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6화 〉136. 제이와 봄꽃 축제 (14) (136/145)



〈 136화 〉136. 제이와 봄꽃 축제 (14)

“하리야. 나는 삼천 일  창을 쥐었어. 권지후가 지 엄마 뱃속에서부터 검을 휘둘러왔어도 해볼 만해. 랭크 하나 차이는 감당할  있어.”
“오빠…!”

허세가 꽤나 섞인 내 말에 하리가 인상을 쓰며 내 팔을 감쌌을 때였다.
아이웨이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그만해.”

하리의 눈이 날카롭게 찢어졌다.

“아이웨이 너 죽고 싶어?”
“야! 니 오빠도 남자야!”

 친구가 내 동생에게 따졌다.

“그럼 기껏 본선까지 와서 승부 포기라도 하라는 거야?! 만에 하나 예전처럼. …아니지? 예전보다 훨씬 비참하게 쳐맞을 수도 있겠지만!”

아이웨이의 목소리에 울분이 실렸다.
나와 친해지기 전인 작년, 내가 괴로울 때 날 도와주지 못했었다는 사실을 지금까지도 분해했던 녀석이었으니까.

“그래도 씨발…! 들이받아 봐야지! 니 오빠 쫄보 아니야? 니가 더 알잖아. 좆도 약해서 개쳐맞아도 절대 고개 안 숙이는 거.  새끼 절대 기권 안 해.”
“…….”

할 말을 잃은 하리에게 아이웨이가 강하게 쏘아붙였다.

“사내의 복수는 자기 손으로 하는 거야! 니가 아무리 권지후랑 요시모토를 반죽여놨더라도, 그런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제이가 마무리해야 돼. 지난 예선 결승전에서처럼.”
“그러다 죽으면.”

―화아아아아앗

하리의 머리가 허공으로 치솟았다.

외부로 발현된 마력 없이, 저절로.

‘…이 자식 설마…….’

내가 너무 놀라 눈을 크게 떴을 때, 하리가 짓씹듯 아이웨이에게 물었다.

“그러다. 내 오빠 죽으면 어쩔 건데.”

대답은 우리를 지나치는 생도회장에게서 들려왔다.


“그땐 서서 뒤지는 거지.”
“너……!”


조쉬 맥킨지가 하리의 진득한 살기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평생 잘난 동생이 뒤치다꺼리 해줄 거 기대하면서 드러누울 순 없잖아. 걱정 마. 김제이가 이긴다. 장담하지.”
“그 판단 잘못 되면 너 정말 죽어. 아니? 너 혼자만 죽지 않아. 절대로.”
“그래. 명색이 남잔데, 김제이나 나나 관 뚜껑 못 박히는 소리 듣더라도 빚은 갚아야지, 안 그래?”

내게 윙크를 조쉬 맥킨지가 대기실을 나갔다.
아이웨이가 주먹을 불끈 쥐며 그의 말을 긍정했다.

“그, 그래! 값은 피로 갚는 거야!”
“…주변에 친구라곤 하나 같이 거지같은 새끼들만있어가지고.”

이 자식이 지금.

“하리야. 너 계속 오빠 친구들한테 말 그렇게 할 거야?”
“오빤 지금 누구 편을 드는 거야?!”
“나? 난 영원히 우리 하리 편이지.”

하지만 아닌 건 아닌 거다.

“그래도. 말은 곱게 하자.”
“…짜증나 진짜…….”

하리가 야속한 눈으로 노려본  대기실을 나갔다.

“야, 살살해!”

나는 혹시나 화가 난 녀석이 1회전 상대인 A랭크 궁사를 너무 심하게 대할까, 그렇게 말을 건넸다.

“씨발… 지리는  알았네. 조쉬가 도와줘서 안 쌌다.”

하리의 살기에 얼굴이 허옇게 질린 아이웨이가 사람들이 거진 다 빠져나간 대기실 의자에 털썩 앉았다.

“이 대형은 가끔 제이 니가 진짜… 존경스럽다. 저런 걸 어떻게 동생이라고 데리고 사냐. 성질부리면 살벌해서 밥이나 넘어가겠어?”

녀석이 음료수로 가글을 한 뒤 뚱한 얼굴로 날 윽박질렀다.

“그러니까 잘해! 질  지더라도 다치진 마.  다치면 나랑 조쉬는 니 동생 때문에 시체도 못 찾을 걸?”
“알았어 임마.”
“대충 대답하지 말고 개섀끼야.”
“안 진다고! 너나 잘해. 니 상대 카를로스잖아. 걔도 졸라  임마.”
“스벌. 대진운 존나 없네.”
“우리 인생에 꽁승이 있겠냐.”

실실 웃으며 아이웨이의 어깨를 두드려주었을 때였다.


“화자는 망자를 부르지 아니하였다!”

대기실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라다은이 내게 다가와 그렇게 외쳤다. 그녀의 짙은 보라색 머리카락에서 알싸한 향냄새와 죽은 생명의 냄새가 났다.
그녀의 핏기 하나 없지만, 그래서 더 예쁜 얼굴을 보며 피식 웃었다.

“권지후한테 한 말? 그냥 농담이야.”

―이따 보자?
―말하는 시체라. 라다은이 불렀나.

라다은과 나는 이 얘기를 거다.

“기분 나빴어?”
“흥! 승리 예고의 농은 이해했어. 화자의 의미망은 타자들이 망상하는 것처럼 그리 뒤틀려있지 않으니까.”

라다은이 대기실을 나가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녀가 이른 새벽하늘을 연상케 하는 깊은 보랏빛 눈으로 이렇게 경고했다.

“살았으나 산 게 아닌 그 망자를 조심해. 청자가 생명보다 아끼는 마녀의 눈에서 파천의 분루를 흘리게 하고 싶지 않다면.”

**


시간이 흘러 본선 1차전 6번째 대전.

―경기. 시작!
―삐이이이이이이이이

마봉 김하리와 3학년 A랭크 궁사 로렐리아의 승부는 한순간에 결정 났다.

―파지지지지지지직!
―크흑……!

우리 하리가나조차 본 적 없는 아주 특이한 전격 마법을 사용해서.
경기 시작 부저가 울리자마자 로렐리아 선배를 기절시켜 버린 것이다.

“와아…….”
“김하리 미쳤다! 로렐라이 상대로, …1.4초? 쳐돌았네.”
“씨발 저건  무슨 마법이야…. 자판기도 아니고 새마법이 누르면 나와.”
“김혜린 사후 최고의 재능을 가지신 미래의 SSS급 마녀답다.”
“올해 우승은 김하리가 하겠네. 근데 S등급 넘은 건 어떻게 숨기려나.”
“써클 마법사 아니라 그럭저럭 숨겨지는  다행이지. 우리한텐 불행인가?”

객석 관객들만큼이나 경악하는 대기실 진출자들을 보며, 나는 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하리가 설마 벌써 SS랭크에 닿았나.’
[가능성 있다. 아까 봤잖아.]

아까 하리가아이웨이에게 분노를 드러냈을 때, 녀석의 머리가 아무런 힘의 유동도 없이 저절로 떠올랐었다.

‘무형기. 무영창 외부마나제어.’

SS랭크 검사들은 이기어검이라고 불리는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 자신과 검 사이를 잇는 의지와 기를 통해, 원격으로 검을 조종하는 초고등기술을.

이때 검사와 검 사이를 잇는, 통상 개념과 다른 기의 유동을 무형기라 한다.

그리고 아까 하리의 머리카락이 녀석의 의지와 함께 움직인 것은, SS랭크 대마법사들에게서 볼 수 있는 <무영창 외부마나제어>와 흡사했다.

‘만약 하리가 SS랭크에 오른 거라면 아까 대기실에서의 그건 일부러 남들에게 보인 거겠지. 권지후의 귀에 하리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들어갈 수 있도록. 경고하는 의미에서 드러낸  거야.’

확실하다. 우리 하리는 대단히 영리한 애다. 아무리 아이웨이의 말에 화가 났다고 해도, 힘을 함부로 드러내는 그런 성격의 아이가 아니다.
아까 대기실에서의 그건, 권지후를 향한 경고였을  틀림없다.

‘…뭐 어쨌든 하리가 강해진 거면 좋은 거니까. 만약 SS랭크를 넘었다면 나한테 조만간 말을 해주겠지.’
[맞다. 스스로도 불안정해서 말을 안 꺼냈을 가능성이 있어. 기다려줘.]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잠시 후. 본선 1차전의 일곱 번째 대전이 이어집니다. 대전 참가자인 검술전공자 권지후 생도 및 창술전공자 김제이 생도는 지금 즉시 대경기장 특설 무대로 입장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하리의 예기치 못한 선전 때문에, 다음 참가자인 내가 마음의 준비랄 것도 없이 바로 경기장에 들어가게 된 것.

“조져!”
“이겨라, 김제이. 절대로 지지마.”

아이웨이와 아나 코스타가 의자에서 일어나는 나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고개를 까딱한 뒤, 대기실을 나왔다.


**

불 꺼진 복도를 지났다.

―탁 탁 탁 탁

전투화가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땀내가 배인 대경기장 복도를 울렸다.

노란 햇살이 가득한 출구로 향하는 이 길이 어쩐지, 더럽고 좁은 터널을 지나는 듯했던 지난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야. 니가 김제이냐?
―그런데.
―난 권지후. 진현이 친구야. 진현이 알지? 너 중학교 때 같은 반.

최진현.

내 인생에서 절대로 잊은  없는 개새끼의 이름이다. 중학교 1학년 시절,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던 나의 원수.
변성기도 오지 않은 그 어린 나이에 삶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던, 내 어린 시절의 악몽.

권지후는 그 최진현의 지인이었다.

―진현이가 너랑 사이가 아주 돈독했다던데. 나랑도 친구 먹는  어때?
―최진현 똥꼬나 빨아, 씨발놈아. 너도 개좆 종자들 집합소 블루울프야?
―듣던 대로 또라이네. 와… 입학 후에도 각성을 못하신 주제에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헌터들한테 쌍욕을 박아?  진짜 물건이다 야, 크크큭!

하지만 권지후는   전부터 블루울프의 후계자가  것과 마찬가지인 최진현보다, 약간 더 지능적이었다.
놈은 직접 내게 손을 대기보단, 요시모토 겐지 같은 멍청한 놈을 이용해 나를 갈궜으니까.

―카흑… 퉷! …야, 성인 되고 나서도 일진 놀이 하는 거. 안 쪽팔리냐?
―이 천한 놈 말하는  좀 봐. 아직 덜 쳐맞았냐?!
―야 이 새끼 잡아. 힐 준비해? 이 자식 저번처럼 병원 가서 교수들 귀에 들어가면 귀찮아져.

물론 입학 직후부터 이어진 괴롭힘이 오래 이어지진 않았다.

당시 병원에서 나를 진료했던 라라 교수를 통해 아이린이. 그리고 발 넓은 아이린을 통해 전말을 알게 된 하리가.

작년 봄, 랭킹전 본선 1차전에서 권지후의 양팔과양다리를 잘라버렸으니까.

―김하리이!!!!!! 이 씨발년아아!!!!!!!!

 많은 놈이니 치료는 완벽하게 했다. 후환을 안 남길 셈으로 깔끔하게 자른 것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직후가 문제였다.

다다음 경기인 본선 16강전에서 권지후와 블루울프 측의 사주를 받은 구룡칠봉의 일원 구스타프 존이.
블루울프 측에서 대여한 전설등급 전용무기로 하리를 궁지에 몰아넣은 것.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그 결과는.


―죽어… 죽어…… 죽어버려!!!!!!!


청룡 구스타프 존의 사망이었다.

당시의 하리가 제어할 수 없었던 95의 마력이 폭주를 해버리며 불러온 대참사였다.

사태 수습에는 천운이 따랐다.


―김제이군?  유진의 진성철일세.


랭킹전을 직관하며 하리를 눈여겨본 <유진>의 클랜장님께서 내 동생의 후견인이 되어주신 것이다.
세계 2위. 국내 부동의 1위 클랜이자 세계 기업 순위 5위의 대재벌. 그 유진 그룹의 힘은 대단했다.
국내 2위 클랜인 블루울프조차 찍소리하지 않고 우리에게서 손을 뗐으니까.

―마녀다… 김하리는 마녀야.
―미친년이 청룡을 죽였어!
―백퍼 고의야. 천재 김하리가 컨트롤 미스? 있을  없는 일이지.

그리고 이날 이후 하리의 별호가 바뀌었다.


마봉魔鳳.

본래 미봉美鳳이라는 사랑스러운 별명을 불렸던 우리 하리는, 그날부터 무서운 마녀라는 뜻의 악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무엇이 문제인지.

―…나 때문이구나.


잘못된  권지후와 블루울프였지만.
진성철님과 유진 그룹처럼 잘못을 즉각 바로잡지 못한 건.


―내가또… 약해서.


내가 못났기 때문이었다.

**


―탁 탁 탁 탁

긴 터널과도 같았던 복도의 끝.
따스한 봄날의 햇살이 비추는 빛의 세상으로 발길을 내딛을 때.

[파트너.]

나를 양지로 끌어올려준 현명한 친구가 오늘도 피가 되는 조언을 건넸다.

[라다은이라는 사령술사 계집의 말을 유념하자. 사냥감에게 뭔가가 있다.]

A++급 네크로멘서 라다은의 조언.
 내용은 이것이었다.

‘살아있으나 산  아닌 망자, 라.’

분명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권지후는 살아있지만 동시에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망자 같은 상태라고.

[생기는 있어. 다만 이질적이야.]
‘우리 소피아처럼?’
[유사한데 달라.]
‘뭔 소린지 알겠어. 개 같은 새끼 하여간, 돈은 존나게 많아가지고.’

창을 굳게 쥐며 경기장에 올랐다.

떠나갈 것 같은 함성소리가 마력결계가 쳐진 경기장 밖에서부터 미칠 것처럼 크게 울려 퍼졌다.

―김제이 힘내라! 2학년 C반의 희망!
―창술연구부는 초미녀 전대 부장 신아영의 15번째 피해자인  기억한다!
―오빠 사랑해요!! 지지 마세요!!
―제이야!! 응원한다!! 힘내야 돼!!
―김제이! 김제이! 김제이! 김제이!

응원소리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커서, 사회자 윤이랑과 해설자인 헌터의 소개말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이

예비 부저가 울렸다.
가로 200m 세로 100m에 달하는, 이스트 블루가 자랑하는 대경기장의 한 가운데에서.
심판을 맡은 검술전공 교수가 목소리에 마력을 담아  소리로 주의사항을 알렸다.

“양쪽 모두 1학년도 아니고, 번째 결투자도 아니니 짧게 이야기하겠네. 기사도를 발휘하시게. …이 자리는 축제의 한마당이지, 피를 보기 위한 장소가 아니야.”

감정이 실린 말이었다.
작년에 죽은 청룡 구스타프 존은  노교수의 애제자였다.

“경기 준비.”

검술전공 교수가 결계 밖으로 나오기 전, 짧게 입술을 뗐다.

“시작.”

나와 권지후가 서로를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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