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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화 〉113. 제이와 달콤한 미인주 (6) (113/145)



〈 113화 〉113. 제이와 달콤한 미인주 (6)


킬리 퍼시벌이 편입을 왔다.

추정 S랭크의 권사. 악마와 언데드를 상대로 한정적으로 SSS급에 달하는 신성력을 뽑아낼 수 있는, 몸 안에 무려 성배를 품고 있는 여자가 아카데미로 전학을 왔다니….

‘쟤 대체 무슨 생각이지. 아니 그것보다… 쟤가 원래 웨스트 화이트를 다니고 있었다고?’

웨스트 화이트.
UN산하 세계헌터연맹 직속으로 설립된 네 개 아카데미 하나다.
60여 년 전 최초의 균열이자 역사적 사건인 퍼스트 임팩트가 발생한 이래로 창립된 세계헌터연맹은, 보다 강한 헌터들의 육성을 위해 다음 네 개의 국제 아카데미를 설립했다.

그린란드의 노스 그레이North Grey.
호주의 사우스 골드South Gold.
영국의 웨스트 화이트West White.
제주도의 이스트 블루East Blue.

입학 조건은 간단하다.

하나. 가진 바 재능이 무척 뛰어난 만 20세 이하의 어린 각성자일 것.
하리와 선우, 아이린 등이 이 ‘추천 입학’을 통해 들어온 케이스다.

둘. 입학시험을 통과한 만 26세 이하의 각성자와 각성 유력자.
나와 엘리사처럼 대부분의 생도가 이 정상 입학 루트를 통해 들어왔다.

단, 입학 대상에는 예외가 있다.

『S랭크 이상은 입학  재학 불가능』


S랭크 이상의 각성자는 전세계 1만 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이런 고급 인력을 아카데미에 3년이나 묶어두는 건 그야말로 사회적 낭비.

 때문에 입학은 물론, 재학조차 안 된다.

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재학 중 S랭크 이상에 도달하게 되면 해당 학기가 끝난 뒤 자동으로 졸업을 시켜버리기 때문.

‘킬리도 하리나 선우처럼 랭크를 갱신하지 않고 숨기고 있구나….’

확실하다. 학교에 계속 다니고 싶어서 모종의 방법으로 하리와 선우가 S랭크 이상의 실력을 숨기는 것처럼, 킬리 역시 그렇게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 새 친구와 모두 인사했지? 커리큘럼이야 4대아카데미가 같으니 진도를 따라가는 데에 어려움은 적겠지만, 학교생활에 적응할  있도록 앞으로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기 바란다.”

오늘도 흰 셔츠와 H라인 스커트로 보기 좋은 슬렌더형 몸매를 드러낸 이시카와 레이가 킬리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럼 자리는― 그래. 저기가 비었구나.”
“…….”

이시카와 레이의 시선이 닿는 곳은 바로 내 오른쪽 자리였다. 뒷문과 가장 가까운  자리.

―또각 또각

킬리 수녀가 코가 둥근 검은 구두 소리를 내며 내 옆자리에 착석했다.
친구들이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수녀님! 저는 엘리사 비티라고 해요. 만나 뵙게 돼서 기뻐요.”
“안녕! 나는 아이웨이. 친구들은 나를 질풍의 아이웨이라고 부르지. 썩 지적으로 보이겠지만, 이래봬도 권사라구?”
“반선우입니다.”
“형제자매님들을 이렇게 뵙게 되어서 참으로 기쁩니다. 이 또한 주님의 은총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벅차오르네요.”

수녀다운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받은 킬리의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어머. 김제이 형제님과  만나게 되었군요? 이런 우연이 있을 수가.”

우연은 무슨….
‘너 사실 S급이잖아! 빨리 명예 졸업이나 해버려 이 이상한 수녀야!’라고 외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메리에게 킬리랑 친해지겠다는 약속을 했으니 참아야했다.

“…안녕하세요.”

나는 뭔가 앞으로  학교생활이 무지 이상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

나쁜 예감은 역시 틀리지 않는 법.

“김제이 형제님.”

이시카와 레이의 1,2교시 수업이 끝난 후, 던전공략실전각론I의 시험을 성공적으로 치른 뒤였다.

“잠깐 저 좀 보시죠.”
“저요? …저 밥 빨리 먹고 오후에 있을 전공 시험 준비를 해야 되는데.”
“잠깐이면 될 거에요. 본관 뒤의 벤치에서 기다릴게요.”

킬리 수녀는 그리 말한 뒤 교실을 나갔다. 나는 주변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오오오~ 김제이! 수녀도 꼬시는데?”
“제이 이 새끼야! 너 저 예쁜 수녀님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야? 빨리 불어!”
“고백인가? 편입 첫날부터 고백인가? 근데 킬리는 수녀잖아. 아니겠지?”

이런 젠장….
나는 애들을 적당히 물리치며 ―특히 아이웨이가 개거품을 물며 달려들었다― 교실을 나섰다.

“형. 제가 같이 가드릴까요?”

어제 얘기를 들어 킬리의 정체를 알고 있는 선우가 조심스럽게 물어왔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한 번은 제대로 얘기해야지. 너는 시험 준비해. …너야 어차피 정령술 실기는 무조건 만점이겠지만.”
“아하하! 네 형. 믿고 있을게요.”

천진난만하게 웃는 선우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준  본관을 내려왔다.

‘피하려고 해도 그럴 수가 없네,’

나는 사실 킬리가 불편했다.

 생명을 구해준  아주 고마웠고 외모도 내 취향이었지만, 그녀에게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일이 있었던 것.

이유는 현상금 때문이다.

‘6억. 6억을 얘랑 어떻게 나누냐….’

그렇다.
킬리는 부산 연쇄 살인마 사건을 종결지은 장본인이다.
물론, 범인인 리차오란을 완전히 끝장낸 사람은 우리 메리다. 나는 그때 단탈리온을 상대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만약 킬리가 현상금을 나누자고 하면, 생명의 빚을 진  입장에서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었다.

‘아예   씻을 수는 없겠지. …달라고 하려나? 설마  달라고는 안 할 거야. 한 절반쯤? 근데 목숨 값으로 다 달라고 하면 어쩌지. 아, 난감하네.’

고뇌에 빠져 터덜터덜 본관을 나왔다.
6억이라는 거금이 생겨 좋아했던 게 불과 어제인데, 최소 절반. 최대 전액을 빼앗길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저기 있네.”

시험기간인 탓이었을까.
평소 휴식을 취하는 생도들로 북적거리던 벤치에는 성경을 읽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킬리 외엔 아무도 없었다.

“왔군요.”

탁. 성경책을 덮은 킬리 퍼시벌이 나를 올려다봤다.
나는 새삼 그녀의 회색 눈동자와 뚜렷한 서양인 이목구비의 얼굴이 예쁘긴 예쁘구나, 하고 생각했다.

“…할 말이라는 게 뭡니까.”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킬리 수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175cm 정도 되는 훤칠한 키와 소실할 듯 작은 머리 크기 때문에 그녀는 거의 나와 비슷한 정도로 커보였다.
킬리 퍼시벌이 차가운 눈으로 날 쏘아보았다.

“당신. 정말 너무한 거 아닌가요?”
“…….”

침을 꿀꺽 삼켰다.

‘잘 가라  6억아!’

어제 부산에서부터 오늘 아카데미까지 왜 이리 끈덕지게 따라오나 싶었더니, 결국 이런 거였나.
나는 빠른 수긍을 하기로 했다.

“…미안합니다. 욕심이 났어요.”
“그랬겠죠. 그럴만한 분이시니까.”

킬리 수녀가 팔짱을 끼며, 큰 잘못을 한 어린 신도를 나무라는 말투로 훈계했다.

“그래도 사람이 그러면 안 되죠. 아무리 욕심이 나고, 조바심이 나고, 마음이  좋더라도. 지킬 건 지켜야 하는 게 캄비온의 계약자로서 가져야할 바람직한 자세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구구절절 옳은 말이었다.
내가 제정신이 박힌 놈이었으면, 현상금을 받게 됐다는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서윤이에게 킬리의 폰 번호를 물어봐서 먼저 감사를 표했어야 했다.
나는 아주 염치없는 짓을 한 거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욕심을 버리고 도의에 맞게 행동하도록 하겠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눈을 아래로 깔고 있자, 한참을 날 보던 킬리 퍼시벌이 어조를 살짝 바꿔 말을 이었다.

“…뭐, 잘 생각해보면 당신이 도의를 어긴 건 아니죠. 아직 철없고 어린 양들이라고 해도, 사랑을 나누는  모든 연인의 권리니까요.”
“…네?”

사랑을 나누는 건 연인들의 권리?
이게 무슨 소리야.

“그, 그렇지만당신은 너무 무책임했어요! 그리고 너무 심했구요! 세, 세상에… 첫경험인 그 분께 하룻밤 동안 11번이라니! 짐승도 아니고 정말….”

킬리 수녀가 내 반문을 듣지 못했는지, 얼굴을 살짝 붉힌 채 삿대질까지 하며 훈계를 계속했다.

“어제 새벽에, 대체 어떻게 그렇게 미다 자매님을 폭력적으로 몰아붙일 수가 있죠? 그것도 그렇게 많이…! 더구나 아직 생도 신분이면서 위험일에 피임도 하지 않고 무책임한 행동을 하다니요!”

그녀가 검지로  턱을 찌를 올리며 소리를 빽 질렀다.

“당신은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배려심이라는 게 없나요?!”

아… 우리… 오해하고… 있었구나.

[이 얼간이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쪼개는 메리의 웃음을 들으니,  상황인지 단번에 이해가 됐다.

나는 킬리가 6억을 달라는  알고, 그걸 추궁당해서 미안해하고 있었고.

킬리 수녀는 어제 새벽 나와 서윤이가 잠자리를 가진  가지고, 서윤이의 주변인 된 입장에서 훈계를 하고 있었던 것.

근데  아귀가 묘하게 맞아 떨어지면서, 이렇게 대화가 흘러와버린 거다.

‘와, 이게 이렇게 꼬여 있었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웃어? 당신 지금 웃었어요?”

킬리 수녀가 눈을 세모나게 뜨며 아주 진지하게 경고했다.

“당신 잘 들어요. 우리 미다 자매님은 칠죄종인 색욕의 화신이셨지만, 마음만큼은 아기처럼 순수한 분이세요. 그러니 혹여나 두 사람 간에 아이가 생긴다면 절대 포기하실 분이 아니시죠.”
“크큭! 네. 서윤이가 그런 면이 있는 건 저도 잘 알죠. 그래서 좋아해요.”
“그. 런. 데. 도!”

킬리 퍼시벌이 잔뜩 흥분해서 어깨를 콕콕 찌르며 화를 냈다.

“어떻게 피임도 하지 않고 그럴 수가 있어요? 당신과 미다 자매님은 둘 다 생도 신분이잖아요.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준비도 안 되어 있으면서, 대뜸 그렇게 무책임하게 행동하는 건 너무 책임감 없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나는 이쯤해서 오해를 풀어주기로 했다. 적당히 말을 받아주면서, 킬리가 뭘 착각하고 있는지는 묻어버린 채.

‘나중에 이불킥 할 게 뻔해. 괜히 흑역사 만들어주지 말자.’

킬리는 태도가  그래서 그렇지, 나한테는 둘도 없는 생명의은인이다.
메리를 빼면,  인생 최초로 내 목숨을 살려준 사람.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취향이다.

“걱정마세요, 수녀님. 푸르푸르는 이미 봉인했습니다.”
“…네?”
“피임. 녹육의 축복 권능으로 확실히 하고 있다구요. 임신 어쩌고 하면서 서윤이를 거칠 게 안은 건, 흥분을 주체하지  해서 그랬어요. 어제 새벽에 너무 시끄럽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버, 벌써 푸르푸르를… 잡았다구요?”

당황의 빛이 떠오른 킬리 퍼시벌의 얼굴을 보며 씨익 웃어주었다.

“네. 푸르푸르만이 아니라 수녀님이 도와주신 덕에 지금까지 총 12기의 악마 군주를 봉인했어요. 아시다시피 중에 비네도 있고, 페넥스도 있죠.”
“……흥.”

뚱한 기색으로 날 바라보던 킬리 퍼시벌이 새초롬한 말투로 물었다.

“성령 메를리누스님과는 언제 처음 계약을했죠?”
“학기 시작 전인 2월 초입니다.”
“1년 2개월 동안 12기라. 몹시 빠르군요. 당신이 속도 면에서 훌륭하게 봉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하도록 하죠.”
“작년이 아니라 올햅니다.”
“…….”
[ㅋㅋㅋㅋ]

킬리 수녀의 깊고 아름다운 회색 눈에 당혹감이 깃들었다.

“…김제이. 당신은 분명 C급 헌터인 걸로 알고 있는데. 설마 당신도 저처럼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건가요?”
“C급 맞습니다. 메리를 만나기 전에는 각성도  했었죠. 태생 E급이구요, 이제 슬슬 각성 버프 기간이 끝나서 신체능력과 마력 성장에 정체가 오고 있는  같습니다.”
“흥! 당신은 아직 실제계에서 C급에 불과하고, 악마 군주는 60기나 남아있어요.”

그녀가 팔짱을 꼈다.
메리 공언 G컵이라고 했던 그녀의 커다란 가슴이 ―아이린과 같은 컵이지만 키와 체격이 있어, 부피는  컸으나 크기는 오히려 작아보였다― 아주 살짝 실루엣을 보였다.

“게다가 칠죄종이나 마르바스, 파이몬 같은 아주 강력한 악마들이 수도 없이 남아 있죠. 지금까지처럼 공상계에서 쉽게 일이 풀릴 거라고 기대하다간 큰  다칠 걸요?”

나는 이쯤에서 그녀를 당기기로 했다.
메리와 약속했다. 퍼시벌의 자손인 킬리와 친해지기로. 그러니 이제 들이대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러니까 수녀님이 많이 도와주세요. 제가 부족한 면이 많습니다.”
“아니요.”

방금 내 멘트가 무지 구렸나보다.
상당한 놀라움이 담겨 있던 킬리 퍼시벌의 눈이 어느새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으니까.

“그저께 말했다시피, 앞으로 당신이 직접 악마 군주를 봉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벤치에 올려둔 두꺼운 성경책을 집은 그녀가 끊어 말하듯 재차 예고했다.

“악마는. 제가. 구축합니다.”

그녀가 등을 돌리며 추가로  마디를 내뱉었다.

“당신은 목숨 걸고 얻은 현상금으로 미다 자매님과 주님이 내려주신 젖과 꿀을 음미하고, 포도주가 흐르는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며 인생을 즐기세요. 그게 C급 헌터에 불과한 당신이 원래 누려야할 삶의 기쁨일 테니까.”

이미 알고 있었구나.
내가 6억을 받은 걸.

“킬리 수녀님.”
“뭐죠.”
“우리 반띵하죠.”
“뭐라구요?”

폰을 꺼냈다. 계좌번호를 받아 적을 생각으로 메모장을 열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양도 소득세 문제라면 걱정 마세요. 제가 이정엽 팀장님께 말씀드려서 공동 체포자로 처리해달라고  테니까요. 아, 혹시 아시려나? 현상금은 면세라서 6억 그대로 들어오니까 수녀님 몫은 3억이  겁니다.”

내 말이 끝난 순간이었다.

―고오오오오오

킬리 퍼시벌의 몸에서 엄청난 투기가 흘러나왔다.
아주 소중한 무언가에 흠집이 난 것에 극히 분노한, 그런 모습이었다.

“당신… 지금 뭐라고 했지.”

킬리가 등을 돌렸다.
그녀가 당장이라도 내 뺨에 레프트 훅을 박아버릴 듯한 기세로 짓씹듯 말을 이었다.

“감히… 신성해야할 퇴마 임무에. 보수를 받으라고? 당신 눈에는 내가 그따위 속물로밖에  보이나? 당신이 신검 캄비온의 계약자라고 해서, 내가 당신을 봐줄 거라고 생각해?”


나는 당황했다.
아무리 돈 욕심 없는 수녀라도 현역 헌터니까, 있으면 좋겠지생각해서 꺼낸 말이었는데 실수를 한 모양이었다.

[네놈이 자신의 명예를 조롱하기 위해 꺼낸 말이라고 오해했나보다.]

메리의 말을 들으니, 아주 고깝게 들으면 빈정거리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수녀님! 그게 아니라―.”

내가 막 오해를 풀려 했을 참이었다.

―너 뭐야.


**


“너 뭐야.”

화아아아아악! 하고,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거센 돌풍처럼 우리를 감쌌다.
나는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하리야!”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의 엄청난 양의 마력을 뿜어낸 이는, 우리 하리였다.
녀석이 눈에 짙은 살기를 줄줄 흘리며 시스터 킬리를 향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걸어왔다.

“너 지금 감히 누구한테 들이대. 죽고 싶어?”

나를 보호하듯 킬리 앞에 마주 선 하리의 부스스한 갈색 긴 생머리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시험기간이라 내가 미처 다려주지 못해 구깃구깃한 생도복 치마가 아슬아슬하게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정도의 위협적인 마력방출이었다.

“당신은 누구죠.”

위기를 감지한 시스터 킬리 역시 굳세게 말아 쥔 양 주먹을 턱 앞에 들어올렸다.
그 모습을 본 하리가 피식 웃었다.

“아아, 클레릭이셔. 해보시게?”
“원한다면.”
“너도 힘숨찐이구나. 편입생?”
“그러는 넌?”

킬리 퍼시벌이 존댓말을 버렸다.
상대가 자신과 같은 S랭크의 강자라는 사실을 눈치챈 하리 역시 전에 없는 팽팽한 기세로 킬리를 응시했다.

“난 3학년. 우리 오빠 동생이야.”
“아하. 그럼 잘난 니 오빠 간수 좀 잘하지 그래? 토요일 때처럼 주제도 모르고 까불다가 심장 뚫리게 하지 말고.”
“뭐…?”

항상 여유 있는 미소를 머금고 있던 우리 하리의 청순하고 고운 얼굴에서.

“심장이 뚫리다니. 다시 짖어봐.”

한순간에. 표정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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