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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화 〉139. 제이와 봄꽃 축제 (17) (139/145)



〈 139화 〉139. 제이와 봄꽃 축제 (17)

이스트 블루의 랭킹전 본선 2차전이 열리고 있는 대경기장. 이곳의 분위기는 도서관과 같았다.

―승부 끝! 승자 창술 전공 김제이.


김제이의 연습용 장창 끝이 마르타 코르데라의 목 보호구에서 떨어진 후, 군중들은 입을 열지 못했다.

너무나 낯선 광경을  탓이다.

참다못한 누군가의  마디가 고요에 휩싸인 대경기장을 갈랐다.

―……허. 오빠는 동생보다 더하네.

어제인 본선 1차전에서 김하리는 경기 시작1.4초만에 승부를 결정지었다.
하지만 그녀는 마법사다. 더구나 김하리가 S랭크 이상에 도달했을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학교를 다니고자 하는 의지를가진 생도에게 등급 테스트를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4대아카데미의 불문율이 없었다면, 김하리는 진즉 명예졸업을 하고도 남았으니까.


그러나 김제이는 창병이다.


냉병기 상대로 거리의 이점을 가지고 있지만, 원거리에서는 투창 등을 제외하면 마땅한 반격 수단이적을 수밖에 없는 근접전사.

그런 그가 200m 거리를 예비동작 없이 1초 만에 따라붙을  있는 고유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더구나 전후좌우아래위 가릴  없이 이동할 수 있는 끝내주는 고유능력을, 연속해서 사용할 수 있다면?

마지막으로. 각성 3개월 만에 해당 고유능력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엄청난 컨트롤 센스까지 가지고 있다면?


B랭크 창수 김제이의 평가는.
절대로 해당 랭크에 머무르지 않는다.


―…김제이 S랭크야? S랭크여도 순간 속도가 저렇게는 안 나오겠는데. 고유능력 한  지랄 맞다 정말.
―미쳤다, 미쳤어. 딜레이도 없는 주제에 사거리도 돌았네.
―저게 불완전각성자? 웃기고들 있군.  컨이 어떻게 불완전해. 창끝을 타깃의 목 앞에서 정확하게 멈췄는데.

그리고 이 사실을 이스트 블루의 생도들과 헌터 관계자. 그리고 헌터에 열광하는 일반 시청자들이 모를 리 없었다.

―분위기 보니까 200m가 아니라 훨씬 더 멀리 뛸  있는 같다.
―설마 1km 밖까지도 저렇게 움직이는  아니겠지. 만약그게 가능하다면 쟤, S등급한테도 위협적이야. 기습당하면 훅 가니까.
―어. 방금 등골이 서늘하더라고. 저 친구가 만약에 S등급에 도달한다? SSS랭커의 목도   있을지 몰라.
―클랜장에게 연락해. 계약서 수정하라고. …신체적성? 무기가 뭐가 중요해,  멍청한 새끼야! 히트맨으로만 써도 연봉 값을  하겠냐?!
―어, 나야. 연구소 예산 좀 당겨. 김제이 생도한테 고유능력 연구해보자고 제의하자고. SS랭크로 판정받아도 무방한 새로운 스킬이 나타났어.

경기장 관객석에서 질투와 질시와 시기와 의심과. 그보다 더 큰 경계심, 호기심, 탐욕이 피어올랐다.
하지만 그 묘한 분위기는 달아오르기도 전에 묻혀버렸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김제이 미쳤다!!!!! 개멋있어!!!!!!!!!
―사랑해 제이야!!!!! 축하해애!!!!!!!
―김제이!! 김제이!! 김제이!! 김제이!!
―갓제이!! 갓제이!! 갓제이!! 갓제이!!

상황을 깨닫기까지 네 박자 정도 늦은, 여성들의 어마어마한 함성소리가 경기장을 완전히 뒤덮어버렸으니까.
실황을 보고 있던 인터넷 댓글창과 시청자 게시판 달글 역시 터져버릴듯한 열기에 휩싸였다.

―저… 정말 대단한 대쉬입니다, 김제이 생도! 너무 빠르게 승부가 나서 관객 분들의 함성조차 늦게 터져 나왔을 정도에요!

랭킹전 사회  경기 중계 보조를 맡은 아나운서 윤이랑이 모두의 마음을 대변해주었다.
그리고 그제야 그녀의 옆자리에 앉은 현역 S+랭크 헌터가 자료와 녹화영상을 보며 해설을 해주었다.

―무척 영리한 판단입니다. 지금까지 김제이 생도는 단  번. 그것도 10m 내의 지근거리에서만 고유능력을 사용했었죠. 예선전 자료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때문에 김제이 생도는 위기도 여럿 직면했습니다.
―예선 3차전과 5차전에서 만났던 정령사 생도와 마법사 생도와의 격전을 말씀하시는 거죠? 그때 김제이 생도는 저 신비한 스킬의 사용 없이 우직한창술만으로 위기를 극복했는데요.
―맞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본선 1차전에 벌어졌던 권지후 전 생도와의 혈투. 그 긴박한 상황 때도 김제이 생도는 능력의 전부를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목이 잘릴 위기에도, 긴급 회피용으로 멀리 도망치는 판단을 접은 거죠.

전 에스원 클랜 제4공략대 소속이자, 현 헌터협회 감사로 재직 중인 해설위원이 헛웃음을 지으며 총평을 했다.

―김제이  친구. 아주 걸물이네요.


걸물. 걸출한 물건이라는 뜻.
헌터의 소양이 훌륭하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이상한 쪽으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대물이래!!!!! 제이야, 사랑해!!!!!!
―꺄아아!! 제이야, 너무 커어어!!!!!!
―오빠!!!!!  찢어진단 말이야!!!!!!!!
―글케 커지면 나보고 어떡하라구!!!!
―크니까 더 좋아!!!!!! 사귀자!!!!!!!

정신줄 완전히 놓고 미쳐버린 광란의 여성 팬들 때문에 중계석의 두 사람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야말로 인기 남자 아이돌 가수의 19금 콘서트보다 더한 분위기였으니까.

―하하! 김제이 생도의 인기가 정말 대단하군요. 만년 아카데미의 열등생에서각성 후 16강까지 진출하게 된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많은 여성 팬 분들께서 각별하게 여기신 모양입니다.
―네에, 정말 그래요. 어쩜 저렇게들 열성적으로 학우를 좋아해주시는지. 보는 제가  엄마 미소가 나오네요.
―엄마 미소라니요? 윤이랑 캐스터께서는 김제이 생도와 또래 아니십니까. 3살 차이면 누나 동생 하다가 여보 자기 되는 거죠.
―아하하하! 해설자님 농담도 정말 재밌게 하신다. 저 돌 맞아요~!

분위기가 싸해질 것을 의식해 농담이라고 넘기긴 했지만.
윤이랑은 이 순간 굳게 다짐했다.

‘제이야? 누나가 너 천국 보여줄게.’

이 봄꽃 축제가 가기 전.
더럽게도 자신을 꼴리게 하는 그를.
반드시 따먹고야 말겠다고.

‘하아… 개새끼. 존나 맛있겠네.’

61위 악마 군주 자간의 숙주 윤이랑.

그녀의 아랫입술은 갈증이 났다.


**

경기장에서 내려와 본부로 향했다.
승패 인정 최종 확인을 비롯한 메디컬 체크를 받기 위해서였다.

“선배님.”

환한 불이 켜진 말끔한 복도.
축 쳐진 어깨로  옆을 걷는 마르타 코르데라에게 위로를 건넸다.

“아깐 죄송합니다. 하지만 선배가 고유능력을 쓰시면,  능력으로 잡을 방법이 없었어요. 이기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물론 듣기 좋은 거짓말이다.
샥스의 <보물찾기> 권능을 썼으면 그녀의 위치를 파악하는 일은 여반장이다. 내가 오히려 신경 쓴 건, 안나 살라예바에 버금가는 그녀의 속사 능력.

“선배한테 한 호흡만 허용해도 창으로 막아낼 자신이 없었거든요.”
“말은.”

하지만 마르타 코르데라의 기분은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다.
이미 1학년 때인 2년 전에 구룡칠봉에 몸을 담아봤기 때문인 걸까.
그녀가 탐스러운 곱슬머리를 머리 위로 넘기며 시크하게 웃었다.

“미안하면 랭킹전 끝나고 밥이나 사? 그리고 선배 소리 좀 그만하고.”

화끈한 스페인여자라서 그런지 성격도 좋았다. 그녀가 걸음을 멈추고 손을 내밀었다.

“축하한다, 김제이. 니가 이겼어.”
“고맙다. 그리고 멀리서 보기만 했던 너랑 친구가 되니까 좋네.”
“친구?”

내 손을 꼭 잡은 마르타가 주변을 살폈다.
본부로 향하는 길목에는 인적이 아무도 없는 듯했다. 궁사인 그녀는 나보다 그 사실을 더 정확히 알고 있겠지.

“친구, 라.”

―쿵

마르타가 도발적인 미소를 머금고 나를 벽으로 밀었다. 너무 이르게 난 승부 덕에 땀조차 나지 않은 등이 하얀 페인트가 칠해진 복도벽에 부딪혔다.

“김제이. 진짜 나랑 친구 먹고 싶어?”

22살의 마르타 코르데라.
동갑내기 안나 살라예바와 함께 이스트 블루 최고의 슈터로 3년 간 군림해왔다. 패스파인더로서의 자질이 더욱 강한 안나보다, 전투력 자체는 한층  뛰어나다고 평가 받는 여자.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는 예뻤다.

“그럼 좋지. 나 너 동경했었거든.”
“진짜? 기분 무지 좋은데.”

키가 180cm에 가까울 정도로 큰 마르타다.

―쿵

 얼굴 옆으로 아주 박력 있게 벽에 손을  그녀가, 혀를 내밀어 내 입술을 핥았다.

―할짝

“김제이 너. 되게 괜찮다?”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입술을 핥는 마르타의 섹시한 얼굴은 흥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 씨발 진짜.’

나는 단지 이것만으로도 쌀 것 같은 기분이 돼서, 고개를 살짝 돌리며 억지로 거부의 말을 내뱉었다.

“…미안. 이런 친구 말고.”
“흐응. 아이린 때문에?”

마르타는 내가 라라-서윤이와 사귄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우리  다 말하고 다닌 적이 없고, 사귄 뒤에 데이트를 한 번도 못했으니 소문이 하나도  난 게 당연했다.
그리고 나는 학내에서, 이스트 블루의 아이돌 아이린과 친한 유일한 ‘남자’로 알려져 있다.

“그것도 그런데.”

나는 오늘 승부에 진 마르타에게 차였다는 상실감까지 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탄탄한 복근이 느껴지는 허리를 살포시 감았다. 땀이 안 나 뽀송뽀송한 그녀의 하얀 양 뺨에, 감사의 마음을 담은 가벼운 키스를 했다.

“본선에 집중하고 싶어서.”
“뻥치고 있네. 내가 니 타입 아니면 그냥 말해. 아니면,  어장관리 해?”
“진짜야.”
“!”

완전히풀발기한 성기를 마르타의 아랫배에 꾹 눌렀다. 그녀의 흔들리는 검은 눈동자를 보며 웃었다.

“나 미친 새끼야.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너만 좋다면 지금 당장 엉덩이에 개처럼 박고 싶어. 근데 참는 거야. 내일 이기고 싶어서.”
“…변태야 뭐야.”

수줍음을 느낀 마르타가 눈을 피했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대견한 인내심을 발휘해 그녀의 몸에 손을 뗐다.

“너 정말 예뻐. 근데 안 되겠다.”
“치.”

피식 웃은 마르타가  입술에 쪽! 소리가 나도록 뽀뽀를 했다.
그리고 바닥에 내려놓은 사이드백을 매며 나를 놀렸다.

“김하리가  너한테 죽고 못 사는지 알겠다.아이린도 너한테는 거리를 내주고. 하긴, 그 철옹성 낸시 선배 가드도 뚫어버린 넌데. 오죽하시겠어?”

발랄하게는 말했지만 그래도 마음이 약간 안 좋은 듯, 마르타의 말투에는 뒤끝이 남아있었다.
나는 이 섹시한 궁사를 앞지름과 동시에, 두꺼운 전투복으로도 채 가리지 못한  튀어나온 엉덩이를 그대로 내려쳤다.

―짜악!

“됐거든. 빨리 본부나 가자.”
“야아! 너 니 동생한테도 이래?”
“혼나기 전에 그만 놀려라.”
“크큭! 계속 놀리면 더 때려줄 거야?”
“암캐 이리 와.”
“꺄아악! 야아아~ 사람 온단 말이야!”

그제야 마음을 풀고 밝게 웃는 그녀와 장난을 치고 있을 때였다.

―지이이이이잉

꼭 받아야만 하는 전화가 울렸다.

“마르타 미안. 나 통화 좀?”
“응! 먼저 가 있을게. 천천히 와.”

승리 축하를 위한사적인 전화일 것으로 추정한 마르타가 코너를 돌아랭킹전 본부로 들어갔다.
화장실로 가서 수화기를 켜자 애교가 듬뿍 담긴 목소리가 나를 반겨 주었다.

-[빠야! 오늘도 이겼네여?]

서윤이의 전화였다.
어제 아침을 마지막으로, 나와 만나는  최대한 자제하려 노력 중인 그녀.
요즘 들어 육체가 주는 환희를 알아가는  내 순진한 여자친구도 마찬가지라, 그녀 역시 참는 게 고역일 거다.

“응, 자기 덕분에.”

그런 의미에서 육서윤은 승리의 이등공신이라고  수 있었다.

[븃븃브륫~! 뭘 그런 말을 다.]

일등공신이야 당연히 메리다.

-[넘넘넘넘 멋있어! 사람들이 오빠 보구 막 S랭크 아니냐구 그러더라? 그리구 있잖아여, 관객석에 있는데 옷을 깔맞춤으로 입고  클랜 사람들이…]

우리 애기는 내가 본선 2차전을 압도적으로 이긴 게 그렇게 좋은지, 한참동안이나  자랑과 다른 사람들 반응을 얘기해주면서 나를 우쭐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비행기 태워서 어떡하려고. 아직 고작 2차전이잖아.”
-[그래두. 다음 경기만 이기면 8강이니까, 구룡칠봉 확정이자너!]
“…그러네.”

16강에만 올라도 구룡칠봉은  수 있다.하지만 확률이 낮다.

랭킹전 참가를 안 하는 생도들 때문.

아이린이나 낸시 같은 보조직업계열의 생도들은 다른 방식으로 랭킹을 부여받기 때문에, 8강에 올라야만 안정적으로 구룡칠봉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다음 경기도 열심히 해봐야지.”
-[응!]

속 깊은 내 여자가 그 이상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나의 각오와 집중을 깨고 싶지 않다는 배려다.

“항상 고마워 자기야.”
-[모가여? 아참! 빠빠야, 할 말이 있었는데 까먹고 있어따!]
“뭔데?”
-[듣고 놀라면 안 대여?]
“아하하. 그럴게.”

말을 돌리는 모습이 귀여워서 작게 웃었더니,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화제를 꺼냈다.


-[오빠. 아이웨이 씨가 이겼어.]


……뭐?

**


전투분과 근접격투전공 아이웨이(24).

극진절권도와 우슈, 영춘권 등의 권각술에 비범한 재능을 보이는 친구다.

예전에 아이웨이가 킬리를 처음 봤을  자신을 소개하며 ‘질풍의 아이웨이’ 운운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은 허언이 아니다. 고향인 홍콩에 있을때 C랭크 헌터로 일하며 얻은 무명武名이었다.

한 마디로, 아이웨이는 쎄다.

하지만 이놈에게는 큰 문제가 있다.


이 새낀. 노는 걸 너무 좋아한다.

아이웨이는 알아주는 게임 폐인에 인터넷 중독자에다가, 드라마란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 마니아다― 다 챙겨본다.
우리 자랑스런 문화시민 아이웨이가 아카데미에 입학한 이유는  하나다.

3년 간 일 안하고 놀고 싶어서.

그런데. 그런 먹자 생도 아이웨이가.

“야. 니가 제제를 이겼다고?!”


본선 16강에 올랐단다.
그것도학내 랭킹 20위의 A++급 창수인 제제 부티아선배를 꺾었단다.

3학년 제제 부티아 라고 하면, 현 학내에서 조쉬 맥킨지 다음으로 창을 잘 쓰는 대인전의 초고수다.

내가 설령 모든 전력을 풀가동한다고 해도, 승산이 희박한 사람.

“구라지?”

저녁 식사를 하기 전,  방에 들른 아이웨이에게 물었다.
놈이 팔짱을 끼며 실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쓰읍… 나도 몰래카메라 같애.”
“너 진짜 이겼구나. 도핑했냐?”
“그러고 싶었지.”
“안 했구나! 그럼 설사약 탔냐.”
“굴뚝같은 마음이었다.”
“이 새끼 진짜네…. 진짜야!”

너무 황당했다.

“어떻게 이겼어? 너 개고수다. 너 어제는 카를로스도 발랐잖아.”
“아니 씨발 그게, 큭큭….”

아이웨이가 지가 생각해도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어제 카를로스 때랑 똑같애. 오늘 제제도 처음부터 거의 탈진 상태였어.”
“…….”
[…….]

뭔가 불알이… 당기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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