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1화 〉81. (외전) 먼 바다에 있는 낙원(4) (81/145)



〈 81화 〉81. (외전) 먼 바다에 있는 낙원(4)

타이라 엘라가 무표정한 얼굴로 계단을 오르며 나를 돌아봤다.

“기대할게.”
“야! 너 이리 안 와?! 타이라엘라! 니네 그 알량한 집안 믿고 그러니?!”

나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은 미유키 누나의 허리를 꼭 끌어안고.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 계단을 올라가는 타이라 엘라를 보며 생각했다.

‘근데… 쟤 버디가분명…….’

이런 젠장….

벌써부터 오늘 밤이 무서워졌다.


**

깊은 밤의 화장실에서.

―퍽! 퍽!

발길질이 쉬지 않고 몰아닥쳤다.

몸을 둥글게 말아 머리와 급소를 보호했다. 하지만 그래도 너무 아팠다.

이 순간만큼은 갑자기 돌아가신 담임 쌤의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돌아가셨으면 쌤이 계셨을 거고, 이 썅놈이 나를 이렇게 때리지도 못했을 테니까.

“아까 존나 재밌었지. 응? 나 엿 먹이니까 좋았지, 개새끼야.”

―퍽! 퍽!

최진현, 나를 때리는 씨팔놈.

이놈이 타이라 엘라의 버디다.

엘라는 결국 신사에서도 나와 미유키를 따라다녔는데, 그러다 땀범벅이 되어서 그녀를 찾고 있던 최진현과 마주쳐버리고 만 것이다.

“거지! 땅꼬마! 새끼야!”
“조, 좆까 씨, 씨발놈아!”
“씨발놈? …이 새끼 안 되겠네. 너 오늘은 진짜 죽어봐.”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눈앞이 깜깜해졌다.
최진현이 내 명치를 발로 걷어 차버린 것이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팔 치워. 팔  내려?!”

놈이 내 양 팔을 벌리고 “퉤!” 하고 얼굴에 침을 뱉었다.
눈물이랑 침이 섞인 물이 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쁜… 새끼……!”

실눈을 뜨며 최진현에게 욕했다.
하지만 놈은 나를 비웃었다.

“등신. 엘라랑 미유키가 너 좋다니까, 좆난쟁이 새끼인 니가 뭐 된  같냐? 병신아 꿈 깨. 어차피 더 가까워지기 힘드니까 만만한 새끼한테 붙는 거야.”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최진현은 몹시 분한지, 자신의 갈색 염색머리를 거칠게 쓸며 화를 냈다.

“아휴!이 병신새끼가 대체 뭐라고 그년들은 지랄이야?  존심 상해.”

―짜악! 짜악!

뺨이 돌아갔다.
나는 “이익!” 하고 화를 내며 최진현에게 주먹을 휘둘렀지만, 나보다 40cm도 더  놈에겐어린애 장난이었다.
더구나 최진현은 만 12세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각성 유력자다.

“그러게나 말이다, 킹제이 씹새끼!”

―파앙

신윤수가 내 엉덩이를 깠다.
그리고 최진현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놈을 달랬다.

“야, 어차피 미유키는 날 샜어. 걔 겉 보이는 것처럼 양아치도 아니고, 3학년 누나잖아. 따먹기 어려워.”
“그럼 씨발. 타이라 엘라는 쉽냐?”
“큭큭큭! 아니. 걘 오키나와 국회의원 손녀라며. 둘 다 좆망이지 뭐.”

최진현이 성난 눈으로 나를 째려봤다.

“넌 이번 탐방 끝날 때까지 화장실에서 자, 개새끼야. 담탱이도 없으니까 넌 진짜 삼박사일  좆 된 거야.”
“킹제이 망할 꼬마 새끼! 말 더럽게 들어. 진현아! 내가 책임지고 이 새끼 갈궈 놓을게. 졸릴 텐데 자라 임마.”
“에휴 씨발… 퉷!”

씹새끼가 내 옷에 침을 뱉고 우리 방을 나갔다.
신윤수가 변기 옆에 처박혀 있는 나를 향해 턱짓하고, 화장실 문을 닫았다.

―야, 니들 화장실 복도에 있는 공용 화장실 써라.
―아 왜애!
―씨발 새끼야, 닥쳐. 저거 김제이 독방이니까.
―독방이래, 큭큭! 그럼 킹쩔 수 없지.

말이야 얄밉지만, 윤수는 내가혼자 있을 수 있도록 배려해준 거다.

‘…….’

최진현이 나를 패면.
나는 걔기고.
결국엔 윤수가 막는다.

악몽 같은 중학교 1학년 1학기 동안, 벌써 수십 번은 경험한 패턴….

‘윤수가 없었으면 난…어떻게 됐을까.’

쌤들에게 학폭을 일러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최진현은 아주 대단한 집 아들이니까.

윤수네 아빠도 판사님이었지만, 최진현네 아버진 <블루울프>의 임원이다.
우리 자곡제일중/고의 재단은 그 대단한 블루울프 클랜의 소유라고 했다.

블루울프 클랜장 SSS급 헌터 최천하.

대한민국 헌터 랭킹 2위이자 세계 랭킹 10위의 거물이 블루울프의 회장이고, 그 사람이 최진현의  아빠다.

고아인 나랑… 너무 차이가 컸다.

“끄윽…!”

아픔보단 억울함에 눈물이 나오려했다. 이를 악물고 참았다.

‘나는 혼자가 아니야. 그리고 남자다.’

나에겐 하리가 있다.
원장 아버지가 계신다.
희망원 가족들이 있고.
많이 얄밉지만 신윤수도 있다.

 대 좀 맞았다고 울 수는 없다.

‘울면 지는 거다. 울면… 지는 거야.’

절대 울지않으려고 멍든 허벅지를 마구 때리면서 참았다.

“후우….”

아이들이 모두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

담임 쌤이 안 계신 탓에 아주 소란스러웠던 우리방과 옆방은 료칸 아줌마가 경고를 주자 금새 조용해졌다.

―너희들 그렇게 떠들 거면 지금 당장 나가. …중학생? 근데 어쩌라고.

―명심해. 지금 성수기라 오키나와에 빈 숙소 하나도 없어. 너희 우리 료칸에서 쫓겨나면 길에서 자야 돼.

이 말 몇 마디에 아가릴 닥친 것이다.

“머저리들.”

눈치도 예의도 없고, 머리에 든 거라곤 오직 여자 게임 힘자랑 세 가지.
이 얇은 다다미문 밖으로 그 커다란 소음이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한 건가.

―드르륵

다다미 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시간은 벌써 11시 반. 이미 늦었다.

나는 유나에게 꼭 전화를 해야 한다.


공중전화를 찾아 엔화를 넣고 번호를 꾹꾹 눌렀다.

‘공구공, 삼팔공구에 천… 사.’

신호음이 넘어갔다.

―[여보세요?]


플라스틱 냄새가 배긴 주황색 공중전화 수화기 안에서부터.
맑은 샘물처럼 예쁜 목소리가 들렸다.

“…안녕하세요. 저예요… 제이.”

유나는 잠시 말을 않다가, 아주 조용한 말투로 나를 나무랐다.

―[왜 이렇게 늦게 전화했어? 나 졸려서 혼났자나아.]
“죄송해요.”
―[내일부터는 더 일찍 전화할 거지?]

내일부터. 내일부터. 내일부터!
나는 꼭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부탁할게. 나는 되도록 11시 전에는 자야 하거든. 소속사 계약이 그래.]
“무슨 계약이요?”

유나가 아하하, 하고 웃었다.

―[피부 관리. 밤 11시가 넘으면 피부 노화가 빨리 온다나? 재생도 안 된다고 하고. 우리 사장님이  섬세하셔.]

그녀는 자신의 얘기를 한참동안 재잘거렸다. 졸리다고 것 치고는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여서, 나는 잘 이해가 안 가고 모르는 얘기여도 그냥 재밌게 들었다.

‘유나가 말하는 건 뭐든 재밌어.’

재밌는 얘길 해서 재밌는 게 아니었다. 그녀가 하는 말이라 재밌었다.

―[제이야.]
“네.”
―[아까미유미유한테 들은 얘긴데.]

유나가 잠시 말을 고르다가, 아주 조심스런 말투로 물었다.

―[혹시… 누가 너 괴롭히고 그러니?]
“아니요.”

나는 딱 잘라 말했다.
‘괴롭힌다’는  나보다 센 놈이 나를 핍박하는 걸 말한다. 그런데 나는 최진현 같은 일진 애들보다 우월하다.

‘그러니까 이건 싸움이야.’

나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로? 거짓말 하는  아니지? 나한테는 안 그럴 거잖아.]
“네. 좀 다툼이 있는 것뿐이에요.”
―[흐응~ 그런 거구나. 알겠어.]

유나의 빙그레 웃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했다.

―[…제이야.]
“네?”
―[그냥 불러봤어.]
“왜요.”
―[보고 싶어서.]

숨이 턱 막혀왔다.

만난 지 고작 하루 됐을 뿐인데.
오늘 낮에 만나서 친해졌는데.

그녀가 나에게 보고 싶다고 했다.

나도 실은 유나가 얼마나 보고 싶은지 모른다. 그녀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저두요.”
―[진짜?]
“네.”
―[얼만큼?]
“많이. 너무 너무 많이….”
―[하아.]

유나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달콤한 한숨소리 섞인 목소리로.

―[빨리… 내일이 왔으면.]

그렇게… 속삭였다.

**

생전 처음으로 맞는 화장실에서의 아침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큭큭!”
“크크!”

최진현과 신윤수.
두 또라이들이 아침부터 무척 기분이 좋은 듯, 내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야! 왜 화장실에서 자고 그래. 이 새끼  그런 척하면서  잘 들어.”
“그니깐. 내가 말했잖아 킹제이 은근 귀엽다고.”

등신 새끼들아. 니들이 방문을 모두 잠궈 놓았으니까 내가 방에  들어간 건 생각도 안 하냐?
특히 신윤수! 새벽에 열어준다면서 그냥 잠 들면 어떡해 머저리 자식아!

“김제이.”
“뭐.”
“야휴! 씹새끼 눈깔 파버릴라. 어제 그렇게 쳐맞고  눈 그따구로 뜰래?  씨발 한 학기를 쳐맞아도 왜 그 모양이야!”

최진현이 나를 윽박질렀다.
나는 데미지를 받지 않았다.

‘이건 싸움이야. 설령  대 맞더라도 굴복 되서는  되는 싸움.’

어젯밤 유나에게  말이 거짓말이 되지 않으려면, 나는 놈에게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해선 안 되니까.

“밥이나 먹으러 가자. 쌤이 밥 잘 먹었는지 료칸에 확인 전화를 하신다고 하셨잖아. 다나카 쌤도 걱정하시니까 제대로 먹어야지.”
“이 개새끼가 그래도 진짜!”
“그래애~ 밥이나 먹자. 좆도 맛도 없지만 언제 일식 가정식을 먹겠냐.”
“에휴… 말을 말자.”

나는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반 애들이랑 조금 떨어져서 식당으로 갔다.
나만 빼고 모두 유카타를 입은 애들이 디카로 서로를 찍어주며 요란하게 밥을 먹었다.

―찰칵 찰칵

“오우, 밥은 오늘도 이쁜데? 기지배들 존나 좋아하겠네. 씨발 맛대가리 더럽게 없는데 ‘맛있겠다~’ 이 지랄하겠지.”
“큭큭! 빨리 찍기나 해. 배고파.”

애들 말대로 밥은 생긴 엄청 이뻤지만 맛은 기대보다 한참 별로였다.
쌤 말에 따르면 여기가  고급 료칸이라고 하는데, 생선은 짜고 양도 적었고 밑반찬도 입맛에  안 맞았다.

‘밥이랑 국밖에 먹을  없다.’

된장국을 마시며 속으로 구시렁거리고 있을 때였다.

“…야이, 씨발! 저거 뭐야!”
“야! 차수진이잖아, 차수진!”
“뭐야아! 여기 수진 누나가 왜 와!”

애들이 엄청나게 소란을 떨기 시작했다. 애들만이 아니었다.

“유나 상! 유나다! 유나야!”
“와아~ 올해도 화보 찍으러 왔나보구나? 작년보다 더 예뻐졌다.”

투숙객인 일본 사람들과 료칸 직원들조차 계단 난간으로 뛰어온 것이다.

‘유나라고?!’

나는 이른 아침부터 갑자기 튀어나온 그녀의 이름에 놀라, 잔뜩 굳어버렸다.

양치도 못 했는데.
어제 입은 옷도 그대론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와아아아아! 누나 너무 예뻐요!”
“유나 상! 팬이에요!”
“우리 오키나와퀸엔터의 자랑!”

사람들의 환성 속에서, 유나가 스텝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식당 계단을 올라왔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인 유나는 오늘도 끝내주게 예뻤다.

허리까지 오는  생머리와 화장기가 거의 없는데도 반짝반짝빛나는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품이 넓은 옷임에도 풍만함을 느낄 수 있는 어른스런 몸매까지.

“여러분들 식사를 방해하게 돼서 어쩌죠? 죄송합니다. 이제 식사들 하세요.”

그녀는 오늘 이온 음료 광고에 갓 튀어나온 것 같은 하얀 원피스를 입고 베이지색 웨지 구두를 신었다.

뜨거운 여름 날씨와 무척 잘 어울리는 그 세련된 모습에 나는 부끄러워졌다.

‘…….’

희망원 쌤들이 골라준 회색의 무지 카라 셔츠와 흰색 반바지.
누가 봐도 어린애처럼 보일 게 뻔한 내 차림에 갑자기 열이 확 나버렸다.

‘차라리 유카타라도 입을 걸! 그럼 아이처럼  보였을지도 모르는데.’

―탁!

젓가락을 쟁반에 던지듯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찰칵! 찰칵찰칵!

“누나 싸인 좀 해주세요~! 팬이에요!”
“유나 상! 저도 악수  번만 할 수 있을까요? 드라마 잘 보고 있어요.”
“언니, 여기 사진 한 번만요! 치즈!”

사진 촬영과 사인 세례에 둘러싸인 유나를쳐다보지도 않고 식당을  둘러 반대편 계단으로 내려가 버렸다.

‘…짜증나.’

탐방 이튿날인 오늘은 슈리성과 국제거리에 간다. 출발까지 시간은 많았다.

‘9시에 출발이면 목욕이나 해야겠다.’

나는 애들이 모두 유나에게 정신이팔려 있을 때, 잽싸게 온천에 들렀다.
머저리들이랑 있으면 마음 편하게 목욕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촤아아악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할아버지 두어 분 정도.

“허허, 우리 꼬마 학생 고추  번 실하다. 할아버지가 등 밀어 줄까?”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손발도 크고 고추도 큰 게, 조만간 훌쩍 커서 여자들 울리겠어, 허허!”

나는 수건으로 하체를 가리고 목욕을 했다.

왜 나만 이렇게 고추가  거야, 하고 욕을 하면서.

‘키는 133cm인데 고추만 13cm인게 말이 돼? 다른 애들은 그게 커져야 그 정도라고 했다고!’

미칠  같애….

킹자지제이라고 놀림 받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었지만 너무 짜증이 났다.

게다가 내 껀 커지면 더 흉악하다.

거의 내 팔뚝 크기인 19.1cm까지 무섭도록 두껍게 커지기 때문이다.

‘아직 2차 성징이  왔는데도 이 정도면 나중에 어쩌려고! 지금도 바지가 큰데 얼마나 더 큰 바지를 입어야 돼애!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각성 유력자이자 학교 통인 최진현한테 맞아도  울지 않는 나인데.
아침에 갑자기 유나를 본 거랑 돌연변이처럼 큰 꼬츄까지  짜증나게 만들어서 기어코 눈물이 찔끔 났다.

―쏴아아아

깨끗하게 씻고, 어디 될 대로 되라는 마음으로 맨몸에 유키타를 입은 채 탈의실을 나왔다.

‘킹자지? 머저리들아. 그렇게 내 꺼가 놀리고 싶으면 놀려, 썅놈들.’

잔뜩 심통이 난 얼굴로 1층 계단을 오르던 때였다.


“목욕 했었구나. 한참 찾았네.”


반가움을 가득 담은 여자의 목소리가 고요한 료칸 지하에 울려 퍼졌다.

‘설마.’

고개를 돌리자, 하얀 원피스를 입은 유나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안녕?”

그녀가 해님처럼 환하게 웃으며 쑥스럽다는 듯이 입을 가렸다.

“제이… 보러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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