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화 〉84. (외전) 먼 바다에 있는 낙원(7)
―삐뽀 삐뽀 삐뽀
료칸 지하 온천에서 벌어진 ‘학폭’ 사건에 결국 경찰까지 출동하고 말았다.
남성 탈의실 CCTV에 놈이 나를 구타하는 장면이 모두 찍혀있었으니까.
최진현만이 아니었다.
우리 반애들이 내 유카타를 벗기고 싫다는 나를 마구 괴롭히는 장면 역시 생생히 담겨 있었다.
최진현과 우리 반 애들은.
명백한 현행범이었다.
더구나 최진현 개새끼는 이미 각성 등록까지 마친 상태.
이 때문에 문제가 커져버린 것이다.
“용의자 최진현과 피해자 김제이. 그리고 증인 겸 학교폭력 동조자로 추정되는 자곡제일중1학년 학생들. 지금부터 모두 서로 가줘야겠다.”
최진현과 나, 신윤수를 비롯한 우리 15명 탐방 팀은 새벽 1시까지 경찰서에서 대기해야했다.
“진현 도련님, 안심하시죠.”
블루울프에서 보낸 최진현의 변호사가 올 때까지, 그렇게 해야 했던 것.
“탐방은 끝이다. 집에 갈 시간이야.”
다나카 쌤은 학폭 사건에 연루된 이상, 탐방 일정을 이어갈 수 없다며 인솔 포기를 선언하셨다.
“다만 피해자인 김제이 군은 따로 이동해야겠지. 김제이 군의 보호자 측에는 쌤이 연락하마. 잘들들어가라.”
그리하여 14명의 반 애들은 최진현네 변호사를 따라 꼭두새벽에 짐을 챙겨 한국으로 돌아갔다.
짧고도 길었던 오키나와 탐방이 허무하게 끝나버린 것이다.
**
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오키나와 경찰서를 나왔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노천탕에서 최진현을 죽을 정도로 패버린 직후부터 지금까지.
대체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진 건지 하나도 상황 파악이 안 됐다.
“제이야.”
고개를 드니, 50대 대머리 다나카 쌤이 미안한 얼굴로 머리를 긁적이고 계셨다.
“많이 아프고 졸립지? 미안하구나, 어른의 사정이라는 게 있어서 말이지.”
말이 떨어짐과 동시였다.
―사아아아아
아까 노천탕에서 그랬던 것처럼, 다나카 쌤의 손이 하얗게 빛났다.
그리고 내 몸에 남아있던 통증들과 피로가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힐링이다! 아까 최진현이랑 윤수를 치료해주신 그 능력이야!’
나는 깜짝 놀라서 쌤에게 여쭤봤다.
“다나카 쌤! 헌터… 셨어요?”
“아니, 헌터는 무슨. 그냥 각성자야.”
쌤이 담배를 꺼내 무시며 과장스럽게 몸을 떠셨다.
“쌤은 있잖아? 싸움이 너무 싫단다. 그래서 전장 근처에는 얼씬도 못해.”
“아아.”
다나카 유지 쌤 같은 사람들이 있다.
뛰어난 각성자인데도 몬스터랑 싸우기 싫어서 헌터가 안 된사람들이 있다고.
“쌤은 그럼… 복합 능력 각성자세요? 그… 애들 기억도… 지우셨잖아요.”
“그런 셈이지. 근데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어. 어차피 내 역할은 선생인데.”
다나카 쌤이 담배를 깊게 빨았다.
그리고 회색 연기를 경찰서 담 너머로 훅 뱉어버리시곤, 내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물으셨다.
“제이 군. 졸리냐?”
고개를 저었다.
쌤이 힐링을 해주셔서 그런지.
아니면 아까 최진현 개새끼를 때리면서 느꼈던 온 몸의 흥분이 남아서인지.
하나도 잠이 오질 않았던 거다.
“그럼 쌤이랑 드라이브나 할까?
나는 이 ‘드라이브’를 따라가면, 왜 쌤이 나만 편애하셨는지 알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간식 주시면 갈게요. 배고파요.”
“요 귀여운 놈.”
―부우우웅
다나카 쌤의 연식이 오래된 소형 승용차를 타고 세소코 섬을 빠져나왔다.
오키나와의 밤 풍경은 아름다웠다. 본섬과 이어진 주황색 조명이 비추는 다리가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우리 어디 가는 거에요?”
창밖으로 불어오는 시원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물었다.
“예쁜 친구 만나러 갈 거야. 그 친구가 널 아주많이 보고 싶어 했거든.”
예쁜 친구…. 설마 유나일까.
이 오키나와에서 나를 특별하게 생각해주는 사람은 둘 뿐이다.
유나. 그리고 미유키.
하지만 미유키는 평범한 집안 애다. 엄마 아빠는 해수욕장에서 빙수를 파시는 분들이라고 했었다.
‘유나… 겠지?’
유나가 아침에 여자 휴게실에서 그런 말을 했었다.
자기네 소속사 사장님이 일본에서 굉장히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래서 유나의 소속사인 <오키나와 퀸 엔터테인먼트>는 오키나와는 물론 일본 전체에서 무척 유명해서, 일을 선뜻 도와주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고 했다.
“쌤. 그 친구가 우리 반 애들 기억도 지우고, 절 도와주라고 부탁했나요?”
“아니.”
―후우우우
다나카 쌤이 대머리를 긁적이며 담배를 태우셨다. 핸들과 쌤의 웃기는 똥배바지에 회색 담뱃재가 툭툭 털어졌다.
“그건 그냥 쌤이 한 거란다. 명색이 선생질을 하게 됐는데, 그래도 선생다운 일을 하나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명색이 선생질을 하게 됐다’.
나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냥 어른들이 늘 그러시듯 애들은 알기 어려운 말을 하신 거겠지, 라고 생각했다.
―부우우우웅…
한참을 달린 자동차가 아주 정갈하고 커다란 저택 앞에 멈춰 섰다.
예전에 하리랑 같이 본 애니메이션에서 나온 일본식 대저택 같은 그런 집.
“내리자꾸나. 야식은 여기서 먹자. 괜찮지?”
“…네.”
나는 유나를 곧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설렘을 안고 차에서 내렸다.
―지이이잉
다나카 쌤이 벨을 누르시며 “나다. …가 아니라, 접니다 아가씨!”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가씨라. 그래, 우리 예쁜 유나는 아가씨지.’ 라고 생각하며 자동으로 열린 커다란 문 안으로 들어갔다.
‘정원이 참 예쁘다.’
대나무로 된 길고 긴 정원을 지났다.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풀벌레 소리가 나는 이 정원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이런 단아한 정원을 가꾼 사람은 분명 마음이 따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다 왔구나.”
정원을 지나자마자, 다나카 쌤이 담배를 쥔반대편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제이야.”
“네.”
“내일, 쌤이 비행기 시간에 맞춰서 데리러 가마. 예쁜 친구 잘 만나고, 오늘 하루 동안 미유키나 다른 사람들이랑 재밌게 놀고, 내일 보는 거다?”
“…….”
나는 담배냄새 풀풀 나는 다나카 쌤의 똥배를 껴안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고마워요, 쌤…….”
눈물이 나왔다.
최진현의 머리를 돌로 마구 내려찍은 후로 몇 시간이 지난 후인지금에서야.
“흐윽…… 흑! 흐윽!”
죄책감과 걱정과 분함이 섞인 서러운 울음이 나왔다.
“고마! 워요, 고마워요….”
정말 많이 많이그랬다.
다나카 쌤이 만약 최진현을 치료해주지 않아서 놈이 정말로 죽어버렸다면 나는대체…….
그리고 나 빼고 모든 애들의 기억을 지워주시지 않았다면 그건 그것대로 엄청 난리였을 게 틀림없다.
“…짜식. 우리 말단들 때문에 니가 무슨 개고생이냐. 내 맘이 다 찌잉하네.”
다나카 쌤이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죄의식에 사로잡혀 한참을 울던 내가 고개를 들었을 때.
“괜찮아, 임마.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 일도.”
쌤은 오던 길로 되돌아가셨다.
‘저긴가.’
토끼처럼 빨개진 눈을 닦고, 신발을 벗고, 대나무 정원이 둘러싸고 있는 나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 안에… 누구 계세요?”
―들어오렴.
가냘프지만 또렷한 여자의 목소리에 다다미 문을 드르륵 열었다.
“아…….”
“왔구나. 앉아.”
다나카 쌤이 말한 ‘나를 많이 보고 싶어하는 예쁜 친구’가 누구인지 알고, 나는 깜짝 놀랐다.
타이라 엘라.
하얀 바탕에 남색 줄이 세련되게 들어간 세일러복을 단정히 입은 미소녀.
그녀가 호롱불이 켜진 방 안에서, 방석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게 고개를 까딱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이 군. 이제야 둘이 됐네.”
“…니가 왜 날―”
왜 보자고 한 거야, 라고 물어보려 할 때였다.
―꼬르르륵
밥 달라고 아우성치는 소리에 말을 삼켰다. 저녁밥을 어제 저녁 7시에 먹었는데 지금은 벌써 새벽 2시 반이다.
―후흣
타이라 엘라가 가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식을 가져올게.”
**
“빵은 입에 맞니.”
“엄청 맛있어.”
타이라 엘라는 내게 빵을 갖다 주었다. 오늘…이 아니라 어제 낮에 국제거리에서사먹고 싶었던 카스테라를.
“잘 먹는구나. 더 줄까?”
“…응.”
나는 사양하지 않았다.
돈 많은 최진현이나 신윤수는 고급 카스테라나 길거리 음식 따위를 아무 거리낌 없이 먹었지만, 나는 가지고 온 돈이 얼마 없었으니까.
‘이 돈은 하리랑 희망원 가족들 선물을 사줘야 해. 유나랑 미유키 것도. …그리고 다나카 쌤이랑 엘라 것도.’
나는 엘라가 엄청 부잣집 딸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카스테라 정도는 별것 아니겠지 생각하며 마구 먹었다.
“배불러… 이제 못 먹겠다.”
“더 먹지 왜. 아직 많은데.”
빵과 우유, 후식으로 나온 과일까지 허겁지겁 다 먹은 뒤에야 엘라에게집중할 수 있었다.
“아니야, 이제 얘기해야지. 벌써 새벽 3시가 넘었는데, 너도 자야 되고.”
“졸리니?”
“아니. 다나카 쌤이 도와주셔서 하나도 안 졸려.”
“잘 됐구나. 나도안 졸린데.”
엘라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녀 입에서 대체 무슨 말이 나올까, 그녀도 미유키처럼 나랑 친해지고 싶은 걸까, 그런 생각을 했다.
“밥은 중요하지.”
하지만 몹시 차분한 분위기의 혼혈 미소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런 것과 전혀 달랐다.
“특히나 각성한지 1년 미만인 실제계의 능력자들. 즉, 헌터들에게 영양 공급은 무척 중요해. 신체가 마력에 의해 급격히 재구성되는 시기니까. 설사 공상계 속이라 하더라도 습관적으로 밥을 먹을 필요가 있어.몸을 강화한다는 ‘이미지’는 무엇보다 중요하거든. 꼭 기억해두도록 해.”
그녀는 내가 절반 이상은 알아듣지 못하는 뜬구름 잡는 얘기를 한 것이다.
“엘라야. 그게… 무슨 소리야?”
“각성. 했잖아. 김제이. 너.”
엘라가 풍요로운 밀밭 같은 갈색 생머리를 곱게 넘겼다. 이마에 일자로 딱 떨어지는 앞머리가 호롱불에 비춰졌고 그녀의 눈가에 옅은 그림자가 생겼다.
“니가 각성하지 않았으면 태생 E급 각성자인 최진현을 어떻게 때려눕혔겠어. 다나카 선생님께 들어보니까 그냥 이긴 것도 아니고, 압도했다고 하시던데. 내 말이 틀렸니?”
“…….”
그러고 보니 아까 최진현도 나한테 각성 어쩌고 그랬었다.
다나카 쌤도 차 안에서 ‘각성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어줍잖은 기술습득보단 고유능력 발전이 무엇보다 중요해’라는뜬금없는 말씀도 하셨었고.
‘설마….’
나는 양반다리를 하고 있던 다리를 모아, 무릎을 끌어안은 자세로 물었다.
“…엘라야. 내가 각성한 거니?”
“물론. 지금으로부터 두 달 전쯤에.”
나보다 큰 150cm정도의 키인 엘라가 회색 찻잔에 담긴 차를 마셨다.
“제이 너의 고유능력은 공상침식空想侵蝕. 공상계라는 세상의 이면을, 실제계를 살아가는 산 자의 상태로 넘나들 수 있는 아주 희소한 능력이야.”
“공상… 침식…….”
하나도 안 와닿는 고유능력이었다.
말도 너무 어려웠고.
“후에 네 공상침식이 더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되면 침식 수준이 아니라 전복, 개변, 파괴 행위들도 가능해질 거야. 그리고 그 이상이 되면 실제계에까지 공상계의 이미지를 구현해낼 수 있겠지. 아직은 악마 군주의 권능 따위에 휘둘리는 수준이겠지만.”
대체 무슨소릴하는 건지.
‘그냥 가만히 있자.’
나는 뭔가를 배울 때 눈치가 빠른 편이다.
예를 들어, 쌤들이 아주 어려운 얘기를 빙빙 돌려하실 때는 둘 중 하나다.
아주 중요한데 직접 하나하나 설명해주자니 뭔가 반칙 같을 때.
혹은 하나도 안 중요한데 자기가 입이 근질근질해서 마구 떠들 때.
‘엘라는 첫 번째 같아.’
그런 것 같다. 이 조용해 보이는 소녀는 절대 수다쟁이 같진 않았으니까.
“다행히 라헬רחל 의 보수 없이도 시스템 캄비온이 정상 기동 하고 있으니, 고유능력과 공상계 존재 등급 상승에 큰어려움은 없을 거야.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 지금도 1600년 전과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대단히 빠르지만 더 속력을 내야만 돼.”
엘라가 얼핏 보기에는 감정이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따스한 가을 햇살 같은 갈색의 눈으로 날 바라봤다.
“전대 계약자인 아서 펜드래곤Arthur Pendragon이 수십 년 간 모아온 예드디야의 반지와 악마 군주의 정수. 하지만 그 치는 결국 공상 개변 단계에서 운명을 다 하고 말았지. 실제계에 공상계의 이미지를 구체화하는 체현體現이나 현현顯現에는 이르지도 못 했어.”
“그 결과, 칠죄종과 65악마는 다시 세상에 풀려나버렸다. 이번에는 결계에 갇혀 있었던 브리타니아 섬을 한참 벗어나, 세 개의 초차원은물론 삼천세계에 걸친 모든 세상 너머로….”
“종말은 다가오고 있어. 우리조차 대비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하루가 급하고 내일이 두려운 오늘이야.”
“이런 상황에서. 1600년 전의 악마 봉인을 염두에 두고 창조된 시스템 캄비온을 무조건적으로 의지할 수 있을까. 제 때에 과연 맞출 수 있을까.”
그녀가 내게 물었다.
“김제이. 네가 과연 할 수 있겠니.”
내가 대답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후후후
엘라가 아주 환하게 웃었다.
나는 속으로, 쟤가 저렇게 웃을 수도 있는 애였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건 제이 네 말이 맞아. 이 질문은 너무 일렀고, 상황도 잘못 됐어. 나의 불찰이야. 사과 할게.”
“아니야. 뭔 소린지 몰라서 짜증나서 그렇게 말했어. 나도 미안.”
내가 엘라에게 대충 손짓을 하며 피로를 드러내자, 그녀가 조용히 웃었다.
“아이의 몸과 마음이니 많이 졸리겠구나. 차를 준비해뒀어. 타고 가렴.”
“응. 엘라는? 아참, 여기가 집인가.”
시간은 하늘이 남색이 된 한 여름의 새벽 4시.
방학임에도, 집 안임에도 구김 한 점 없는 세일러복을 입은 타이라 엘라가.
“아니. 우리our 집은 여기가 아니야.”
“그래?”
“응. 제이 군, 네가 그렇듯.”
그렇게 말하며 날 떠나보냈다.
**
타이라 엘라네 저택에서 숙소로 돌아온 뒤, 나는 시체처럼 쓰러져서 잤다.
[…발년들 더럽게 껄떡거리네. 하여간 라헬님이 안 계시니까별 거지 같…]
그러다 귓가에 들려오는 이상한 욕설 소리에 잠을 깨길 여러 번.
[…련히 알아서 할까봐. 괜히 60년이나 짱박혀서 아카식 레코드만 꼴아본 줄 아나. 썅년들 하여간 아가리…]
오전 7시. 8시. 9시.
[…엑쓰! 쎄엑쓰! 그래도 한다~♪ 커여워진 우리 꼬맹이가 한다~♪ 오네쇼타순결뷰지개쥬지처녀자궁귀두키스쎅…]
최초에 눈을 뜬 7시에 이후, 한 시간 간격으로 잠에서 깨다가.
결국엔 9시 반쯤 완전히 잠에서 깨버리고 말았다.
‘…뭔 소리였지? 초딩도 아니고 무슨 입만 열면 섹스 섹스 거려.’
누군지 몰라도 디게 바보다.
‘그래도 참 듣기 좋은 목소리였지.’
무척 어린 여자 아이 목소리 같기도.
나처럼 변성기가 안 온 소년 같기도.
한편으론 현명한 요정 같기도 한.
그런 목소리를 잠결에 들었었다.
‘5분만 이불 속에 있다가 나가자.’
나는 반 애들이 하나도 남지 않은 넓디넓은 료칸 방 안에서.
여름 이불을 덮고 선풍기 바람을 맞으며모처럼의 고요함을 맛보았다.
―똑 똑
그때, 누군가가 찾아왔다.
―제이야, 나야.
―안에누구 없나요?
―자니? …들어갈게.
유나가… 내 방으로 온 거다.
‘망했다!’
나는 지금 알몸이란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