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6회
결국 저주에 의한 탈진으로 죽었다 되살아난 나는 부활 장소인 마을 광장에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
내 정신을 악착같이 좀먹던 저주가 말끔히 사라졌다는 게 믿기지 않아 현실감이 되돌아오지 않는다.
한나절 넘게 저주로 고통 받던 기억이 꿈결이었나 싶을 정도로.
몸이 너무나 가벼웠고 청량감이 느껴질 지경으로 맑아진 머리는 무언가 정체불명의 껍질을 깨뜨리기라도 한 것처럼 명료하고 뚜렷하다.
"응? 아니. 뭔가..."
무언가 이상한 위화감을 느끼고 내 몸을 내려다보는 순간, 뒤에서 다가오는 기척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렸다.
"앗..."
내 어깨에 손을 짚기 위해 손을 올렸던 묘란이 흠칫 놀라며 굳는다.
"놀래라. 제가 다가오는 걸 어떻게 알았나요?"
"어? 글쎄...그냥?"
그녀는 지명 수배자 신세이기 때문에 두꺼운 로브로 전신을 빈틈없이 감싸고 있었다. 물론 나도 별다를 바 없는 차림새다.
"일단 집으로 가자."
"네."
사람이 많은 곳에 오래 있을 수 있는 신세도 아니고 마음 편히 쉬고 싶었기에 나는 묘란을 데리고 서둘러 우리들의 작은 집으로 향했다.
"...진짜 죽는 줄 알았어."
"고, 고생 하셨어요..으응..!"
집으로 돌아와 묘란을 끌어안은 채 침대에 눕자 그제야 긴장이 풀리고 평온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걸린 저주가 캐릭터의 사망으로 말끔하게 사라졌으니 망정이지 만약 죽어서도 저주가 사라지지 않았다면 진짜 미쳐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아..."
작은 단칸방에 놓인 작은 침대 위에서 묘란을 힘껏 끌어안고 그녀의 가슴골에 얼굴을 묻고 있으니 그나마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는다.
당연히 서로 알몸이다.
긴 시간 혹사하여 피폐해져 있던 정신이 순식간에 진정되는 걸 보니 풍만한 가슴이라는 건 정말이지 신기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 탱탱한 엉덩이도.
"그러고 보니 아직 스텟 확인을 안 했네. 어디 보자..."
[원한 : 4623]
"오, 오오...? 뭐야? 뭔가 단위가 달라졌는데?"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이 올랐다. 저주가 과연 얼마나 강해졌을지는 가늠하기 힘들지만 스텟 원한의 수치상으로만 따지면 최소한 몇십 배는 강한 위력이 나올 것이다.
"묘란. 지금 저주 받아볼래? 아마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걸?"
"사양할게요."
"크큭. 그래?"
새침하게 거부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참고로 말하자면, 지금 네게 걸었던 저주는 내가 죽으면서 완전히 사라졌어. 어떻게 할래? 도망갈 거야? 네가 날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다시 저주를 걸어도 그리 강한 저주가 걸리진 않을 거야. 이제 널 원망하거나 증오하는 감정은 거의 사라졌거든."
"어머. 그래요?"
"아마도. 게다가 지금이라면 도망가더라도 딱히 저주를 걸거나 하진 않을게. 어차피 널 평생 잡아둘 생각도 없었으니까."
"흐응..."
묘란은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영악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럼 한길 씨가 테리어를 상대하는 걸 보고 결정할게요. 사실 전 당신이 질 것 같지가 않거든요."
"뭔 소리야. 레벨 1인 내가 테리어를 어떻게 이긴다고?"
"하지만 당신의 스킬은 너무 사기적인걸요. 그건 견딜 수가 없다고요. 직접 그 위력을 체감했으니 알 거 아니에요?"
"아 뭐...."
그렇게 엄청난 저주가 다시 만들어질 수 있는 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원한 스텟의 보정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는지는 모르지만 저주의 위력을 결정하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애매하고 모호한 '감정'이라는 녀석이다. 묘란에게 고문 당했을 때처럼 격렬하고 악몽 같은 감정이 다시 일깨워지는 일은 드물겠지.
"게다가 말이죠. 당신은 상당히 좋은 방송 소재에요. 특이한 캐릭터 특성과 스킬은 분명 주목을 끌겠죠. 상상력을 발휘하면 무궁무진한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을 거에요. 뭐, 드림아웃의 시청자들은 금방 질려하니 그걸 어떻게 이용하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겠지만."
"...호오."
날 이용해 먹으시겠다? 재밌네. 자신의 입장을 착각하고 있는 거 아냐?
"그리고 당신에게는 개인적으로 호감이 있기도 하고요."
"......"
이게 미쳤나? 설마 진심은 아니겠지.
금붕어도 아니고 네가 내게 했던 짓과 내가 네게 했던 짓을 벌써 까먹었을 것 같아?
"호감이라...어떤 점에서?"
대놓고 비웃으며 그녀의 젖꼭지를 꼬집자 그녀는 두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내 머리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후훗, 한길 씨 당신은...현실에서의 모습 그대로 드림아웃에 온 거죠?"
"그래."
"그 점이에요. 사람 냄새가 나요."
"엉?"
"드림아웃의 엔피시들은 정말 사람 같지만 사람은 아니에요. 사람처럼 대하려 해도 잘 안 되더라고요. 유저들은 또 어떻구요? 하나 같이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휘황찬란한 껍질 안에 들어가 있어서 거리감이 장난 아니에요. 그래서 당신처럼 평범하게 생긴 사람은 정말 오랜만에 봤어요. 뭐랄까...편안하다고 해야 되나? 안심된다고 해야 하나? 당신을 볼 때마다 여기가 게임 속이고 현실에서의 저는 캡슐 안에 누워있다는 실감이 들어요."
"허어..."
그 말은 즉, 이곳에서의 나는 인기남이 될 수도 있다는 건가? 그건 좋은 소식이로군.
"그래서?"
"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널 신뢰해줄 줄 알았어? 어림도 없지. 네 첫인상은 너무나도 최악이었어. 내 곁에 있고 싶다면 내게 복종하고 순종해. 네가 가진 모든 걸 내놓으라고."
"우와, 아직도 그 일을 신경 쓰고 있는 건가요? 의외로 속 좁네요. 덩치는 큰데."
"어쭈, 이거 봐라? 슬슬 기어오르는 거야?"
몸을 일으켜 그녀의 몸 위에 올라탄 나는 더럽게 예쁘고 귀여운 얼굴을 내려다보며 비릿하게 웃어보였다. 묘란은 그런 나를 올려다보며 도발적으로 웃었다.
얄미워서 자지로 혼내주고 싶은 그런 얼굴이다.
"쿠쿡, 당신은 아직 드림아웃에 대해 모르니까 그런 거겠죠. 그런 일에 일일이 반응하면 신경이 남아나지 않을 걸요? 초보자 사냥 따위는 흔하디 흔한 일이라고요?"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니 용서해라? 지금 그 말 하는 거야?"
대놓고 비아냥거리자 그녀의 눈이 게슴츠레하게 변한다.
"상당히 띠꺼우시네요. 나 참...뭐, 좋아요. 당분간은 당신의 오나홀이 될게요."
"......"
말을 너무 자극적으로 하는 거 아니냐. 내 취향이긴 하지만.
"당분간이라...언젠가는 내가 널 동등하게 대우해 줄거라 생각하는 거야?"
"거참 말꼬리 엄청 잡고 늘어지시네...그 부분은 노력해보죠. 설령 안 된다 해도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괜찮아요. 질리면 떠나버리죠 뭐."
"에휴...네 마음대로 해라."
그녀의 몸 위에 몸을 포개며 향긋한 가슴골에 얼굴을 파묻고 깊게 파인 등허리와 엉덩이를 쓰다듬자 그녀도 나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적극적으로 밀착해왔다.
"음..."
부드럽고 탄력적인데다 풍만한 몸이 따끈따끈하게 달아오르며 전신을 감싸안자 박한길 주니어가 힘껏 고개를 치켜든다.
"우후훗..."
자신이 이겼다는 듯 건방지게 웃은 묘란은 포동포동한 허벅지 사이에 자지를 끼우며 달래듯 내 등을 쓰다듬었다.
"어쭈구리..."
목을 빳빳하게 세운 나는 그녀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허벅지 사이에서 자지를 뽑아들었다. 마치 전설의 용사가 성검을 뽑는 것처럼 말이다.
"우햐...언제 봐도 크네요. 아까 사람 냄새가 난다고는 했지만...아무리 당신이라도 그 부분은 건드리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이죠? 적당히를 모르네요."
"응? 아니. 난 캐릭터 건드린 적 없어. 이건 현실에서도 이 크기야."
"...거짓말."
"쿠쿡, 믿든 말든 상관없지만, 지금은 네 몸부터 걱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풍만하게 흔들리는 유방을 뭉개듯 움켜쥐며 팔딱거리는 자지를 보지에 찔러넣자 그녀는 몸을 바르르 떨며 달콤하게 울었다.
"아, 아으응...! 카흣...!"
"아직 끄트머리만 들어갔다. 몸에 힘 빼."
한껏 벌어진 두덩이 살을 향해 계속해서 허리를 밀어넣자 자지가 들어가는 모양새 그대로 그녀의 아랫배가 볼록 튀어나온다.
"아흐으...! 현실이었으면 이거...못 버텼을 거야...!"
"크크크, 맞아. 하나 같이 아프다며 비명을 지르더라고...!"
꾸욱, 꾸우욱.
귀두 끝에 자궁이 느껴졌음에도 멈추지 않고 밀어올리자 그녀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이 터져나온다.
"응오옥, 흐오오옷...!?"
"후우...끝내주는구만."
길게 빼내고 길게 찔러넣는다. 기교 없는 단순한 움직임이었음에도 그녀의 질벽은 남김없이 문질러졌고 자궁은 올라왔다 내려갔다를 반복한다.
"응호오오...아그으응..!"
묵직한 신음과 도발적일 정도로 색기 넘치는 얼굴, 미사일처럼 공격적으로 풍만한 가슴과 커다란 골반, 묵직하고 두툼한 허벅지, 엉덩이...
"후욱, 후욱...!"
욕정이 충동질당해 점차 여유가 사라지는 걸 느끼며, 나는 점점 더 강하게 허리를 부딪혔다. 살과 살이 부딪히는 축축한 파열음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하아아앙! 응흐오오오...! 크히이이잉!"
이 날 나는 하루 종일 그녀의 몸을 괴롭혔고 다음 날 동이 틀 무렵에야 간신히 항복을 받아낼 수 있었다.
***
테리어가 내가 있는 곳에 도달하기까진 최소한 며칠이 소요될 것 같다고 한다.
"그렇게나 오래 걸려?"
"당연하지. 드림볼(Dream ball)이 얼마나 넓은데? 게다가 이동 수단도 많이 제한돼 있어. 텔레포트 같은 설비가 있긴 하지만 그건 정말 어마어마하게 비싼데다 귀족 등의 자격이 없으면 쓸 수도 없고...그러니 가장 빠른 이동 수단인 와이번을 타고 온다 해도 우리가 있는 곳까지 오려면 며칠은 걸릴 거야."
"호오, 그렇군...그런데 너 은근슬쩍 말 놓는다?"
"뭐 어때? 친하면 반말 정돈 할 수 있지."
"...너 몇 살인데?"
"게임에서 그게 뭐가 중요해? 나참...그러는 넌 몇 살인데?"
"스물 아홉이다."
"...오빠라고 부를게."
"얼씨구."
"왜? 오빠라고 부르는 거 싫어? 오빠."
그녀가 새카만 두 눈을 치켜뜨며 아양을 떨자 괘씸하게 생각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거 속눈썹 엄청 길고 촘촘하네. 색기가 넘쳐 흐르잖아.
"이제 그냥 니 맘대로 해라..."
"응. 그럴 거야!"
그녀가 새초롬한 얼굴로 당당하게 가슴을 펴자 짧은 배꼽티로 간신히 가려진 풍만한 봉우리가 격하게 나를 유혹한다.
더불어 엉밑살이 삐져나오는 청바지 풍의 핫팬츠가 눈앞에서 씰룩이며 꽉 찬 속을 과시할 때마다 성욕을 불태웠다.
그런데 저런 현대적인 옷이 있어도 되는 거야? 중세풍 분위기가 단번에 사라지는데..
"오빠! 빨리 좀 와! 왜 그렇게 느려?"
그녀의 재촉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손사래를 쳤다.
"레벨 1짜리한테 바라는 것도 많다. 여기서 뭘 어쩌려고 데려온 거야?"
우리들은 파티를 맺은 채 나제르 제국을 벗어나 드넓은 평원에 펼쳐진 숲 속을 거닐고 있었다.
레벨 40에서 50이 사냥하는 사냥터로 주로 출몰하는 몬스터는 '거대 뿔 곰'과 '가시 갑옷 원숭이' 등등이라고 한다.
"응? 우후훗, 그건 몬스터를 발견하면 알려줄게!"
"잔말 말고 빨리 말하기나 해..."
수목간의 거리가 넓어 눈이 피로하지도 않고 햇빛은 따스하며 녹음이 내뿜는 공기는 상쾌한데다 낮은 풀이 깔린 땅은 푹신해서 걷기 편했지만, 아무래도 내 레벨대에 맞는 사냥터가 아니다보니 불안하기 짝이 없다.
과장 좀 보태면 여기서 출몰하는 몬스터가 콧바람만 불어도 죽을 연약한 몸이니까.
"어디 보자...아! 저기 있다! 오빠! 발소리 죽이고 웅크려!"
"어? 으, 으응..!"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재빨리 수풀 아래로 숨는 그녀를 따라 급하게 엎드렸다.
"뭐가 있어?"
"거대 뿔 곰이네. 레벨도 적당해 보여."
"......"
수풀을 헤치고 그녀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미니 갈색 털로 뒤덮이고 이마에 뿔이 난 곰이 주저앉아 벌집을 씹어먹고 있었다.
머리통만한 벌들이 주위를 맴돌며 곰을 공격하고 있었지만, 녀석은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 벌집을 씹어먹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거대 뿔 곰...이름 그대로의 모습이네. 그런데 너무 큰 거 아냐? 저 정도면 트럭이랑 부딪혀도 트럭이 반파되겠다.
"그래서? 나보고 뭘 어쩌려고?"
"오빠의 저주는 오빠가 말하는대로 이뤄지잖아?"
"...정신적인 것에 한해서는 아마도."
"그럼 엔피시나 몬스터를 오빠의 부하로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호오...!"
상상도 못한 사용 방법에 감탄하며 그녀의 얼굴을 돌아봤다.
그녀는 자신을 칭찬하라는 듯 우쭐거리며 건방지게 웃고 있었다.
피식 웃은 나는 나도 모르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젖꼭지를 튕겨주었다.
"...젖꼭지는 왜?"
"응? 그냥 너무 볼록 튀어나와 있길래 무심코."
"......"
게슴츠레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대충 흘려버린 난 두 팔을 걷어붙이며 거대 뿔 곰을 쳐다봤다.
"좋아. 그럼 해볼까?"
초보자용 칼을 든 나는 왼 팔을 겨냥한 채 심호흡을 했다.
저주의 대가를 바치는 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시스템이 내 말에 따라 자동적으로 정산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스스로 대가를 지정해 그 이상의 대가가 빠져나가지 않도록 제한하는 것이다.
"후우...스읍....!"
각오를 굳게 다진 나는 눈을 부릅 뜨고, 말과 동시에 칼을 내리꽂았다.
"내 충실한 부하가 되어라...!"
피가 줄줄 새나오며 격렬한 격통이 치밀어오른다.
진짜 더럽게 아프네..!
"후우, 후우우...!"
하지만 대가는 확실하게 바쳤다.
나는 기대감에 부풀어 거대 뿔 곰을 쳐다봤다. 만약 이게 된다면 상당히 유용할 것이다. 테리어를 상대하는 건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부풀었던 기대와 희망은 금세 무너져내렸다.
[저주에 걸맞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저주에 걸맞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저주에 걸맞는 대가가....
하긴, 세상사 원하는 대로 흘러가면 무슨 재미가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