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141. 제이와 봄꽃 축제 (19)
3관을 나와 중앙 광장으로 향했다.
축제 첫날인 오늘부터는 수업이 없다.
멋을 잔뜩 낸 사복이나, 우리 하리처럼 코스츔을 입은 생도들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교정을 거닐고 있었다.
솜씨를 부려 만든 판넬과 수제 간판,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풍선들이 축제의 활기에 가득 찬 교정을 한껏 치장해주고 있었다.
사시사철 봄 날씨인 결계가 쳐진 이스트 블루인 덕에, 4월 말임에도 여전히 만개한 제주왕벚꽃을 볼 수 있었다.
“와~ 말로만 들었는데 이스트 블루 정말 크고 예쁘다? 우리 아들도 입학하면 참 좋을 텐데.”
“야 쟤 봐봐! 진짜 예뻐. 쟤 설마 미봉 김하리 걔 아니야? 대존예다… 저게 사람이야?”
“미봉이 아니라 마봉입니다, 손님! 율무차 한 잔과 미니 복싱 게임 어떠세요? 격투연구심화반이 여성 여러분들을 모십니다!”
“오전 11시에 연극부 첫 공연이 있습니다! 많이들 보러 와주세요~!”
“야, 저 오빠들 되게 잘 생겼다. 남자수영부 노예팅? 빨리 가보자.”
오전 9시임에도 벌써부터 학교에는 방문객들이 넘쳐났다. 동아리 부스를 연 생도들이 호객행위를 하며 외부 손님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언제 봐도 이놈의 학교 축제는 뻑적지근하구만. 랭킹전에 하도 시선이 몰리니까 축제 준비도 대충할 수가 없고. 네 여동생이나 반쪽이처럼 낯가리는 성격 가진 생도들은 더럽게 피곤하겠다.]
메리가 내게 팔짱을 끼고 걷는 하리를 보며 동정을 표했다.
나는 오늘따라 너무 예민한 녀석이 걱정 되서, 잠깐 걸음을 멈췄다.
“하리야. 잠깐만?”
나는 동생의 손을 잡아, 연분홍 꽃잎이 흩날리는 커다란 벚나무 아래 자리를 잡은 동아리 부스로 이끌었다.
“안녕하세요. 벚꽃차한 잔 주시겠어요? 꿀 많이 타서 부탁드려요. 미니 양갱도 두 개주시구요.”
“아… 어… 네! 잠깐만 기다리세요!”
다도부 부스에 앉아 있던 안경을 쓴 여생도가 나와 하리의 얼굴을멍하니 보다가 주문을 받았다.
“오빠는 이런걸 뭐 하러 사!”
“우리 하리 주려고. 또 아침부터 물도 안 마시고, 밥도 안 먹었지?”
“…….”
내 말이 맞는지 하리가 마녀 고깔모자를 푹 눌러쓰며 시선을 피했다. 평소 같으면 뭐가 됐든 대꾸를 했을 텐데, 내 얼굴 보는 것도 싫은 듯했다.
그 모습에 나는, 오늘은 진짜로 하리가 기분이 많이 안 좋다는 걸 알았다.
‘원장님이 오셔서 긴장했나.’
그럴 가능성도 있다. 하리는 원래가 멘탈이 좀 약한 편이다. 티를 안 내서 그렇지 긴장도 굉장히 많이 한다.
시쳇말로, 예민 보스다.
내가 희망원 원장님을 따르는 만큼은 아니더라도, 하리 또한 원장님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런친인의 갑작스런 방문에 긴장했을 수가 있다.
'근데 왜 내가 아니라 하리한테 연락을 하고 오셨지.'
사실은 나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라 많이 놀란 상태다.
“차와 양갱 나왔습니다!”
“여기 7천 원이요. 많이 파세요.”
“또… 또 오세요 오빠!”
“제이 선배님, 오늘도 힘내세요!”
“응원 갈게요! 신연 부스도 꼭 갈게요! 저희 오빠 팬클ㄹ― 웁! 웁웁!”
나는 날 알아봐주는 다도부 부원들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뒤 하리와 함께 다시 중앙 광장으로 향했다.
―후우! 후우…
연한 분홍색 찻잎이 예쁜 벚꽃차를 조금 식힌 뒤, 녀석에게 건넸다.
하리는 목이 말랐는지 새초롬한 얼굴로도 따스한 차를 꼴깍꼴깍 잘도 마셨다. 양갱을 까주며 물어봤다.
“저기 쉐이크도 판다. 사줄까?”
“…응.”
“츄러스도 같이 파네. 원장님 것도 사자. 쌤도 단 거 좋아하시잖아.”
“쌤 당뇨병 걸려. 나만 사줘.”
그러면서 우리 하리가 내 손에 깍지를 껴온다.
‘귀여운 새끼.’
우리는 ‘연날리기부’라는, 듣기만 해도 마이너한 동아리에서 바닐라 쉐이크를 비롯한 간식거리를 샀다.
“츄러스는 세 개 주세요!”
“어?! 잘 안 들려! 크게 말해줘.”
“세 개! 이거 세 개 달라구!”
우리는 지금 <도롱뇽 먹거리 광장>이라는 이름의, 아카데미 메타세콰이어길에 있었는데. 이곳은 벌써부터 도떼기 시장 못지않게 사람이 너무 많았다.
우리가 막 힘겹게 먹을 것을 사고 걸음을 빨리 하려 했을 때였다.
“어? 하리야. 저기 봐봐.”
“…뭐야 저 아저씨. 저기서 뭐한대?”
마침 인파 사이에 섞여 있는 원장님의 모습을 발견했다.
“학생. 뭔 코딱지만 한 초콜릿을 파는데 오천 원씩이나 받아. 이걸 누구 코에 붙여, 어?”
늘푸른희망원 김웅호 원장님.
50대의 중년 남성치곤 대단히 건장한, 188cm 100kg의 거구를 가진 분이다.
오늘따라 정장까지 쫙 빼입고 나오신 모습이 우리들 학교에 온다고 신경 좀 쓰신 모양.
‘인상 보소.’
뭐 그래봐야 얼굴을 좌우 대각선으로 크게 가르는 흉터 때문에 아무리 봐도 조폭 같았지만.
“아저씨 못 깎아드려요. 이거 수제 초콜릿이란 말이에요.”
“누가 깎아달래? 웃기네, 이 아가씨. 깎아달라는 말 한 번도 안 했어. 그냥 비싸다고.”
“아, 살 거에요 말 거에요!”
“세 개만 줘 봐. 이건 서비스 주고.”
“에헤이! 아저씨이!”
학생들 축제 와가지고 가격 흥정이라니, 진짜 대단한 사람이다.
나와 하리는 어이가 없어서 냉큼 원장님 뒤로 가 쫑크를 먹였다.
“조폭 아저씨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자릿세 뜯는 겁니까?”
“여기 다 세금 내고 장사하는 사람들이니까 경찰 부르기 전에 가세요.”
“…으응?”
원장님이 고개를 돌려 우리를 보셨다.
그의 아무리 좋게 말해줘도 더럽게 험악한 얼굴이 크게 씰룩였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이게 웃는 거다.
“니들은 이놈들아. 쌤이 왔으면 싸게 싸게 와가지고 에스코트도 하고 그래야지. 뭐하고 자빠졌다고 지금 와.”
“먹을 거 사서 오느라고요.”
“초콜릿 살 거면 빨리 사요! 저거 비싼 거 아니에요. 이문 안 남기고 파는 거라구요.”
“그러냐.”
계산을 마치고 수제 초콜릿 세 봉지를 산 원장 아버지가 우리에게 두 봉지를 건넨 뒤, 어깨를 툭툭 두드리셨다.
“여기. 너희 두 놈 16강 진출 선물이다.”
“생색은.”
“잘 지내셨죠.”
“못 지내면. 폭삭 늙어 뒤질까?”
우리 셋은 킥 하고 웃었다.
**
원장님을 모시고 아카데미 내 마법관 1층으로 갔다. 즉, 하리의 동아리인 마법창작연구회가 카페를 열고 있는 곳.
“뭐 드실 거에요.”
이유는 우리 하리가 웨이터를 해야 하는 시간이 왔기 때문이었다.
“아무거나.”
“아무거나.”
“아 진짜! 둘 다 짜증나.”
섹시큐트한 마녀복을 입고 마법진이 그려진 쟁반을 든 하리가 버럭 소리를 지른 뒤 사라졌다.
잠시 뒤.
―쪼오오옥
―쪼오오옥
우리는 선명한 핑크색 컬러가 무척이나 불길한 느낌을 주는 괴상망측한 음료를 마셨다.
“…맛이 왜 이러냐 이거. 저 자식 여기 침 뱉은 거 아니야?”
원장님의 가뜩이나 살벌한 얼굴이 더욱 크게 일그러졌다.
“사랑을 이뤄주는 마법의 비약이래요. 그게 이번 컨셉이라던데.”
“개뿔이다 이 섀끼들아. 쯧쯧! 이거 하나 마시겠다고 저렇게 줄들을 서?”
“아하하!”
원장님의 시선을 따라 입구 쪽을 보니, 어마어마한 인파가 늘어져 있었다.
대충 대기인원만 봐도 수백 명.
이 많은 사람들이 이른 아침부터 아카데미 내 후미진 곳에 있는 마법연구관까지 온 이유는 단 하나다.
“하여간 눈깔들 삐었다. 저년 저게 뭐가 그리 이쁘다고.”
당연히 우리 하리 때문이다.
하리의 원래 별호인 미봉美鳳이라는 칭호는, 당대 이스트 블루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도를 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미모 면에서의 라이벌인 아이린이 힐러의 전용 칭호 백봉白鳳을 가져가자, 하리가 부전승으로 미봉이 된 것.
더구나 마봉魔鳳이라고 불리게 된 작년 이맘 때 이후론 여성 팬들 또한 어마어마하게 늘어서, 이제는 가히 연예인 수준의 인기라고 봐도 무방했다.
‘원장님은 이런 광경을 처음 보셨겠구나. 희망원 밖에서 하리랑 보는 건 거의 2년만이시니까.’
나는 화제를 돌려 근황을 여쭸다.
“원장님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저번에 그거 있잖냐? 보수 공사한 거. 그게 이번에 보일러가 터졌어. 그래서 우리 예전에 불렀던 인테리어 아저씨 있지?”
“방배동 사장님이요.”
“그래, 그 양반. 그놈 불러가지고―”
원장님과 나는 자주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그렇지, 말을 시작하면 서로 할 말이 너무나 많았다. 희망원에서 자란 다른 애들보다 훨씬 그럴 수밖엔 없다.
나는 원장님의.
첫 번째 아이다.
김웅호 前 치킨헤드 클랜장.
나의 원장 아버지는 본래 S+랭크의 유명 헌터셨다. 그러다 우면산 던전 브레이크 사건에 휘말려 마력회로가 망가지셨다.
국내 top5에 드는 창수로 촉망 받던 그에게 너무 큰 불행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까보면 그렇지도 않다.
<우면산 던전 브레이크 사건>
20년 전 서울 서초구에서 벌어진, 근래 30년 내 최악의 내균열 참사다.
공식 사망 인원 14만 7천 명.
실종자 3만 명 이상.
중상 이상의 부상자 20만 명 이상.
이 참사 하나로, 당시 국내 2위 클랜이었던 무력집단 <발해>가 망했다.
이 사건은 SSS랭크 헌터이신 존경하는 반지원님께서 목숨을 걸고 수습해주지 않으셨다면, 한강 이남 일대 전체를 멸망으로 몰아넣었을 대재앙이었다.
그리고 이 우면산 참사로.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셨다.
그리고 부모님의 클랜장이셨던 김웅호 원장님께서는 마력회로를 잃으셨다. 중견 클랜 치킨헤드에서, 당신 한 분만 살아남으신 것.
아무튼 그래서, 원장님이 동료이자 친구의 아들인 나를 거두셨다는 뜻.
―제이야.
―네에?
―아저씨가 제이 친구 만들어줄까.
―팅구? 조아여!
그렇게 날 키우시다가 그때 당시에 고아들이 하도 많다보니, 잘 됐다 싶으셔서는 아예 희망원을 차려버리신 것.
“제이야.”
한창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원장님이 의자에 크게 몸을 젖히시며 날 부르셨다.
“네.”
“너 이따 16강전. 자신 있냐?”
“없죠. 조쉬 걔가 얼마나 쎈데요.”
“에라이 자식아. …얌마.”
원장님이 수염이 뾰족뾰족 난 턱을 만지시면서 목소리를 깔았다.
참고로 이건 뻥까를 칠 때 자주 하시는 습관이다.
“너. 지금 창 없댔지?”
“…네.”
아까 원장님께, 선물로 주신 조립식 장창을 망가뜨렸다는 사실을 말씀드렸었다.
내가 죄송하다는 얼굴로 눈을 깔자, 원장님이 툭 하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럼. 너 내 꺼 써라.”
…뭐라구요?
“원장님 꺼라뇨. 창 없으시잖아요.”
“그거 있잖아 이 짜식아!”
SS급 마물 쿠베라에게 베어 크게 흉진 그의 얼굴이 웃음을 머금고 일그러졌다.
“제이 니가 그렇게나 탐내던 이 아저씨 창 말이야. 그거 써서 이기라고. 원장실에 걸려 있던 거.”
“…그치만.”
“야 이 섀키야! 너 이리 와봐.”
‘너 이리 와봐.’ 이 말은 원장님이 화를 내실 때 하는 말버릇이다. 우리 하리가 열 받았을 때 이 말을 하는 것도 당신에게 배운 거다.
“넌 예의라는 게 없냐?”
“예의라뇨.”
“전사로써의 예의가 있지. 본선 16강전까지 올라간 놈이, 연습용 창으로 언제까지 지지고 볶을 셈이냐.”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무기 차이가 너무 심해서, 예선이든 본선이든 고비가 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조쉬 맥킨지. 훌륭한 창병이다.”
김웅호 원장님께서 눈을 빛내셨다.
“내가 현역이었을 때. 가장 전성기였던 우면산 공략 때. 그때가 딱 아마도 조쉬 그 친구 정도였을 거다.”
“조쉬가요?!”
깜짝 놀라 여쭸다.
원장님 현역 때는 S+랭크였는데.
조쉬가 벌써 그 정도라고?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마력회로 없으셔서 노안 오신 거 같은데.”
“크큭!”
원장 쌤의 얼굴에 비웃음이 걸렸다.
찐텐이었다.
“네놈은 그래서 안 돼. 헌터로는 일류 소양에 근접했을지 모르지만, 창쟁이로서의 동물적인 감각이 없어.”
“아 씨… 그 얘기가 왜 나와요!”
“써라.”
원장 쌤이 끊어 말씀하셨다.
“이따 방에 가봐. 퀵으로 어제 보냈으니까, 지금쯤이면 니 방 앞에 있을 거다. …에이, 정장을 입으니까 창이 어울려야 말이지! 오랜만에 쥐려니까 어색하기도 하고.”
“원장님!”
“아들아. 지지 마라.”
그가 내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절대 지지 마. 무슨 수를 쓰더라도.”
가슴이 뭉클해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떻게든 걔겨서. 네놈이 이 김웅호의 새끼라는 사실을 증명해다오.”
“네놈이 이, 망가져버린 늙은 창잽이를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보여다오.”
차마 다른 할 말이 있을 리가.
“네, 아버지.”
심장이.
뜨거운 승부욕으로 달아올랐다.
**
하리의 억지 서빙이 끝난 뒤, 우리는 도망치듯 마법연구관을 빠져나왔다.
초유명인 김하리와 요즘 들어 쪼끔 잘나가는 나 때문에, 마법창작연구회가 마비 상황이 와버렸기 때문이다.
‘축젠데도 마스크를 써야 되네. 이게 서윤이가 평소에 느끼는 기분인가.’
나와 하리는 마스크를 쓴 채, 원장님을 모시고 축제 구경을 시켜드렸다.
현 시각은 불과 오전 11시.
16강전은 오후 3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하리의 대전 상대는 A랭크 마법사였고, 내 경기는 마지막에 열린다.
녀석이나 나나, 원장님께 학교 구경을 시켜드릴 시간 정도는 있었다.
“신이사건연구회 부장으로 있는 졸업예정자 A랭크 지휘관 낸시 드레이크 블랙베리입니다. …대한민국 출생의. 미국 국적자입니다.”
우리는 제일 먼저 신연 부스로 갔다.
서윤이와 낸시, 미아를 소개시켜드렸고. 곧이어 인사를 나온 아이린까지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미, 미, 미, 미아… 파, 파… 파렛… 흐으…….”
“오랜만에 뵙네요 원장님. 오시는 길 불편함은 없으셨나요?”
“모두 반갑다. 나는 이 두 녀석이 나온 늘푸른희망원 원장으로 있어.”
그 와중, 우리 서윤이와 원장님은 둘 다 유독 수줍어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원장님. 육서윤이라고 합니다.”
“크흠! 얘기는 많이 들었다. …서윤 학생 혹시 수제 초콜릿 좋아하시나?”
원장님께 오기 전 여자친구라고 말씀은 드렸었고, 서윤이한테 원장 쌤이 갈 거라고 문자를 했는데도 이랬다.
‘어색할 만 해. 나라도 그럴 거야.’
나는 불편해할 서윤이와 친구들을 배려해, 신연의 오컬트 부스조차 들어가지 않고 곧장 자리를 비켜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원장님께서 오래 계시면, 오그라듦을 견디지 못한 시공간이 붕괴할 것 같았으니까.
“잘했어 오빠. 진짜 잘했어.”
“왜 인석아. 난 더 있어도 되는데.”
“쌤! 이마에 땀이나 닦고 말해요.”
“내가 뭐 임마. 참나….”
원장님은 무척 어색해하시면서도 나와 하리의 친구들을 보는 게 반가우셨는지, 흉악한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원장님 이번엔 이쪽으로 가시죠.”
“오빠. 선우는? 아까 없던데.”
“볼 일이 생겼다고 밥 먹을 때 온대.”
“…선우? 그게 누구냐.”
이번에는 엘리사와 아이웨이, 아나 코스타의 동아리로 가는 길이었다.
원장님께서 선우를 물으셨다.
‘아, 원장님은 선우가 초면이시구나.’
나는 내가 지금까지 선우 얘기를 원장님께 한 번도 안 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아주 간단히만 말씀드렸다.
어차피 이따 보시면 선우가 ‘그’ 반선우라는 사실을 알게 되실 테니까.
“같은 반 남자인 친구 있어요.”
“흐음.”
잠시 뭔가를 생각하시는 듯했던 원장님이 이내 반색을 하셨다.
“그래. 이 아저씨가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 꼭 오라고 하거라.”
**
점심식사를 위해 한정식집으로 갔다.
이곳은 착한 선우가 잡아주었다.
아카데미 식당가에서 두 번째로 비싼 곳이었는데, 신기하게도 선우는 사람 많은 이 시기에 잘도 예약을 잡았다.
“하리는 뭐 먹을래. A코스?”
“응. 원장 쌤이랑 오빤 B?”
“그래. 선우도 A로 하자.”
우리 셋이서 선우 몫까지4인 분의 식사를 주문해 녀석의 합류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똑 똑
―형. 저에요.
“어 들어와.
―드르륵
갈색의 나무로 된 미닫이문이 열리고, 선우가 모습을 보였다.
녹발 녹안의 하프엘프가 생도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방 안에 들어와, 원장님께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원장님? 반선우입니다. 제이 형에게 큰 도움을 받고 있는 같은 반 동생이에요.”
“자네… 혹시……!”
원장 선생님의 눈이 크게 뜨였다.
선우의 정체를 눈치채신 모습이었다.
‘알아보시는구나. 하긴 S+랭크 헌터셨는데, 언론이 아무리 쉬쉬한다곤 해도 선우를 아는 것도 무리는 아니시지.’
선우는 우면산 사태를 정리하신 반지원님의 양아들이다. 그리고 원장님은 우면산 사태로 인생이 바뀌신 분이다.
“…그렇군. 그랬… 어.”
원장님의 얼굴을 가르는 회색의 진한 흉터가, 복잡해진 당신의 얼굴 때문에 더욱 거칠게 움직였다.
선우가 선한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부족한 제가 현재, 하얀 그림자들의 특임대장으로 있습니다. 물론… 특임대의 대장이 클레어 씨가 아니라 저라는 건 대외비지만요.”
“…반갑네, 반선우군.”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원장님.”
선우가 깍듯하게 두 손으로 원장님께 악수를 받은 직후였다.
―드르륵
미닫이문이.
사람 손이 아닌.
무언가로 열렸다.
“…어머니.”
선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
나를 포함해 하리와 원장님 역시 소스라치게 놀라 문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선우.”
맑은 빛이 얽힌 듯한 밝은 금발머리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아름다운 얼굴. 하프엘프인 선우보다 확연하게 긴 하얀 귀를 가진.
SSS랭크. 지고의 정령사. 하얀 그림자들의 수장.
“그 애?”
반지원.
그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