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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화 〉140. 제이와 봄꽃 축제 (18) (140/145)



〈 140화 〉140. 제이와 봄꽃 축제 (18)


아이웨이와 함께 침대에 누워 노트북으로 대전영상을 보았다.

―와다다다다다다다닷!!
―크흣! 제기랄…!
―이, 이게 어떻게  일이죠? 제제 부티아 생도, 불현  균형을 잃었습니다! 아이웨이 생도의 내가중수권에 기력이 진탕할 것일까요?!

아닌 게 아니라, 영상  제제 부티아는 경기가 단 5분이 넘은 시점부터 눈에 띌 정도 지친 모습을 보였다.
이상한 점은 침착함의 화신과도 같은 제제 선배가 경기 극초반부터 모든 것을 쏟아 부은 무리수를 뒀다는 거다.

“캬하! 초반에 도망만 다닌  아주 주효했지. 투창 피하느라 죽을 뻔했다니까? 배에 터널 생기는 줄.”

하지만 아이웨이는 민첩이 79에 달하는 권사다. 녀석이 마음먹고 도망치면 제제가 아무리 A++랭크라고 해도 녀석을 쉽게 잡을 순 없는 일이었다.
헌터로서 권사의 최대 강점은 몬스터의 어그로를 흘릴 민첩과 이를 유지할 체력이니까.

‘단기전에 승부를 걸었는데 아이웨이 놈이 잘 도망쳤어. 그게 패착이다.’

제제 부티아가 서두른 이유?
그거야 간단하다.

―오늘 제제 생도의 컨디션이 매우 안 좋아 보이는군요. 진중한 창술이 인상적인청년이었는데 아쉽습니다.
―그… 그렇네요 정말.
―어제 아이웨이 생도의 초반 공세에 빠르게 무너진 카를로스 생도 역시 집중력이 없어 보이던데. 아이웨이 선수에게 정신 공격이나 에너지 드레인과 관련한 고유능력이라도 있는 걸까요?
―…자료영상 보시겠습니다.

해설자의 말을 두루뭉술하게 흘려버리는 아나운서 윤이랑. 그녀가 문제였다.
남성의 정액을 흡수함으로써 영약 비슷한 효과를 내는 자간의 권능 때문에, 그녀와 잔 남자들이 정기를 홀라당 빨려버린 것.

[와, 윤이랑 정말 난 년인데? 부지런하다. 아주 근면해.]

메리가 크게 감탄을 했다.

[어제 경기 시작 전에  짧은 시간 동안 카를로스라는 놈을 따먹고, 오늘은 제제 부티아? 설마 두 놈 말고도  많은 피해자가 있는  아니겠지.]
“…….”

녀석의 말에 생각난 게 있어, 아이웨이와 함께 본선 1,2차전의 다른 동영상들을 살펴보았다.

“야. 신정훈도 좀 이상한데?”
“그러네. 내 경기 다음이라 못 봤었어. 음?  동영상 썸네일 좀 봐. 타이론도 오늘따라 대검이 무뎌졌대.”
“…….”
[…….]

우리는 할 말이 없었다.

피해자로 추정되는 수는 총 다섯.

아니 시발… 이 대단한 여자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움직였으면 벌써부터 다섯 명이나 피해자가 나오나.

불과 하루다. 만 하루!

그 짧은 시간동안 다섯 명을 따먹어?
윤이랑은 진짜 난 년이었다.

[괜찮다. 숙주는 비각성자니까.]


메리가 하나도 걱정스럽지 않다는 투로 가볍게 말했다.

[상대 남성이 각성자일 경우 끽해야 마력 탈진이 오는 수준이야. 비각성자면 생기가 빨려 복상사를 할 수도 있겠지만, 헌터 남자 맛을 아는 윤이랑이니 어지간해선 각성자만 따먹겠지.]

‘한 번 헌터에게 간 연인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마냥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각성자들은 신체 균형이 고르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비각성자들보다 외모가 뛰어난데, 거기에다 남자의 경우는 정력. 여자의 경우는 조임 등이 넘사벽으로 앞선다. 비각성자와의 섹스는 시시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

‘그럼 아영 누나 때보다도 오히려 안전한 건가?’
[한동안은. 게다가 아카데미 안이니 주변 남자라곤 모두 헌터야. 계획대로 네놈의 랭킹전이 끝나면 그때 봉인하자. 늦으면 그건  골치 아프니까.]

메리와 행동방침을 정리한 뒤, 슬슬 아이웨이와 저녁을 먹으려 할 때였다.

“야…! 우리 좆 됐다……!”

스마트폰을 든 아이웨이가 퍼렇게 질린 얼굴로 나를 불렀다.

“왜.”
“16강 대진 결정됐어!”
“벌써? 누군데.”
“나는 베르나르 주르당.”
“망했네, 크큭!”

3학년 정령술전공 베르나르. 랭킹 19위이며, 아카데미 내에서는 반선우 다음 가는 정령사로 알려져 있다.
내가 실실 웃자 아이웨이가 실눈을 뾰족하게 뜨며 주먹을 들었다.

“쪼개지 마 새끼야.”
“웃기는데 어떡해 그럼.”
“등신아.  상대는 누군 줄 알아?”

아이웨이가 내게 폰을 건넸다.

그리고 그곳에는.
동경하는 이의이름이 있었다.


본선 16강전 마지막 번째 대전)

창술전공 조쉬 맥킨지
(3학년 / 전공심화: 폴암)

vs 동 전공 김제이
(2학년 / 예정 전공심화: 스피어)


작년 명예 졸업을 한 ‘그’ 천재 브라운.R보이드의 영원한 숙적이자, 자신의 영달보다 구룡칠봉이 속한 생도회의 화합을 위해 5년내내 힘숨찐을 자처해온 아카데미 최고의 리더.
내가 꿈에도 되고 싶어 하는 S랭크의 경지를 진즉에 이루었고, 현재는 그 위를 바라보고 있는 진짜배기 창잡이.

‘유룡….’

조쉬 맥킨지의 이름이.


**

아이웨이를 포함한 신연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홀로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 야 이 새끼야 오늘 축제 전야제잖아. 서윤이 좀 챙겨! 니 여자친구 첫 축젠데, 전야제 공연을 혼자 보라는 거야? 오늘 하루  훈련한다고 조쉬 상대로 뭐가 달라지냐.
―오빠! 나는 괜찮아. 언니들이랑 축제 준비해야 돼요. 할 일이 많아.

서윤이나 친구들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는 전야제 같은 별 의미 없는 행사에 참가하고 싶지 않았다.
전 생도가 다 모이는 토요일. 그 날 열리는 랭킹전 결승전  폐막식이면 또 몰라도,전야제는 뭐.

오늘도 찾은 아공간 B 훈련장.

작년 봄과 가을축제. 그리고 종업식과 크리스마스 이브 등의 놀기 좋은 날과 마찬가지로, 축제 전야제가 열리는 오늘 또한 이곳은 무척 한산했다.

“후우! 후우!”

옷을 갈아입고 피트니스 룸에서 ‘스트레칭’을 했다. 이제 차마 스트레칭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해진 그것을.

“훅! 훅!”

원래 나는 고속 맨몸 스쿼트 100회 – 비대칭 플랭크 5분 – 손가락으로 버티는 물구나무서기 및 팔굽혀펴기 50회.
이 과정을 빠르게 5세트 반복하며 하루의 시작과 끝을 보냈었다.
하지만 신체가 보다강건해짐에 따라, 이 정도 스트레칭은 효과가 적었다.

“하아! 하아!”

조금이라도 근력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틈이 날 때마다단 한 번이라도  많은 쇠질을 해야 했다.
예전도 지금도근력 트레이닝 루틴을 진행하고 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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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능력]
근력60 체력69 민첩69 마력63 정력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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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장창을 쥐는 창수의 이상적인 근/민의 신체비율은 1.1 : 1.
창병이라기 보단 오히려 한손 장검의 적성에가까운 1: 1.15의 비율을 가진 나라서, 근력 성장은 필수불가결이다.

“후우…. 역시 쉽게는  오르네.”

최근 폭발적인 성장을 했음에도, 그리고 근력 위주의 하드 트레이닝을 병행했음에도 민첩이 따라잡힐 생각을 안 했다.
더구나 70정력에 걸맞는 한계치까지 신체능력이 성장하고  뒤에는, 근민 1:1.15  비율을 쭉 유지하게 될 것이 뻔했다.

즉,  몸은 검을 원하고 있었다.

‘창이 예전보다 어색해졌어.’

내가 무려 3000여일을 수련해온 창술이다. 하지만 그 대부분의 나날들을 나는 비각성자로 보냈다.
마력이라는 변수, 고유능력 등의 존재, 과거와는 달라진 신체 밸런스에 내 무기술 자체는 오히려 이전보다 무뎌진 듯한 기분까지  정도다.

[그렇지 않다. 파괴력을 비롯한전체적인 공격력은 확연히 올라갔어. 적응 과정에서 어색함을 느끼는  누구나 마찬가지다. 귀창의 주인 조쉬 맥킨지라고 해서, 아니지―]

피트니스룸에 나 외의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메리가 귓불에서 떨어져 나와 내 얼굴 앞에 둥실둥실 떴다.

[지구 최강자 빅터 프리먼이나, 프레이야 북대륙제일검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과도기는 누구에게나 있어.]
“그래.”

세계랭킹 1위 SSS랭크 헌터, 신창 빅터 프리먼. SSS급 던전 보스인 마룡을 혼자서 때려잡은, 대가의 이름이다.
그가 예전에 비슷한 말을 했었다.

―슬럼프? 내게 그딴 말은 없다.
―나는 언제나슬럼프 상태니까.

한 마디로, 그토록 강한 자신임에도 항상 자기 실력이 못 마땅하다는 뜻.
세계랭킹 1위든 SSS랭크 창병이든 뭐든 자기 창질이 시원찮으니까, 언제나 슬럼프 상태로 살고 있다는 것.
소름이 돋을 정도의 향상심이었다.

[그거다. 네놈은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의지가 뚜렷해. 항상 자신의 상태를 비판적으로 보려고 하지. 그 때문에 네놈이 자주 초조해한다는 점은 익히 알고 있다. 그치만 이걸 봐, 파트너―]

메리가 피트니스 룸을 빠르게 날아다니며 날 불렀다.

[이걸 보라구! 네놈 밖에 없어!]


비지땀이 땀이 들어와흐릿해진 눈을 닦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래. 나밖에 없다.’

작년에도 그랬고, 올해도 그렇다.

그리고 각성자 학교에 다녔던 10대 중후반기에도 그랬었다.

‘회사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어. 내가 가장 많이, 제일 꾸준히, 그리고 마지막까지 몸을 만들었다.’

중견 헌터클랜에 사무직으로 다닐 때에도 사내 체력단련장을 가장 많이 이용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클랜 소속 현역 헌터들이 아니라, 만년 각성유력자였던 사무직원 김제이.

‘노력을 의심하지 말자. 노력은  배신한  없어.  돌린 건 나의 몸이지, 노력은 항상 내게 웃어주었어.’

마음 속 커트라인을 2년으로 정했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기 전까지 창으로 S랭크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그땐 검을  각오도 하고 있다는 뜻이다.
악마 봉인 임무. 그리고 하리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빠르게 강해져야 한다는 점을 나도 안다.

하지만 시도는 해봐야 될 거 아냐?

각성한지 이제 3개월 됐는데.


나는 아직 생도다. 즉, 학생.
설사… 정말 만에 하나 창이라는 ‘매몰비용’에 과투자를 하게 된다고 해도, 잘못을 수정할 시간 정도야 있다.
그게 바로 학생의 특권이니까.

‘내가 그 조쉬와 결투라니. 황송한데.’

그래. 사회에서 만났다면 감히 창을 맞대기는커녕 가르침을 청할 엄두도 내기 어려운 귀창의 주인과 대련을 치를 정당한 자격을 갖춘, 학생.

‘열심히 하자. 이런 기회가 또 있겠어?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야지.’

―철컥

내일 임할 승부에 부끄러움 없는 오늘을 만들기 위해, 훈련에 집중했다.

**

본선 16강전인 축제 당일이 밝았다.

이스트 블루 봄꽃 축제.
East Blue Spring Flower Festival.

본선 3일차인 오늘부터 아카데미 내에 축제가 열린다. 수목금 사흘 간.
축제가 끝난 다음날, 결승전이 열리는 토요일에는 전 생도가 대경기장에 모여 응원전을 펼친다.
그리고 결승이 끝나자마자 자정 너머까지 우리들만의 파티를 벌이는데, 이걸 근사한 말로 이렇게 부른다.

푸른 동쪽 용들의 연회.
Feastof East Blue’s Dragons.

전공에 관계없이 모두가 모여 재밌는 게임을 하고, 술을 마시며 공연을 즐기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일반 대학 학생들이나 다른 헌터아카데미 생도들이 부러워하는, 우리 4대 헌터아카데미만의 화끈한 폐막식이다.

‘올해에는 나도 즐겨야지.’

작년에는 하리가 청룡을 죽인 문제 때문에 사태를 수습을 하느라고 축제를 거의 즐기지 못했었다.
가을에는 또다시 랭킹전 예선 1차전에서 떨어진 것 때문에 너무 속이 상해서, 축제 기간내내 방에 틀어박혔다.

하지만 올해에는 다를 거다.

나는 오늘 밤부터 자유일 테니까!

딸딸이랑 섹스도 다 할 수 있으니깐!

[아주 그냥 마음 푹 놓으셨구만?]
“얌마! 그럼 조쉬를 어떻게 이겨?”
[요 귀여운 섀키. 밤부터 좆대가리 놀릴 생각에 싱글벙글이시네.]

메리가 피식 웃으며 귓불에 붙었다.

[하긴. 죽었다 깨나도 힘들지. 괜히 모든 전력을 보이기도 그렇고.]
“몰라. 오늘 떨어지면 데이트나 즐기고, 응원이나 열심히 해야지.”
[그것도 나쁘지 않지. 네놈은 모든 이의 기대보다 더 잘했다. 심지어 네놈과 이 몸도 본선 16강은 예상 못 했잖아?]

맞다. 대진운이 안 좋아 구룡칠봉에 드는 건 어려울 것 같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다. 아카데미 대표 열등생이었던 내가 본선 16강이라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보지♪]
“내 좆 꽂지 않는 너에게는 뻔한 자위 소리♪”
[그만 박자♪]
“그만 박자♪”
[“질싸하기만해도~ 애미 없는데♪”]

우리가 근사한 화음을 만들며 생도복을 입을 때였다.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나야.”
“어.”

―띠띠띠 띠리리

문이 열리고 하리가 들어왔다.
그런데 차림이… 요상했다.

“너 뭐야.”
“나 뭐.”

우리 하리는 마녀복을 입고 있었다.

보라색의 로브와 귀엽고 커다란 고깔모자, 가죽으로 어설프게 만들어진 신발에 엉성하게 만들어진 빗자루까지.
그리고 누가  아이디어인지, 마녀 복장은 허벅지부터 갈아져서 하리의 뽀얀 허벅지가 그대로 보였다. 가슴팍에도 하트 무늬의 구멍이 있어, C컵이라  있는 편인 녀석의 슴가가 고스란히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흡사 뭔가를 연상케 하는 엄한 복장.

“너 술집 취뽀했냐?”
“닥쵸.”
“창연에서 이번에 니네 뭐하는데.”

마법창작연구회. 단체 생활 싫어하는 하리가 거의 뭐… 이름만 걸쳐놓고 있는 동아리다.

“몰라. 사랑을 이루어주는 마법의 비약 카페? 뭐 그딴  한데.”

하리가 짜증스럽게 손을 내저으며 침대 위에 앉았다.

“아, 우리 학교 진짜 짜증나! 대체 왜 3학년한테도 동아리 활동을 강제하는 건데! 생도면 싸움 잘 하고 공부만 하면 되잖아!  랭킹전도 나간다고!”
“너 같은 애들 사회성 기르라고 동아리를 강제시킨 거잖아. 아이린 같은 애들만 아카데미 다니면 강제겠냐?”
“아으으!”

소리를 빼액 지른 하리가긴 다리를 꼬며 그대로 침대에 드러누웠다.
163cm의 중키였지만 우리 하리는 비율이 워낙 좋아서 절대  키로 보이지 않는다. 하얗고 긴 다리가 쭉 뻗은 모습에, 오빠인 나도 살짝 감탄을 했다.

“이 새끼 다리 존나 기네. 야, 근데 너  옷에 흰 팬티는 아니지 않냐.”

하리의 말려 올라간 로브를 내려주며 묻자, 녀석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왜?”
“멍청아. 섹시 마녀 컨셉인데 하얀 속옷은 좀 깨잖아. 검은색이나 뭐 이런 걸로 깔맞춤을 해줘야지. 너 설마 브라도 하얀 색이야?”
“아니.”
“그럼.”
“안 했지. 차면 보이잖아.”

이런 미친.

“바보야! 누브라나 니플패치 이런 거 다들 해.”
“아나랑 마르타는 자주 노브라던데?”
“걔들은 서양인이고. 문화적으로 익스큐즈가 되잖아. 한국인은 욕먹지.”

하리가 하트가 뚫린 로브를 슬쩍들추고, 다시 두꺼운 로브 바깥쪽을 힐끔 내려다보더니.

“쓸리지도 않고 티도 안 나?”

하고 말했다.
나는, 그래 뭐… 니 인생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말을 삼켰다.
지금 하리랑 이런 얘기를 하면서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니었으니까.

“너 근데 왜 왔어? 니네 동아리 지금 엄청 바쁘잖아.”
“바빠 뒤지든 말든.”

하리가 입을 ‘⌒’ 자로 만들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나는 이따 랭킹전이 있으니까, 한 시간 정도만 접객하면 부장이 확인서 준대. 싸가지 없는 새끼. 어디서선배한테 딜을 걸어? 확 태워버릴라.”
“니네 부장 27살이거든?”
“아 꼬우면 입학 먼저 하시든가.”

하리 기분이 많이 안 좋은 모양이다.
단체생활이 아무리 싫다고 해도 일단 결정된 일은 큰 군소리 없이 하는 편인데, 오늘따라 유독 그랬다.
랭킹전이 있어 생리도 미뤄놨을 텐데.

“우리 하리  그래. 왜 이렇게 뿔이 났어. 그저께 일 때문에 아직도 그래?”

침대에 앉아 하리의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녀석이 몸을 돌려 생도복 바지에 감싸인 내 허벅지에 이마를 콩콩 찧어댔다.

“오빠.”
“응.”
“…원장 쌤 왔어.”
“뭐?”

하리가 작고 고운 손을 들어 내 뺨을 엄지로 쓰다듬었다.

“원장 선생님. 지금 아카데미 오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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