

하리와 원장 아버지가보고 싶었다.
벌써부터 희망원 쌤들이랑 형 누나들이 그리웠다.

아무리 담임 쌤이 좋은 기회라고 유혹했어도. 교육청에서 돈 다 내주는 특별 탐방 프로그램이라고 꼬셨어도, 절대 오면  됐다.

얄미운 신윤수를 빼면, 나랑친한 애들은 단 한 명도 오질 않았으니까!

‘…맞아. 내가 여길  온다고 했지? 분명히 안 간다고 말씀드렸었는데.’

진짜 이상한 일이다.

1학기 종업식 때 마지막으로  간다고  잘라 말씀드렸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인천공항이라니.

 분명히 오늘, 시민센터에서 하리랑 같이 녀석이 좋아하는 만화영화를 봐주기로 약속했었는데….

‘꼭 귀신에 홀린 것 같네.’

 신기한 일이라 생각했다.
셔틀 버스 안을 둘러보니, 뭔가가 쪼끔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야, 씨발 저거 봐! 쟤 젖탱이쩐다.”
“크크크. 짜면 모유 잘 나올 듯?”
“일본년들이라 그런지 한국년들이랑 생긴  초큼 다르네. 오우야~ 화끈한 누나들 많은데. 기모찌이?”
“기모찌이! 와타시니 칭포 구다사이!”
“칭포가 뭔데  씹덕아! 큭큭큭!”

다른 애들은 발정기의 짐승들처럼 창가에 붙어서 쉴 새 없이 야한 얘기만 하고 있었으니까.

이런 저능아들이랑 3박 4일을 보내야 한다니 정말 최악이다.

‘어떻게 머릿속에 저런 것밖에 안 들어있을 수가 있지? 내가 2차 성징이 느리기 때문인가. 이해가 안 간다.’

나는 1학기 가정 시간에 배운 ‘2차 성징’이라는 단어를 아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내가 자랑스러웠다.

‘난 쟤들이랑 달라. 나는 여자 치마 속에뭐가 들었는지에만 관심 많은 머저리가 아냐. 나는 우등생 김제이다.’

전교에서 가장 작은 김제이는 중1이면서 키가 133cm 밖에  되지만, 머저리들보다 우월해.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풀린다.

아까보다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오키나와 국제거리를 구경했다.

‘와,근데 저 누나는 저게 바지야 팬티야? 저런 옷을 입고 돌아―’

…나, 나는 머저리가 아니다!

**

세소코 섬.

우리 자곡제일남자중학교 탐방 팀의 숙소가 있는 곳이다.

담임 쌤이 나눠주신 프린트에는 ‘인구 600명도 되지 않는 지름 8km의 작은 섬. 아름다운 해변이 있고 교통이 편리한 오키나와의 대표 관광지’라고 적혀 있다.

“어서오세요いらっしゃいませ!”

우리는 료칸이라 불리는 일본식 전통 여관에 짐을 풀고, 점심을 먹은  현관 앞에 집합했다.

오후 첫 번째 일정인 탐방 대상 학교에 가기 위해서였다.

“얘들아, 모여 봐.”

승차 전, 담임 쌤이 주의를 주셨다.

“지금부터 세소코 여중을 방문한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여자중학교. 그것도 외국 학교를 간다는 말에 애들이 미친 듯이 좋아했다.
이런 어린애 같은 자식들.

“버스에서 내려서부터는 절대 장난치지 마. 쌤이 말했지? 일본 사람들, 예의를 아주 중시해. 앞에서는 웃지만 뒤에서 너희들 잔뜩 욕할 수도 있어. 너희들은 우리 자곡제일중의 얼굴이야. 알겠냐?”
“네에~!”

나를 뺀 14명의 머저리들이 전혀 못 알아들은 얼굴로 대답했다.
버스에서 나누는 대화만 봐도, 내 생각이 사실이라는    있다.

“일본 여중생~! 카와이이데수네~!”
“일본 애들이 그렇게 허벌이라던데? 삼박사일이면 어떻게 안 되나.”
“일본 애들만 허벌이냐. 한국 년들도 똑같애. 은명중 박수지처럼 초딩 때부터 벌리고 다니는 애들 존나 많아.”
“진현아 너도 먹어봤냐?”
“당연하지. 내가 걔로 아다 뗐는데.”

15명 중 대부분이 일진이라 그런가.
역시나 저질스런 대화들 뿐.

‘머저리들.’

15명 중 짝이 없는 사람은 나 혼자.
나는 탐방 일정이 적힌 유인물을 살펴보며 헛소리들을  듣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도착했다, 한 명씩 천천히 내려.”

일본 학교라고 해봐야 별다를 건 없었다.
오히려 건물이 많이 낡아 보이고, 돌담도 옛날 시골 학교 느낌?

“존나 깡촌이네. 호박들만 있겠구만.”
“야 씨발! 저기 봐봐. 사마귀도 있어.”
“간판 보소. 귀신 나오는 거 아냐?”

우리 자곡제일중은 아시아 최고의 도시인 서울에 있다. 그것도 강남구.
더구나 사립이라 그런지 시골 공립학교인 세소코 여중보다 시설이 좋다.
고아인 나야 희망원이 자곡동에 있다 보니 얼떨결에 우리 학교를 다니지만, 강남구에서 나고 자란 반 애들에게 세소코 여중 정도가 눈에 찰리 없었다.

하지만 그딴 게 뭐가 중요할까.

여자. 그리고 게임.

머릿속에 오로지 이 두 가지만 가득 차 있는 머저리들의 기분은.

세일러복을 입은 열다섯 여학생들의 등장에 삽시간에 풀려버렸다.

“안녕하세요, 자곡중 여러분!”
“만나서 반가워 한국에서 온 친구들!”

한국 여자애들이랑 뭔가 쫌 다른, 구김  점 없이 해맑게 웃는 여학생들에게서 상큼한 여름 향기가 났다.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일진 애들이 멋있는 척을 하며 악수를 청했다.

“안녕! 난 진이라고 해.”
“난 윤. 넌 이름이 뭐야?”

진, 윤은 지랄…. 한류 아이돌이세요?

“잠깐 학생들. 이쪽을 봐다오.”

세소코 여중  인솔자이신 50대 남자 선생님께서 잔뜩 달아오른 분위기를 진정시키셨다.

“먼저 교실로 가서 시청각 자료를 보고, 각자 짝을 지어서 자유롭게 인근을 탐방하도록 하자. 인사는 그때. 모두 알겠죠?”
“하잇!”
“하잇!”

남자애들이 부끄러움도 모르고 어설픈 일본어로 대답해댔다.
<만물의 소리>가 있는데도 굳이 저런 짓을 한다는 건, 여자애들한테 잘 보이고 싶어 환장했다는 거지.

‘내가 다 창피하니까 까불지  마!’

놈들의 오버는 세소코 여중과 오키나와의 역사과 관련된 시청각 자료를 보는 와중에도 계속 됐다.

“오오~ 스고이데스네!”
“일본은 참 아름다운 나라 같아. 난 과거의 희극을 털어버리고 이제부터라도 한일 관계가 더 좋아졌으면 해.”
“SS급 던전 때문에 미군헌터부대가 여기 두둔해있구나. 정말 대단한 걸?”

이… 바보들아…!

‘희극이 아니라 비극이겠지. 두둔이 아니라 주둔! …그리고 오키나와 사람들은 미군헌터부대를 싫어하니까  말은 꺼내지 말라고 쌤이 몇 번이나 말씀해주셨잖아.’

콧방귀를 뀌며 시청각 자료에 집중했다.
한국에 돌아가고 나면 방학 중에 탐방보고서를 써야해야 했으니, 집중해서 보는 편이 좋았으니까.

“자자, 모두 잘 봤지? 오키나와와 세소코의 역사는 여기까지.”

짝짝, 박수를 친 일본 학교 쌤이 우리를 둘러보시며 빙그레 웃으셨다.

“좋아. 그럼 이제부터 짝을 지어볼까? 3박 4일 간 함께 할 버디를 만들어 보는 거야. 어때, 재미있겠지?”
“네에에에에!”
“하잇! 아리가또고마이스!”

반 놈들이 충성 혈서라도 쓸 것처럼 무지 좋아했고, 세소코 여중 애들은 쑥스러워하며 책상만 바라봤다.

‘…칫. 결국 이런 시간이 왔구나. 여자들은 저 머저리들만좋아하겠지. 봄 축제 때랑 하나도 다를 게 없을 거야.’

벌써부터 질투가 났다.

여자애들은 모두 바보다.

키 크고 잘생기고 웃긴 남자면 만사가 장땡이니까.

무지 열 받지만, 나는 저 세 가지 사항  하나도 해당이 안 된다.

중1인데도 키는 초등학교 3학년인 하리랑 똑같은 133cm. 잘생겼단 말보단 ‘귀엽다’는 말을 자주 듣는 애 같은 얼굴. 그리고 공부벌레 노잼 성격.

속칭 일진이라고 불리는 인싸 애들과 나는차원이 달랐다.

‘…키… 대체 언제 크는 거야…….’

괴로운 내 마음과상관없이.

<버디 찾기>는 빠르게 진행 됐다.

“자, 남학생들은 모두 복도에나와서 등을 돌리고 서세요. 그리고 우리 세소코 여학생들은 마음에 드는 남학생 뒤에 가서 서는 거야.  알겠지?”
“하잇! 와카리마씨따!”
“하하, 이거 쑥쓰러운데?”
“미유키, 나 윤이야. 이따 보자!”

운명의 시간이 왔다.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은 채, 나보다 평균 2~30cm는 더 큰 친구들 사이에 섰다.

‘어차피 나는 진현이나 윤수 버디 못 된 애랑 되겠지. 서로 관심도 없는데 억지로….’

소라게처럼 모자로 얼굴을 푹 가리며 선택의 시간이 끝나길 기다렸다.

“……에에… 정말?”
“…엉?”

그런데, 쌤들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헐. 땅꼬마 킹제이 뭐야.”
“…엘라까지. 이거 재밌네?”
“씨발… 미유키.”

호기심을 못 이긴 걸까. ‘돌아봐도 좋아’ 신호가 떨어지기도 전에 뒤를 돌아본 아이들의 한숨 소리에.

‘왜들 저래.’

천천히 등을 돌렸다.

“…….”

그리고 그곳에는.

“…….”
“…….”
“…….”

귀여운 세일러복을입은.
열다섯 명 여학생  무려  명이.
얼굴을 발갛게 물들인 채.
나에게 수줍은 미소를 보내고 있었다.

[▶애욕의 화신 lv.2> 상시 발동 중]

눈에 먼지가 들어간 듯, 정체 모를 글자들이 아주 찰나  보였다 사라졌다.

‘뭐야.’

잘못 봤나 싶어 눈을 깜박여보았다.
번개처럼 나타났다 지나간 글자들과 달리, 내 앞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여학생들의 모습은 변함없었다.

“저, 저기…. …안녕.”
“니가 김 군이니? 나는 타이라 엘라. 만나서 반가워.”
“나는 미유키야. 3학년이고, 수영부!”
“안녕! 3박 4일  잘 부탁해?”
“너 진짜 너무 귀엽다. 몇 살이야?”

나보다 평균 20cm는 큰 열 명의 여자애들에게 둘러싸인 채.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꿈인가?! 이건 꿈인가?!’


**


열 명이나 되는 애들이 나를 선택한 탓에, 내 버디는 결국 제비뽑기를 통해 가려졌다.

미야기 미유키 宮城 みゆき.

세소코 여중 3학년생이며, 나이는 생일이 지난 15살로 나보다 3살 연상.
수영부라서 그런지 유독 많이 그을린 피부가 무척이나 예쁜 누나였다.

“와아, 당첨이다! 제이야,  부탁해?”
“네, 누나.”
“누나가 뭐야. 우리 그냥 친구 하자.”
“응, 미유키. …아니지, 미야기.”

‘일본 사람들은 친해지기 전에 성을 불러야 한다’는 걸 떠올리곤 그렇게 말했다.
미야기 미유키가 모자에 덮인 내 머리를 상냥하게 쓰다듬었다.

“미유키로 괜찮아. 우리 이제부터 많이 친해질 거잖아. 그치?”
“…응 미유키.”
“아 어떡해! 너무 귀여워!”
“!”

미유키가 나를 확 끌어안았다.
서른 명의 사람들이 우리를 봤다.
나는 당황해서 마구 허우적거렸지만, 미유키는 남들 시선이 아무렇지도 않은지 내 볼을 마구 문질렀다.

“보들보들해! 아기 같아! 어쩜 이렇게 귀엽지? 제이야. 너 여자 친구 있니?”
“미, 미유키! 잠깐만!”
“…에에에에…?!”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미유키가 일본 사람 특유의 과장 섞인 소리를 지르며 무릎을 폈다.

“아하하! 죄송해요, 선생님. 제이가 너무 귀여워서. …마, 막내 동생… 같잖아요?”
“그래,  군은 유독 작고 귀엽지. 나는 처음에 소학생인 줄 알았지 뭐야. 이렇게 어려보이고 귀여우니까 10명이나 되는 우리 학생들이 부담 없이 고른 거 같아. 김 군, 인기가 아주 많은데?”
“…별루요.”

남자 일본 쌤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고, 담임 쌤이 공지를 내렸다.

“자! 지금부터 2시간 동안 각자 학교와 인근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오키나와 현지를 탐방한다. 사진도 반드시 찍고? 교육청에 낼 탐방 보고서에 사진이  들어가야 되거든.”
“네에! 많이 찍을 게요!”
“5시정각까지 정문 앞으로 와야 한다. 늦으면 떼놓고 갈 거야.”

우리 반 애들과 그들의 버디가 삼삼오오 소그룹을 만들어 복도를 지났다.

“좆만한 새끼야, 너 나중에 보자.”
“킹제이.  주제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미유키한테 이상한  하지 마라.”

일진 짱이자 1학년 통 최진현. 그리고 그의 베프인 신윤수가  어깨를  치고 가며 경고했다.
쟤들은 아까, 지들이 찍은 타이라 엘라와 미유키가 버디로 날 택한 것에 굉장히 빡친 모양이었다.

‘걔들 둘이 제일… 예쁘니까.’

잠시 선생님과 얘기를 하다가 돌아온 미유키.
그녀가 시무룩해진 내 얼굴을 보며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제이야,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혹시 쟤들이 너 괴롭혔니?”

여기서 그렇다고  순 없다.
선생님들은 학폭을 해결  해준다.
그런데 어설프게 일렀다간?
나중에 더 크게 당할 뿐.

‘그리고 윤수는…  정도는 아니야.’

신윤수는 거칠고 재수 없지만 그래도 간신히 친구라도 부를 정돈 되는 애다.
나는 윤수를 나쁜 애로 만들기 싫었다. 걔는 걔대로 나를 도와주고 있다.

“…아니. 별  없어.”
“그랬어?”
“응.”
“정말?”

미유키가 무릎을 굽혔다.
하얀 바탕에 청색의 줄이 세련되게 들어간 예쁜 세일러복 상의 사이로, 짙은 남색의 뭔가가 보였다.

‘안 돼, 속옷 보이잖아!’

나는 미유키의 가슴골에서 재빨리 눈을 뗐다.

“다, 당연히 아무 일 없지!”
“정말이지?”
“그럼.”

미유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학생들과 쌤들이 모두 지나간  빈 세소코 여중의 3층 복도에는.
나와 그녀 단 둘 뿐이었다.

‘…이쁘다.’

둘만 남아서일까. 새삼 미야기 미유키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갈색의 피부는 무척 결이 좋아보였고, 애교스런 얼굴은 언젠가 학교친구들이 보여준 하이틴 모델들 같았다.
중3이라 그런지 키도 160cm 정도로 커서, 나랑 동갑인 타이라 엘라라는 애를 빼면 미유키가 단연코 제일 예뻤다.

“제이야.”
“…응.”
“누나가  기운 나게 해줄까?”
“어떻게?”

미유키가 수줍게 눈을 깔았다가, 다시 내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이거 비밀이다?  이거 소문 퍼지면 창피해서 학교 못 다녀. 알겠지? 우리 둘만의 약속이야.”
“응. 절대 말  해.”

나는 누나가 뭘 하려고 그러지, 생각해ㅆ―.

‘아……!’


미유키가, 치마를 들어올렸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하하하, 바아보.”

실눈을 떴다.

미유키의 예쁜 허벅지가 보였다.

허벅지가 모이는 사타구니 사이에는 팬티가 아니라, 짙은 남색의 뭔가가 있었다.

“수영복인데에~ 수영복인데에~!”

미유키가 짧디 짧은 치마를 내렸다.

‘뭐야! 이게 뭐냐구!’

나는 너무 놀라고, 또 한편으로는… 뭔가 가슴이 막… 울렁울렁한  같은 정말 이상한 느낌에,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으, 우리 제이 너무 귀엽다.”

미유키가 내 손을 잡았다.

“이제 기운 났지?”

고개를마구 끄덕였다.
아니라고 하면 또 치마를 올릴까봐.

“그럼 가자. 내가 우리 학교랑 동네, 전부 다 알려줄게.”

나는 손에서 땀이 배어 나오는  아닐까 걱정하면서도, 그녀의 손을 놓지 않았다.

**

나와 친구들의 생각은 틀렸다.
세소코 여중은 재미있는 곳이었다.
하나하나 뜯어보니까 우리 학교와 다른 점이 많았던 거다.

대표적으로 야외 수영장이 그랬다.

“와아, 수영장이네.”
“니네 학교는 수영장 없어?”
“응. 우리 학교만 그런 게 아니라, 엄청 비싼 사립 아니면 거의 없을 걸.”
“신기하네.”

첨벙첨벙. 미유키가 맨발로 야외수영장 물을 찼다.

“한국은 우리 일본보다 더 부자 나라인데 왜 학교 수영장이 없을까.”
“바다가 멀어서 그런가?”
“아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제이 너 똑똑하다. 대단해!”
“…아니야.”
“제이야.”

미유키가 귀여운 발로 물장구를 치며 나를 올려다봤다.

“너도 이리 와. 같이 하자.”

신발을 벗었다.
덥기도 하고 재밌어 보이기도 해서, 나는그녀와 함께 물장구를 쳤다.

‘착하고 귀여운 누나인 것 같아.’

미유키는 배려심도 많고 상냥했다.
우리 학교 3학년 선배들은 거칠거나 혹은 고등학교 입시에 쩌들어 있거나 둘 중 하나인데.
미야기 미유키를비롯한 세소코 여중 누나들은 모두 표정이 밝아보였다.

“미유키는 고등학교에 가게 되면 세소코 섬 밖으로 가는 거야?”
“응. 그러려고.”

그녀가 물에 살짝 젖은 교복 치마를 잡아 올리며 대답했다.
나는 건강하게  그녀의 허벅지에서 눈을 떼고 애꿎은 수영장 물만 발로 차며 얘기를 들었다.

“나도 실은 세소코 여고에 진학하고 싶은데, 모델 일을 본격적으로 하려면 어쩔 수 없어. 소속사랑 가까운 도시에 나가야지.”
“모델 일? 미유키는 모델이야?”
“응.”

대박. 모델처럼 예쁘다고 생각하긴 했었는데 진짜로 모델이었네.

“어떤 모델? 교복? 패션 잡지?”

미유키가 씨익 웃었다.


“그. 라. 비. 아♡”

깜짝 놀랐다.
야한 거에 목숨 건 반 애들을 때문에 나도 그라비아가 뭔지 알고 있다.
수영복만 입고 찍는 그런 거.

“…그라비아, 그거 야한 거 아니야?”
“쪼끔?”
“그런 걸… 주, 중학생이 해도 돼?”
“그러엄. 소학생 모델도 있는걸. 성인이나 고등학생  가장 많이 데뷔하지만, 중학생도 꽤 있어.”

미유키가 아주 자랑스럽다는 투로얘기했다
애욕의 화신 l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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