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화 〉105. 제이의 라이벌 등장(11)
10번째 희생자를 발견한 사상구에서, 타깃을 찾아 부산항으로 가는 길.
“팀장님께서도 72 악마 군주에 대한 내용은 아실 겁니다.”
나는 나를, ‘예드디야의 72악마를 잡는 악마사냥꾼’이라고 소개했다.
물론, 그가 몰라도 되는 부분들은 ―봉인 방식 / 권능 추출 사실 /아서왕과의 연관성 / 메리의 존재 등― 하나도 발설하지 않았다.
“72악마의 사냥꾼…?”
“네. 주로 여자들 속에 숨어드는 고약한 놈들이죠. 예를 들어드릴게요.”
나는 중요한 진실 하나를 그에게 털어놓기로 결심했다.
비밀을 공유하게 된 이상, 앞으로 그에게 조력을 구할 일이 잦아질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서윤이. 서귀포 F급 관광형 균열 던전에서 내균열 사태가 벌어진 거. 그게 서윤이 속에 숨어든 악마 군주 때문이었어요. 운 좋게 옆에 있던제가 봉인했기 때문에 바로 수습된 거죠.”
“…아아! 그래서 내균열 규모치고 빠르게 원상복구가 된 거구나! 완전 미궁에 빠진 사건이었는데, 후배님 덕에 이렇게 진실을 알게 되네.참나….”
핸들을 잡은 이정엽의 얼굴이 당혹스러움이 깃들었다.
그가 뛰어난 헌터일수록 이 사실은 충격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으니까.
“내균열 진화를 유도할 정도로 강력한 놈들이라니…. 이거 진짜 큰일이다.”
“그래서 제가 있는 겁니다.
시트에 몸을 묻고 카키색 바람막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저는 각성을 조건으로 악마 사냥꾼이 되었어요. 대신 악마를 계속 사냥하지 않으면 각성 상태를 유지할 수 없죠. 잡기 싫어도, 잡아야 합니다.”
거짓말이다. 공상계 진입만 못할 뿐, 메리가 있든 없든 나는 헌터다. 하지만 이 정도 연막은 쳐놓기로 했다.
고의적으로 약점을 보인다는 거지.
“특수한 고유능력이 있나 보구나. 그래서 악마 사냥꾼으로 선택 받았나봐?”
정보를 캐내려는 이정엽에게 적당한 떡밥을 던져주었다.
“맞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대현자’라고 부르는 분께 간택 받았죠.”
[에헴ㅋㅋ]
“현자님의 승인 없이는 원령을 초환하거나 범인을 찾을 때 쓴 그런 능력을 사용하지 못 해요. 권한이 없거든요.”
이것도 뻥이다. 메리는 내 파트너이자 조언자지, 감독관이 아니었으니까.
“말 꺼내기 어려웠을 텐데 사실대로 말해줘서 고맙다.”
이정엽은 확실히 강령술사다웠다.
일반 상식으론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을 자연스럽게 납득했으니까.
나는 그가 첫인상보다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하며, 농담을 건넸다.
“이번처럼 또 도움 받으려고 말한 건데요 뭐. 앞으로 많이 도와주세요.”
“하하! 나야 좋지. 후배님의 비밀은 걱정 마. 나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고 싶으니까. 이거 보이지?”
손등에 남은 검은 문신 같은 <강신의 맹약>을 들어 보인 이정엽,
그가 내게 보너스를 쥐어주었다.
“후배님. 우리가 곧 조져버릴 그 썅년 있잖아?모습을 막 바꾸는 년.”
“네.”
“그년은 ‘원래’ 삼합회 후계자야.”
“…예?!”
범인이 삼합회 후계자라니.
아이웨이는 삼합회 후계자가 부산 살인마한테 죽었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소리야. 또 아이웨이가 아이웨이 한 거야? 이런 개 같은!
―부우우웅
신호가 넘어가자 부산항 안으로 진입한 검은 세단이 서행으로 전진했다.
이정엽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러나 내용은 가볍지 않은 비밀을 꺼냈다.
“홍콩이랑 광저우 경찰. 그리고 내 개인적인 라인으로 정보를 받았지. 그년은 ‘원래’ 삼합회 회장 딸이었다고 해.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천천히 미쳐버렸다고 하더라고.”
“어떻게요.”
“식인食人.”
39위 악마 군주 말파스. 그의 숙주가 바로 삼합회 마피아의 딸이었구나.
‘왜 후계자가 남자일 거라고 단정했을까. 이건 내 실수다.’
고정관념이 만들어낸 오해였다.
“처음에는 태아를 먹었대. 퉷―!”
이정엽이 창밖으로 껌을 뱉은 뒤, 진지한 얼굴로 비사를 공개했다.
“인간 태아. 아인종 어린아이. 그리고 종래에는 아인종 성인과 일반인까지. 나중에는 지 남자친구까지 죽인 다음 먹을 정도로 완전히 돌아버린 거야.”
“…악마 군주의 영향일 겁니다. <피륙의 만화경>이라는 권능의 영향이 살인과 식인 충동을 부추긴다고 해요.”
“그것만이면 다행이지.”
―뿌우우우우우
―뿌우우우우우
이 팀장이 커다란 컨테이너선들이 정박한 부산항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지난 달 초부터였나? 그때부터는 식인 수준을 벗어나서, 주변인들 모가지를 척추부터 뽑아버렸다고 하더라고. 그리고 그걸 검처럼 휘두르면서 민폐를 끼치고 다녔다나 뭐라나.”
정황을 대충 알겠다.
“39위 말파스의 숙주가 식인을 하다가, 38위 할파스의 숙주를 먹어버린 것 같아요. 그래서 두 악마 군주의 권능이 한 숙주에게 병합된 거죠.”
―끼이이익
텅 빈 부산항 주차장에 차가 멈췄다.
“삼합회 짱깨 씨팔놈들!”
이정엽의 반듯한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그런 개년을 족쇄도 안 채우고 부산으로 출장까지 보내?! 그래놓고 사고 치니까 지 딸을 아인종 노예가 죽였다고 사망신고까지 해서 나 몰라라 하고?! 이런 천벌을 받을 개새끼들…!!”
나와 함께 차에서 내린 이정엽.
그가 트렁크에서 고풍스런 목검과 불진을 꺼내며 이를 갈았다.
“리차오란. 넌 오늘 여기서 죽는다.”
“피해자를 본국으로 인도? 좆까.”
이정엽 팀장의 마음을 알았다.
‘리차오란을 어렵게 잡아봐야 삽합회 품으로 돌려보내게 될 뿐이니 그냥죽이려는 거구나. 정말 잘 됐다.’
나로서는 100% 바라는 바다.
권능 추출을 포기하더라도 악마를 봉인하려면, 죽이는 게 가장 쉬운 방법.
“같이 가요.”
허리춤에서 나의 전용무기인장창을 꺼내 조립했다. 희망원 원장님께서 입학 선물로 물려주신, 자신의 두 번째 애병을.
―콰직. 철컥!
―콰직. 철컥!
프레이야의 특산 광석인 미스릴이 3%나 함유된 잠금쇠가 본래 셋이었던 창을 하나로 이었다.
원래부터 장창이었던 것처럼 견고하게 조립된 나의 무기를 쥐었다.
‘보인다.’
이정엽을 통해 타깃의 정보를 훨씬 구체적으로 파악했기 때문이었을까.
[▶ 시동]
[▶대상 <리차오란>의 현재 위치: 태원조선해양 물류창고 2동.]
썅년의 위치가 한순간에 드러났다.
“태원조선해양 창고가 어디에요?”
“몇 동.”
“두 번째 꺼.”
“후배님.”
이정엽이 냉정한 얼굴로 경고했다.
“지금부터 나는 경찰이 아니야. 그래서 본부에 지원 요청도 안 했어. 쫄리면 지금 돌아가. 후배님이죽어도, 난 모른 척할 수밖에 없어.”
“그건 저도 마찬가진데요. 저도 지금부터 지구인 안 할 겁니다. 현대 사회 법 지키기 너무 빡세잖아요.”
“지구인 안 하면 어디 사람할 건데.”
“글쎄. 공상계?”
내가 농담처럼 공상계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자, SS랭크에 한없이 가까운 지고의 강자 이정엽의 눈이 가늘어졌다.
“…하긴. 명색이 악마 사냥꾼이신데 그렇게 나오셔야지. 무려 공상계의 존재를 알고 계신 후배님이시니, C랭크 헌터여도 한 수가 있을 거라 믿는다. 잘 따라와 봐.”
“걱정 마세요.”
―파박!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발을 구른 이정엽의 몸이 내 시야 끝에 닿았다.
말이야 따라오라고 했지만 C랭크 생도에 불과한 날 떼어놓으려는 속셈.
‘더럽게 빠르네.’
1.2초? 겨우 그 정도나 됐을까.
S++랭크 초인의 실력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는 어마어마하게 빠른 속도로 어두운 부산항을 달리고 있었다.
[▶ 뇌신 lv.1> 시동]
[▶마력 60 -> 50]
나 또한 어느새 이정엽이 그림자만 남은 부두 반대편을 향해 몸을 날렸다.
몸이 엿가락처럼 길어지는 감각과 인식을 초월하는 기묘한 느낌이 오감을 잠식했을 무렵.
―탓!
나는 그와 마주볼 수 있었다.
“후우…….”
“오! 진짜 빠른데?”
근 500m가 넘는 거리를 단 한순간에 따라잡힌 이정엽이 날 보며 빙그레 웃었다.
“제이 너 사실은 SSS급 도사 아니냐. 무슨 축지법을 쓰고 그래.”
“자주는 못 써요. 그니까 천천히 좀 가요. …아, 현기증 나.”
“그 정도면 제 한 몸은 빼시겠구만. 내가 발릴 거 같으면 바로 튀어서 우리 팀에 지원 요청해. 112 말고, 알지?”
“제가 바봅니까.”
이정엽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던졌다.
나는 호주머니에 이를 깊숙이 넣고, 아까보다 천천히 달리는 그의 등을 쫓았다.
**
인적이 전혀 없는 토요일 밤 9시 경.
부산항 깊은 곳, 거대하기 짝이 없는 태원조선해양 창고 근처는 을씨년스러웠다.
―타다다닥
내 운동화와 이 팀장의 구두가 비린내 나는 콘크리트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고요한 항구를 알싸하게 울렸다.
나의 파트너에게 물었다.
‘메리. 근데 너 아까부터 되게 조용하다?’
[음? 네놈은 잘 하고 있다. 정말로.]
녀석은 늦은 오전.
정확하게는 이정엽 팀장과 조우한 이후부터 말수가 극도로 줄어들었다.
나는 그 점이 꺼림칙했다.
‘그냥 말 해. 이제 곧 전투야.’
숨이 한계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리며 캐물었더니, 메리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우려하는 점을 말했다.
[끄응…. 저 강령술사 놈에게서. 악마 군주의 희미한 냄새가 난다.]
…뭐라고?!
[그런데 흔적이 너무 너무 옅어서, 사건 현장을 자주 방문해서 잔재가 묻은 건지. 아니면 정말로 숙주의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 전혀 분간이 안 돼. 더구나 맞는다고 해도 절대악 계열은 아닐 가능성이 백퍼센트다.]
‘팀장은 남자잖아. 아까 오줌도 같이 쌌는데.’
이정엽은 100퍼센트 남자다. 아까 소변을 누면서 고추도 봤다.
꽤 컸는데 나보다는 작아서, 그가 내 껄 보며 경악을 한 기억이 생생했다.
[쎅쓰. 그래서 이 몸께서도 말을 삼가고 관찰만 했던 거다. 더구나 뛰어난 강령술사이니 이 몸의 존재를 혹시 감지할 수 있을까 했거든.]
‘이정엽이 뒤통수를 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영혼이 아주 깨끗해. 신대에 태어났으면 용맹하고 신의 있으며 자비로운 영웅으로 이름을 날렸을 걸?]
‘그럼 됐어. 나중 일은 나중에.’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민중의 지팡이 이정엽에 관한 걱정은 리차오란을 족치고 나서 해서 늦지 않다.
[파트너. 아무 걱정마라.]
메리가 기분 좋다는 듯 우웅, 떨며 나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오늘은 예감이 무척 좋아. 이런 날은 절대 낭패를 보지 않았었다. 이 몸을 믿어. 오늘밤은 정말 그립고도 신나는 기분이 드는, 그런 날이다.]
‘그래. 어차피 절대악 계열도 아니라며. 걱정 안 할게.’
초조해할 필요 없다.
인간 이정엽은 믿을만한 인물이니까.
또한 지금까지의 경험 상, 절대악 계열이 아니면 아무리 악마 군주들이라고 해도 호전적인 놈들만 있진 않았다.
―타닥!
나와 이 팀장의 발이 동시에 멈췄다.
“연다.”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거대한 철제문이 열렸다가.
이내 닫혔다.
―쿠우우우우웅!
그리하여 도착한, 셀 수도 없이 많은 철제 컨테이너들이 가득 쌓인 전장.
―<오라. 달빛을 머금은 바람이여.>
주술적 의미가 담긴 시동어를 읊은 이정엽이 자신의 주무기인 칠흑색 목검을 대각선으로 휘둘렀다.
그의 주변에 질풍이 불기 시작했다.
―화아아아아아아앗!
왁스 발린 그의 리젠트 머리와 정장 재킷이 사정없이 위로 솟구쳐 올랐다.
강령술 준비를 삽시간에 마친 이정엽이 목청을 크게 키웠다.
―<이리 오너라, 태고적의 아귀야!>
거대한 창고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사자후였다.
‘인트로 좀 틀고 들어오라고!’
목청에 담긴 마력이 어마어마해서, 나는 잠시 창을 겨드랑이에 끼운 채 전신에 마력을 돌리며 귀를 막아야 했다.
파마破魔의 힘을 머금은 사자후는 계속 이어졌다.
―<예드디야에게 욕 당한 악마들아!>
―<무에 두려운 것이 있어 쥐새끼처럼 어둔 골방에 틀어박혀 있는가!>
―<너희 군주들도 부끄러움을 안다면 죄 없는 양들일랑 관심 말고 자웅을 겨룰 상대를 사냥감으로 삼아 보거라!>
지이이이이잉― 하는 이명이 창고 전체를 진동시켰다. 독특한 마력 파장을 머금은 사자후에 반응한 걸까.
‘저기다!’
창고 구석에서.
청바지와 후드티의 평범한 차림을 한.
여자가 나타났다.
“킥… 킥킥… 킥킥킥킥킥킥!”
그녀는 나와 이정엽 팀장이 아까 발견한 10번째 피해자인. 30대 여성 헌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킥킥킥킥킥킥킥킥!”
뭐가 그리 웃긴지 배를 움켜쥐고 웃는 그년.
즉, 말파스와 할파스의 공동 숙주이자 삼합회 마피아 회장의 딸인 <리차오란>.
그녀가 우리에게 물었다.
“와아~ 능력들 지인짜 좋으시다! 날 대체 어떻게 찾으셨대?”
“퀴즈쇼 나왔냐.”
대답은 내가 했다.
허벅지 포켓에서 투창용 소형 자벨린Javelin을 뽑았다. 마력은 싣지 않았지만, 모든 근력을 실어 던졌다.
―차작!
쾌속으로 허공을 날아가는 자벨린이 대기 중의 마찰로 접혀진 하단을 폈다.
화살처럼 쏘아진 투창은 이내 리차오란의 이마에 닿으려했다.
“킥킥! 대답 좀 해줘, 새끈한 동생.”
까앙! 소리와 함께 자벨린이 컨테이너에 부딪혔다.
C랭크치고 안목이 꽤 좋은 나인데, 어떻게 쳐낸 건지 보이지도 않았다.
차에서 내리기 전, 이정엽이 말해준 리차오란의 무력은 추정 S+급. 이년의 실력은 허언이 아니었다.
“후배. 아까 해준 말 명심해.”
이정엽이 내 앞으로 나왔다.
어그로를 자신에게 돌리려는 속셈.
‘방해하지 말자.’
판단을 마치고, 뒤로 빠르게 물러서 창고 출입문을 열었다.
내가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채비를 마치자, 이정엽이 리차오란에게 칠흑의 목검을 겨눴다.
“리차오란. 너는 법정에 갈 수도 없고, 변호인도 선임할 수 없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으니 대리 진술도 불가능하지.”
“잘생긴 오빠. 그럼 난 뭘 할 수 있는데?”
―화아아아아앗!
S++랭크 헌터이자 강령술사인 이정엽의 등 뒤로 폭발적인 후광이 쏟아졌다.
―{묵비권은 행사하게 해주마.}
그의 검은 리젠트 머리가 순식간에 허리까지 길어졌고, 쾌남형의 미남 얼굴을 제외한 온몸에 붉은 기가 감도는 새털이 자라났다.
신체 변화까지 유도하는, 최고 수준의 강신술이었다.
―{뒤진 새끼는. 말이 없는 법이니까.}
S++헌터 이정엽이 섬광처럼 쇄도했다.
뇌신 lv.1>보물찾기 lv.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