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137. 제이와 봄꽃 축제 (15)
나와 권지후가 서로를 향해 걸었다.
―터벅 터벅
―터벅 터벅
우리는 대경기장 내에 설치된 은폐물이 필요한 궁사도. 캐스팅 시간을벌기 위한 최소한의 물리적 거리가 필수적인 마법사도 아닌, 전사였으니까.
“크크큭!”
서로의 걸음이 멈춘 10m 앞.
잘 다듬어진 샤기컷 머리를 한 권지후가 소름 돋게 비싸 보이는 한손장검을 어깨에 걸치며 비릿하게 웃었다.
“유언은 남기고 왔냐, 또라이?”
나는 대답하지 않고 기수식을 취했다.
손떼가 잔뜩 묻은 연습용 장창이 새삼 든든하게 느껴졌다.
이스트 블루 특제의 이 무기는 예기는 무뎌도, 내구도 하나는 끝내줬으니까.
“그래. 피차 너나 나나 아가리 털 사이는 아니지. …김하리 씨발년한테 잘린 팔다리가, 아직도 비만 오면 욱신거리는데. 말해봐야 입만 아프잖아?”
“잘 아네.”
“야. 죽기 전에 하나만 대답해봐.”
살기를 머금어 일그러졌던 A-랭크 검사의 얼굴에 호기심이 돋아났다.
“너 근데 저번에 최재헌. 그 마약쟁이 새끼. 그 망나니 새끼 입막음 비용은 대체 왜 받은 거냐?”
최재헌.
신입생 OT 때 서윤이를 성추행하려다 실패하고, 이후 내균열 던전에 잡아먹힐 뻔한 걸 나와 아이웨이가 구해준 그 새끼의 이름이다.
블루울프 클랜장의 친아들임에도, 동갑내기 사촌인 최진현에게 후계 지위를 거의 뺏겨버린 등신 같은 놈.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안 돼.”
권지후가 장검을 내렸다.
놈이 오른발을 앞으로 내밀고, 왼손으로 검집을 단단히 잡았다. 축발인 왼쪽 발의 뒤꿈치를 들고, 오른손으로 검의 손잡이를 잡으며 발검을 준비했다.
“그렇잖아? 블루울프라면 치를 떠는김제이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고개 뻣뻣한 걸로는 우리 진현이도 혀를 내두르는 김제이 니가. 고작 삼천만 원에 입을 다물겠다고 합의를 해?”
―파사아아아…
권지후의 주변으로 흙먼지가 날렸다.
놀라운 컨트롤로 낭비도 없이 체내에 마력을 한 번에 돌린 놈이, 진한 살기를 오직 나에게만 쏘아내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왜 받았냐, 또라이.”
나 또한 마력을 전신에 돌렸다.
〓〓
[신체능력]
근력60 ▲(+2)
체력69 ▲(+1)
민첩69
마력63
정력70
〓〓
그 짧은 이틀새에 조금 더 성장한 미쳐버린 나의 몸이. 70의 달하는 정력에 걸맞도록 한계에 가깝게 강해져가는 터질 듯한 나의 신체가.
내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했다.
“블루울프 돈은. 돈 아니냐?”
삼천만 원.
한 달 장학금 30만 원으로 힘겹게 살던 내 입장에서는 보물과도 같은 자금이다. 현상금 6억이 생긴 지금이라면 안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때의 나에겐 그야말로 천금과도 같은 거금.
블루울프의 돈?
어쩌라고. 지금 내가 입고 있는 보호구도 블루울프의 자회사에서 납품한 물건이다. 돈은, 돈일뿐이다.
“역시 넌 또라이야. 하나도. 재미가 없어.”
그 말이 신호탄이었다.
―카아아아앗!
A랭크 검사 권지후가 발검했다.
10m의 거리를 격하고 아주 묵직한 검기가 허공을 찢으며 날아왔다. 반투명한 녹색의 바람의 힘을 머금은 검기가 내 두 다리를 노려왔다.
‘마력을 아끼자.’
아직은 뇌신을 쓸 필요도 없다. 놈이 내게 원하는 것은 하나다.
‘먼저 팔 다리를 자르려하겠지.’
목은 그 다음이다.
―카가강!
장창을 회전하듯 돌리며 바람의 검기를 빗겨 쳐냈다. 그와 동시에 질풍처럼 거리를 좁혀온 권지후를 피해 백스텝을 밟으며 창을 짧게 찔렀다.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시도였다.
“재미없다, 또라이.”
권지후가 무표정한 얼굴로 검을 휘둘렀다. 나는 그 지극히 무신경한모습에서 위기를 감지했다. 상대와의 무기 차이가 극심했다.
‘잘린다.’
[▶ 시동]
[▶마력 62 -> 57]
권능을 발동해 놈의 사각으로 갔다. 좌측 5m거리에서몸을 쭉 밀며 놈의 심장을 향해창을 내질렀다.
“재미없다고―”
축발을 굽히고 나머지 발로 지면을 박차 순식간에 몸을 뒤집어 이를 흘려낸 권지후가 어마어마한 마력이 담긴 장검으로 창날을 후려쳐 올렸다.
―차앙!
“했지!!”
뇌신을 사용한 사각 공격을 막혔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이미 A랭크 가상시뮬레이션을 통해 수도 없이 겪어본 상황이다.
A등급 랭커들은 난놈들이다. 난놈을 잡기 위해 내가 해온 짓은, B등급 자동인형을 상대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타닷!
밀어 올려진 창대에 균형을 잃었을 것이라 생각했던 걸까. 크게 열린 내 몸 안으로 권지후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예상한 바였지만, 찌르기가 아니었다.
놈은 집요하게, 이번에도 몸통이 아니라 내 오른팔을 노리고 검을 사선으로 그은 것이다. 집착이 느껴질정도의 정직한 공격이었다.
‘머저리 새끼.’
검에 담긴 마력은 강맹했다. 좋은 피를 타고나 어릴 적부터 해온 훈련, 양질의 마나연공법과 영약 덕에 놈의 마력은 70을 훌쩍 넘을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몸이 좋으면 뭐하겠나.
주인의 대가리가 잔뜩 열이 받았는데.
파지법을 바꿨다. 마력을 잔뜩 머금은 장창을 회전해 사선으로 그어오는 장검의 검면을 후려쳤다.
―까아아아아앙!
주변을 쩡하게 올리는 쇠가 토해낸 비명은 컸지만, 권지후의 몸이 휘청거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일순간 녀석의 검이 향하는 곳은 바닥이 될 수밖엔 없었다. 나는 그 상태로.
―콰직!
놈의 이마에 박치기를 먹였다.
“크흑…!”
골이 울리는충격에 당황한 권지후가 검을 쥐지 않은 왼손으로 옆구리에 훅을 날렸다. 은색의 건틀릿에 돋아난 송곳 같은 가시가 내 몸을 꿰뚫을 듯 쇄도해왔다. 우측 하단에서는 위협을 느낀 탓에 더욱 강맹한 녹색의 검기를 머금은 장검이 내 허벅지를 베어오고 있었다.
나는, 핀치였다.
―콰직!
잠시 그랬다는 뜻이다.
“끄아아아아악!”
이번 박치기는 안면에 들어갔다. 당연히 놈은 목을 뒤로 빼내며 내게 거리를 벌리려했다. 고급 검술에만 매달리는 탓에 맨손 근접 격투를 천박하게 생각하는, 권지후다운 선택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놈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부웅
창을 회전시키며 장검을 손에 쥔 놈의 오른 손목을 때린 뒤 허리를 굽혀 등뒤로 창을 돌렸다
퍽! 하는 감촉과 함께였다. 창대의 끝에 볼을 얻어터진 권지후의 입에서 핏물이 터져 나와 먼지 날리는 경기장 바닥에 떨어졌다.
그 사이 놈과 나의 거리는 이미 벌려진 상태였다.
“김제이!! 이 또라이 새끼야!!”
개싸움에 평정을 잃은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 권지후가 가늘게 떨리는 오른손에 힘껏 마력을 돌렸다. 화아아앗 하고, 녹색의 바람이 놈의 오른손에 깃든 것이 그 증거였다.
하지만 어쩌라는 건가.
―차앙! 창! 카앙!차장!
스텝이 꼬인 놈에게 이미 벌려진 거리를 좁힐 수단이라곤, 놈이 그렇게나 자랑하는 고유능력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놈은 검, 나는 창이다.
무기 숙련도에 큰 차이가 없으며.
근력은 아마도 내가 근소 우위.
뇌신 권능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권지후가 큰 동작을 사리는 덕에, 민첩 역시 내게 이점이 있다.
놈의 돌파구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싸아아아! 파앗! 파앙!
무기 빨에서 연유한 이런 싸구려 바람이 아니라, <산들바람의 시>라는 멋진 이름을 가진, 아주 개같은 고유능력.
나는 그것의 발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 죽어봐.”
권지후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지자마자, 놈의 검과 전투화 아래에서 소름 돋는 한기를 머금은 바람이 불어왔다.
그 바람은 놈의 검병과 발끝에서부터 치솟아 올라, 흡사 회오리와 같은 모양새로 놈의 몸에 휘몰아쳤다.
―쿠아아아아아아앙
소리부터 범상치 않았다. 검의 리치가 길어졌고 놈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창대가 놈의 명검에 잘리지 않도록 신경 쓰는 와중, 저 참격을 온전히 흘려낼 수단은 많지 않았다.
“뒤져!!!!!!!!!!”
큰 소리를 지른 권지후가 내 창대를 거칠게 후려친 뒤, 양손으로 검 손잡이를 쥐고 내 정수리를 향해 내려쳤다.
하지만 나는 웃음이 나왔다.
“크큭!”
존나게 집요한 새끼.
긴급회피 외에는 대항이 불가능한 일격필살의 참격을 내려치면서도 묘하게 검이 흔들리는 꼴이, 지금도 내 어깻죽지를 베고 싶은 모양이었다.
―사아아아아아아
바람이 분다.
놈의 검을 타고 몰아치는 용권풍이 나의 이마를 스치고 지나간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lv.2> 시동]
[▶마력44 -> 39]
나를 한 번죽인 비네의 권능은.
물리의 한계조차 뚫어버릴 수 있으니까.
“엇?!”
큰 동작에 발이 묶인 놈의 뒤를 점했다. A-랭크의 실력인지라 권지후의 반응속도는 대단히 빨랐다. 바로 고개를 숙여 목을 향해 노린 창날을 그대로 피해버렸다.
그러나 놈이 모르는 게 하나 있다.
[▶ 시동]
[▶마력34 -> 29]
번개의 신은.
한 번만 강림하지 않는다는 것.
-개량형 본국창술本國槍術
-시우상전세兕牛相戰勢 제4수
창이 네 번.
놈의 사지를 지나쳤다.
―카강!
―카강!
―카강!
―카강!
어느새 정면으로 돌아온 내게, 보호구가 가려주지 못한 양 팔과 두 다리를 베인 권지후의 몸에서둔탁한 쇳소리가 터져 나왔다.
유로파산 기계화 강화외골격을 이식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라다은이 언급한 ‘살아있으나 죽은 것과 같다’는 말의 의미는, 바로 이것이었다.
‘바보 같은 놈…. 작년 그날이 어지간히도 무서웠나보구나.’
참고로 이 시술은 합법이다.
다만, 생도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
―<삐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이>
경기 중단을 알리는 경보음이 마력 결계가 쳐진 경기장 내를 쩌렁쩌렁 울렸다.
강제력을 행사하기 위한 강한 마력이 담긴 마법음인지라, 이성을 잃은 권지후조차 일순간 머뭇거릴 정도였다.
하지만 놈은 참살을 멈출 마음이 없는 듯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기계로 된 팔다리가 잘리지 않았음에도 강렬한 트라우마를 느낀 듯, 권지후가 짐승 같은 신음을 토해냈다.
그와 동시에 온 마력을 다 담은 용권풍의 참격으로 내 목을 잘라왔다.
[전력을 아끼지 마! 상대는 병기다.]
메리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다.
[▶ 심안 lv.1> 시동]
마음의 눈으로 놈의 머리를 읽었다.
기계화 외골격이 이식된놈의 몸뚱이가 아닌, 씨뻘건 뇌수로 가득 차 있을 멍청한 새끼의 속마음을.
(KM392 플라즈마 블레이드 기동)
(개폐식 레이저 커터 유도 사출 준비)
(발사 경로: 대상의 어깨, 허벅지, 목)
이런 개새끼! 외골격만이 아니었잖아!
[▶lv.2> 시동]
[▶마력27 -> 22]
지체 없이 뇌신을 사용했다.
목적지는 적의 상식으로는 절대 상상하지 못할 사각지대.
나는 놈의 머리 위로.
몸을 수직이 되게 날아올랐다.
―파직! 파지지직!
창과 하나가 된 몸은.
그림자 한 점조차 만들어내지 않았다.
―솨아아아아아아앗!
거꾸로 쥔 창끝으로 용권풍을 갈랐다.
-개량형 본국창술本國槍術
-향전살적세向前殺賊勢 제1수
-정문금추頂門金椎
놈의 정수리에 나의 창이 박혔다.
―콰직
손맛에 소름이 돋았다.
86kg에 달하는 체중과 중력이 더해진 무게. 60의 근력과가진 바 모든 마력을 담은 일격에, 보호 헬멧이 완전히 찌그러졌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 내린 권지후의 입에서 핏물에 섞인 허연 강냉이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쓰러지면서 바닥에 턱부터 부딪힌 탓에, 놈의 얼굴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흉측하게 일그러졌다.
“으으으!! 으으으으으으!!!!!!!!!”
망가진 이빨 틈에 씹혀 혀가 잘린 모양이었다. 씨뻘건 피로 물들인 살점이 흙먼지 자욱한 바닥에 나뒹굴었다.
놈은 설육 조각을 챙길 생각도 못한 채 더러운 신음성을 토해내며 몸을 웅크렸다.
“후우….”
그리고 그제야.
―승부 끝! 승자 창술 전공 김제이.
―민간 비허가무기 불법이식시술용의자 권지후는 무장해제 상태로 대기. 반복한다. 민간 비허가무기 불법이식시술 용의자 권지후는 무장해제 상태로 대기하라. 움직이면 발포한다.
지난 1년간 이어진.
설움이 씻겨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