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83. (외전) 먼 바다에 있는 낙원(6)
“너 차수진이랑 무슨사이야.”
“그걸 니가 알아서 뭐하게.”
―짜악!
뺨이 돌아갔다.
입 안이 터졌는지 쇠 맛이 났다.
나는 나보다 40cm도 더 큰 놈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큭큭! 이 새끼 진짜 웃긴 놈이야. 그렇게 줘터져도 맨날 걔기네? 콩알만 한 새끼 깡다구 하나는 재밌어.”
짜게 웃은 최진현이 내 주먹을 그대로 붙잡고 재차 내 뺨을 때렸다.
―짜아악!
이번에는… 정말… 아팠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볼떼기 살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충격에 억 소리도 흘리지 못할 정도였다.
골이 윙윙 울리는 게, 몇 대만 더 맞으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런 아픔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아프지? 마력까지 썼으니까 당연히 아파야지. 이 씨발 새끼야.”
“…마, 마력? 진현이 너 설마 각성했냐?!”
“어. 방학 중에.”
최진현이 ‘자랑하고 싶어 죽겠지만 하나도 대수롭지 않다는 것처럼’ 대답하면서 내 뺨을 움켜쥐었다.
‘각성을 했다’는 말에, 다른 애들은 그저 두려운 얼굴로 놈만 바라봤다.
“김제이 개새끼야. 너 죽고 싶냐.”
“…너나… 커헉! 너나, 죽어 등신아!”
“이 씨발 좆만한 새끼가 진짜!”
―사아아악!
머저리 새끼의 눈이 노랗게 변했다.
헌터인 지 큰아빠나 아빠처럼, 마력을 쓰면 짐승의 눈깔로 변하는 건 유전인 모양이었다.
“…됐다. 2학기부턴 이 학교 다니지도 않는데 너 같은 새끼 참교육 해봐야 뭐하겠냐. 그래, 이 형님이 꺼져 줄게 이 씹새끼야.”
한참을 노려보던 최진현이 흥미를 잃었다는 듯 내 얼굴을 놨다.
신윤수가 최진현에게 딱 붙어 아부를 떨어댔다.
“이야, 우리 진현이 결국 만 13살에 각성을 해버리시네? 대박이다 너. 최재헌인가 뭔가 너랑 동갑이라는 그 쓰레기랑은 이제 비교도 안 되겠네.”
“당연하지. 최재헌? 그 병신은 우리 집안이면서 아직 각성 유력 판정도 못 받았어. 블루울프의 수치 같은 놈.”
최진현이 유카타를 벗었다.
중1인데도 놈은 온통 근육질이었다.
170대 중반대의 키와 울룩불룩한 몸, 그리고 성숙해 보이는 얼굴 때문에 놈은 얼핏 보면 백프로 고등학생 같았다.
‘고추에 털도 났네. …부럽다.’
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큰 최진현의 꼬추 위에는 진한 음모가 있었다.
우리들 것 중 가장 짙은 꼬추털이.
나는 아직… 털이 하나도… 안 났다.
“진현이 너 그럼 이제 각성자 학교로 전학 가는 거야?”
“진현아, 지금 등급 그럼 F냐?”
“전학가기 전에 한 턱 쏴야지 임마!”
애들이 최진현의 시종들처럼 그를 따라 온천으로 들어갔다.
나도 옷을 벗고 세수를 했다.
“……아….”
얼굴이 어쩐지 뜨끈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코피가 나오고 있었다. 입은 불어터져서 명란젓 같았고, 마력으로 맞은 광대뼈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
나는 처음으로.
최진현에게 두려움을 느꼈다.
“잘 봐? 한 번만 보여준다.”
―콰직!
“와아아! 대애박! 진짜 깨졌네?”
“레알이다! 최진현 태생 E급이야!”
온천 바위에 주먹을 내지른 최진현과 환호성을 지르는 아이들 틈으로.
반쪽이 난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사람이. 주먹으로. 바위를. 깬 거다.
‘…….’
저런 주먹에 맞았으니까 단 한 방에 얼굴이 이 꼴이 되지.
그것도 최진현이 자기한테 피해가 갈까봐 사정을 많이 봐준 걸 거다.
―쏴아아아
세수를 마치고 온천탕에 들어갔다.
우리가 너무 시끄러운 나머지, 료칸 측에서는 우리의 오후 목욕시간을 지금 이 시간으로 정해놓았다.
‘그렇지 않았으면 절대 이 머저리들이랑 같이 안 했어.’
나는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근 채, 최진현과 그의 똘마니들이 지껄이는 개소리를 안 들으려고 딴 생각을 했다.
“야. 우리 차수진 훔쳐볼까? 그년 지금 목욕 중일 거 아냐.”
하지만 차마 넘어가줄 수 없는 거지같은 농담에 눈살을 찌푸렸다.
“노천탕? 거기 좀만 올라가면 바로 옆에 여탕 보일 것 같던데.”
“그럴까? 씨발, 존나 재밌겠다!”
“가자, 가자! 씨발 차수진 젖소년 알몸을 쌩눈으로 보겠네 대애박!”
미친 머저리들이 탕에서 나와 노천탕 밖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 마, 이 개새끼들아!”
나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놈들을 따라갔다.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이 상황에서조차 변성기가 오지 않아 여자애처럼 얇은 비명 같은 소리가 나온 것에 짜증을 느끼면서.
‘대체 키는 언제 크는 거냐고오!’
벌거벗은 채 내 앞을 뛰어가는 머저리들보다 한참이나 작고 여린 내 몸을 저주스럽게 생각하면서.
**
습기 찬 여름, 한 밤의 노천탕에서.
“야, 거기. 거기 돌 좀 쌓아봐.”
“진현아 여기?”
“그래 새끼야.”
등신 머저리들이 여탕을 훔쳐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크크큭! 이제 올라간닷! 간닷?!”
얼굴은 고등부 못지않은 최진현 씹새끼가, 누가 초딩 티 못 벗은 중1 아니랄까봐 유치한 짓을 시작했다.
나는 유나의 알몸을 놈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절대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아아아아아아아아아!!!!!!!!!!!!
료칸이 떠나가라 큰 소리를 질렀다.
―나도!!!!!! 제이도, 훔쳐볼래!!!!!!!!
정적이 노천탕을 따라 흘렀다.
―쏴아아아…
―드르르륵 탁!
여탕 쪽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멈췄다. 이어서 노천탕을 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후, 그쪽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야 이 씨발놈아.”
“김제이… 너 미쳤냐?”
비밀스럽게 여탕을 훔쳐보려던 놈들이 욕을 내뱉으며 나는 꼴아봤다.
최진현이 바위 끝까지 올라가 여자 노천온천탕 안쪽을 힐끔 보곤, 3m는 될 듯한 바닥까지 한 번에 내려왔다.
―탓!
“너 이리 와.”
놈이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손짓했다.
그 모습이 너무 살벌해서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왜… 왜애? 나도 좀 보자는데.”
“이리 오라고 했지.”
사아아악.
최진현의 눈이 파충류의 그것처럼 노랗게 번들거렸다. 태생 E랭크 헌터로 각성했다는 놈의 단단한 몸이 원래보다 더 크게 부풀었다.
야수화野獸化.
SSS급 헌터 최천하의 아주 유명한 고유능력이, 조카인 놈에게도 엿보였다.
“안 와?”
순간, 최진현의 몸이 포탄처럼 날아왔다.
“자, 잠깐마―”
나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나와 10m는 떨어져 있었던 놈이. 놈의 어른보다 단단한 어깨가, 내 몸통을 그대로 들이받아 버렸으니까.
―텅 텅…
유황 냄새가 나는 노천탕 돌바닥에 내 몸이 쓰레기처럼 나뒹굴었다. 머리가 연달아 돌에 부딪쳐, 나는 반쯤 정신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웃음이 나왔다.
“…크, 크큭!”
“웃어?”
“아하하하하!”
안 웃길 수가 없었다.
등신 머저리지만 힘이 센 최진현. 이놈에게서 나는 유나를 지켜냈으니까.
‘내가 유나를 지킨 거야.’
이제부터 닥칠 폭력이 너무 두려워서 그런 걸까. 아니면 돌에 세게 부딪힌 머리가 망가져버린 걸까.
‘내가 유나를… 지켰… 어…….’
몽롱한 시야와 그보다 더 멍청해진 머리로 그것만을 생각했다.
“이 씨발 새끼! 오늘 정말 죽어봐.”
―퍽 퍽 퍽 퍽 퍽
최진현의 주먹과 발이 얼굴과 몸에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런데, 아주 많이 아프지는 않았다.
왜인지는 모른다.
―우우우우우우웅
[▶계약자 김제이의 정신 보호를 위해 피계약자인 검령 메를리누스가 마력회로 운용을 보조합니다.]
[▶잔여 마력 60 -> 55]
이상한 글자가 눈물과 피로 얼룩진 시야 속에 아른거렸지만, 읽을 수가 없었다. 그러기엔 최진현 머저리의 주먹이 너무 매서웠으니까.
“…허?”
한참동안 나를 때리던 최진현이 갑자기 구타를 멈췄다. 그러다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바닥에 침을 뱉었다.
“김제이 이 새끼 보소… 각성했었네? 그것도 태생 마력이 50은 그냥 넘겠는데? …이거 재밌네. 존나…… 재밌어.”
각성?
…무슨 소릴 하는 거지.
“하하하하하하하하!”
최진현이 미친 사람처럼 웃다가, 노천탕 가장자리에 놓인 바위를 들었다.
“…쓰레기 천한 고아 새끼 주제에……. 감히, 감히 나보다 태생 마력이 높아?! 죽어버려 이 개새끼야!!!!!”
놈이 노란 빛이 번뜩거리는 눈으로 분통에 찬 고함을터트리며 돌을 내려찍으려 했다.
피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여전히 멍한 머리, 공포에 잠긴 몸 때문에 손가락 까딱하기 어려웠으니까.
“지, 진현아!”
그때, 신윤수가 최진현을 붙잡았다.
“이건! 이… 이건 아니잖아! 진정하자, 응? 이러면 킹제이 진짜 죽어!”
“놔.”
“제발 진정해! 너는 최재헌을 재끼고 블루울프의 후계자가 될 몸이잖아! 이러면 임마, 앞으로 니가 귀찮아져!”
“놓으라고―”
최진현이 신윤수의 목을 움켜쥐었다.
“했지.”
“크흑! 지… 쿨럭! 진…… 커헉!”
놈이 어지간한 어른보다 더 큰 주먹으로 윤수의 얼굴을 때렸다.
―퍽. 퍽.
나에게 할 때와는 달리 천천히.
공포를 각인시키듯이.
―퍽. 퍽.
“으으…! 으으으………!”
주먹이 한 대 떨어질 때마다.
신윤수의 얼굴이 만들다 만 찰흙인형처럼 변해가는 것만 같았다.
엉망진창이 된 윤수의 피가 내 얼굴까지 떨어져 내리는 와중에도, 최진현은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신윤수. 너 내가 병신으로 보이지. 니가 저 좆만한 새끼 실드 치는 거.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했냐?”
―퍽. 퍽.
“아는데 2인자인 니 면을 세워주려고 봐준 거야. 니가 어릴 때부터 내 꼬붕 1호였으니까. 1호는 특별대우를 해줘야지. 아다는 누구에게나 소중한 거잖아?”
―퍽. 퍽.
“그래도 따까리면 따까리답게 굴어. 친구 흉내도 적당히 내고. 어디서 누굴 가르치려고 해?”
“으으으으…….”
떨리던 윤수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의 눈코입을 비롯한 얼굴 전체에서 피가 줄줄 흘렀고, 입에서는 깨진 이빨이 썩은 옥수수처럼 떨어졌다.
―툭
윤수의 밉살맞은 두 개의 앞니가.
내 이마에 떨어졌다.
“…….”
공포로 떨리던 내 몸에.
거짓말처럼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신윤수.”
개새끼가.
내 친구에게 물었다.
“내가 누구?”
“…….”
“왜. 너무 오랜만이라 말이 안 나와?”
개새끼가 피와 살점이 묻은 주먹을 들어 내 친구의 앞에 들이댔다.
윤수가 눈을 까뒤집고 피를 줄줄 흘리며 대답을 이었다.
“…주, 주인―”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우우우우우우웅!
[▶계약자 김제이의 전투 보조를 위해 피계약자인 검령 메를리누스가 마력방출 및 권능 사용을 보조합니다.]
[▶잔여 마력 55]
이상한 글자들이 눈앞에 떠오름과 동시였다.
여린 주먹으로 자갈을 쥐고 그대로 최진현의 발등을 찍어버렸다.
“아아아아아악!”
개새끼의 울부짖음이 노천탕에 울려 퍼졌다.
목을 잡힌 윤수의 몸이 딱딱한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려 했다.
저 상태에서 머리가 바닥에 부딪치면, 위험하다.
“안 돼!”
―우우우웅!
수건으로 가린 하체에서 뭔가가 빛처럼 빠른 속도로 튀어나갔다.
하얗고 신비한. 동시에 무척 친근한 느낌을 주는 그 녀석이 윤수의 몸을 받혀 안전하게 내려주었다.
“하아! 하아! …큭큭큭큭! 그래, 이렇게 나와야 재밌지. 무려 이 천재 최진현님보다 태생 마력 보유량이 높으신 킹자지제이님이신데.”
피멍이 든 발등을 만지던 개새끼가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날 내려다봤다.
놈의 몸이 보디빌더 아저씨들의 그것처럼 거칠게 부풀어 올랐다.
“더 해봐. 이제 ‘정말’ 안 봐준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 뇌신 lv.1> 시동]
대화는, 사람끼리 하는 거니까.
―빠직! 빠지지지직!
눈앞에 번개가 쳤다.
내 몸은 생각한 곳에 가 있었다.
“…뭐야?!”
개새끼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나는 놈의 우측 허공에 뜬 상태에서 그대로 놈의 노란색 눈깔에 주먹을 쳐박았다.
―퍼석.
몹시 부드러운 뭔가가 깨지는 감촉이 느껴졌다.
이상할 정도로 힘이 넘치는 주먹은 평소와 달랐다. 솜방망이라고 놀림 받았던 보통 때의 주먹이라곤 상상할 수조차 없는 강한 힘이 담겨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애꾸가 된 개새끼가 피와 진득한 액체가 흘러나오는 눈을 감싸 안고 주저앉았다.
나는 놈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 시동]
[▶마력 45 -> 35]
―빠직! 빠지지지직!
무릎을 꿇고 주저앉은 놈의 왼쪽으로 날아가, 놈의 눈물 고인 노란 짐승 눈에 발을 꽂아 넣었다.
아주 세게. 조금의 사정도 봐주지 않은, 일명 싸커킥이었다.
―뿌직.
엄지 발끝이 놈의 노란 눈깔을 깨부수는 감촉에 커다란 즐거움을 느꼈다.
나도 전혀 이해하지 못할.
가슴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튀어나온.
오랜 세월 묵혀 둔 듯한 그런 감정이었다.
“크아아아아아!!!!!!!!!!!”
이제 장님이 된 개새끼가 인기 연예인인 지 엄마를 찾으며 엉엉 울었다.
“엄마아아아!!!!!!!! 안 보여! 안 보여어어어!!!!!”
개새끼가 엉금엉금 기어 나를 피해 도망치려했다.
―빠각! 빠각! 빠각! 빠각!
나는 놈의 머리, 가슴, 팔, 엉덩이, 다리 할 것 없이 마구 싸커킥을 날렸다.
내가 지금까지 수백 번을 당한 싸커킥을 합친 것보다 더 강하게.
“으으으으!!!!!!!!!”
만신창이가 된 개새끼가 부르르 떨며 똥과 오줌을 지렸다.
누렇고 더러운 액체가 노천탕 바닥에 흘렀고, 양 눈과 전신에서 피를 줄줄 흘린 채 대자로 바닥에 쓰러졌다.
“야. 너 다시 태어나지 마.”
나는 놈이 나에게 내려치려했던 수박만한 돌덩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땐. 또 죽여 버릴 거니까.”
놈의 뒤통수를 내리 찍었다.
―퍼억 퍼억
차돌이 개새끼의 두개골과 부딪히는 둔중한 감촉이 소름끼쳤다. 놈의 머리에서 튄 피가 내 얼굴에 흘러내렸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놈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걔네 아빠? 큰 아빠? 블루울프?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퍼억 퍼억
나는 지금 당장 이놈을 죽이지 않으면, 언젠가 놈이 반드시 나를 죽일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이놈은 그러고도 남을 놈이었으니까.
또한 이놈은…이놈은 감히!
―퍼억 퍼억
감히!
내 여자에게 눈독들인!
죽어 마땅한!
씨발 새끼였으니까!!!!!!!!!!
―퍼어억!
선홍색으로 피투성이가 된 돌을 던져버렸다.
―탕! 탕 탕…
“하아! 하아! …개새… 끼…….”
너무 힘들었다.
선홍색 액체로 물들 손을 무릎에 짚고 헉헉거리는 소리를 내며 숨을 골랐다.
―드르르륵
그때 누군가가 노천탕으로 들어왔다.
“에에에에?!”
오버스러운. 그러나 상황적으로 보면 오히려 침착한 느낌을 주는 요상한 비명을 터트린 사람.
“어어? 이거… 큰일이구나.”
연쇄살인사건의 현장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잔혹한 폭력의 현장을 목격했으면서도.
평소처럼 웃는 얼굴로 대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50대의 남자.
“흐음, 지금 보건선생님이 안 계시니까. 급한 대로 이 다나카 선생님이 도와줄게요. 그래도 괜찮겠지?”
그는 다나카 선생님이었다.
다나카 유지 田中 祐二.
세소코 여중 교사이자 담임 쌤을 대신해 우리 탐방 팀을 인솔한, 선생님.
―사아아아아아아아!
그의 양손에서 하얀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빛이 최진현, 신윤수, 그리고 애들 감쌌다.
오직 나만 그 빛에 휩싸이지 않았다.
―사아아아……
신비로운 빛이 잦아든 뒤.
윤수는 물론, 죽은 줄 알았던 최진현의 몸 또한 완전히 치유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어어? …우리가… 왜 여깄지?”
“…진현이는 왜 바닥에서 자고 있냐?”
“윤수도. 이 새끼들 왜 이래, 큭큭!”
“…야, 근데 김제이는 왜 저래? 다쳤다. …아까 저렇게 많이 안 맞았는데?”
“그, 그래도 많이 맞긴 했지….”
아이들은 마치 기억을 잃은 듯.
방금 전 상황을 하나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게다가 왜 나만 예외 취급을 받게 된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다.
―짝짝!
다나카 선생님이 박수를 쳐서 우리들의 주목을 끌었다.
“자아! 일단 급한 건 됐고. 그럼, 우리 자곡제일중 말썽꾸러기들.”
쌤의 얼굴에 부처님 같은 웃음이 떠올랐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으셔야지?”
뇌신 lv.1>뇌신 lv.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