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아버님의 노예 (25)
팔을 크게 휘둘러 날아오는 도끼.
아무리 상대가 흉기를 들고 있다고 한들 동작이 크다면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
이렇게 안으로 비집고 들어가,
“도끼 그렇게 쓰는 거 아닌데?”
탁.
도끼를 잡은 팔을 손으로 쳐주고.
살짝 밀어주기만 해도.
“어…. 어어?!”
상대는 중심을 잃고 넘어지니까.
쿠웅.
도끼를 들고 있던 조폭을 손쉽게 제압한 사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곳곳에 쓰러져있는 신도들과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
덩칫값 못하는 조폭들까지.
“다 제압한 건가?”
이연정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요원들을 보았다.
고작 네 명이 이곳 전부를 해치운 거다.
물론 지형적 요인도 잘 활용했고 이들의 무위가 뛰어나 겁먹은 상대의 심리도 이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우리 석호씨가 있는 곳으로 빨리 가자고!”
*
같은 시각.
왕석호는 여자의 엄청난 파워를 보며 대단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하지만 왕석호의 기대완 다르게 여자는지쳐있었다.
성인 남성 다섯을 여자의 몸으로 때려눕혔다.
그녀가 덩치가 있고 사람 고문을 해왔다고 한들 전문적으로 격투를 배운 것도 아니고 큰 체격 덕분에 빠르게 체력은 소모되어갔다.
왕석호에게 들키지 않도록.
괜찮은 척은 하고 있지만 앞으로 상대할 수 있는 숫자는 많아야 둘.
그 이상이 들이닥친다면 그녀를 이길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진다.
“역시 관리자는 관리자라 이건가? 하지만 저 남자를 지키면서까지 싸울 수 있을까?”
아무리 벽 쪽에 붙어 좁은 길목에서 싸워도 뒤쪽은 비어있기 마련이다.
경호원들은 숫자를 나눠 앞쪽과 뒤에서 점점 왕석호와 여자를 몰아붙였다.
“비겁하긴…!”
“비겁? 당신이 할 소린가? 어째서 신교를 배신한 거지? 이곳에서 평생을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여자는 왕석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곳에서 평생을 행복할 수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나는 이제야 행복을 찾았으니까.”
앞쪽에 경호원 한 명.
뒤쪽에 경호원 세 명.
“앞쪽으로 뚫을 테니까 하나둘 셋 하면 뛰어요.”
여자는 작게 숫자를 세더니 앞을 향해 뛰어나갔다.
적게 움직이고 최대한 많은 경호원을 제압하는 것.
이것이 처음의 계획이었다면 지금은 없는 체력에 전력으로 뛰었다.
경호원 하나쯤은 자신의 몸으로 친다면 날려버릴 수 있으니까.
콰앙!
있는 힘껏 어깨로 경호원을 쳐버린 여자.
생각보다 멀찍이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다.
하지만 그건 아주 멍청한 짓이었단 걸 여자는 깨달았다.
“당신이라면 길을 뚫을 줄 알았지. 우리의 목적은 처음부터 좁은 곳에서 당신을 빼내는 것!”
탁 트인 공간으로 나오자 보이는 수십 명의 경호원들.
이런 넓은 공간은 그녀에게 불리하다.
아마….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쓰러지겠지.
여자는 왕석호를 자신의 뒤에 세워두곤 큰 목소리로 외쳤다.
“사랑하는 여자가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마!! 전부 드루와!!”
*
“...이게 도대체 뭐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왕신오는 처음으로 당황에 빠졌다.
태어날 때부터 축복받은 아이.
그게 왕신오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하고자 하는 일에 막히는 법이 없었다.
길이 트인 듯 모든 일이 잘 풀렸고 결국엔 신교의 교주가 되어 정치까지 영향력을 뻗치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뭘까.
고작 다섯 명 때문에 혼돈이 찾아왔다.
이제 자신을 지켜줄 장기 말들은 얼마 남지 않았다.
게다가 왕석호를 고문시키라고 했던 관리자는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왕석호를 탈출시키고 경호원들을 때려눕히기 시작했다.
하나가 어긋나 무너져내리기 직전의 상황.
왕신오는 그냥 두고만 볼 수는 없었다.
“어차피 왕석호 쪽은 곧 처리 될 거고 문제는 저놈들인데…. 도대체 내 아들놈이 저 녀석들에게 뭐길래 저렇게 소란을 피우는 거지? 내가 직접 내려가 보겠다.”
왕신오는 경호원을 데리고 1층으로 향했다.
*
허억…. 허억….
지친 호흡 소리.
몸에서 미친 듯이 흐르는 땀.
그런 땀만큼 흐르는 피.
이마에서 흐르는 피는 이제 거의 다 말라갔지만, 코와 입술이 터져 흐르는 피는 멈출 줄 몰랐다.
사실 서 있기도 힘들어 보인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그녀는 왕석호를 지키고 있었다.
“그…. 그만…. 그…. 그만…. 해…. 해요….”
왕석호는 그녀를 말렸다.
그도 안다.
그녀가 자신을 위해서 희생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왜?
고작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도 하루아침에 반한 상대를 위해서?
“좋아해요.”
그러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고백이었다.
피가 흐르는 전쟁터에서 사랑한다 고백이라니.
무슨 소설도 아니고…. 이대로가다간 정말 죽을지도 몰랐다.
“이 정도까지 저항할 줄 몰랐는데이젠 정말 끝이다. 저년을 죽이든 쓰러뜨리든! 그 뒤에 남자를 붙잡아!”
경호팀장이 명령하자 나머지 경호원들이 전부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아…. 안돼…. 저…. 정말…. 주…. 죽겠…. 어…!’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라니.
사실은 그녀가 죽든 말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데.
왜 몸이 먼저 움직였는지 모르겠다.
“도…. 도와…. 드…. 드릴…. 게…. 게요!!”
벌벌 떨면서 왕석호는 그녀의 옆에 섰다.
“..이걸로 마음은 받은 거로 할게요.”
그녀는 몸을 돌려 왕석호를 감싸 안았다.
마치 어린 새끼를 보호하는 어미처럼.
퍼버버벅.
경호원들이 죽어라. 그녀의 뒤를 내려쳤지만, 그녀는 앓는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끝까지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었으니까.
“어이! 너희들 동작 그만!”
그때 들려온 남성의 목소리.
경호원들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기에 모두 멈춰 섰다.
“서…. 선생님!”
경호팀장은 선생을 보고 경례를 했다.
신교에서 교주 다음으로 영향력이 강한 사람.
거의 부 교주라 칭하는 선생.
그가 이 자리에 나타났다.
“하도 소란스러워서 와봤더니…. 이게 뭐 하는 거지?”
선생은 경호팀장의 눈을 바라보며 인상을 팍 지었다.
“이…. 이건! 교주님의 명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관리자를 죽여도 된다고 했나?”
“그…. 그건….”
경호팀장은 고개를 돌렸다.
그런 명까진 없었다.
왕석호를 데려오라는 말만 있었을 뿐.
“아니잖아. 그치? 어차피 마무리된 것 같은데 저놈은 내가 교주님께 데려가겠다.”
선생은 그렇게 말한 뒤.
왕석호에게 다가갔다.
아니, 왕석호를 지키고 있던 여자에게 다가갔다.
“고생했어…. 잠시 쉬어도 괜찮아.”
선생이 그렇게 말하자 그녀는 그제야 긴장이 풀렸는지 바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너희들은 볼일 끝났으면 그만 가지 그래? 너희 바쁠 것 같은데…?”
선생은 경호원들을 돌려보내는 일도 잊지 않았다.
지금 안소희는 숨어서 선생을 지켜보았다.
안소희 혼자 탈출할 기회를 얻었지만 혼자 도망갈 순 없었다.
그녀는 선생에게 남편도 구하자 말했고 선생은 흔쾌히 수락했다.
“이제…. 나오셔도 괜찮습니다. 여신님.”
선생의 말에 안소희는 모습을 드러냈고,
왕석호와 조우했다.
왕석호를 열렬히 지키던 여자는 타박상만 입었을 뿐 큰 상처는 없었고,
“지…. 지금…. 이…. 일 층…. 에…. 나…. 날…. 구…. 구하러…. 오…. 온…. 사…. 사람드…. 들이…. 있어….”
1층에서소란피우는 사람들이 왕석호를 구하러 온 사람들이란 걸 알았다.
다만, 안소희는 그게 이연정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
“드디어 대빵이 납신 건가?”
이연정은 눈앞에 직접 행차한 왕신오를 보며 말했다.
고급스러운 옷.
비싸 보이는 시계.
얼마나 관리를 잘했는지 50대라 보기에도 힘든 얼굴.
‘저놈이 우리 석호씨의 아버지라니….’
어쩌면 아버님이 될 수도 있는 인물.
“왕석호만 돌려주면 그만 물러갈 건가?”
상대를 깔보며 무시하는 말투.
그런 건 이연정에게상관없었다.
이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니까.
“물론.”
씩.
왕신오는 자신 있게 말하는 이연정을 보며 입꼬리가 올라갔다.
놈들의 무위가 대단하단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말이지….
인생은 실전이다.
힘이 세다고 전부가 아니거든.
“그럴 줄 알고 인질로 잡아 놨지. 앞으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왕석호는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