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4화 〉144. 제이와 봄꽃 축제 (22) (144/145)



〈 144화 〉144. 제이와 봄꽃 축제 (22)

본선 3차전인 16강전이 시작되었다.
이제 하루에 열리는 승부는 단 8번.

―다음으로 음양사이신 사쿠라다 유지로 생도 모시겠습니다. 사쿠라다 생도는 놀랍게도 1학년 신분으로 첫 출전부터 16강에 진출하셨는데요, 선배이자 경쟁자인 김하리 생도에게  말씀하신다면요?
―…사, 살려주세요, 누나!

짧으면 한두 시간 안에도 끝날  있는 경기 시간 덕에, 참가 생도 하이라이트 영상부터 인터뷰까지 꽤나 요란한 준비들이 이어졌다.

본선 1차전은 하리의 경기.

녀석은 일본에서 천재 음양사 소년으로 손꼽힌다는 1학년을 상대로, 33초 만에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시청자 여러분 보이십니까? 저 놀라운 마력을요! 마봉 김하리양의 대마법사 못지않은 마력량과 컨트롤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나 참. 우리 하리 생도, 인간적으로 명예 졸업시켜야 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4대 아카데미 랭킹전이 눈 가리고 아웅이라지만, 마봉은 지금까지 봐온 마법사 생도들과 격이 너무 달라요.

본선 1, 2차전 상대야 다른 직업이었으니 그러려니 해도, 이번에는 비슷하다면 비슷한 직업군에다 명시적으론 같은 A등급이었기 때문에 분위기가 약간 술렁거렸다.

―연산 능력 차이입니다. 마력회로 성능의 차원이 달라서 벌어진 결과죠.

이에 16강전부터 특별 해설자로 초빙된 이정엽 팀장이 실드를 쳐주었다.

―김하리 생도가 경기 중에 사용한 마나는 사쿠라다 생도보다 미약하게 높았습니다. 다만 사쿠라다 생도의 방호결계를 해제하는 속도가 워낙 빨라, S등급 이상의 디스펠 주문을 사용한 것인가 오해하게 만들 수준이었던 거죠.
―하지만 이정엽 해설위원님. 마법사 분들의 마력회로를 통한 연산은 대개 스펠 메모라이징을 위한 게 아닌가요?
―저랭크 단계일 때는 그렇지만 고랭크일 때는 다르죠. 김하리 생도는 A++랭크지만, 마력회로의 연산능력은 감히 제가 추정컨대 SS랭크수준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게 실드를 친 건지 눈치를 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세상에 하리가 A++랭크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으니 큰 문제는 아니었다.

[윤이랑에게 절대 따먹히지 말라고 경고해주길 잘 했군.]

우리의 경고가 일단 뭐 오늘은… 먹혀 들어간 덕인지, 이정엽은 스마트한 모습으로 해설을 주도했다.

‘그나저나 어제보다 속도가 빠르네.’

경기는 썩 쾌속하게 이어졌다.
32강 대진 추첨이 아주 기가 막히게 된 탓에, 기존 구룡칠봉들이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아 실력 차이가 났다.

2차전의 승자는 안나 살라예바.
3차전은 아나 코스타.
4차전은 타이런 오닐.
5차전의 라다은까지.

‘아이린이야 올해도 백봉 확정이고.’

걔는 다시 말하지만, 협회가 공인한 제주도내 최고의 힐러다. S랭크 힐러가 제주 헌터부대에 상주해 있는데도 그랬다. 치유력 순도 차이가 많이 난다나.

‘현역 중에 남은 건 조쉬 뿐인가.’

그들은 자신들이 요 3년간의 황금기를 이루어낸 이스트 블루 최고의 세대라는 것을 몸소 증명하듯, 압도적인 실력 차이로 8강에 올라 구룡칠봉을 사수했다.

‘내가 지면. 정말 그렇게 되겠군.’

이 16강전에서 황금세대의 전설을 끊어낼 생도는 오직 나밖에 남지 않았다.

―멋진 사전 인터뷰 감사합니다. 이제 다음은 여러분들께서 기다리고 기다리시던 대회의 풍운아들이죠? 아이웨이군과 니콜라 보가의 경기입니다. 큰 박수로 환영해주시죠. 선수, 입장.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이웨이! 아이웨이! 아이웨이!
―니콜라 힘내라! 창술과 간지남!

6차전은 브룩 화이트라는, 2학년 검사가 차지했다. 그리고 다음 경기는 아이웨이의 순서.
8명이 심신을 가다듬고 있던 이곳 선수 대기실에는, 이제 나만 남았다.

“메리야.”

―탁

원장님의 애각창을 품에 안고 기댄 자세로, 친구에게 사과했다.

“…아깐 서운했지? 내가 원장님 창을 받고 너무 많이 좋아했네.”

사실이 그랬다. 나는 마법검 캄비온을 훈련장 창고에서 처음 주웠을 때보다, 솔직히 아까가 백배는 더 기뻤다.

그땐 심지어 ‘이 새끼 팔면 얼마 받을까?’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했었으니까.

하지만 비록 나중 일일지라도 메리는 날 각성시켜준 은인이다. 그런 면에서 아까 그토록 좋아한 모습을 보인 건, 어찌 보면 배신이라고도  수 있었다.

하지만 이건 순전히 감정 문제다.

내 의지로 어쩔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나는 그 점이 아주 미안했다.

[서운했냐고? 네놈이 여자 문제 외에도 멍청한 소리를  때가 있구나.]

메리가 우웅 떨며 나를 감쌌다.


[일수로 무려 3021일이나 창을 잡아왔던 네놈을 구태여 반려로 고른 것은 이 몸이다. 오히려 이 몸은 네놈에게 부채감을 가지고 있어. 네놈은 이 몸과 계약하기 전에도 이미 창이라는 분야에 집家을 지어놓은 상태였잖아.]


나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서로의 마음을 서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대화가 굳이 필요할까.


―띠딕

TV를 껐다.

아이웨이의 이번경기는 의미가 없다.

놈에겐 미안하지만, 녀석은 운이 너무 따라주어 자기 실력보다 한참 많이 올라와버렸다. 차라리 이번에 떨어지는 편이 스스로에게도 낫다.
그리고 나는  말을 할 자격이 있다.

나는 이미 아이웨이보다 강하니까.

뇌신 권능을 접어놓고 생각해도, 놈에게 질 거라는 생각이 전혀 안 든다.

각성 3개월  만에 어떻게 그간 우러러만 봤던 아이웨이를 꺾을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우문이다.

현재 아이웨이와 나는 종합 신체능력 차이가 거의 안 난다. 내가 마력이 더 높고, 놈은 민첩이 높은 차이 정도.

그러니 남은 차이는 주무기에 따른 전투 스타일과 기술, 경험의 차이들 뿐.

즉, 햇수로 9년 간 쌓아온 기술을.
이전보다 강건해진 몸이.
그저 펼치게만 해주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조쉬 맥킨지는 나보다.
이 모든 것들을 앞선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건 어차피 하나밖에 없다.

‘지금까지와 같아.’

다르지 않다.
예선 1차전부터 지금까지와, 같다.
그저 내 창술을 믿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침착하게 해나가는 것.

‘조쉬 맥킨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눈을 감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할  있다.
조쉬에게 절대 지지 않는다.
격의 차이는 권능으로 극복한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결전을 준비했다.

―승부 끝!

그리고 마침내.


―승자 근접격투술 전공 아이웨이!

무대에 오를 시간이 도래했다.

**

시간은 오후 5시 반.
해가 일찍 넘어가는 산중이다. 태양이 조금씩 오렌지색으로 물들며 한라산국립공원의 서산 너머로 저물고 있었다.

―네~! 지금까지 조쉬 맥킨지 생도와 김제이 생도의 패기 넘치는 사전 인터뷰 영상을 보셨습니다.

그저께까지만 해도 불이 꺼져 있었던 경기장 입구로 향하는 복도는, 환한 LED등으로 밝혀져 있었다.
이유야 물론 촬영 때문이다.

―여러분! 전광판을 봐주십시오. 두 생도가 결의에 찬 얼굴로 경기장을 향해 입장하고 있습니다. 관중 분들께서는 오늘의 마지막 경기이자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두 생도의 입장을 뜨거운 박수로 맞이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소리가 고막을 때려온다.

―하하! 두 생도의 인기가 대단하군요. 아무래도 학내 최고의 여성 팬덤을 보유한 두 남생도의 경기이니만큼, 유독 고음이 많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안 그렇습니까,  해설위원님?
―제가 후배님들에게 듣기론 여성 팬에 한해서는. 그리고 아카데미  한정으로는, 김제이 생도가 최근 그 어떤 남자생도보다 선풍적인인기를 끌고 있다고 합니다. 남성 팬층 역시 두터운 조쉬 생도와는 성비 차이가 크죠. 아이고 제이 생도,  부럽네요.
―이정엽 해설님도 여성 팬 분들이 그렇게나 많으시면서~ 욕심도 참!

관찰자들은 농담을 나누듯 나와 조쉬를 라이벌 구도로 형성해, 구경꾼들을 더욱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두 해설자님들. 혹시 조쉬 생도와 제이 생도에게 얽힌 세 가지 숫자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그들의노골적인 억지 라이벌 만들기는, 들어주기조차 민망할 정도였다.

―윤이랑 캐스터. 세 가지 숫자라니요.
―3.6.9. 두 생도는 전혀 다른 배경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이 세 개의 숫자와 관련한 커다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마치 평행이론처럼 말씀이십니까?
―정답입니다! 역시 스마트하신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 이정엽 팀장님이시네요. 꼭 평행이론처럼,  생도가 똑닮은 구석을 가지고 있거든요.
―하하. 윤이랑 캐스터께서 워낙 힌트를 많이 주시길래 운으로 맞췄죠 뭐.
―늙은 아저씨 질투 나게 젊은이들끼리 놀지 말고, 빨리 말씀해보세요! 제가  띄워드립니다. 먼저… 삼!

숫자 3.
우리가 이스트 블루에 낙방한 횟수.

―우리의 영원한 학생회장 조쉬 생도는 무려  번이나 아카데미 필기시험에서 낙방을 했다고 해요. 반대로 김제이 생도는 실기에서만  번을 떨어지셨다고 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조쉬 생도의 학교 사랑이 유독 각별한 걸로 유명하죠. 생도회장을 세 번이나 연임하며 이스트 블루를 4대 아카데미 중 최고의 자리로 올려놓았을 정도로 말입니다.
―제이 생도 역시 아카데미에 대단한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같은 시설 출신인 마봉 김하리 생도와 함께 아카데미를 다니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직장 생활과 입시를 병행하며 미각성자 신분으로 끝끝내 들어왔으니까요.

입담들이 좋았다.
해설자들의 별 거 아닌 수다는 관객들만이 아니라, 어느새 나의 마음조차 달아오르게 만들고 있었으니까.

[네놈의 사냥감도 너와 같다.]

복도에 걸린 TV를 보았다.
조쉬 또한 입가에 묘한 미소를 머금고 경기장을 향해 걷고 있었다.

―다음 숫자는 육! 입니다.

6. 즉, 창룡육십사예蒼龍六十四藝.
20년 전 작고한 SS랭크 헌터가 생전 확립한, 초보 창수들을 위한 기본 품세이다. 64가지의 기초 초식.

―Sixty-four Drake’ spearmanship!
―오우, 윤 캐스터 발음  좋은데요?
―아마 비헌터 분들께서도 많이 아실 단어이실 것 같은데요. 창룡육십사예는  한 세대 전부터 이미 기초 창술의 교과서로 불려왔었죠. 이곳 이스트 블루 창술전공자 분들의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공통 시험과목이기도 하구요.

기억이 난다.
내가 어떻게 저 시험을 잊어버릴까.
그때의 시험 장면을 내 장례식에 상영해도 부끄러움이 없을 정도로, 창룡육십사예 시험은 내게 좋은 추억이다.

―여러분들 혹시 그거 아시나요? 이스트 블루 52년의 역사 상, 놀랍게도 창룡육십사예 시험을 A+를 넘어 S의 성적으로 통과한 생도는 단 일곱 명밖에 없었다고 하네요.
―저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이스트 블루 생도들은 하나 같이 재능 있고 열정 있는 학생들일 텐데요?
―채점을 사람이 아니라, 아티팩트가 하기 때문입니다.

창룡육십사예를 완벽하게 펼치는지 아닌지는, 초정밀한 마도구가 판단한다.
아주 조금의 오차라도 있으면 가차 없이 감점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나는 조쉬에 이어 4년 만에 <최우수>를 넘어 <완벽>의 성적을 받아냈다.

창룡육십사예 시험은, 마력을 담지 않은 그저 초식 시험에 불과하다. 즉―


노력으로… 되는 시험이었다.


―정말 놀랍습니다. 올해 중간고사에서도 S판정을 받은 생도가 없었죠?
―그렇습니다. 아무리 창룡육십사예가 기초 창술의 교과서라고 하더라도 결국엔 품세에 불과하기 때문에, 생도들이 재수강만 피하자는 마음으로 응시하기 마련이거든요.
―그럼에도 조쉬 생도와 김제이 생도는 완벽의 판정을 받아냈죠. 이 대목에서  생도의 재능과 노력이 얼마나 비범했는지를  수 있겠네요.

땀내와 흙이 섞인 바람이 불어온다.
아까의 경기가 대단히 치열했는지, 아직 입구를 남겨두고 있었음에도 벌써부터 대경기장의 열기가 느껴져 왔다.
윤이랑 캐스터가 그런 나의 투지를 더욱 일깨우는 마지막 숫자를 불렀다.

―9! 두 생도가 창을 쥔 햇수입니다.


조쉬는 고3때부터.
나는 15살 때부터 창을 잡았다.
우리 둘 다 올해로 딱 9년째.
어느새 창을 처음 쥔 그 날 이후로 3000일이 흘러 있었다.

―흔히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죠. 한 가지 일의 전문가 영역에 도달하기 위한, 일종의 임계점 돌파를 의미하는 물리적 시간이라고 합니다.
―오호. 그럼  생도는 못해도 최소 하루에 서너 시간은 꾸준히 창술을 갈고 닦아왔다는 뜻이겠네요?
―그렇습니다. 정말 경이로운 집념이네요. 무려 9년을 한 결처럼 창술을 연마하다니. 마력지상주의시대가  요즘 세상에, 이토록 기술을 갈고 닦은 청년들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방금 이정엽이 한 말은 틀렸다.

첫째. 일단 이정엽 본인이  반례다

강령술사 이정엽은 구천현녀를 초등학교 때부터 무려 22년 간 모셔왔다. 나와 조쉬의 9년? 좆도 아니란 뜻이다.

둘째. 각자의 사정이 다르다.

귀창의 주인 조쉬 맥킨지는 마력 재능이 우수했지만 창을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헌터 등록이고 던전 레이드고 나발이고,  휘두르는  마냥 재밌었다고 한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9년이 흘러 있었다고.

반대로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력이 없었으니까 던전을 갈수 없었다. 마력을 실은 투창 연습을  수도 없었고, 그저 육체 단련과 기술 수련.그리고 대가리 쓰는 일에만 매달렸다.

나는 3021일  대부분의 시간을 각성유력자인 상태로 보냈기 때문이다.

나와 조쉬는 이렇듯, 비슷한 듯하면서도 실상 전혀 다른 9년을 보냈다.

―탓.
―탓.

귓가에 들어왔던 잡음들을 털어냈다.

나와 조쉬가 경기장에 모습을 보였다.

마치 짠 것과 같은 동시입장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유룡! 조쉬! 유룡! 조쉬! 유룡! 조쉬! 유룡! 조쉬! 유룡! 조쉬! 유룡! 조쉬!
―김제이! 김제이! 김제이! 김제이! 김제이! 김제이! 김제이! 김제이! 김제이!
―미쳤다아!! 잘 생겼다아아아아아!!
―창은 만병지왕이다!! 잘 싸워라!!!
―창은 만병지왕이다!!!!
―창은 만병지왕이다아아아!!!!!!!!!!

그리고 그제야. 세상이 터져나갈 것만 같은 열기에 휩싸인 대경기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제나 그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열기였다.

[난리도 아니시구만. 인간이란 어째 이렇게 변하는 게 하나도없는지.]

대경기장의 이명은 <콜로세움>.
관객들은 서로의 목을 따야만 다음 아침을 맞이할  있는 투사들을 바라보듯, 아주 열광적인 응원을 보내주었다.
그만큼 관중들은 오늘의  마지막 승부에 몰입해 있었다.

‘저기구나.’

경기장 외곽을 따라 심판에게 갔다.

오늘의 주심은 에비뉴 델루라 할배.

창술 전공 학과장이자, S+랭크에 올랐었던 대단한 전사다. 수백 명 창술 전공자의 이름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기억하고 있는, 열정 넘치는 스승.

“잘 부탁드립니다, 에비뉴 교수님.”
“오! 우리 교수님 오늘 멋있으시네. 역시 카메라 빨이  받으신다니까.”

우리는 노교수에게 인사를 드렸다.
에비뉴할배가 우리 둘을 번갈아 바라보다, 먼저 조쉬의 어깨를 짚었다.

“…늘 수고가 많네.”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그래. 오늘도 재미지게 놀아보게나.”

둘은 워낙 진한 사이라 더 말이 필요 없었다.
이번에는 그가 나를 다독였다.

“김제이.”
“예!”
“B랭크에 올라 훌륭한 일류 창수가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자네는 우리 과의 자랑일세.”
“…….”

갑자기  들어온 할배 때문에 가슴이 저릿했다. 항상 나한테 지랄만 해댔던 사람이었는데.

‘…씨발…….’

에비뉴 할배는 유일하게 아직까지도 내게 검을 쥐라고 강권하는 사람이다.

원장 쌤조차 고등학교 졸업하고부터는 날 설득하길 포기했다. 으레 그렇듯, 자식 이기는 부모 없는 법이니까.

하지만 이 노교수는 불과 예선전 직전인 지지난주까지도 전과를 권유했었다.

“김제이.”
“…예! 교수님.”

스승이 나를 끌어안았다.

“창잽이로서. 자네를 존경해왔네.”

카메라가 이 모든 광경을 찍고 있다.
나는 흑역사를 만들고 싶지 않아 이를 악물었다.

“……치매… 오셨습니까.”
“자네의 집념을  늙은이가… 몰랐던 게 아닐세. 그래서  두고 볼  없었네. 자네를 보면, 내 뜨끈미지근했던 젊은 날의 노력이 부끄러워져서… 견딜 수가 있어야 말이지.”

나이가 많으면 감상적이 된다더니.
그의 목소리에 습기가 베었다.

“그래서 자네가 더 검을 잡았으면 했어. 그래야… 맘이 편해질  같았네.”
“요양 병원이나 가보세요.”

전광판으로 우리의 모습을 보고 있던 관객석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김제이 개웃긴다! 미친놈 아니야?
―제이 오빠 파이팅! 사랑해요!

그러거나 말거나.
스승과 나는 한없이 진지했다.

“오늘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말씀하세요.”

나는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보나마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전공 갈아타라는 말이나 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오늘의 그는 달랐다.

“이 늙은이에게 보여주게나.”

에비뉴 할배. 나나 신아영과 마찬가지로 검술적성의 몸뚱아리를 가진 창수다.50년 간 창을 쥐었고, 결국엔 S+랭크까지이르렀던 집념의 괴물.
그 늙은 전사가 이를 까드득 갈았다.

“자네의  지독했던 노력이.”

“신체의 한계를 뚫어버릴 수 있다는.”

“증거를 만들어냈음을.”

“이 노구에게. 보여주었으면 하네.”


우리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하하! 이거 오늘은 내가 악역인가?”

그곳에는 하늘이 내려준 최적의 몸뚱아리와 <귀창>의 고유능력을 동시에 가진 조쉬 맥킨지. 그가 있었다.

“예.”

나의… 한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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