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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화 〉100. 제이의 라이벌 등장(6) (100/145)



〈 100화 〉100. 제이의 라이벌 등장(6)

―딸랑

현관문을 열고 들어갔다.
로비 소파에 둘러앉은 신연의 멤버들이 나와, 내게 손을 잡힌 소피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소, 소피아? 안녕. 제. 제이두….”

이미 안면을 있는 부부장 미아 파레스가 손을 흔들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하지만 부장인 낸시의 반응은 달랐다.

“총무는 지금 어떤 목적으로 임시 사용인인 안드로이드 소피아를 부실에 데리고  것인지 설명하도록 한다.”
“견학. 유로파인의 지구 헌터 아카데미 내 동아리 활동 견학.”
“안된다.”
“왜.”
“신연은 신성한 곳이다.”
“잠깐만 소피아?”
“네, 주인님.”

소피아의 손을 놓으며 다른 부원들을 바라보았다.

“…….”
“…….”

안타까운 점은 나와 눈이 마주친 서윤이가  즉시 눈을 돌려버렸다는 것.
다행히 미아와 라라가 도움을 주었다.

“나, 나는… 괘,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응. 유로파인들은 약속을  지키지. 비밀 엄수 서약을 하면 되지 않겠니.”

애매하게 찬성하는 미아와 절대로  편인 라라가 그리 말해준 것이다.

“안 된다.”

그러나 낸시는 단호했다.
녀석이 검정 뿔테 안경을 고쳐 쓰며 변명할  없는 명분을 들이밀었다.

“평상시라면 부실 견학 정도야 허용해줄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정기 모임이다. 너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부외자를 사전 연락도 없이 회의에 데려오다니. 총무는 우리 신연을 놀이터로 보는 것 같다.”
“…놀이터가 아니라―.”

잠시 말을 골랐다.
낸시와 이런 종류의 언쟁이 벌어지면 많은 경우 내가 이겨왔지만, 이번에는 내 잘못이 맞아서 변명이 궁색했다.

‘젠장. 어쩔 수 없나.’

힐끔 소피아를 돌아보며 사인을 주자,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낸시. 들어봐.”

소피아를 데리고 소파에 앉았다.
나의 메이드는 마치 나를 수행하러온 듯, 손을 아랫배에 붙인  내 뒤에 조용히 기립했다.

“소피아는 이번 3월의 연구주제인 청송미술관 괴이 사건의 무관계자가 아니야. 알다시피, 『101명의 창부들』의 신이 현상과 관련한 데이터를 제공해준 장본인이지. 우리의 3월 연구결과를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보고서와 마이튜브를 보면 된다. 업로드를 하기 전, 사전 허락과 검토를 위해 리샤르 재단과 소피아에게 연락을 취할 예정이었다.”

낸시가 더는 언쟁이 필요 없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피아. 너의 바보 같은 주인 때문에 미안하게 됐다. 견학은 다음 기회에 하는 편이 좋겠다.”
“…….”

낸시의 말에서 완고함이 느껴졌다.
얼굴이 시무룩해지려던 참이었다.

“소피아의 주인님께서는 바보가 아니십니다.”

나의 메이드가 낸시 못지않은 포커페이스로 그녀에게 항의했다.

“오히려 무척 영민하신 편이십니다.”
“친애의 감정이 동반된 은유적 표현일 뿐이다.”
“은유. 범인류종이 즐겨 사용하는 수사적 표현이로군요. 그렇다면 한낱 무기물에 불과한 이 메이드는 직설적으로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소피아가 가지런한 자세로.
신연에 핵폭탄 두 개를 투하했다.

“『101명의 창부들』은. 위작입니다.”

“또한, 신연 여러분들의 연구 대상이 된 해당 위작 그림의 원본은 현재 제가 소유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 방에 있지요.”

나를 포함한 신원 부원들 모두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나까지 놀라버린 이유는  게 아니다. 지금 소피아가 말한 저 내용은, 사전에 말을 안 맞춰놓은것이었기 때문.

“…저, 정말… 이니?”

미아가 예쁜 황금색 눈을 커다랗게 뜨며 모두의 심경을 대변했다.

“전자 바다 어머니의 이름을 걸고. 그렇습니다, 미아 파레스님. 여러분들께서 3월의 연구주제로 삼으셨던 『101명의 창부들』은 위작입니다. 정확히는 4년 전에 제가 그려낸 모작이지요.”
“소피아 네가?”
“네. 전후사정을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라라의 질문을 받은 소피아가 구체적인 연유를 설명했다.
나는 리샤르 가문의 명령으로 그림을 모작한 소피아의 이야기를 다시 들으며, 의문에 사로잡혔다.

‘그러고 보니까 소피아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거지? 리샤르에서 보안 유지 서약을 하라고 했을 텐데.’

해답은 메리가 건네주었다.

[형법  재산권과 관련한 문제겠지. 유로파에서는 특정 상황에 한해서 서약을 어기는 것을 허용한다. 위작 그림은 소피아의 것이고, 위작을 전시한  자체가 사기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이니 예외적으로 가능한 케이스에 해당한 게 아닌가 싶다. 전제가 완전히 잘못된 약속은 지킬 필요가 없다는 논리야.]

내가 메리와 지방방송을 틀고 있자, 지금까지 가만히 듣고 있던 주임 연구원 서윤이가 모두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우리 3월 연구는… 어떻게 되는 거에요?”
“마, 망해… 따아……!”

부부장 미아가 까만 니캅에 덮인 머리를 감싸 쥐며 한 줄 요약을 했다.
수석 연구원 라라가 소녀에게 물었다.

“그 그림.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겠니.”
“물론입니다.”

소피아가 메이드복 앞치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그림의 현재 상태를 보여주었다.


비네가 내게 봉인당한 뒤.

온통 하얀 물감만 가득한.

『처녀작』의 모습을.

“해당 신이 현상은 그림이 온통 하얗게 변한 이후로 완전히 증발했습니다.”
“…….”
“…….”
“…….”
“…….”

새롭게 나타난 괴이를 목도한 신연 부원들이 일순간 침묵에 빠졌다.

“소피아.”
“네, 낸시 드레이크 블랙베리님.”

우리의 리더가 빠른 결단을 내렸다.

“신연 정기 모임에  걸 환영한다.”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한, 발언을 정정한다. 너의 주인은 바보가 아니라 복덩이였다.”

KO승을 거둔 나의 귀여운 메이드가.
그제야 옅은 미소를 입에 올렸다.

“그럼요, 부장님.”


**

3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신연 정기 모임은 아주 활기찼다.

“소피아! 그럼  통계는 어떻지?”
“1.7의 계수를 가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해당 상수를 적용한 추정 유력지는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이겠군요.”
“빠르, 다…! 너, 너무, 빠, 빨라!”
“소피아. 그럼  사진에 촬영된 미확인 비행물체는 어떻게 생각하니?”
“합성입니다.”
“무지 단호해!”

아름답기 그지없는 ―우리 미아도 눈이 예쁘다!―  여자가 쪼그맣고 사랑스러운 메이드 소녀를, 굴러들어온 보물 취급해주며 사랑해준 것이다.

‘잘 됐네. 아주 훈훈해. 훈훈한데….’

나는 노잼이었다.

3월 연구주제였고 이제는 비공개 연구주제로 전환된 『처녀작』 건이야, 이미 진실을 알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그냥 쉰다고 생각해라.]
‘쉬긴 뭘 쉬어 시험 기간이잖아. 이럴 시간에 과제 하나를 더 했겠다.’
[그건 ㅇㅈ]

신연 자체는 이제 정이 붙어서 괜찮다. 그치만 시험 기간 전 주까지 이렇게 빡센 모임을 하는  나는 상당히 불만이었다.

‘기숙사가 같아서 얼굴을 맨날 보니까 도망도 못 치고 젠장…. 무슨 동아리 활동을 일주일 내내 하는 기분이야.’

내 꼴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후우….”
“총무는 한숨 쉬지 않는다앗!”

낸시가 둘둘 말린 A4뭉치로 내 머리를 퉁 치며 지나갔다.
발걸음이 통통 튀고, 타이트한 하늘색 돌핀팬츠 안으로엉덩이가 씰룩씰룩 움직이는 걸 보니까 기분이 끝내주는 듯.

‘남의 속도 모르고. 니넨 3학년 졸업유예자라 시험 없다 이거지?’

 모습이 고까워서, 낸시가 먹으려고 빼놓은 빵을 ―서윤이가 가져온 삼원그룹의 시제품이다― 스틸해버렸다.

“야!”
“왜! 이게 니 꺼냐?”
“총무는 죽고 싶으면 먹는다!”
“죽여 봐!”

짧은 추격전 끝에, 슈크림 빵을 내게 빼앗긴 낸시가 눈을 흘겼다.

“총무가 오늘따라 심술을 맞다! 너는 분명 국밥충이라 빵에 관심이 없었다!”
“밥이 없으면 빵을 먹는 거지.”
“말 한 번 잘했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고, 연구주제가 붕 떴으면 다른 건수를 파고들면 된다.”

낸시가 ‘너 잘 걸렸어’는 투로 팔짱을 꼈다. I컵 폭유 두덩이가 봉긋하게 강조되는 것을 피해 빠르게 눈을 돌렸다.

“뭔 말을 하시려고.”
“파견 조사 건이다.”
“또?!”
“이거.”

그녀가 돌핀팬츠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입장권 두 장을 건넸다.

〓〓
아인체의 신비전 - 부산 벡스코
〓〓

아인체亞人體의 신비전이라.
이거 그거 아닌가?

“야, 이거 인권단체에서 요즘에 난리 피우는 그거 아니야? 아인종들 시체 가지고 전시하지 말라고.”
“맞다.”

낸시가 소피아 근처에서 신나서재잘거리는 미아, 라라, 서윤을 바라보며 본론을 꺼냈다.

“소문이 있다. 신비전에 전시 중인 아인체가 어디서 나왔는지에 대한.”
“설마 너  소문을 믿는 거야?”

나도 대충은 안다.

아인체의 신비전. 아인종들의 인체 표본을 전시하는, <시체 전시전>이다.

이 신비전은 무려 내가 초등학생 시절부터 몇 년에 한 번씩은 열려왔을 정도로 아주 유명했다.
청송 미술관에서 열린 래리 도우만 전시전과 비교도   정도로 크게.


―유명 헌터 클랜의 노예들이었다.

―실종된 중국 묘인족 아나운서가 살해된 뒤, 그 신비전에 전시됐다더라.

―마피아 클랜 항쟁에서 휩쓸린 조직원들을 전시하는 것이라더라.


뭐 이런 소문들이 도는 신비전이다.
하도 유명한 루머라서 인터넷을  안 하는 나조차 알고 있을 정도.

―툭

낸시가 테이블 위에 올려져있던 검은 카메라를 내게 안겼다.

“신비전 내부를 찍어오는 것. 그것이 이번 총무의임무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들에는 새로 추가된 시체가 없다.”
“…지금 나보고 도촬을 해오라는 거?”
“물론. 그리고 안심해도 좋다.”

그녀가 두 장의 입장권 티켓을 내 생도복 주머니에 넣으며 피식 웃었다.

“이번에는 동료도 함께니까.”


**


동료. 동지. 파트너.
부산 벡스코에서 아인체의 신비전을 함께 도촬해 줄 신연의 부원이란 바로.

1팀의 육서윤 주임 연구원이었다.

‘젠장 하필 지금…. 어색해 죽겠는데.’
[천생연분이시구만ㅋㅋㅋㅋㅋ]

당장 시험이 다음 주인 금요일 오후.

육서윤과 만나 제주공항으로 가기 위해 아카데미 정문으로 향했다.

“제하! 어디 가냐?”

가다가 마주친 아이웨이가 핫도그를 처먹으며 말을 붙여왔다.

“부산. 무려 2박 3일 일정이시다.”
“…엥? 설마 너  파견인가 뭔가 그 짓거리 하러 가냐?”
“그래. 이번엔 아인체의 신비전.”
“큭큭큭큭큭! 알겠다, 알겠어!”

신나게 쪼갠 아이웨이가 실눈을 더욱 가늘게 뜨며 어깨동무를 해왔다.

“제이야. 이거 우리 형이 말―.”
“꺼져! 이 또라이 같은 새끼야!”
“아 왜애!”

나는 이제 아이웨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팥쥐로 젓갈을 만들었다고 해도 안 믿을 생각이었다.

“이번에는 진짜야. 이 대형 못 믿어?”

따꺼는 지랄….
나는 어디 한 번 짖어보라는 얼굴로 걸음을 멈췄다.
아이웨이가 아주 무시무시한 진실을 말해주겠다는 듯, 목소리를 쫙 깔았다.

“야, 부산 연쇄 살인마 있잖아.”
“!”
[띠용?]

나랑 메리가 동시에 놀랐다.
놈의 입에서 전시전 도촬보다 더 중요한 목표인 그년의 화제가 나왔으니까.
악마 군주의 숙주인, 연쇄 살인마.

“…어, 근데? 걔가 뭐.”
“그 새끼가 원래는 아인체의 신비전에 전시될 예정이었던 년이었대.”

 이건 음모론의 일환이겠고.
일단사실로 가정해보자.

“그래서. 걔가 어떻게 살아서 남의 모가지 따고 돌아다니는 건데?”
“냠냠. 그야 나도 모르지?”

아이웨이가 핫도그의 케첩을 핥아먹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더 없나 싶어 물어봤다.

“오늘의 개소리는 그게 끝이냐.”
“뻥 아니야. 이거 흑사신 오피셜이야. 지금 삼합회 분위기 씹창 났어.”
“삼합회가 지금 부산에 있는 그년 때문에  난리가 나.”
“그건 진짜 비밀. 너한테도 말 못 해줘. 형이 말하면 죽인댔어.”
“알았다.”

정문을 향해 걸음을 빨리했다.
아이웨이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애가 닳았는지 옆구리를 쿡쿡 찔러왔다.

“안 궁금해?  궁금하냐고.”

엄청 궁금하다. 사실이든 이번에도 구라든, 타깃의 정보를 얻을  있는 기회이긴 했으니까.
하지만 아이웨이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어. 안 궁금해”
“이 씹새끼 진짜 존나게 도도해요. 그냥 한 번 알려달라고 매달려봐라 쫌!”
“가 임마. 너네 형 곤란해질 얘기 꺼내지 말고.”

어깨를 흔들어 아이웨이를 떨쳐내고 정문으로 걸었다.
멀리서부터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 서윤이의 모습이 보인다.

“야, 김제이! 부산 가면 몸 사려!”

아이웨이가 발을 돌리기 전,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곤  등에 대고 비밀 정보를 얘기했다.

“그 썅년 혹시라도 만나게 되면 괜한 정의감 발휘하지 마라! 그년삼합회 후계자 죽이고  년이야! 존나 쎄대!”

삼합회 후계자를 죽이고 튀었다라.

[사실이라면 분위기 좆창날 만 하군.]

고개를 돌려 끄덕여주었다.

“걱정하지 마.설마 마주치겠냐.”
“그건 그래 씨발, 부산이 얼마나 큰 도신데 큭큭! 아시아 최대 항구에서 그년이랑 니가 어떻게 마주치겠냐. 경찰도 못 찾는 마당에. 나 간다!”
“잘 가! 월요일에 보자.”
“김제이 씹새끼야, 일요이일!  밤에  문제 찝어준다매.”
“알았어.”

아이웨이와 작별하고 서윤이에게 갔다. 그녀는 어떤 여자와 방긋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수녀님이시네.’

보기만 해도 경건한 마음이 드는 검은 수녀복과반듯한 이마를 가린 하얀  아래 검은 베일.
서윤이의 대화 상대는 누가 봐도 여자 수도사임을 알 수 있는, 수녀였다.

“네에, 수녀님. 덕분에 저희 어머니도 좋은 곳 가셨을 거에요.”
“아니에요. 미다 자매님과 어머님이신 유니아스 자매님께서 워낙 신실한 신심을 품고 계신 덕이겠지요.”
“감사합니다. 아, 잠깐만요? …오빠.”

나를 발견한 서윤이가 아는 체를 해왔다.
가볍게 손을 들어주어 대화를 끊지 않도록 배려해주자, 뚜렷한 서양인 이목구비를 가진 아주 젊고 예쁘장한 수녀님께서.

“안녕하세요. 형제님.”

내게 인사를 건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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