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2화 〉112. 제이와 달콤한 미인주 (5) (112/145)



〈 112화 〉112. 제이와 달콤한 미인주 (5)

―[이정엽입니다. 누구십니까아.]
“접니다. 재수 없는 악마 사냥꾼.”
―[이놈의 자식아! 늦다, 늦어!]

이정엽이 소리를 꽥 지르며 어제 왜 톡을 씹었냐는 둥, 자기 기절한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었냐는 둥,  번에 엄청나게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잘 들으세요. 헷갈릴 것 같으면 녹음해서 다시 들으시구요.”

나는 빠르게 상황을 요약했다.

71위 악마 군주 단탈리온이 이정엽이 모시는 여성 신인 <구천현녀>를 숙주로 삼았고, 그 탓에 빙의 상태였던 이정엽이 단탈리온에게 몸을 빼앗겨 의식을 잃어버렸던 것이라고.

아마도 할파스와 말파스는 단탈리온의 오더에 따라, 나를 잡기 위한 함정을 준비하기 위해 부산에 왔던 것 같다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시스터 킬리라는, 나도 잘 모르는 클레릭이 우리를 구해줬다고.

―[황금여명십자회의 실천자라. 그렇게  거였군. 아놔 이거, 후배님 앞에서 기절이나 하고. 쪽팔린데? …혹시 내가 너 죽일 뻔 하지 않았었냐.]
“헛소리. 그게 왜 팀장님 때문인데요? 단탈리온 그 개새끼랑, 그놈이랑이상한 거래를  현녀 잘못이지.”
―[쿨한 새끼. 말이라도 고맙다 임마.]

고위 강령술사인 이정엽은 내 부족한 설명에도 빠르게 전후 사정을 이해하고, 자신의 상황을 전달했다.

―[후배님아. 근데  선배 큰일 났다?]
“왜요.”
―[구천현녀님과의 연결이 끊어졌어.]

그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아주 비극적인 소식을 전해왔다.

―[아주. 완전히. 끊겼다.]
“정말요?!”

이정엽이 모시는 신인 구천현녀와의 연결이 끊어졌다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아무리 해도 강신이 안 돼. 비상금 털어서 제사까지 지내도 마찬가지야.]

 팀장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현녀님께서 날 거부하시는 그런 문제가 아니야. 현녀님과 나를 잇는 패스pass가 완전히 끊어진 느낌이랄까.]
“혹시 킬리 수녀가 단탈리온을 정화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되신 건….”
―[쓰읍~! 그건 아냐. 절대 아니야.]

이정엽이 쯥쯥, 하고 입맛을 다시는 소리를 냈다.

―[그 수녀 분의 영향으로 그렇게 될 수는 없어. 뭐… 예전부터 조만간 이렇게 될 수도 있겠다는 예감이 들긴 했는데.  시기가 예상보다 빨라진 것뿐이야.  잘못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

왜 걱정이  될까.
구천현녀는 무려 서왕모급 여신이다.
 대단한 도교 선계에서 군신으로 이름 높은 고위 신. 그리스 로마 신화로 따지면, 군신 아테나에 비견된다.

‘큰일인데.’

이정엽이 만약 앞으로 구천현녀의 강신을 하지 못한다면, S++급였던 그의 전투력은 S-급까지도 강등될 수 있다.

“좋은 방법 없어요? 랭킹 지키셔야죠. 팀장님 나가리 되면 top500에 한국인 13명밖에  남잖아요. 팀장님 덕에 처음으로 종합 국가 랭킹 5위 안에 들었다고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했었는데.”
―[순위 좀 밀려나면 어때.]

대한민국이 낳은 자랑스러운 국가 헌터 공무원 이정엽이 피식 웃었다.

―[한동안 휴직 신청하고 게임이나 하면서 놀려고. 생각도 정리할 겸.]
“쉽게… 정리가 되시겠어요?”
―[아무렴. 초딩 때부터 22년을 모셨던 분인데, 어렵겠지. …그래도 보내드려야지. 이미 그럴 분위기기도 했고.]

이정엽이 남자답게 각오를 내뱉었다.
나도 그의 의지를응원해주기로 했다.

―[참. 조서는 내가 후배님 말을 적당히 꾸며서 쓰면 되거든? 대신 너 경찰서 출두하기 전에 우리 몇 가지 말  맞춰놓자. 너 현상금 챙겨주려면, 니 이름을 빼놓을 수가 없어.]
“네, 말씀하세요.”
―[우리 후배님. 너는 대중들에게 니 정체를 숨기고 싶은 거지?]

당연하다. 이번 봉인 임무를 통해 한동안은  그래야겠다고 다짐했다.

“아직은요.”
―[좋아. 그럼 넌 익명의 체포자로 하자. 대신 다음주 중에 나랑 아주 친한 입 무거운 기자 한 명 대표로 보낼게. 사건이 워낙 크다보니까, 기자들 입장에서 이 인터뷰를 절대 놓칠 수가 없거든. 수고 좀 하는 대신 내가 너 현상금 전액  챙겨주는 걸로. 오케이?]

익명의 체포자. 그럼 대충 각이 나온다.
내 신고에이정엽이 출동을 했는데 위기에 빠져 정신을 잃었고, 결국엔 내가 막타를 쳤다는 그런 시나리오겠지.

“알겠어요. 소설 좀 쓰죠 뭐.”
―[좋았으. 그럼 이따 제주도 내려가기 전에 경찰서만 잠깐 들러. 아 참! 그 전에 현상금 입금할 계좌부터 보내고. 니 신원조사 때문에 추적 들어갈 거다? 괜찮지?]
“그럼요. 이따 점심에 봬요.”

전화를 끊고 계좌번호를 보냈다.
그리고 현상금이 대체 얼마나 되길래 자꾸 챙겨준다 말하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봤다.

‘뭐 한 천만 원 되려―’

―탁! 타닥…

너무 놀라 폰을 떨어뜨렸다.

[히야~! 할파스 말파스 그 버러지 새끼들이 하여간 많이 죽이긴 했지? 부산에서만 근 40명. 홍콩에서 백  훌쩍 넘게 죽었으니, 꽤나 대사건이었다.]

메리의 말이 들리지가 않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폰을 집어 들었다.


―『경찰청, 부산 연쇄 살인마 현상금 6억으로 인상 - 고액알바 노리는 헌터들의 이목을 끌고 있어.』

―『부산 살인마 단순 신고  생사여부 불문하고 1억의 현상금 부여. 4월 초까지의 현상 모집 기간이 지난 뒤에는 대형 헌터 클랜에 사건 의뢰 예정.』

―『국내 2위 헌터 클랜 <하얀 그림자들> 고위 관계자 曰, “현재 특임대가 부산으로 출장 대기 중이다. 보수? 그딴 것은 필요 없다. 우리의 목표는 부산 연쇄 살인마의 목.”』

―『추정 S랭크의 각성자, 부산 연쇄 살인마의 현상금은 무려 6억? - 한국 헌정 역사상 11번째로 높은 금액.』

―『홍콩 지방정부 현상금 반액 부담 및 피해자들에게 위로금 전달 - “우리 홍콩의 자매 도시인 부산의 시민들께 심심한 위로가 되었으면”』


6억.

씨발… 무려 6억이다.

이정엽이 나를 ‘익명의 체포자’로 한다고 했으니까, 단순신고 포상금인 1억이 아니라… 6억이… 들어온다.

[참고로 현상금은 면세 대상이다.]
“…….”

나는 포효를 참지 못했다.

―정엽아!! 사랑한다!!


**

샤워를 마치고 서윤이를 깨웠다.
 잠에서 깬 그녀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지만 섹스는 꾹 참았다.

“히잉… 유니 못 걷겠어여….”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스스로 가누지도 못하는 앤데, 어떻게 안겠는가.욕조에도 내가 안아서 넣어주어야 할 정도였다.

“빠야! 물기 다 말랐어요. 이제  감아~. 실눈도 뜨면  대?”
“그럴게.”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을 때까지, 나는 서윤이의 머리를 말려주는 것 외에는 그녀의 몸에 손도 대지 않았다.

“빠빠야아.”
“응, 자기야.”
“우리 이제 나갈까여?”

청스키니 바지와  셔츠.거기에 베이지색 가디건을 곱게 입은 서윤이가 침대에 앉아 나를 올려다봤다.

“유니 걸을 수 있겠어?”
“우우….”

서윤이가 운동화 신을 발을 땅에 붙이고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음을 뗐다.
그러다 결국 의자에 손을 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허리가 넘무 아파요.”
“미안해.  때문에.”
“으응! 아니야.”

그녀가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옷 위로 자신의 아랫배를 살살 쓰다듬었다.

“어제 마안~이 안긴 덕분에. 빠빠야가 아직도 내 안에 있는 것 같아요….”
“내가 안에 있는  유니도 좋았어?”
“……그러엄.”

서윤이가 발그레한 얼굴로  팔을 활짝 벌렸다.

“내 꺼야가 진짜로 완전히  꺼가 된 것 같아서 얼마나 행복했다구.”
“아… 귀여워 미칠 거 같다 정말.”

삽시간에 발기해버린 자지를 서윤이의 아랫배에 딱 붙이며 가녀리면서도 풍만한 그녀의 품에 폭 안겼다.
 여자가  등을 살살 쓰다듬으며  뺨에 뽀뽀를 해왔다.

“유니가 미안해. 어제 등도 많이 할퀴구… 머리카락두 뽑구… 욕도 하구….”
“아니야, 좋았어. 자기야말로 내가 미안해서 어떡해? 심한 욕도 너무 많이 하고, 엉덩이도 때리고. 무지 많이 괴롭혔잖아.”
“맞아. 이 나쁜 빠빠야!”

서윤이가 환한 웃음을 지으면서 내  볼을 쭉쭉 잡아당겼다.

“너무해! 정말 너무너무너무해!”
“근데 왜 웃어.”
“…그, 그래두… 좋았으니깐….”

그녀가 눈에서 하트가 튀어나오는 것 같은 얼굴로 나한테 무차별적인 애교 폭격을 퍼부었다.

“유니느은. 빠야 꺼라서어. 빠빠야가 어떻게 해줘두우, 다아 좋으니까안.”

…아 씨발. 나 이러다 얘한테 홀려서 일상생활을 못 하겠네.
서윤이의 스키니 바지에 감싸인 엉덩이를 가볍게 만지며 얘기했다.

“자기야. 지금 자기가 애욕의 화신 만렙을 적용받는 상태거든. 세기로는 5레벨 정도지만. 참고로 평상시에 나는 2레벨, 자기 껀 3레벨 정도야. 아스모데우스 봉인 전에 자긴 4레벨쯤이었고.”
“응! 빠빠야가 어제 말했던 그거?”

간밤, 서윤이에게 내 악마 봉인과 관련한 비밀을 다 털어놓았다.
내가 어떤 권능이 있고, 서윤이가 어떤 악마의 숙주였고, 놈을 봉인한 지금조차 그녀가 여전히 lv.3에 해당하는 애욕의 화신을 품고 있다는 사실도.

“응. 근데 우리, 사랑을 나눌 때 말고는 아무래도 lv.max를 안 켜두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묘한 습기가 느껴지는 서윤이의 허벅지 안쪽을 가볍게 만지며 속삭였다.

“울 애기. 지금도 젖었잖아. 그치?”
“……몰라아….”

서윤이가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러면서 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아픈 몸으로도 당장 나를 받아줄 것처럼,  엉덩이를 꽈악 잡아당겼다.

“너무 좋아아…. 오빠가 좋아요….”
“응. 그런데 자꾸 그 상태면 아무것도 못 할 수도 있잖아? 생활도 불편할 거고. 그러니까 앞으로 사랑을 나눌 때만 만렙을 켜놓을게. 자기도 그게 좋지?”
“빠빠야 마음대로 해.”

서윤이는 아무래도 좋은 듯, 내 결정에 토를 달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 단일 개체 한정 시동 해제]

만렙을 off했다. 이제 평소처럼 lv.2의 권능만 적용된 상태.
나는 혹시나 바뀐 강도에 서윤이의 기분이 급격히 다운될까 염려 돼서, 한참동안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빠빠야.”
“응?”

그렇게 5분쯤이 지났을까.
그녀가 내게 물었다.

“그거어, 언제 끌 거야? …유니, 기분이 이상해져요….”
“…….”
“…아으으응, 오빠아!”

혹시나 해서 서윤이의 스키니 청바지 안에 억지로 손을 집어넣었다.

‘아직도 젖어있다. …그것도 아까보다 훨씬 더.’

손을 빼고, 눈을 끔벅끔벅 뜨면서 내 여자에게 물어봤다.

“자기야. 뭔가 바뀐 기분 같은 거… 없어?”
“바뀐 기분? 빠야, 이미 아까 전에 그거 껐었구나?”
“응. 5분도  전에.”

내게 소중한 곳을 만져져 얼굴이 크게 상기된 서윤이가 귀엽게 눈을 굴려 뭔가를 생각하다가, 배시시 웃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
“다행이라니?”

그녀가  입술에 사랑이 듬뿍 담긴 키스를 하며 아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꿀이 뚝뚝 떨어지는 애교를 부렸다.

“그걸 켜나, 안 켜나. 유니가 항상 빠빠야를 최~고로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다행이라구!”

…당황스러움에 말이 안 나왔다.
방을 나서기 전, 테스트를 해보았다.

[▶ 단일 개체 한정 시동]
[▶ 단일 개체 한정시동 해제]

켰다 껐다를 반복했다. 체크아웃 시간인 12시까지 서윤이와 이야기를 나누며 변화를 확인해보았다.

“우리 언제까지 해야 대? 내 빠야 배고프자너. 유니가 맛난 거 사줄게여.”
“…….”

하지만 똑같았다.
어젯밤 최초로 만렙을 그녀에게 적용했을 때 이후로, 서윤이의 태도엔 지금까지 조금의 변화도 없었다.

[이미 호감도 만렙이라는 거지.]

메리가 이 상황을 분석해주었다.

[애욕의 화신 만렙은 ‘지금 당장 상대의 아이를 갖고 싶을 정도의 치명적인 사랑을 느끼게 하는’ 힘이다. 그런데 이미 육서윤이 그런 사랑을 네게 품고 있으면, 만렙이나 아니나 그게 무슨 차이가 있겠냐?]

…이게 그럼 좋은 거야 나쁜 거야.
갑자기 내 여자가 무지 걱정됐다.

“서윤아.”
“웅!”
“자기… 참을  있겠어?”

뭘 참을 수 있겠냐는 지는 뻔했다. 서윤이는 똑똑한 애였으니까.

“응. 잘 참을 수 있어.”

그녀가 부끄러움을 타는 어린 소녀 같은 순수한 미소를 지었다.

“왜냐하면. 빠빠야가 날 앞으로도 마니마니 사랑해줄 거란 걸 아니까.”
“응. 물론이지.”
“크크크! 만세에~!”

서윤이가 어린아이처럼 활짝 웃었다.

그 모습이 그녀 안에 숨겨진 섹시함이나 뜨거운 몸과 너무도 상반되게 느껴져서, 나는 새삼 그녀에게 반했다.

서윤이의 가장 사랑스러운 면은 그녀의 신비로울 정도로 다채로운 고양이 상 얼굴이나, 폭발적인 몸매 등의 외면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천千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성격.

가히 경국지색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육서윤은 행동 하나하나가 남자를 홀리는 데에 타고난 것 같았다.

‘큰일 났다. 라라가 주는 안정된 설렘이랑은 전혀 느낌이 달라. 서윤이는 요녀야…. 얘는 진짜 우물이다….’

나는 무슨, 구미호나 서큐버스한테 홀리는 기분이 들어서 차라리 지금 당장은 얘 얼굴을 안 보기로 했다.
안 그러면 계속 둘만 있을  있는 공간을 찾고 싶어질  같았다.

“이제 가자. 업어줄게, 자기야.”

등을 돌리고 허리를 굽혔다.

서윤이는 옷을 다 입고 난 1시간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걷지 못 했다.
숫처녀의 몸으로 간밤에 내게 너무 많이 시달린 탓이었다. E급 헌터인 그녀였음에도 지금까지 못 걸을 정도니, 내가 간밤 얼마나 심했는지 짐작이 됐다.

“네에.”

우리 애기는 정말로 아가였다.
둘  다  성인이라 창피할 수도 있을 텐데, 그딴  상관없다는 듯이 아주 기쁘게 내 등에 업혔으니까.
방을 나서며 내 꺼에게 주의를 줬다.

“우리 애기. 이제 예쁜 얼굴 가릴 마스크 쓰셔야죠?”
“웅. 여기, 잘생긴 빠빠야도 쓰세요.”
“나는 왜?”
“치.”

서윤이가 시크하게 웃으며 내 귀에 마스크 고리를 걸어주었다.

“오빠가 안 창피하면 괜찮구.”

…내 여자 말을 듣기로 했다.


**

호텔 근처 유명한 한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부산경찰서에 들렀다.
이정엽을 만나 이런저런 절차를 밟은 뒤, 근처 카페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있던 서윤이와 합류해 공항으로 갔다.

―부산발 제주행 JA901 여객기의 탑승이 곧 시작되오니 승객 여러분들…

그리하여 도착한 부산공항.
시간은 어느덧 오후 4시가 되었다.
아카데미에 도착하면 6시가 넘을 듯.

“빠빠야.”
“응.”
“유니  무거워?”

―드르륵 드르륵

한 손으로는 서윤이를 업고,  손으로는 그녀의 캐리어를 끌었다. 내 가방은 그녀의 캐리어 위에 올라간 상태.
하지만 힘든지 않았다. 그럴 리 없다.

‘6억. 6억. 6억. 6억. 6억.’

나에겐 지금 엄청난 버프가 걸려 있으니까.

“니 남자 창쟁이잖아. 힘 엄청 쎄.”
“안 무겁다곤 안 하네?”
“크큭! 깃털인 줄 알았어 바보야.”
“나아나아~♪ 나나아~♪”

아까 내가 사준 소고기 점심이 맛있었는지, 서윤이가 양 다리를 동동 구르며 내 머리에 입을 쪽쪽 맞췄다.

“아 눈꼴셔. 누군 연애 안 하나. 왜들 저래 공항에서? 차라리 모텔을 가지.”
“미쳤나봐. 여자 끼 너무 부린다. 재수 없어 진짜. 가슴만 존나 커가지구.”
“남자 새끼 힘 죽인다. 헌턴가 봐.”

우릴 보며 수군거리는 사람들 때문에 눈치가 보였다.
나와 서윤이는 잽싸게 움직여 탑승구 앞 의자에 앉아 비행기를 기다렸다.

“…어? 빠빠야! 저기. 저기 봐봐.”

크로아상과 커피를 맛나게 먹고 있던 때였다.
우리 두 사람의 시야에, 익숙한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킬리 수녀님! 안녕하세요.”
“미다 자매님, 여기서 또 뵙네요.”
“…….”

킬리 레베카 퍼시벌.

검은 수녀복과 검은 베일을  섹시한미녀 수도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뭐야 얘… 설마 나 따라온 거?’

 불편한 마음과는 상관없이 두 여자가 정답게 인사를 나눴다.

“수녀님도 제주도로 돌아가세요?”
“네. 일정을 모두 마쳤거든요.”
“그러시구나. 수녀님 혹시 빵  같이 드시겠어요? 따뜻해서 맛있는데.”
“감사해요, 미다 자매님.”
“…….”

나는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으로 킬리의 합류를 바라만 봐야 했다.

‘킬리가 제주도로 간다고? 얘는 집도 없나.  이렇게 싸돌아다녀.’
[ㅋㅋㅋㅋㅋㅋ]

우리의 불편한 동거는 제주도에 도착해서도 이어졌다.

“수녀님, 아카데미에 가시는구나? 혹시 학내 성당에서 또 미사를 보세요?”

아카데미셔틀 버스 안에서도.

“그렇답니다. 앞으로도 우리 미다 자매님과  뵐 수 있을 거에요.”
“신난다. 우리 매일매일 봐요, 네?”
“후흣. 그럼 저야 감사하지요.”
“…….”

그리고 학교에 도착해서까지 킬리는 우리와 떨어질 낌새를 보이지 않았다.

“어머! 수녀님, 저랑 설마 같은 방이세요?! 어떻게이럴 수가 있지. 대박이다, 우리 방 3명이라서 딱 한 자리 남아있었거든요.”
“이 모든 인연이 자비로우신 주님의 은총이겠지요. 잘 부탁드립니다.”
“…….”

그리고 다음 날.

“주목. 중간고사를 앞두고 갑작스럽겠지만 좋은 소식이 있단다.”

시간은 월요일 1교시 직전.
중간고사 시험을 보지 않는 대신 수업진도를 나갈 거라는 담임교수의 아침조회를 겸한 HR 시간이었다.

<편입 생도: 킬리 레베카 퍼시벌>

“편입생이다. 우리와 같은 4대국제헌터아카데미인 영국의 웨스트 화이트West White에서  친구야. 킬리?”
“시스터 킬리라고 해요. 보시다시피 수도사의 신분이지만 여러분들과 함께 2년 간 공부하게 되었지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

킬리 퍼시벌.
이 이상한 여자가.
전학을 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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