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94. (외전) 먼 바다에 있는 낙원(17)
미유키가 타이라 케이코의 옆에서 고개를 숙였다.
“저의 이름은… 크로셀Crocell.”
―화아아앗
그녀의 등 뒤에 두 장의 날개가 뻗어 나왔다.
“아주 오래 전. 능품천사의 위를 박탈당한… 타천사입니다.”
“크로셀과 마검이라. 72악마로구나.”
늙은 무녀의 영민한 머리가 빠르게돌아갔다.
고도의 추론을 한 번에 마친 그녀가.
미유키. 아니, 제49위 악마 군주 ‘였었던’ 타락천사를 노려봤다.
“…우리 불쌍한 꼬마. 그 어린 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깟 물거품 같은 허상 속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는고….”
“흐흑…! 죄송… 합니다…….”
케이코가 한숨을 쉬었고, 크로셀이 두 장의 날개를 떨며 눈물을 흘렸다.
이제 다시 천국으로 복귀하게 된 크로셀의 상관, 라파엘라도 그녀를 질책했다.
“크로셀. 당신이 칠죄종 아스모데우스의 봉인에 크게 기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번 일은 잘못이 많았습니다.”
그녀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필이면 캄비온의 계약자 김제이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을 배경으로 삼다니요. 포말의 마안의 유능한 사용자였던 당신답지 않은 실수였습니다. 일처리도 전혀 매끄럽지 못해서 결국 그의 마음에 상처까지 입혔죠. 버디를 바꾸자는 제 제안도 무시해버리고.”
“그, 그건…!”
라파엘의 갈색 눈이 차가워졌다.
“왜 그랬죠? 설마 유니아스처럼 그에게 진심으로 홀리기라도 했나요.”
“…….”
추궁은 가브리엘에게로 이어졌다.
“이미 무의식에 폭력성이 새겨지고 말았다. 네게 남아있던 마지막 악마의 권능이 <타락천사의 순수>가 아니었다면, 환상에서 깨어난 이후의 김제이에게도 상당한 영향이 갔을 정도로. …어쩔 수 없지.”
―치이이익
가브리엘이 담배를 깊게 빨며 선언했다.
“크로셀. 이 시간부로 약속 됐던 너의 능천사의 위를, 구품천사로 강등한다. 또한 인과율을 최소화하기 위해 김제이의 기억을 지우겠다.”
말이 떨어짐과 동시였다.
“그러실 필요 없어요.”
숲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로셀의 공상계 속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천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타이라 케이코의 눈이 크게 뜨였다.
“유나야!”
그녀는, 유나. 즉 유니아스Junias였다.
한 장의 날개를 가진, 구품천사.
캄비온의 계약자인 김제이와 첫날밤을 치르자마자 잃었던 기억을되찾은.
차수진도. 유나도 아니라. 이제는 생전의 기억과 새로 새긴 기억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 그녀.
“할머니.”
유나가 케이코에게 걸어왔다.
그리곤 간절한 눈으로 자신의 보호자에게 부탁했다.
“우리 그냥… 이대로… 살아요.”
케이코가 말없이 자신의 손녀를 바라보았다.
양손녀로 삼지는않았으나, 헌터였던 유나의 할아버지 장례식에서 그녀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내 손녀딸로 삼겠노라 다짐했던 그녀를.
“결심을 굳힌 게냐.”
유나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니 뜻대로 되어야겠지.”
어쩐지 깊은 걱정과 체념이 담긴 듯한 늙은 무녀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였다.
―화르르르르르륵!
동이 트지 않은 새벽하늘에.
붉은 태양이 생겨났다.
“어디 우리 애들을 데려가 봐라.”
케이코가 대천사 라파엘과 가브리엘을 바라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데려갈 수 있으면.”
유나. 케이코. 그리고 크로셀까지.
이미 고정되기 시작한 환상이 오래오래 지속되길 바라는 세 여자가, 전투를 각오했다.
“유니아스.”
그때, 라파엘라가 유나에게 말했다.
“무한한 환상을 지속하면. 김제이는 영원히 성장하지 못합니다. 크로셀의 마안을 통해 고정된 시공간은, 한 여름의 200X년으로 고정되어 있으니까요.”
“상관없어요.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유나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가브리엘이 그녀를 위협했다.
“지금이라도 그만둬. 아무리 임시의 시공간이라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인과율은 쌓이고 있다. 계속 이러다간 천사의 위가 박탈당할 수도 있어.”
“그래도 좋아요.”
구품천사 유나의 입에 행복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이제 그런 건 상관없어요. 애초에 그런 걸 바라고 살아온 삶도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행운이죠. 전혀 기대하지도 못했었는데 할머니 덕에 잡게 된, 행운”
―쏴아아아아
정적이 모래사장에 쌓였다.
물거품을 만드는 파도소리만이 그들 주변에 맴돌았다.
“당신은.”
라파엘라가.
조용히 입술을 뗐다.
“그가 영원한 겨울 속에 머물길 바라나요.”
유나의 눈이 크게 뜨였다.
―우리 제이는 빨리 사춘기가 왔으면 좋겠나요?
―네. 생각에 봄이 오면 좋겠어요.
머릿속에서 그와 나누었던 대화가 스쳐지나갔다.
―왜냐하면 아직 봄이 안 왔으니까. 지금 나는 생각의 겨울 속에 있다는 뜻이잖아요. 겨울은 추워서 싫어요.
사춘기思春期.
생각에 따스한 봄이 오는… 시기.
이대로는 영영 맞이할 수 없는….
“유니아스. 당신이 하늘만큼 대지만큼 사랑했던 한 인간을 떠올려보세요. 그녀와 당신 스스로를 위해. 당신이 어떤 말을 해주었었는지를.”
라파엘이 등을 돌렸다.
“신입아. 너 그거 내로남불이다? 놔줘야 할 땐 놔야 돼. 설령 너와 쌓은 그의 기억이 전부 물거품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대천사 가브리엘도 등을 돌렸다.
―쏴아아아아
두 천사가 낙원에 타고 왔던 하얀 배를 타고 바다 너머로 사라졌다.
“…….”
―엄만… 이미 죽었잖아.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유나의 눈에, 투명한 물이 떨어져 내렸다.
―지금까지… 잘 해왔잖니. 니 아빠랑, 한남동 엄마랑. 그리고 제이랑 같이. 잘… 해왔잖아.
―오늘은… 정말 이별할 때가 됐어.
어떻게 그걸 잊을 수 있을까.
과거의 기억에 새로운 기억을 덮어써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된 유나였지만.
꿈에도 잊을 수 없는 것은. 있다.
‘서윤… 아.’
유나의 무릎이 백사장위에 무너졌다.
―쏴아아아아
동이 완전히 틀 때까지.
그녀는 하염없이 바다만 보고 있었다.
―쏴아아아아
말없이 옆을 지켜주고 있던 타이라 케이코가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크흠! …뭐해, 인석아. 제이 고 녀석, 집에 안 돌려보낼 셈이냐?”
환상 속 그림자에 불과하다지만 지금 이 순간 타이라 케이코는실재했다.
그러나 그녀는 손주와 손주 사위를 위해 실존하는 자신 따위야 얼마든지 부정당해도 좋다고 말했다.
“…그래, 언니.”
크로셀이 유나의 어깨를 날개로 덮으며 농담을 건넸다.
“다음에 또 보면 되잖아. 대신 그때는 유나 언니랑 나랑 라이벌이겠지만?”
자신만큼이나. 어쩌면 ‘정말 처음’이니만큼 자신보다 더 제이에게 애착을 느끼고 있을지 모를 크로셀이다.
“…….”
유나의 마음에 파문이 일었다.
‘제이야. 나는―’
그녀의 눈에.
노란 개나리 같은.
따스한 봄빛이 떠올랐다.
**
날이 밝았다.
길고도 짧았던 여행이 끝났다.
다시 이곳에 올 때에는 여행이 아니라, 전학일 테니깐.
“인석들아, 내리자!”
케이코 할머니의 말씀을 따라 요트에서 차례로 내렸다.
나는 유나보다 한 발 먼저 내린 뒤, 그녀에게 손을 뻗어주었다.
“자요, 예쁜 아내님.”
유나가 빙그레 웃으며 손을 잡았다.
“감사합니다아, 친절한 서방님.”
“에휴! 눈꼴셔!”
미유키가 우리를 핀잔주며 폴짝 하고 배에서 뛰어내렸다.
―부르르르릉
세소코 섬에 도착한 우리는.
사장님의 민트색 스포츠카를 타고.
아주 바쁘게 움직였다.
선물 사랴.
짐 싸랴.
그리고 사진 찍느랴.
‘어차피 조만간 또만날 텐데 무슨 사진을 그렇게들 많이 찍어댄 건지.’
정신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바쁜 오전을 보내고 나서야.
나는 비행기 시간인오후 2시를 맞이할 수 있었다.
“와아, 날씨 죽이는데? 서핑할 맛 좀 나겠다.”
“가자! 여름이다!”
“아… 집에 가려니까 피곤하네.”
“내 말이. 언제 인천 가서 버스 타?”
오키나와 국제공항.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를 지나치며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우리는 케이코 할머니가 빌려주신다는 전용기에 탑승하기 위해 기다렸다.
“어?”
그때, 출국 전에 꼭 보고 싶었던 두 사람이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
“다나카 쌤! 엘라! 이쪽이에요!”
손을 크게 흔들며 부르자, 두 사람이 가늘게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아이구, 제이 군! 미안하다. 원래는 쌤이 너 출국 수속 도와주고 했어야 하는 건데. 어쩌다보니 다 맡겨버렸네?”
여전히 담배냄새 풀풀 풍기는 똥배 나온 다나카 쌤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과했다.
“아니에요! 케이코 할머니랑 유나가 도와줘서 다 끝냈어요. 이제 저기 들어가기만 하면 돼요.”
손가락으로VIP탑승구를 가리켰다.
전용기를 타는 사람은 저기로 지나가야 한다고 했으니깐.
“집에 가니까 신나는가 보구나.”
엘라가 나를 또 아이 취급했다.
나는 이를 앙! 보이며 그녀를 도발했다.
“너 자꾸 나 동생 취급 할래? 나도 곧 생일 지나서 너랑 똑같이 13살이거든. 그리고 키도 너보다 훨씬 클 거야.”
“응. 아무 걱정하지 마. 제이 너는 나보다 커질거니까.”
엘라가 또 아는 척을 했다.
나는 뭐라고 더 반박을 하려다가, 옆에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의젓한 모습을 보이기로 했다.
“흠흠! 아, 어제 말씀드렸죠? 이분이 저희 탐방 일본 측 인솔 교사이신 다나카 유지 선생님. 그리고 얘가 타이라 엘라에요.”
“안다. 이젠 아주 자알 알지!”
케이코 사장님이 두 사람을 고까운 눈으로 훑어보다 휙 고개를 돌리셨다.
“짜증나, 진짜…. 벌써부터 지겹네.”
미유키 역시 눈을 세모나게 뜨고 두 사람을 째려보았다.
하지만 우리 유나는 역시 달랐다.
“안녕하세요. 3박 4일 간 우리 제이를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죄송했습니다.”
예의바르게 두 사람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건넸으니까.
“됐다. 이제 됐어. 앞으로 잘하면 돼.”
“고개를 드세요. 당신은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요.”
…음? 유나와 두 사람 간에 무슨 일이 있었나.
‘나중에 물어봐야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타이밍을 놓치기 전에 빠르게 가방을 열었다.
비행기 탑승 전에 여권 검사를 받을 시간이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으니깐.
“할머니!”
나는 도도도 뛰어가 가장 연장자이신 케이코 사장님께 선물을 드렸다.
“응? 이게 뭐냐.”
“은단이에요. 항상 입이 깔깔하다고 하셔서. 그게 생각나서 샀어요.”
“…….”
선물이 그렇게 마음에 드셨던 걸까.
아니면 이제 내가 당신과 정말로 가족이 된 것처럼 가깝다고 느끼셔서일까.
나는 어쩐지 할머니의 눈이 촉촉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몰래 사느라… 고생 많았겠구나.”
“아하하! 첩보 작전 찍는 줄?”
“멍청한 녀석.”
케이코 사장님이 선글라스를 쓰시며 씨익 웃으셨다.
나는 이번엔 미유키에게 선물을 줬다.
“자. 고마웠어, 미유키. 그리고 전학 오고 나서도 계속 잘 부탁해?”
“에에에? 제이 군….”
내가 그녀에게 건넨 건 레몬 향기가 나는 선크림이었다.
병아리처럼 생긴 통이 무척 귀여운.
“인천 공항에서 사온 거야. 점원 누나가 일본에는 이런 게 별로 없대서.”
“아닌… 데?”
미유키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나를 꼭 안았다.
“바보야! 너 속은 거야. 이런 게 여기 왜 없겠어!”
“미안. 마음에… 안 들어?”
나를 한참동안 안아주던 미유키 누나가 포옹을 풀며 방긋 웃었다.
“이번에만 봐준다! 대신 다음에는 더 좋은 선물 줘야 돼?”
“선물은 제이가 줄 게 아니라 오히려 당신이 줘야하는 거 아닌가요. 그 멍청한 눈깔이라던지.”
“야! 너 벌써부터 이럴래?!”
미유키가 자신의 말을 끊은 엘라를 짜증이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두 사람이 참 사이가 안 좋다고생각하면서, 다나카 쌤과 엘라에게도 선물을 건넸다.
“제이 군, 이게 뭐냐. 양말?”
“?”
두 사람이 복슬복슬한 털이 난 양말을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수면양말이라는 거래요. 신윤수라는 제 친구가 이거 일본 사람들이 엄청 좋아한다고 저한테 팔았어요.”
“준 게 아니라, 팔았다고?”
“네. 원래 걔가 싸가지가 없어요.”
“하하하! 그 친구 아주 깍쟁이구만!”
다나카 쌤이 기대보다 되게 좋아하셨고, 엘라도 “고마워. 잘 신을게.” 라고말하며 조용히 웃었다.
이렇게, 선물 증정식이 모두 끝났다.
‘진짜 끝이네. …그래도, 돌아오니까.’
나는 작은 아쉬움을 털어버리고, 이제 여권 검사를 받으러 짐을 챙겼다.
“제이야.”
그때, 사장님이 나를 부르셨다.
“거기 모여서 서 보거라.”
고개를 돌리니 폴로라이드 카메라를 드신 사장님이 계셨다.
오늘만 해도 몇 번을 저러시는 건지, 사진에 한이 맺힌 분처럼 저러셨다.
“사장님도 같이 찍어요.”
“난 됐대두.”
“그러지 마시고요! 제가 찍을 게요.”
나는 어제 오늘 늘 그랬던 것처럼.
자꾸만 홀로 사진에 안 찍히려 하시는 할머니를 모시고 카메라를 쥐었다.
“제이야. 옆으로. 더 옆으로. 옳지.”
“에에에? 제이 군 팔이 짧아서 다 안 나오나보다.”
“아무렴 생각이 짧은 당신만 하겠습니까.”
“어서 찍으렴. 니코틴이 부족해서 현기증이 다 나네.”
“할미 덥다!”
나를 뺀 다섯 사람이 내 주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자기하고 싶은 말만 했다.
‘진짜 너무들 하네.’
나는 앞으로 이 사람들이랑 어떻게 같이 부대끼며 살지 걱정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찍습니다! 하나, 둘!”
―찰칵
**
케이코 사장님의 전용기는 내 생각보다 훨씬 큰 비행기였다. 우리가 타고 왔던 저가 항공 비행기보다 더 컸다.
“탑승해주신 두 승객 분께 감사드립니다. 처음 전용기에 탑승해주신 승객 여러분들을 위해―.”
나와 유나는 오직 우리 둘 만의 비행을 위해 탑승한 두 명의 스튜어디스 누나와 두 명의 조종사 아저씨들과 인사를 나누며 비행기에 앉았다.
비행까지 앞으로 15분쯤.
이제 진짜, 집에 간다.
“유나. 그 사진이 그렇게 좋아요?”
근사한 침대 의자 같은 좌석에 앉은 그녀에게 물었다.
유나는 좌석에 앉은 후부터 계속해서 어제 오늘 찍은 사진만 봤다.
“좋죠, 그럼. 좋구… 말구요.”
“유나 사진 좋아하는구나? 하긴, 원래 연예인이니깐. 그럼 앞으로 우리, 사진 많이 찍어요.”
“제이는 사진 싫어한다면서요.”
사실은 그렇다. 나는 못난이인 내가 사진에 나오는 게 정말 싫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괜찮다.
“유나랑 같이 나오는 사진은 언제든 좋아요.”
“아하하! 우리 서방님 너무 귀여워!”
유나가 몸을 돌렸다.
그녀가 침대 의자의 목 받침에 얼굴을 대고, 나를 불렀다.
“제이야.”
“응?”
“나 사랑해요?”
“그럼요.”
당연히… 사랑한다.
그녀의 고운 마음씨도.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외모도.
그리고 나를 사랑해주는 정성까지도.
“얼만큼.”
“유나만큼 땅만큼.”
“하늘이… 아니라?”
아내의 볼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유나가 내 우주잖아요.”
또르르.
맑게 웃는 그녀의 눈에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나도, 사랑해요. 아주… 많이…….”
나는 유나가 또, 여자를 유혹하는 내 고유능력이 걱정되는 건가 싶었다.
그녀를 달래주고 싶어, 어젯밤에 사랑을 나누며 했던 약속을 언급했다.
“걱정하지 마요. 나는 평생 유나 한 사람만 사랑할 거니깐. 할머니가 되어도 평생 유나랑만 그거 할 거에요.”
“아하하하!”
유나가울다가 웃었다.
“왜 웃어요?”
그녀가 어이없다는 듯 손가락으로 내 코를 쥐고 흔들었다.
“이 바람둥이야! 못 지킬 약속은 아예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다른 건 몰라도 이건, 못 들은 걸로 할게.”
“유나 지금 나 무시해요? 나 약속 엄청 잘 지키는데.”
“됐. 거. 든. 요? …나 이제 잘래!”
유나가 하품을 하며 눈을 감았다.
나는 승무원 누나에게 담요를 부탁해 그녀를 덮어주고, 내 몸도 덮었다.
‘졸리긴 정말 졸리다….’
어젯밤에 이어 오늘 아침까지.
섹스를 너무 너무 많이 했다.
정말 지인짜로 많이 해서, 사실은 이렇게 누워만 있어도 눈이 절로 감겼다.
‘그래도 안 돼! 유나가 자는걸 보고 자야 돼. 어젠 내가 먼저 잤잖아.’
고개를 흔들었다.
“유나. 자요?”
“응, 나 자요…. 근데…… 잠이, 잘… 안 오네……?”
자리가 불편해서일까.
피곤한 몸임에도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듯했다.
그녀의 귓가에 소곤소곤 속삭였다.
“유나. 내가 재워줄까요.”
“어떻게?”
“자장가 불러줄게요. 우리 하리도 엄청 예민한데, 그러면 바로 자더라구요.”
“…….”
유나가 내 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침대 의자에 누워 그녀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내 가족을 위한 노래를 불렀다.
―개나리 노란 꽃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는 꼬까신 하나
―유나는 사알짝 신 벗어 놓고
―맨발로 한들한들 나들이 갔나
―가지런히 기다리는 꼬까신 하나
잠결에도 생긋 웃는 내 아내와 함께.
언젠가 들른 적 있었던.
먼 바다에 있는 낙원으로.
또 여행을 떠나는.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