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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7화 〉107. 제이의 라이벌 등장(13) (107/145)



〈 107화 〉107. 제이의 라이벌 등장(13)

황금여명십자회 Hermetic Order of the Golden Cross Dawn 제1계위 First Order 실천자 Practicus.

나는 이것의 의미는 모른다.

다만 시스터 킬리가 지금 무엇을 하려는 지는 똑똑히 알겠다.

―사락

킬리 퍼시벌이 자신의 수녀복 하의를 벗어버렸다.
커피색 스타킹이라고 해도 믿을 타이츠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길고 아름다운 각선미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본인만의 특별한 무장인 건지, 진갈색의 타이츠에서 독특한 힘이 느껴졌다.

상의는 검은 수녀복.
하의는 개꼴리는 커피색 타이츠.

배덕감을 느끼게 하는 하의실종 차림이 된 킬리 수녀가 베일을 벗어던지며 단탈리온을 응시했다.

―『주님의 은총으로 속죄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않으며. 죄지을 기회를 피하기로 굳게 다짐하오니.』

길고 풍성하고 예쁜 붉은 머리가 눈을 어지럽혔다.
킬리는 자신의 적발을 포니테일로 묶으며 기도문을 외웠다.

‘설마… 진짜 하려고?’

나는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봤다. 어차피 마력 탈진에 가까울 정도로 지친 터라 움직일 수도 없었다.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기도를 마친 시스터 킬리.
그녀의 두껍고 탄탄하며, 그래서  야한 허벅지에 선명한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화아아아아아아아

킬리 수녀의 꼴리는 몸과는 별개로, 그녀의 등 뒤에 어쩐지 경건한 마음이 들게 하는 광휘가 솟아올랐다.
그녀의 발뒤꿈치가 들림과 동시에, 조금의 흔들림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멘Amen.』

킬리 수녀의 말은 그녀보다 느렸다.

눈에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게 빠르게 쇄도한 그녀가, 어느새 몸을 일으킨 단탈리온의 정수리를.

―콰아아아아아아앙!

공중 내려차기로.
찍어버린 것이다!

―{너는…!}

단탈리온이 검강을 두른 목검으로 이를 간신히, 정말 간발의 차로 막았다.
아까 빛의 십자가에 맞아 부러진 뿔에서는 검은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너! 너는 그녀의 자손이로구나! 그렇지? 어서 대답해다오!}

시스터 킬리는 악마에게 대꾸하지않았다. 그녀는 현란하면서도 무척 간결한 스텝으로 단탈리온의 검을 피하며 그의 요혈을 타격해갔을 뿐.

‘진짜 존나… 잘 싸운다.’

킬리 수녀는 정말 강했다.

맨손 격투를 잘은 모르지만, 권투-킥복싱-시스테마-태권도-절권도-합기도 등 내가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모든 종류의 입식격투기술이 그녀의 움직임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었다.

S++급인 이정엽의 몸을 차지하고 있는 단탈리온을 압도하는 걸로 봤을 때, 최소 S랭크의 실력자인 것으로 보였다.

―펑! 퍼어어벙! 퍼엉! 펑펑!

특히, 펀치가 정말 무거웠다.

―{크윽…! 과연……! 그녀의, 힘!}

글러브를   하얀 광채를 내뿜는 시스터 킬리의 주먹이 단탈리온에게 쏟아질 때마다, 그는 마치 포탄을 맞은 것처럼 휘청거렸으니까.

―퍼어어어어어엉!

결국, 불과 5분도 되지 않아 승부가 났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

인간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권능을 가진 단탈리온의 복부에.
킬리가 라이트 어퍼컷을 꽂아버리고 만 것이다.


―『오소서, 성령님.』

시스터 킬리가 기도문을 외웠다.

그녀의 백색 후광이 깃든 등에서 어마어마한 힘이 태동했다.

흡사 하얀 태양이 떠오르는 광경.

‘저게 뭐야?!’
[신성력이다! 거의 SSS급 신성력!]

어느새 내 옆으로 돌아온 메리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댔다.

[지금 보이는 출력으로봤을 때, 악마나 언데드 대상으로는 SSS급에 준하는 효과가 있을거야! 존나 쎄다 ㄹㅇ!!]

악마를 상대로 SSS랭크에 버금갈 정도의 파괴력을 내는 신성력이라니!

―{잠깐! 시간을 다오! 잠깐이면 된다!}

입에서 검은 피를 흘리는 단탈리온이 떨리는 눈동자로 킬리에게 사정했다.
그 모습이 언뜻 간절해 보여, 나조차도 왜 저러나 궁금증이 들 정도였다.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소서.』

―『저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

―『주님의 성령을 보내소서. 저희가 새로워지리이다.』

하지만 무자비한 수도사는 악마에게 일말의 자비도 보이지 않았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아까보다 훨씬 커다랗고 길쭉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빛의 십자가가.
단탈리온의 몸을 관통해버렸으니까.

―{…참으… …한… 처녀… 로다…}

빛의 기둥에 휩싸인 단탈리온은 놈과 하나도 안 어울리게도,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끝.

사건 종결이었다.

**

나는 ‘그’ 지옥 대공작을 단신으로 발라버린 킬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

입술을 함부로 떼기엔 격전의 여운이 내 몸을 떠나지 않아서였고.
킬리의 정체가 대체 뭐길래  도와주나 싶기도 했다.

“고생 많으셨어요, 선량하신 형제님.”

시스터 킬리가 정신을 잃은 이정엽의 몸을 안아 땅에 놓으며, 위로를 건넸다.

“받아요.”

그리고 등을 돌려 내게 뭔가를던졌다.

―탁!

“이건….”

그녀가 던진 것은 분홍색 반지였다.
반쯤 타버린 악마 군주의 정수.
즉, 예드디야의 반지.

[여기도 있다. 완전 못 쓰게 됐지만.]

메리 또한 아까 할파스와 말파스를 해치우고 얻은 두 개의 정수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제야 봉인 완료 시스템 메시지가 떴다.

[▶말파스의 권능 추출 불가]

[▶할파스의 권능 추출 불가]

[▶단탈리온의 권능 회수 완료]

[▶보상 203 CP 지급 완료]

[▶올 클리어까지 앞으로: 60/72]


하나. 악마 군주를 세 기나 봉인했음에도 추출할 수 있었던 권능은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크게 만족했다.

‘안 죽은  어디야.’

시스터 킬리가 아니었으면 나는 죽었다. 이정엽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하나라도 건진 건 오히려 엄청난 행운이 따른 결과라   있었다.

“당신이 신검캄비온의 계약자. 맞죠?”


시스터 킬리가 내게 다가왔다.

―꿀꺽

나는 정말 몹쓸 새끼였다.
마력탈진에 가까운 몸 상태와 한 번 죽고 살아난 후유증에 머리가 아픈 와중에도.
킬리의 두껍고 섹시한 허벅지와  다리. 그리고 포니테일의 붉은 머리 아래 예쁜 얼굴을 보면서 군침을 삼키고 있었으니까.

“성령聖靈 메를리누스님은 어디에 계시죠. 왜 당신 혼자만 있는 건가요.”

내게 다가온 킬리가 차가운 얼굴로 그리 물었다.
나는 당황해서 전후사정을 생각할 엄두를 못 내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메, 메리는 저기 있잖아요.”
[안녕, 이쁜이? 아깐 고마웠어.]
“설마.”

인사를 하듯 그녀 옆에 둥둥  메리를 멍하니 보던 킬리가, 고개를 돌려 나에게 성을 냈다.

“당신… 설마 아직도 레라지에를 찾지   건가요?!”

레라지에. 14위의 악마 군주다.
메리가 예전에 자신의 힘을 완전히 복구하기 위해서 반드시 찾아야한다고 했었던.

“레라지에가 어디에 있는 줄 알고 찾아요. 메리가 놈이 지구에 없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지금이 1600년 전 브리튼 섬 상황이랑 같은 줄 아십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메를리누스님의 지원도 없이 혼자이렇게 무모한 짓을 벌인 거예요?!”

그녀가 크게 분노하며 날 몰아붙였다.

“당신, 목숨이 아깝지도 않아요?! 설마 페넥스의 권능 하나만 믿고 이런 짓을 벌인  아니겠죠? 여기는 공상계가 아니라 현실이라구요! 죽으면 그대로끝나버리는, 현실!”
“막무가내로 벌인 일 아닙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킬리가 내 타입에다가 생명의 은인이라고 해도, 이런 식으로 나오면 빈정이 상한다.

“긴급 회피기인비네의 권능도 있고, S++랭크 헌터인 이정엽 팀장님의 조력도 있었습니다. 원래는 전투에 끼어들 생각도 전혀 없었고요. …그런데 변수가 발생했죠.”

그녀를 지나쳐  창을 주웠다.
씨팔… 완전히 반토막이 나서 더는  수 없게 되어버린 나의… 무기를.

“단탈리온이 구천현녀를 숙주로 삼아  모든 음모를 계획했을 줄 누가 알았겠어요? 사실 지금도 안 믿깁니다. 아무리 놈이 시공의 전능안을 가졌다지만, 이토록 큰 그림을 그려서 저를 위기에 빠뜨리려했다니.”
“당신 지금 피해자 행세하는 건가요?”

킬리 퍼시벌이 코웃음을 쳤다.

”당신 때문에 두 달 간 150명이 넘는 사상자가 났어요. 그런데 세 악마의 타깃이었던 당신이 아무런 죄책감도 못 느끼는 건, 너무 뻔뻔한 거 아닌가요.”
“누가!”

빠른 걸음으로 킬리에게 다가갔다.

“누가… 누가 그런 걸  느껴.”

175cm는 될 듯한 그녀라서, 요즘 부쩍 키가 커져 183cm가 된 나라고 해도 쉬이 내려 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를 꽉 깨물고 그녀의 회색 눈동자를 응시했다.

“내가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 이정엽을 꼬셨는데. 내가  그가 단탈리온에게 몸을 뺐긴 후에도 도망치지 않았는데. 진짜 내가 멀쩡한 기분이어서 그런 걸 거라고 생각해?”

킬리의 손을 잡았다.
치유 스킬도 쓸 수 있는 클레릭이기 때문인 걸까. 그녀의 손은 권사답지 않게 굳은살이 하나도 없었다.

“당신이 한 번 봐.”

그녀의 손을들었다.
심장이 관통당해 옷이 너덜너덜해진 가슴에 댔다.
여전히 부활의 기적을 믿지 못해 미친 새끼처럼 날뛰고 있는, 내 심장에.

“느껴져? 나도 그런 거 아니야. 나도 무서웠고, 한 번 죽고 살아난 지금은 아예 돌아버릴 것만 같다고. 근데 그냥 한 거야. 그래야 되니까.”
“왜죠.”
“그러는 당신은 왜 날 구했는데.”

킬리의 손을 놓고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도 사람 죽는 꼴 보기 싫어서 나랑 이 팀장 살린 거 아니야. 그런데 나한테 그 따위 질문을 하는 게 어디 있어. 그건 너무하잖아. 그런  서로 불필요한 질문이잖아.내 말이 틀렸나?”

킬리 퍼시벌이 깊고 아름다운 회색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흥.”

그러다 전투를 위해 묶어둔 붉은 포니테일의 머리를 풀고, 등을 돌렸다.

“다음에도 이럴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단탈리온의 정수를 당신에게 넘겨준 것 같은 호의는, 이번이 마지막이니까. 이번만 예외라는 뜻이에요.”
“…뭐라구요?”

―쿠우우우웅

킬리 퍼시벌이 거대한 창고의 철문을 팔 힘으로만 열며, 고개를 돌렸다.

“이 이후로 모든 악마 군주의 봉인은 제가 맡겠다는 뜻입니다, C랭크 헌터인 생도 김제이 씨. 당신은 아카데미 생활이나 충실히 즐기면서 데이트나 열심히 하도록 하세요. 그럼 오늘은 이만―.”

봄날이 깊어가는 밤.
가로등 불빛도 없는 부산항 사이로 킬리가 자취를 감췄다.

나는 참았던 질문을 던졌다.

“쟤뭐야.”
[퍼시벌. 원탁 전쟁광년들  한 명인, 그 퍼시벌의 자손이다.]

메리의 귀엽고 맑은 목소리가 그리움에 젖었다.

[비정상적일 정도의 신성력을 보고 설마 했는데…. 1600년 동안이나 성배의 힘을 가문 대대로 이어온 모양이야.]

퍼시벌은 나도 알겠는데, 성배?
그건 대체 무슨 소리야.

[가면서 이야기 하자.  자식도 병원에 보내줘야 하잖아. 사건은 끝났다.]

메리가 귓불에 붙었다.

“후우… 그러자.”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정엽의 스마트폰으로 지원을 요청했다.

“부팀장님이시죠? 여기가요―”

**


고결한 기사 퍼시벌 Sir Percival.

캄비온의 전대 계약자인 아서왕을 보필했던 원탁의 기사들  한 명이다.

현대에 와서는 가웨인이나 랜슬롯처럼 유명하진 않아도, 과거에는 그들과 이름을 나란히 했던 전설적인 기사.

출신 성분과 최후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내 경우는 전혀 아니다.

[퍼시벌 그년은 아리마태아의 요셉의 자손이다. 요셉은 그리스도의 피를 포도주 잔에 모은 장본인이지.]

기사 퍼시벌 본인과 막역했던.
확실한 증인이 내 옆에 있으니까.

―부우우우웅

버스가 부산의 밤거리를 달린다.
시간은 거의 자정에 가까워졌다.
우리는 이정엽을 병원에 이송한 뒤, 해운대의 숙소로 향하는 중.

[파트너.]
‘말해.’

메리가 다시 시스터 킬리의 정체에 관해 말을 이었다.

[성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성배Holy Grail.

예수 그리스도가 최후의 만찬에 사용했고, 사후에는 그의 피를 담았다고 전해지는 잔이다.

신비한 힘을 머금은 성유물이라서, 아서왕이 직접 찾아오라고 명을 내렸을 정도로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가장 가치 있는 지고의보물이라 할 수 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네가 방금 떠올린 ‘신비한 힘을 가진 대상’은잔 그 자체가 아니야.]


메리가 나에게.
상당히 충격적인 진실을 알려주었다.

[성배란, 신혈 God’s Blood이다.]

[반인반신이었던 신의 아들.]

[그의 피에서 추출한 전혈을 말하지.]

전혈whole blood이라면… 헌혈에서 쓰는 용어인데. 혈장이나 혈청보다 훨씬 본인의 피에 가깝다는 의미를 가진.

[그 말이 옳다. 성직자들이 연금술의 힘을 빌려 정제해낸, 신의 아들의 피. 그 자체를 성배라고 지칭해.]
‘정말? 그럼 왜 성배라고 부르는데.’
[후대에 연막을 위해 고의적으로 ‘잔’이라는 허구적 이미지를 덧씌운 거지.]

오호라. 왜 그랬는지 알겠다.
귀하신 분의 피를 지들 멋대로 썼다는 오명과 죄책감을 지고 싶지 않아서, ‘피’가 아니라 ‘잔’으로 이미지를 바꿔버린 것 같다.
물건이라고 하면 덜 불경해보이잖아.

‘재밌네. 계속해봐.’
[아리마태아의 요셉은 성배를 자식의 몸 안에 이식했어. 이유는 재림 그리스도가 인세에 강림했을 때, 그를 보필하기 위해서였지.]
‘다시는 십자가에 매달려 죽게 하지 않기 위해서?’
[정확하다.]

메리가 본론을 입에 담았다.

[퍼시벌은 아리마태아 요셉의 후손이었다. 그것도  안에 성배를 박아 넣은 직계 중의 직계.]


나는 존나 깜짝 놀랐다.

‘그럼 설마… 킬리 수녀도?!’
[놀랍게도 그런 것 같다. 아서와 퍼시벌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이 무려 1600년 동안 유지를 이어왔던 모양이야.]

킬리 레베카 퍼시벌 Keeley Rebecca Percival.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며 메리가 서글픈 어조로 읊조렸다.


[킬리 퍼시벌은 몸 안에.]

[성배를 지니고 있어.]


……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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