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화 〉115. 제이와 달콤한 미인주 (8)
<신이사건조사연구부>.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오컬트 마니아인 1학년 낸시와 점성술에 푹 빠진 같은 반 미아가 소모임으로 조직한 곳이다.
그녀들 나이 17살 때부터.
6년의 긴 시간동안 오직 단 둘이서.
다른 어떤 이의 접근도 허용치 않고.
자기들끼리만 비밀리에 꾸며온.
조그맣고 은밀한 소녀들의 정원.
이곳이 바로, 고학년들 사이에서 폐쇄성과 기행으로 악명 높은 신연이다.
지금도 학교 커뮤니티에 ‘신연’을 쳐보면 이런 글이 1페이지에 나온다.
―[얔ㅋㅋ 신연에 ㅆㅂ 남자 들어갔더라? 그또라이 대체 누구냨ㅋㅋㅋ]
―[→정박아년들 ㅉㅉ 그렇게 히키코모리짓을 하더니 결국 정식동아리신청했네. 생활비 떨어졌나? ㅈㄴ 추하죠]
―[→걔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건지 ㅈㄴ 이해 안댐. 졸업 안 하나? 집에 돈 많아? 인생 안 아까워?]
―[미아 파레스 그년은 각성을 못해서 졸업을 못한거니 이해라도함. 근데 낸시는? 그년은 A급에다가 전직 구룡칠봉이었던년이 뭐가 아쉬워서 미아 같은 ㅂㅅ이랑 붙어먹는지 모르겠다]
―[→ 직업도 대형클랜이 발가락까지 빨아줄 지휘관이신뎈ㅋ 게다가 졸업생들얘기들어보면 그냥 지휘관도 아님. 유니크 고유능력 때문에 같이 실전 뛰어보면 존나개쩐다고 함.]
―[→→이거 ㄹㅇ임. 낸시는 갓임]
―[→→걔는 ㅇㅈ 진짜 넘사벽. 에스원이랑 유진이 6년째 매달리는 중.]
―[→→ 나 청랑 현직인데 우리 회사도 그래. 근데 답장도 안준다 ㅅㅂ]
―[→→→이새끼 훌리건이네. 세계최강에스원이랑 2위인 유진도 거절한 낸시갓인데 어딜 블루울프 따위가ㅋㅋ]
―[생도회장도, 구룡칠봉도 가입 거절당한 신연에 남자가 들어왔네?ㅎㅎ 들어보니까 지도교수는 라라 마르티넥이고,신입부원은 H컵재벌녀 하나래.]
―[→와, 글케 지들끼리만 놀더니 신입부원 스펙보소?ㅋㅋ 김제이 걔도 요즘 인기존나많자나. 신연 이년들 재주도 좋네 어케 꼬셨노 ㅆㅂㄴㅇ!]
―[→괜히 그년들이 이스트 블루 불가사의겠냐? 빨리 마이튜브 가서 댓글에 5월 연구주제 신연으로 하라고 달아랔ㅋㅋ 구독 좋아요도 꼭 눌러라. 두 번 눌러라.]
연구부 당사자인 낸시와 미아가 본인들 얘기니까 무시로 일관할 뿐.
신연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스트 블루의 불가사의 중 하나라 명명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그런데… 그런 신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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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김제이를 위해 존재한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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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놀랍고 황당해서 차마 말을 내뱉을 수 없었다.
‘…이게 지금… 말이 돼…?’
그녀들이 나를 속이고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나진 않았다. 비밀을 숨기고 있던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나도 나만의 은밀한 꿍꿍이가 있는데 쟤들도 그런 게 있었다고 해서 화를 내는 건 공평하지 않다.
게다가 이젠 많이 친해져서 안다.
낸시와 미아가.
아주 순수하고 좋은 애들이라는 걸.
쟤들이 나를 나쁜 방식으로 엿 먹이기 위해 내 비밀을 모른 척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전혀. 조금도 없다고 본다.
‘정말 놀랍네. 어떻게 알았지?’
[그러게나 말이다. 용한 년들일세.]
나와 메리는 그저, 궁금했다.
낸시와 미아는내 비밀을 스스로 눈치챈 선우나 하리와는 경우가 다르다.
얘네는 신연에 들어가기 전엔나와 많이 친하지도 않았고, 3관에 오기 전까지는 일면식조차 없던 사이였다.
‘그런데 신연을 어떻게 날 위해 만들어. 신연은 무려 6년이나 된 곳인데.’
아주 큰 부조리를 느끼고 있는 내게, 낸시가 다가와 어깨를살짝 짚었다.
“전후사정이 궁금하다면 지금 따라오도록.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으, 으응! 그, 금방… 이야. 금방….”
부부장 미아가 그동안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게 미안했는지, 어색한 눈웃음을 지었다.
그녀의 찬란한 황금색 눈동자는 전에 없이 불안하게 떨리고 있었다.
“제, 제이의, 자… 자료는… 많이… 어, 없거든. 그, 그래서… 보여줄, 거, 것도 적어….”
미아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들은 나를 부실로 이끌 모양이었다.
‘그래, 가보자. 뭐가 있나 보자고.’
두 여자와 함께 3관을 나섰다.
**
남색보다 보랏빛에 가까워진 동이 터오는 새벽하늘 아래.
“미아, 저기 봐라. 하늘이 가지색이다. 미아가 좋아하는 가지.”
“그, 그러네? 예, 예쁘다.”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교정을 걷는 낸시와 미아를 따라 연구실로 향했다.
“빨리 시험이 끝나서 총무가 또 터키식 가지 요리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소피아의 요리도 아주 맛있지만 너무 건강식이라 간이 조금 심심하다. 그치?”
“으, 으응! 그때 마, 맛있었지….”
“알았으니까 빨리 가. 시험이 끝나야 해주든 말든 할 거 아냐.”
“미아, 총무가 약속했다!”
“와아아~! 고, 고마워 제이야!”
―철컥! 딸깍
그녀들은 나를 2층 구석방으로 이끌었다.
운영진인 두 여자와 라라만 출입이 가능한, 2팀 전용의 연구실이었다.
“총무.”
“어.”
“미리 사과한다.”
“미, 미안해애….”
낸시와 미아가 비공개 연구실 앞에서 양해를 구해왔다.
“총무의 고백. 혹은 우리 쪽에서의 커밍아웃이 예상보다 빠른 탓에, 연구실 정리가 하나도 안 되어 있다. 거부감을 느끼거나 충격을 받지 않았으면 한다.”
“노력은 해볼게.”
말이 끝나자 부장이 키를 넣어 문고리를 돌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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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메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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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안쪽이 온통 우리였다.
벤치에 혼자 앉아 웃음을 머금고 혼잣말을 하고 있는 사진. 사진에 붙은 노란 포스트잇에는 <에고 소드와 대화 중 - 3>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다.
고고학과 역사학 논문에서 발췌한 1600년 전 신검 캄비온의 모습을 추정한 자료들이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면, 예드디야의 72악마. 그리고 아서왕 전설과 관련한 극히 세세한 자료들이 깨알 같은 글씨로 무려 벽 두 면을 빽빽하게 채우고있었다.
글 사진 글. 수없이 많은 우리의 자료들이 연구실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이 뿐이 아니었다. 내 인간관계가 그물망을 만들 듯 아주 세세하게 분석되어있는 맵도 있었다.
하리와 선우 등만이 아니라, 희망원 원장님이나 내 어린 시절 친구들. 심지어 너무 어릴 때 돌아가셔서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우리 부모님에 관한 정보도 담겨 있다.
“…….”
화룡점정은 연구실 한쪽 벽.
화이트보드에 커다랗게 적혀 있는 몇 줄의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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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총무 김제이는 성검 엑스칼리버로 추정되는 에고소드와의 협력 관계를 통해, 여자들과 연관된 신이 사건을 해결하고 있다. (참일 확률: 99% 이상)
2. 또한 사건 해결 방식은 성적인 부분과 깊은 연관성이 가지고 있다. (참일 확률: 87%)
결론: 우리의 총무 김제이는 1600년 전 브리타니아 섬에 출현했던 솔로몬의 72악마를 재봉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일 확률: 약 80% 이상)
-확률 최종 갱신일: 202X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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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마지막 갱신일은… 라라에게 내가 메리와 놀던 걸 들킨 그 날… 이다.
이 연구실은 운영진 외에 수석연구원인 라라도 출입 가능한 곳이니, 당연히 그녀도 알고 있었을 게 뻔했다.
이것이 말하는 바는 간단하다.
‘라라가 이미 모두 알고 있었구나!’
등골에 소름이 쫘악 돋아났다.
[이년들 진짜 보통 아닌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스토컨 줄 알겠다. 라라 고년도 마냥 네놈에게 홀린 줄만 알았더니, 좋은 머리 값어치는 하고 있었군.]
아주 똑똑한 메리이지만, 이 말은 조금 틀렸다. 스토커가 아니라 이건….
‘범인이지. 신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범인의 정체를 면밀히 파악하려고 분석한 자료들이야. …와…….’
감탄을 흘리며 비밀 연구실 가운데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보고서를 집어 들었다.
『2X년 3월 마지막 주: 우리 아가♡ 연구 보고서 by 수석연구원 겸 2연구팀장 라라 마르티넥』
보고서를 훑어보니, 이런 내용이었다.
―『3월 28일 오전 7시 9분 경. 내 아가가 성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음. 에고소드 확률 추정치 100%로 상승.』
―『28일 당일, 아가와 사랑을 나눈 사흘 뒤. 제주시 종합병원에서 마력의료기기로 확인한 바.무척 안정적으로 착상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함. 그러나 정상 생리주기와 똑같이 월경이 시작됨.』
―『자연유산의 흔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아가가 성과 관련한 신비한 힘을 사용한 것으로 보여짐. 해당 확률 추정치 15% 상승.』
그랬다.
신연2팀의 극비 연구라는 것은.
나와 메리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도―.
―『아가가 부산에 간다고 함. 부산살인마 때문인 것 같음. 위험할까 걱정됨.』
―『최근 아가와 사이가 소원해진 육 주임을 동행시키면, 혹시라도 위험행동을 덜 하게 되지 않을까 사료됨.』
―『※ 수석연구원 개인 의견: 파견 조사 구실로 동행을 시켜보는 건?』
우리의 악마 봉인 임무를….
돕기 위한… 노력들 …이었다.
**
사람이 너무 황당하면 웃음이 나온다고 하더니, 그게 정말이었다.
“…큭큭큭큭!”
[…ㅋㅋㅋㅋㅋ!]
나와 메리는 우리 라라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앙큼한 짓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웃겼다.
그리고 내 똑똑한 여자친구보다, 훨씬 큰 그림을 그리고있었던 두 여자 때문에 도무지 웃음을 멈추지를 못했다.
“이게 뭐야, 시바…! 이게 말이 돼? 어떻게, 크큭!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우우우우웅
메리도 귀걸이 코스프레를 관두기로 했는지, 아예 한손장검 크기로 돌아와 연구실 안을 마음껏 날아다녔다.
[와~! 제이야 이거 봐봨ㅋㅋ 나 3주 번쯤에 사진 찍혀서 커뮤니티 올라왔을 때 있잖아?]
“어어.”
메리가 검 끝으로 사진 옆에 붙은 메모지를 톡톡 두드렸다.
[그거 서루이가 찍은 거였넼ㅋㅋ 그 다음에 신연에 제보한 거고. 그리고 그 모양이 네놈 귀걸이랑 똑같다는 걸 저년들이알아버린 거짘ㅋㅋㅋㅋ]
“그랬구나. 그걸 누가 찍었나 했더니, 루이가 찍었었구나.”
이제 눈치도 안 보고 그냥 메리랑 ―혼잣말처럼 보이겠지만― 얘기를 하고 있자, 낸시와 미아가 다가왔다.
“총무.”
“저, 저기이…”
깜찍이들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물론 우리 미아는 까만 니캅 때문에 분위기가그래보였다는 것뿐이지만.
“그동안 총무에게 숨긴 점 미안하게 생각한다. 프라이빗 시크릿인 부분이 많은 것 같아 우리 쪽에서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간 정보 격차 문제가 있어 불쾌하게 여겼을 부분이나, 오늘 갑작스런 커밍아웃에 놀란 마음까지. 모두 정중히 사과한다.”
“으, 으응! 저, 정말… 미, 미안해….”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들의 어깨를 가볍게 쓸어주었다.
“됐어, 뭔 사과까지. 먼저 말 못 꺼낸 것도 이해해.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상을 받아야지 왜 벌을 자청하냐? 하여간 계산은 안 밝은 년들이로구만.]
용서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내 말에, 두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낸시가 검은 숏컷 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담담하게 사실을 전달했다.
“하지만 우리 신연이 너. 정확히는 너의 악마 봉인 임무를 돕기 위해 존재한다는 점은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는 미아의 점괘에 따라 아주 오래 전부터 널 기다려왔다. …미아?”
절친의 말을 들은 미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말을 받았다.
“서, 성거, 성검을… 가, 가진 사, 사내가… 내, 내 아, 앞에, 나, 나타날… 거, 라고… 해, 했어. 으음―”
미아가 말해준 긴 사정을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미아와 낸시. 정확하게는 부부장 미아 파레스가 한 남자를 기다려왔다. 그는 바로 성검을 가진 남자.
-그 남자는 지구에 있는 네 개의 등용문 중, 동쪽 끝의 문에서 나타날 것이라 했다.
-두 여자는 연구 끝에, 이 점괘가 각각 <이스트 블루>와 <성검 엑스칼리버>를 의미하는 것이리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그들은 이스트 블루에서 6년을 기다려왔다. 다른 누구도 아닌. 신검 캄비온의 계약자인 나를 만나기 위해서.
‘엑스칼리버라. 틀린 말은 아니네.’
[오히려 정확하다. 이 몸은 그 촌스러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싫어했지만.]
성검 엑스칼리버. 선정의 검 칼리번. 신비살해의 마검 칼레드불흐 등등. 검령 메리가 깃든 신검 캄비온을 지칭하는 말은 무척 다양하다.
두 여자가 캄비온의 대표적인 이명인 엑스칼리버를 언급한 건, 오해가 아니라 오히려 정확한 추측이다.
‘그나저나 얘네 진짜 대단하네.’
6년.
나를 만나, 나의 악마 봉인을 도와주기 위해, 무려 6년을 기다려왔다니.
‘대박이다.’
나는 그녀들의 마음과 노력이 고맙고 뭉클하기보단, 많이 낯설었다.
“…그게 순전히 미야의 점괘 때문에 그랬다는 거지?”
“후우…. 으… 응!”
미아가 몹시 아름답고 찬란한 황금색눈으로 싱긋 웃었다.
그녀답지 않게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지친 듯, 몸을 들썩이면서까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음…….”
이 타이밍에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할 것 같았다.
“왜. 너희는 날 왜 도와주려는 거야?”
그게 궁금했다.
아무리 얘들이 오컬트에 환장해서 미아의 점괘라면 철썩 같이 믿고 행동한다지만. 졸업할 시기가 3년이나 지났음에도 계속 기다린 건, 너무 심했다.
그것도 시설이 구리기 이를 데 없었던 리모델링 전의 3관에서.
“그건 비밀이다.”
“……으, 으응.”
낸시와 미아가 이토록 나를 헌신적으로도와주려하는 이유 대해서는 함구를 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내가 되물었다.
“왜 비밀인데?”
“결과가 원인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절대로안 될 일이다.”
낸시가 졸음기가 완전히 가신 얼굴로 커다란 검은 뿔테 안경을 올려 쓰며 재차 강조했다.
“때가 무르익기 전까지는 말해줄 수 없다. 다만 약속은 해줄 수 있다. 이유를 알고 나면 총무 김제이도 반드시 납득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약속을.”
“…….”
낸시가 따뜻한 호의가 깃든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미아 파레스는 어쩐지 수줍음이 느껴지는 기색으로 눈을 아래로 깔았다.
“그래, 말해줄 수 없으면 좋아. 나라고 해서 너희한테 악마 봉인과 관련한 모든 비밀을 말해줄 순 없으니까.”
사실이 그렇다.
푸르푸르의 숙주인 유부녀 송유빈을 공상계에서 따먹은 일이나, 부네의 숙주이자 학교 직원인 박지혜를 꿈속에서 강간한 일 같은 걸 대체 어떻게 말해.
―후흣
불현 듯 낸시가 웃음을 흘렸다.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총무는 운이 아주 좋았다고 생각하게 될 거다.”
“그게 무슨 소리야?”
그녀가 검고 두꺼운 천으로 몸을 완전히 가린 미아 파레스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거대하고 탐스러운 낸시의 I컵 폭유가 그녀보다 9cm가 큰 미아의 몸에 닿아 야하게 일그러졌다.
황급히 눈을 돌리는 나에게, 낸시가 장난기 머금은 대답을 툭던졌다.
“그냥. 별 거 아니다.”
“…….”
“싱겁긴.”
창밖을 보니 해가 떠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오전 6시 반.
시험 전까지 정말 몇 시간 안 남아서, 충격적이었던 커밍아웃 사건을 마무리 지을 시간이었다.
“앞으로 그럼 우리 동아리 활동은 어떻게 되는 거냐?”
“똑같다.”
“또, 똑같… 아.”
낸시와 미아가.
평소 이 시간이면 그랬던 것처럼.
졸음이 가득한 눈으로 생긋 웃었다.
“지금과 같다. 달라진 점은 없다.”
“으응!”
그 말은 영 틀리진 않다.
신연 활동이 달라질 일은 없다.
애초에 나를 돕기 위해 만든 신연이었고, 원래부터나를 돕고 있었으니까.
“그래. 나 간다? 잘들 자고, 이따 봐.”
나도 평소처럼 그녀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부실을 나왔다.
**
―째액 찌르르르 짹짹
한라산국립공원 너머로 들려오는 산새 소리가 오늘따라 낯설게 들려왔다.
―까톡
폰을 확인했다.
발신자는 신연의 다른 멤버들이었다.
[→라라 마르티넥: 아가 많이 놀랐니? 미안해. 비밀을 지키고 싶어 하는 널 배려해주고 싶었어. 정말 미안. (엉엉 우는 이모티콘) 그래도 많이 사랑해. (아주 큰 하트 스티커)]
[→유니♡: 빠빠야! 라라 언니랑 신연 언니들도 전부 알고 있었다며? 전부 오빠 일 도와주려고 그런 거였다니 진짜 잘 됐다+_+ 나 언니들 때매 감동해서 울어ㅠㅠ 울 빠야, 누구 빠야길래 인복도 그러케 조으세여♥♥♥]
[→소피아: 낸시 부장에게 인턴 자격으로 소식을 받았습니다. 좋은 동료 분들을 얻으신 주인님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부족한 메이드의 금일 일정을 보고 드리겠…]
부장과 부부장 말마따나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는 동아리 생활이겠지만.
[→낸시: (대충 졸린다는 이모티콘)]
[→미아: 제이야. 오늘도 셤 잘 봐:D]
어쩐지 조금. 든든해진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