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118. 제이와 달콤한 미인주 (11)
천하 명주 축제의 1부가 끝났다.
이번 8회의 우승자는 평양광역시에서 온 아주머니였다. 조선의 3대 명주 중 하나였다는 감홍로를 빚어온 분이었는데, 확실히 술이 맛있긴 했다.
―자아, 오래 기다리셨슴다! 다음 순서는, 여러분들이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미인주…
장독수 시장의 말 사이로 군중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미인주다, 미인주! 빨리 주세요!”
“시장님~! 미인주 은주 누나가 빚은 거 맞아요?! 그 소문 실화에요?!”
“미인주! 미인주!”
미인주美人酒.
쌀과 같은 곡물 등을 입에 넣고 씹은 뒤, 도로 뱉어내서 모은 것을 발효시켜 만드는 술.
즉, 사람의 침이 섞인 술이다.
그리고 시장의 막내딸인 배우 장은주.
그녀는 요 몇 년 사이 충무로에서 가장 핫한 여배우이자 CF스타로 유명한 연예인이다.
미인주와 장은주의 조합.
이것의 파급력은 예사롭지 않았다.
잔뜩 흥분한 아이웨이가 돗자리 위에서 벌떡 일어났다.
“장은주?! 미인주를 장은주가 빚었다고?! 이거 실화냐!”
놈이 당장이라도 시장 할배의 멱살 잡을 기세로 신발을 신었다.
장내에는 이미 술이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이 가득해서, “장은주! 미인주!”를 외치며 행사 열기를 돋우었다.
―미인주! 를, 음미하시기 전에.
장독수 시장이 말을 끊었다.
남들 앞에서 한두 번 얘기해본 솜씨가 아닌지, 장내가 완전히 고요해질 때까지 기다린 뒤에 말을 이었다.
―오늘의 특별 초대 가수를 모시겠습니다. 앞으로, 나와주세요~!
할배의 말이 끝나자, 암자 우측 구석에서 모자를 쓴 여자가 일어났다.
그녀가 시장의 마이크를 건네받으며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었고, 장내는 곧바로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장은주다! 장은주가 왔어!”
“그럼 그렇지, 큭큭! 주당인 지 애비 똑닮은 우리 은주가 빠지면 쓰나?”
“존예 여신! 은주 언니 팬이에요!”
충무로의 여신 장은주는 많이 예뻤다.
‘제게 배우구나. 우리 라라나 서윤이보단 아니지만, 확실히 아우라가 있네.’
실제로 본 장은주는 툭 치면 부러질 것처럼 너무 많이 말라서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그럼에도 얼굴 하나만큼은 관리를 받은 덕인지 참 고왔다.
특히 차분하면서도 생기를 머금은 듯, 화장품 광고에 딱 어울릴 법한 차분한 마스크가 뇌리에 콕콕 박혔다.
보기만 해도 영혼이빠져들 것 같은 서윤이나, 말 걸기 힘들 정도로 신비로운 느낌의 라라와는 달리 편안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주는 독특한분위기.
―삐이이이이이
싸구려 엠프와 마이크의 이명이 행사장을 갈랐다.
편안한 베이지색 면바지와 얇은 청색의 스웨터를 입은 장은주가 밝은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제주 시민 여러분! 인기 없어서 망한 10년 차 아이돌 가수 쭈이입니다!
“하하하하! 쭈이, 오랜만이다!”
“은주야! 너는 거시기 뭐냐, 랩 담당이잖여! 뭔 노래를 하겠다고 나왔냐!”
장은주.
그녀는 원래 무명이나 다를 바 없는 아이돌 가수로 연예계에 전전하다가, 그룹이 망한 뒤 배우로 전향해 탑스타 자리에 올랐다. 그야말로 전화위복.
―은주라뇨, 그게 누구죠? 아이돌 가수 쭈이가 천하 명주 야시장 축제를 위해 노래 한 곡 띄우겠습니다. 밴드! 비트 안 주고 뭐해요?
“휘이이이이이이이~!”
“장은주! 장은주!”
“장은주! 장은주!”
아빠를 많이 닮았는지 넉살 좋은 장은주가 싸구려 노래방 기계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그녀를 촬영하며, 이게 진짜 가수 출신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의 노래를 들었다.
―술이 술을 부르고♪
―님이 나를 부르네에♪
인기 트로트를 열창하는 그녀는 가벼운 율동까지 섞어 팬서비스를 해주었지만, 나를 포함한 관객들이 볼 때는 그저 귀엽고 웃겨 보일 뿐이었다.
“저게 서브 보컬 겸 래퍼라고? 그룹 망할 만 하다. 천생 배우네, 타고났어.”
“아무렴! 저 노래로 무대에 서려면낯짝이 오죽 두꺼워야지. 우리 은주가 연기력이 좋은 게 이유가 있어.”
같은 제주도 사람인 장은주에게 친밀감을 가지는 관객들이 애정 섞인 타박을 하거나 말거나.
장은주는 끝까지 노래를 열창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10년 차 아이돌 쭈이였습니다! 모두 좋은 시간 되세요!
―크흠! 예정에 없던 특별 초대가수 공연 잘 보셨는지 모르것습니다.
하하하,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방금 멘트로 봤을 때, 원래 장은주는 조용히 술만 먹다 갈 예정이었던 모양.
―자아, 다음은 이제 진짜로 소문의 그 미인주를 드리겄습니다. 모두 천천히 음미해주시면서, 누가 만들었을까. 어떤 미인이 이 술을 빚어냈을 것인가를 상상하면서 맛보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행사장 분위기가 떠들썩하면서도 고요해졌다. 다들 쑥덕거리면서 “진짜 미인주를 장은주가 만든 건가?” “말도 안 되는 소리”하고 얘기를 나눴다.
‘미인주라. 진짜장은주가 빚었나.’
호기심과 아주 가느다란 색욕과 그보다 더 큰 즐거움이 흐르는 밤이었다.
**
미인주는 놀랍게도 배우 장은주가 직접 따라주었다.
“자, 이번에 이쪽 차례. 잔 받으세요.”
근 300명은 되는 인원들의 자리에 직접 찾아가 하나하나 술을 돌린 거다.
입맛을 다시며 순번을 기다리던 아이웨이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와, 살다 살다 장은주가 따라주는 술을 다 마셔보네. 저 미인주 진짜 장은주가 만들었음 어쩌지? 먹지 말고 팬클럽에 팔까. 패티쉬 오지는 새끼들한테 비싸게 팔릴 텐데.”
술기운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녀석이, 옆에 킬리가 있는 사실도 까먹었는지 개소리를 내뱉었다.
착한 선우가 커버를 쳐주려 노력했다.
“미인주가 별 건가요. 그리고 곡주 특성 상 쉽게 상할 가능성이 높아서 바로 드시는 편이 좋을 거에요.”
“야 임마! 니가 몰라서 그래.”
아이웨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선우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너 새끼야. 세상에 포상충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지? 장은주 침이 아니라 똥이라고 해도 수백 수천 낼 놈들이 쎄고 쎘어. 상한 게 뭔 상관이야?”
“후우…… 네에, 네에.”
선우가 살기까지 감도는 눈빛으로 어깨를 털었다.
사이다를 홀짝이며 동그랑땡을 먹고 있던 킬리 퍼시벌이 경고를 날렸다.
“왔네요.”
머리에 그림자가 진 느낌에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학생들이시구나.”
술병을든 배우 장은주가 우리 돗자리 앞에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와, 배우라 그런지 냄새도 다르네.’
순간적으로 코가 마비될 정도의 달콤하고 진한 향수 냄새가 우리들 주변에 퍼졌다.
“장은주입니다. 아버지 행사에 와주셔서 감사해요. 제가 한 잔 돌릴게요.”
“여, 영광입니다 누님!”
아이웨이가 무릎을 꿇은 자세로 잔을 받았다.
졸졸졸.
장독수 사장이 직접 담갔다는 우윳빛 나는 미인주가 그의 종이컵 안으로 떨어져 내렸다.
“잘 먹겠습니다!!”
아이웨이는 뭐가 들었는지 당최 알 수 없는 미인주를 한 입에 털어 넣은 뒤, 장은주에게 이빨을 깠다.
“크으…! 술맛 정말 죽입니다! 팬이에요, 누나! 저 DVD도 다 샀어요.”
“고마워요. 헌터 분들이시구나? 몸이 아주 좋으신데요.”
“예! 이스트 블루 생도들입니다.”
“아아, 그러시구나. 어쩐지.”
장은주가 반묶음 단발머리를 이마 위로 곱게 넘기며 선우와 킬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까지 찬찬히 바라보았다.
“그쪽도. 제 팬이세요?”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네. 『가을의 눈물』 참 재밌게 봤습니다. 평소 누나 팬이었어요.”
“어머 정말? 그 작품 좋아하는 남자 잘 못 봤는데. 감수성이 풍부한가봐.”
“시나리오가 워낙 좋더라구요.”
“에이, 시나리오만?”
“당연히 누나 연기가 최고였죠.”
완전 개소리다.
하리랑 아이린 때문에 작년에 그 멜로 영화를 보긴 했는데, 여자 입장에서의 연애를 그린 시나리오라 공감이 하나도 안 돼서 하품만 하다 왔다.
그리고 그 작품은 장은주 필모에서 가장 캐릭터 해석을 못 했다고 손꼽히는 영화였다.
“후흣, 고마워요. 잔 받으세요.”
공손하게 술잔을 내밀자 배시시 웃은 장은주가 술병을 기울였다.
종이컵을 채워가는 우윳빛 술을 보며, 나는 심각한 내적 갈등에 휩싸였다.
‘이걸… 마셔야 돼?’
나는 비위가 약한 편이다.
그런데 미인주?
이거 씨발 사람 침 들어간 거잖아!
물론 나도 남자니까 장은주 침이면 그러려니 눈 딱 감고 마실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그녀는 누가 봐도 예쁘니까.
그런데 아니면.
저 시장 할배 가래침이 들어간거면?
그럼 젠장 누가 책임질 건데!
“우리 친구 취했나보네? 손이 떨려.”
내적 갈등 때문에 그런건데, 장은주가 오해를 했는지 귀엽다는 듯 물었다.
“누, 누님이 너무 예쁘셔서요.”
“말도 참 곱게 잘한다. 몇 살이에요?”
“스물 셋입니다.”
“아아. 나랑 여섯 살 차이구나. 내가 너무 늙었네.”
“늙기는요. 너무 아름다우신데. 누나 같은 여친 있으면 소원이 없겠네요.”
“하하! 남친 자리 비었는데, 막 이래.”
마음에도 없는 말이 입에서 자동으로 나왔다. 머릿속으로는 이걸 마셔야 돼 말아야 돼 생각하면서, 잠시 뜸을 들이고 있을 때였다.
“음?”
생글생글 웃던 장은주가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왜 빨리 안 마시냐는 듯 물끄러미 날 바라봤다.
아이웨이와 선우, 킬리 역시 너 왜 자꾸 뜸들이냐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망할….’
속으로 흑흑 울며 종이컵을 입에 대고 있을 참이었다.
[악마 군주의 흔적이다.]
메리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장은주가 숙주야.]
[19위 살레오스Saleos. 괴완공이다.]
[실제계에 일부 침식까지 이루어졌어.]
대가리를 존나게 굴렸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놀랄 정도로 엄청나게 복잡한 생각을 한 번에 마친 뒤.
잔을 내렸다.
“은주 누나.”
“응? 왜 그래요. 뭐 문제 있어요?”
장은주가 분위기 있는 깊은 눈을 초승달로 만들며 내게 물었다.
그녀가 내게, 아이웨이나 다른 축제 참가자들보다 훨씬 친근하게 구는 이유를 나는 당연히 알고 있다.
[▶ 상시 발동 중]
미인주가 담긴 종이컵을 창피하다는 듯 만지작거리며 가식을 떨었다.
“이게 혹시… 누나가 빚은 술이 맞으면,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마시기 너무 아까워서. 그래서 못 마시겠어요.”
잠깐의 정적이 지나갔다.
장은주의 옷에서 나는 고급스러운 향수 냄새가 어쩐지 조금 옅어진 기분이 들었다.
“글쎄? 어떤 미인이 빚은 술이려나.”
그녀가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가볍게 쓸며 자리를 떴다.
**
“김제이 이 발정난 발발이 새끼야!”
장은주가 우리 자리를 벗어난 후.
아이웨이가 쌍욕을 퍼부으며 멱살을 잡아왔다.
“너 장은주 하나도 안 좋아하잖아! 그리고 여친도 개씨발 존나 예쁜 여자들로 둘이나 있는 놈이 뭐가 모잘라서 또 개지랄병을 떨어!”
“그냥 예의 상 한 말이지. 작업 아니야. 진짜로 관심하나도 없어.”
나는 장은주에게 정말로 큰 사심이 없어서 ―그녀는 아주 아름다웠지만 너무 야위었다. 마른 A컵이 확실했다― 진심으로 그렇게 변명했다.
“씨이! 씨이… 참자…. 얜 환자다….”
아이웨이가 환자 어쩌고 하면서 더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아주 짜증난다는 듯 내 종이컵을 탁! 채갔다.
“김제이 넌 새꺄. 대체 무슨 고유능력을 각성한 거길래 요즘 들어 여자들이 너만 보면 환장을 하냐?! 아, 짜증나… 개부럽네 진짜!”
벌컥벌컥.
내 미인주를 대신 처리(?)해준 아이웨이가 “화장실!” 하고자리를 떴다.
놈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어설픈 젓가락질로 호박전을 조지고 있던 킬리 퍼시벌이 말했다.
“악마 군주로군요.”
“킬리 수녀님. 알 수 있으세요?”
“메를리누스님에 비하면 손색이 많지만 어느 정도는 탐지 가능합니다.”
시험기간 중 그녀에게, 선우를 비롯한 신연 멤버들이 나를 지원해주고 있었음을 이미 밝혔었다.
킬리가 안주를 헤집으며 선우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향긋한 술과 향수 냄새 사이로 고약한 악마의 흔적이 느껴졌어요. 이 정도로 실제계에 악취가 유형화되어 있을 정도면, 저라고 해도 눈치챌 수 있지요.”
“형. 그 냄새가 악마의 흔적이었다는 게 정말이에요?”
선우가 긴 귀를 쫑긋하며 물었다.
“난 그런 냄새 못 맡기는 했는데. 메리는 살레오스라는 놈이래. 19위.”
[괴완공怪腕公이라는 이명을 가진 중립계열 성향의 악마 군주다. 그런데 반쪽이 네놈이 궁금해 하는 건 단순히 그 지점이 아닌 것 같은데?]
메리의 말에 선우가 곤란함이 담긴 웃음을 지으며 살짝 코를 막았다.
“응, 메리야. 냄새… 너무 심했어.”
“말도 마요.”
킬리 퍼시벌 역시 예쁜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내저었다.
“질염인가? 이게 무슨 냄새야. 물리적인 게 아니에요. 악마의 권능이죠.”
나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어쩐지 이번 임무가 개좆같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받았다.
‘19위 악마 군주 살레오스라.’
괴완공 혹은 알콜중독자라는 이명을 가진 중립계 악마 살레오스. 이 새끼의 권능은 독毒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독. 그 중에서도 사람의 마음에 사랑을 싹트게 만든다는 미약迷藥. 더군다나 놈은 숙주의 자궁 속에 숨어있다.
보짓물이 놈의 지배 하에 있다는 뜻.
다시 말해, 장은주의 촉촉한 그곳에서 독기를 품은 악마의 물이 배어나오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그래서 성배를 몸에 품은 킬리나, 감각이 예민한 선우 같은 애들은 그 냄새를 선명하게 맡을 수 있는 거고.
‘좆됐네.’
참고로, 내가 공상계에 진입하면 100%확률로 저 ‘냄새’라는 걸 맡을 수 있게 될 거다.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인간 여자 보지에서 그런 썩은 내가 진동을 할 수는 없어. 아무리 향수를 많이 뿌려봐야 감각이 예민한 사람은 못속여. 이번 임무는 골치 아파졌군. 하필이면 네놈의 약점과 연관 되어있다.]
메리가 확인사살을 해주었다.
[보지썩내를 이겨내라 파트너.]
나는 벌써부터 도망치고 싶어졌다.
애욕의 화신 lv.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