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142. 제이와 봄꽃 축제 (20)
SSS등급 헌터. 하이엘프 반지원.
백영의 군주, 실피드의 계약자, 작은 섬의 하이엘프 등의 별명을 가진지고의 정령사다. 현 헌터 세계랭킹 7위, 한국랭킹 2위.
그러나 SSS랭크의 헌터들에게 사실상 랭킹은 거의 의미가 없다. 붙어보기 전까진 누가 이길지 그들조차 모르니까.
반지원은 본래 프레이야 출신이다.
‘숲’ 뜻하는 엘프어인 하이highe. 그리고 요정을 부르는 고대 북유럽 신화에서 따온 엘프elf가 합쳐져 만들어진 괴상망측한 학명이 바로 <하이엘프>.
그녀는 바로 그 프레이야의 세계수목림Hiydranium에서 온 이방인인 것.
그런 반지원의 이름이 반지원인 이유? 아주 간단하다.
한국으로 귀화를 했으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6년 전, 그녀는 하이엘프들의 나라인 하이드라니움 근처에 생성된 균열 던전에 빨려 들어갔다.
그리하여 반죽음을 겪고 던전을 돌파하고 나니, 지구에 도착해 있었다.
―?
그것도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에.
―이름?
―whdkfkroWkwmdsk
―힘들어?
―그럼. 나 방지우언.
―실수. 반지원. 이래.
하이엘프들 사이에서도 최강자 중 한 명이었던 반지원은, ‘처음’ 지구에 살았던 2년간은 힘숨찐으로 살았다.
반지원의 사연과 캐릭터를 재밌게 여긴 언론들이 그녀를 스타로 만들었음에도, 그녀는 자신이 실피드의 계약자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어찌된 영문인지 곧바로 자신의 고향인 세계수목림으로 돌아가지 않고, 지구에 머물렀다.
―안녕.
―사랑해. 연예가중계.
하지만 결국 반지원은 마포구에서 2년을 머물다 게이트를 건너 고향으로 떠났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서울시 명예시민에 불과했지, 진짜 한국인은 아니었다.
―잘 가요 반지원. 사랑스러운 사람.
―심심하면 놀러와! 넌 서울 여자다.
―니 덕에 재밌었어. 잘 살아라!
그렇게 그녀가 떠나고 4년이 지났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던전 브레이크다!우면산이야!
―내균열로 SS랭크 던전이 됐어!
―이제는 SSS급으로 진화했다! 무조건 막아! 못 막으면 한국은 망한다!
우면산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다.
그리고.
―내가. 막는다.
반지원이 돌아왔다.
―모두. 튀튀.
다시 돌아온 반지원은 SSS급 헌터가 되어 있었다.
지구에 있던 시절에는 S랭크 궁사로 활동했던 그녀였는데, 알고 보니 무려정령왕의 계약자였던 것.
당시 한국에 SSS랭크 헌터는 유진의 클랜장인진성철님밖에 안 계셨는데,그 분은 그때 다른 던전을 공략 중이셔서 우면산 사태를 수습할 수 없었다.
―여기. 살래.
그렇게 초유의 대재앙이었던 우면산 사태를 거의 홀로 막으시고,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클랜인 <하얀 그림자들>을 창설하시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한민국과 서울의 수호신이 되어주신 분.
―선유도. 줘.
그분이 바로 반선우의 양어머님이신.
실피드의 맹우, 반지원님이시다.
**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대한민국의 최고 존엄이신 그 반지원님께서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나신 거다!
‘레이드 말고는 대외 활동을 거의 안 하시는데? 선우 때문에 오신 건가.’
나를 포함한 원장님과 하리는 너무 깜짝 놀라서 차마 말도 하지 못했다.
“선우.”
반지원.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부터 보고 자란 그녀의 소름 돋게 아름다운 얼굴이 천천히 돌아갔다. 그녀의 빛을 머금은 듯한 밝은 금발머리와 선우보다 확연히 긴 하얀 귀가 내 주먹만큼이나 작은고개를 따라 움직였다.
“그 애?”
반지원이 손을 들었다.
오늘도 역시나 하이엘프 특유의 전통복장인, 실크 네글리제를 연상케 하는 하얀 미니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나를 가리켰다.
그녀의 양아들이 대답했다.
“네, 어머님. 말씀드렸던 김제이 형님이세요.”
“…제이?”
“네.”
반지원이 천천히 내게 걸어왔다.
나는 너무 긴장해서 차마 의자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 바로 앞까지 다가온 그녀가, 아름다운 하늘색 눈동자로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 안녕하십니까! 반지원님.”
나는 그제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선우에게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선우 친구 김제이입니다. 창술 전공이구요, 어… 선우에게 너무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만나 뵙게 돼서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존경합니다, 클랜장님!”
“제이.”
“…네. 김제이입니다.”
160cm, 43kg의 소녀체형과 갓 여고생 정도 됐을 법한 앳된 미소녀의 모습을 26년째 유지하고 있는 반지원이다.
그녀가 나를 거의 수직으로 올려다보며 자꾸 내 이름을 되뇌었다.
“제이.”
나는 키 차이 때문에, 감히 그 반지원님을 내려다보는 게 죄송해서 무릎을 어정쩡하게 굽히고 대답했다.
“네. 제이가 본명입니다. …이름이 조금 이상하죠?”
“본명.”
“네. 돌아가신 어머니가 지어주셨다고.”
“엄마?”
반지원의 지극히 아름다운 앳된 얼굴이 묘하게 흐려졌다.
그녀가 특유의 한 어절씩 짧게 끊어 말하는 말투로, 의외의 질문을 했다.
“엄마. …반숙녀?”
돌아가신 우리 엄마의 성함이 ‘반숙녀’ 씨냐는 뜻이었다.
‘뭐야…?!’
나는 그 반지원님께서 우리 엄마의 이름을 알고 계시다는 사실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자 그녀가 재차 물었다.
“아빠. 김근?”
“네. 김, 근 자. 되셨다던데요.”
그 직후였다.
―사아아아아
실내에,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반지원이 나의 심장에 손을 댔다.
10초 정도가 지났을까.
“맞네.”
가슴에서 손을 뗀 그녀가.
내 뺨을 아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숙녀 아들.”
반지원의 핑크빛 입술이.
그리움을 머금은 선을 그렸다.
‘아… 우리 엄마를 아시나보다!’
살면서 돌아가신 우리 부모님을 아는 분을 만난 적은 종종 있었지만, 친구 분을 만난 적은 이번이 두 번째다.
물론 첫 번째는.
“지원 누님. 오래간만입니다.”
부모님이 속해 계신 클랜의 장이셨던.
우리 원장님이시다.
“…너어!”
반지원님의 앳되고 아름다운 미성이 뾰족하게 올라갔다. 부정적 감정이 담긴 부름이었다.
“예, 지원 누님. 저 웅홉니다.”
“곰탱이!”
“후우… 어째 20년 만에 봬도 누님은 예전이랑 변한 게 하나도 없으시구만.”
―드르륵
깊은 감정이 담긴 한숨을 내쉬신 김웅호 원장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누님, 잠깐 얘기 좀 하십시다. 니들은 밥 먹고 있거라.”
**
원장님과 반지원님이 이야기를 나누시기 위해 옆방으로 가신 후.
나, 하리, 선우. 이렇게 셋만 식사를 했다.
“선우야, 이거 맛있다. 이름 알아?”
“귀똥지바퀴 사과라는 열매에요.”
“이것도 프레이야 산이야?”
“네. 작세니아 지방 특산 과일이요.”
두 녀석은 나를배려해주려는지, 내게 말을 걸지 않고자기들끼리 얘기를 나눴다.
탁월한 선택이었다. 나는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으니까.
‘이게… 실화냐?’
선우에게 이미 설명을 들었음에도 도무지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리 엄마가.
반지원님의 친구였다니.
그것도 그냥 친구 사이가 아니라, 내 이름인 ‘제이J’가 반지원님의 ‘Jiwon’에서 따온 것일 정도로 각별했었다고.
‘이게 실제상황이냐고!’
수저를 내려놓고 선우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선우야. …정말로 너희 어머니님이랑 우리 엄마가 아는 사이셨어?”
“그렇다고 하셨어요.”
녀석이 재차 강조하듯, 아까 했던 얘기를 반복했다.
“일단, 형 얼굴이 작고하신 형의 어머님이랑 붕어빵이라고 하셨어요.”
그건 맞다. 원장님이 그 얘기를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하셨었다. 너만 보면 우리 숙녀가 떠오른다고.
당장 지금도 사진첩 속에 있는 엄마 사진을 보면 썩 그런 느낌이 들기는 했다. 내 얼굴은 엄마를 많이 닮아 여성적인 선이 있는 편이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성함이요.”
선우가 이번에는 얼굴보다 더 큰 증거를 들이밀었다.
“제이라는 이름은, 반숙녀님께서 생전에 자식을 낳으면 꼭 지어주겠다고 말씀하셨던 이름이었대요.”
“J가 지원님의 J라서? 정말 두 분이 친하셨나보다.”
“네.”
녀석이 곤혹스러움이 담긴 웃음을 머금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듣기로는 형네 어머님께서 이름에 콤플렉스가 많으셨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자식 이름은 꼭 서구적인 이름을 짓고 싶으셨다고.”
“크큭!”
“아하하하!”
나랑 하리가 동시에 터졌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어릴 때 나는 제이劑荑라는 이름이 이상하다고 친구들에게 자주 놀림을 받았었다.
그래서 그때마다 희망원에 와 투덜거릴 때면, 원장님이 실실 웃으시며 나를 이렇게 놀리셨다.
―서구적이고 좋구만 뭘? 넌 느그 엄마처럼 괜히 멋있는 영어이름 짓겠다고 고생할 필요 없겠다, 야.
바로 이거였다. 나랑 하리는 수도 없이 반복된 이 멘트를 떠올리고 빵 터져버린 거다.
“하아… 진짜 대박이다. 선우야. 너는 그럼 알고 있었어? 두 분이 서로 친한 사이셨다는 걸.”
“네.”
“…언제부터.”
“형을 직접 뵙기 훨씬 이전부터요.”
선우가 미안함이 듬뿍 담긴 눈빛으로 사과를 건넸다.
“죄송해요, 형. 그런데 어머님이랑 형이 직접 봬서 서로를 아는 기회를 가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어머님께서는 형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계셨었거든요. 안 그래도 올해에는 꼭 소개를 시켜드릴 생각이었는데, 마침 어머님이 형을 먼저 알아보셨어요.”
“이번 랭킹전 보시고?”
“네. 제가 꼭 보시라고 했어요.”
선우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전채 요리를 입안에 넣어 삼켰다.
“어머님은 반숙녀님께서 아드님을 낳으신 줄도 아예 모르고 계셨어요.”
“정말?”
“네. 아주 까맣게 모르셨어요. 그렇게 친하셨는데도, 안 알아보셨대요.”
“엉뚱한 게 꼭 반지원님 같으시네.”
나는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몰인정할 수 있냐는 식으로 되묻지 않았다.
반지원님은 하이엘프시니까.
그녀는 사람이 아니다. 절친한 지인의 유족을 반드시 살펴야도리에 맞다는, 그런 인간적인. 혹은 유교적인 사고방식으로 그녀를 이해해선 안 된다.
아인종과 인간은 다르다.
이 사실은 무려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서부터 배우는 내용이다.
“형. 조만간 저희 집에 오실래요?”
선우가 내게 시간을 주었다.
“나중에 선유도로 찾아오라는 거지? 반지원님을 뵈러.”
“이르면 이를수록 좋죠. 아마 어머님께서도 그걸 원하실 거예요. 아카데미에 오래 머무실 수가 없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다음 주 연휴에 서울을 가자. 그때 깊은 얘기를 들을 수 있겠지.’
어안이 벙벙했지만, 일단은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기엔 랭킹전을 앞두고 있으니까.
“우와.”
우리 맞은편에서 식사를 하던 하리가 개구진 미소를 지으며 날 놀렸다.
“반선우가 엄친아라고는생각했는데. 진짜로 그랬네? 김제이 엄마친구아들!”
그 말이 웃겨 헛웃음을 흘리며 엄친아님을 바라보았다. 녀석이 냉큼 고개를 숙였다.
“…혀, 형! 이것 좀 드셔보세요. 이 집 LA갈비가 맛있거든요.”
“그래.”
나는 악의나 짓궂음이라곤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이 하프엘프의 깜짝 고백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진짜 선우는 알수록 신기한애다.’
처음에는 저 예쁜 외모로 남자라는 사실에 크게 놀랐었다.
친해진 이후에는 파리 하나 못 잡을 것 같던 녀석이 어마어마한 정령사에다, 하얀그림자들의 후계자라는 사실에 경악했었다.
그리고 오늘은 사실 지가 우리 엄마친구아들이란다.
나는 예전부터 유독 나한테만 친근하게 구는 선우의 행동을, 이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젠더 놀랄 것도 없어.’
정말 그럴 것 같았다.
선우가 지가 사실은 여자였다고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한, 이제는 어지간한 일로 눈 하나 깜빡 안 할 것 같다.
“선우야. 이젠 형 놀래키지 마라.”
“아하하. 최대한 노력은 해볼게요.”
내 말을 들은 아름다운 하프엘프의 녹색 눈동자에, 깊은 온기가 피어올랐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요.”
**
―쾅!
“왜!”
정오의 고급 한정식집 <청해관>.
아카데미 내에 입점한 점포 중 몇 안 되는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나는 이곳. 그 중에서도 귀빈실에, 끓는 분노의 공기가 감돌았다.
“왜?”
반지원이 물었다
―어째서 숙녀가 헌터 일을 계속하도록 뒀어? 왜 약속을 어겼어? 너랑 근이, 나랑 약속했잖아. 숙녀 위험해질 일, 다시는 못 하도록 하겠다고!
즉, 우면산 사태를 통한 반숙녀의 죽음을 그에게 묻고 있는 것이었다.
이에 김웅호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누님. 숙녀 그 자식이… 아시다시피 욕심이 좀 많았잖습니까. 누님이 프레이야로 돌아가시고 결혼을 한 후에 제이를 낳고나니까, 강남 팔학군에서 애를 키우고 싶다고 해서.”
“뻥!”
“저희도 무지 말렸슴다!”
늘푸른희망원 원장에서 전 치킨헤드 클랜장 김웅호로 돌아온 그가, 울분과 탄식이 가득 찬 얼굴로 소리쳤다.
“근이랑 제가 얼마나 뜯어말렸다고요! 클랜에서 계속 사무직으로 돌리니까, 숙녀 그 자식이 나중에는 어떻게 했는 줄 아십니까? 클랜정관 어기고 헌터넷에서 캐러밴 구한 다음에 사냥 뛰었습니다. 오히려 더 위험했죠. …그럼 근이와 제가 어떻게 해야 했겠습니까?”
김웅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숙녀가 속했던 팀에 근이랑 지수랑 두형이처럼 친한 애들 섞어서, 서울에서 가장 꿀 떨어지는 우면산 던전만 살살 돌게 했었슴다. 클랜원들 모르게뽀찌도 많이 챙겨 줬구요.”
사실이었다.
20년 전, 우면산 C랭크 던전은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기 전까지 중부 지방에서 등급 대비 사냥 효율이 가장 좋은 곳으로 이름 높았다.
던전 마나 분포 유지율도 무척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우면산 근처는 지금의 강남역 못지않은 엄청난 상권이 형성되어 한때 사당과 과천 일대의 땅값은 압구정에 버금갈 정도였다.
“하아…….”
반지원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하늘색 눈에, 평소에는 절대로 볼 수 없는 괴로움의 빛이 떠올랐다.
감정동요가 적은 하이엘프가 이 정도의 슬픔을 보인 다는 것은 인간 성인남성이 눈물을 보인 것과 진배없었다.
“곰탱이.”
“네, 누님.”
지고의 정령사가김웅호. 즉, 26년 전 2년 간 지구에 살았을 때 같은 캐러밴에 속해 있었던 동생에게 물었다.
“돈은.”
―내가 지구를 떠나면서 숙녀에게 그 많은 돈을 다 주고 갔는데, 숙녀는 대체 그 돈을 어디에 전부 쓴 거야?
이런 뜻이었다.
“크으! 그게 말임다.”
김웅호의 흉악한 얼굴이 아까와는 다른 의미로 씰룩거렸다. 흡사 웃음을 간신히 참는 듯한 모습.
“숙녀가 누님 가시고 주식을 조금….”
―쾅! 쾅! 쾅! 쾅!
백영의 군주가 분을 못 이긴 어린아이처럼 테이블을 양손으로 마구 쳤다.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