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17회
"허억...!?"
마치 악몽에서 깬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식은땀에 절은 옷은 축축했고 팔다리는 바들바들 떨리는데다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개미떼처럼 전신을 헤집던 고통의 후유증이다.
"후우...앞으로 규모가 큰 저주를 쓸 땐 고민 좀 해봐야겠네."
진짜 빌어먹을 정도로 아팠고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수천 번은 생각했다.
드림아웃에 접속한 이후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적은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다.
"오빠!?"
그때, 방문을 박차고 묘란이 뛰쳐들어왔다.
"오, 묘, 묘란. 마침 잘 왔네. 부축 좀 해줘."
떨리는 손을 보여줬더니 냉큼 끌어당겨 자신의 어깨로 받친 그녀는 황급히 걸음을 옮겼다.
"오빠! 지금 도망가야 해!"
"응? 왜? 혹시 저주가 풀리기라도 했어?"
"아니! 오빠의 저주는 완벽히 먹혀들었어! 푸는 것도 실패한 모양이라 성기사단은 거의 전멸이야! 그러니 지금 도망가야지! 지원군이라도 오면 어떡해!"
"그럼 내가 유리하다는 말이잖아. 도망을 왜 가? 조금 진정해."
떨리는 손을 들어 그녀의 가슴을 만지작거리자 그녀는 두 눈을 흘겨 나를 노려봤다.
"오빠가 아직 신성교에 대해 몰라서 그러나본데 저 녀석들은 오빠가 상상하는 것보다 많아! 거기다 집요하다고! 아니면 저주를 몇십 만의 성기사들에게 전부 걸 수 있기라도 해?"
"......"
원한 스텟만 충분하다면 불가능하진 않을 거다. 그야말로 몇천 번 죽어야 하고 오늘 같은 고통을 일상처럼 느껴야 하겠지만.
"진정하라니까. 아무리 나라도 그렇게까지 생각이 없진 않으니까 조금 믿어."
"대, 대체 어쩌려는 건데...?"
"일단 테리어에게 데려다주겠어?"
"......"
"묘란. 내 말 들어."
"내, 내, 내 입장도 생각해 달라고!"
갑작스런 외침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 난...오빠가 없으면 안심되지 않아. 오빠가 만져주지 않으면 그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어!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게 될 거야...! 무서워, 무섭다고..."
"......"
역시 지나치게 의존적이다. 공포로 찍어누르면 무조건 내가 하는 말을 들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 군.
"에휴..."
나는 하얗게 질린 채 벌벌 떨고 있는 그녀의 가슴을 부드럽게 주물러주었다.
"흐응...! 하아..."
그녀의 말처럼 그녀는 내 손길을 느끼자 곧바로 혈색이 돌아오며 더욱 손에 밀착하기 위해 가슴을 내밀었다.
"묘란. 네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 하지만 지금은 날 믿고 따라."
"하, 하지만...오빠가 신성교에 잡혀버리면..."
"이 이상 시간 낭비하면 화낸다."
목소리를 내리깔자 그녀는 어깨를 흠칫 떨더니 자신의 가슴을 매만지는 내 손을 자신의 남은 한 손으로 덮고 천천히 입술을 짓씹었다.
각오를 다지는 중인가 보다.
"...알겠어."
"그래야지."
"하지만...만약 신성교에 붙잡히기라도 하면...!"
그녀의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이 나를 빤히 직시한다.
욕망과 불안과 증오가 뒤섞여 흐릿한 그녀의 눈동자는 뒷목에 소름을 돋게 하기 충분한 것이었다.
과연, 이것도 공포로 찍어 누른 부작용인가. 앞으로 공포를 이용하는 지배는 여러모로 신중하게 생각해야겠군. 내 능력으로는 묘란 하나만으로도 벅차. 인원수가 많아지면 손을 쓸 수가 없겠어.
"안심해."
"으읍...!? 흐으응...!"
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그녀의 턱을 잡아 고정한 나는 그녀의 입술에 입술을 포개며 혀를 집어넣었다.
"아읍..츄릅, 하아, 햐아아아...!"
혀를 얽고 빨며 그녀의 풍만한 가슴과 육중한 엉덩이를 강하게 그러쥐자 가라앉았던 그녀의 눈동자에 뜨거운 열기가 차오른다.
"하아앙...!"
"...계속할까? 묘란."
코를 맞닿은 채 부풀어오른 자지를 아랫배에 밀어붙이며 속삭이자 그녀의 눈이 격하게 흔들렸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 잠깐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잖아?"
"뭐 어때? 어차피 저주에 걸려서 정신도 못 차리는데...오나홀이 열심히 쥐어짜내면 금방 끝나지 않을까?"
능글맞게 웃으며 팬티 안에 손을 집어넣어 깊디 깊은 엉덩이 골을 벌리자 앞으로 내밀어진 그녀의 고간이 자지를 아랫배까지 밀어붙인다.
"하아, 하아...!"
"응~? 벌써 이만큼이나 젖었어?"
"으야앙...!"
항문을 꾹꾹 짓누르며 흠뻑 젖은 질구 주변을 둥글게 문지르자 까치발로 선 그녀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하, 한 번 만이야...?"
"그래그래."
"어, 어쩔 수 없네..."
말은 그렇게 하지만 자지를 빼내는 그녀의 손놀림은 신속했다.
"꿀꺽...!"
마침내 빼낸 자지가 자신의 아랫배를 날카로운 각도로 꾹꾹 찌르자 그녀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부드러운 손길로 자지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뿌리에서부터 귀두까지 표피를 밀어내 문지르고 귀두 전체를 손바닥으로 닦아내자 그윽한 쾌감이 치밀어오른다.
"오오...! 거기 좋아. 더 세게..."
"으, 으응..."
그녀의 손이 거칠게 자지를 훑는 동안 나는 아까부터 가슴팍을 간지르던 유방을 옷밖으로 꺼내 입에 물었다.
"아아앙!"
한 입으로는 5분의 1도 머금을 수 없는 커다란 가슴을 입에 물고 유두를 사탕 굴리듯 핥자 점차 커지고 단단해진 유두가 입 안 여기저기에 닿았다.
"으응, 히잉...! 오, 오빠아..."
내부로 침입해 얕은 질벽 여기저기를 매만지는 손끝을 부드럽고 매끄러운 살이 요동치며 꼭 죄여온다.
가슴을 입에서 빼지 않은 채 눈으로만 웃은 나는 손가락을 빼고 자지를 수평으로 눕혀 그녀의 허벅지 사이에 찔러넣었다.
"하아, 하아아...!"
숨을 거칠게 내쉰 묘란은 거의 발톱 끝으로 서고 두 팔을 내 목에 휘감았다. 삽입을 용이하게 만들기 위한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햐아앙, 우응, 아앗..! 오빠아, 빨리...!"
단단한 자지를 허벅지에 끼운 채 문지르기만하자 그녀의 얼굴에 애달픔이 서렸다.
"츄르릅!"
"으하앙!"
그녀의 유두를 강하게 빨아들인 나는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잡고 한 번 뒤로 뺀 뒤, 각도를 맞춰 천천히 끌어당겼다.
"으아...아하앗...!"
수평으로 누웠던 자지가 귀두 끝에서부터 따듯하고 부드러운 살덩이에 감싸이며 정해진 길을 따라 나아가자 어느새 수직에 가까운 모양새로 고정되었다.
"아히익, 응호옥...!"
자궁이 밀어올려진 그녀의 입에서 묵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푸하...더 조여."
말하자마자 다시 가슴을 물고 커다란 가슴이 뭉개지도록 얼굴을 파묻은 나는 그녀의 허리와 엉덩이를 감싸고 느긋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이야하앙! 오하아앗...!"
그것만으로도 내부가 헤집어진 그녀가 까치발로 선 전신에 힘을 주며 바들바들 떨자 두꺼운 자지가 더욱 강하게 죄여진다.
"후우..."
가슴에 파묻은 얼굴, 엉덩이에 파묻힌 손가락.
그 부드럽고 탄력적이면서도 매끄러운 감촉에 불현듯 인지부조화와 갈증이 일었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감촉으로는, 손에서 느껴지는 감촉으로는 더한 쾌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으나 그럴 수 없다.
쾌감의 중심이 어디까지나 자지라는 게 안타까울 지경이다.
이 정도로는 한참 부족한 것이다.
유방과 엉덩이에 구멍이라도 뚫어 쑤시고 싶은 충동과 욕구가 들끓는다.
"으응...우후후, 오빠. 얼굴 무서워."
"항상 그렇잖아? 너를 상대할 때는."
이 요물 같으니라고.
유방을 더욱 깊숙히 삼킨 채 두 엉덩이를 움켜쥐고 강하게 허리를 휘두르자 순간적으로 그녀의 몸이 들썩거리며 떠올랐다.
"아햐아앗!?"
강한 충격을 받은 그녀의 입이 열리고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뒤집혔다.
"더 조여 이 년아. 손을 쉬지마."
"응하아...하우우, 하우으으...! 으응...!"
더욱 밀착한 그녀가 내 목덜미를 잘근잘근 씹고 등을 할퀴어댔다.
짜릿한 아픔이 올라왔지만, 그 아픔은 오히려 흥분을 더욱 부추기며 이성을 뒤흔들었다.
"후욱, 후욱...!"
빨고 있던 유방을 뱉고 가슴결을 따라 핥으며 목덜미까지 쓸어올리자 그녀의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난다.
"응으응그...!"
퍼억, 퍼억! 츄퍽츄퍽츄퍽!
온 힘을 다한 허리 놀림에 물기를 가득 머금은 음란한 충돌음이 건물을 가득 메웠다.
자지를 뿌리까지 빨아들였다가 놓치지 않겠다는 듯 꽉 붙잡은 채 밀려나오는 보짓살이 요동칠 때마다 묘란의 입에서는 커다란 교성이 터져나왔다.
"하으윽! 응호오옥..! 꺄흐아아앙!"
까치발로 선 그녀는 한껏 힘이 들어간 허벅지을 바깥으로 돌린 채 고간을 내밀며 자지를 받아들이려 했으나 아무래도 부족했던지 결국 다리를 들어 내 허리에 얽어오려했다.
"안 돼. 그 자세 그대로 해."
"어, 어째서어어...보, 보지 부족하단 말이야아앙...!"
"넌 내 오나홀이니까. 지금은 그 자세가 꼴리거든."
"하응, 허윽...제, 제바아알...!"
간절한 말을 무시하고 헤벌죽 풀어진 얼굴을 보며 입술로 입술을 비집어 열어젖힌 나는 내밀어진 혀를 펠라하듯 빨아올리며 자지를 밀어붙었다.
"하급, 츄릅, 응호옥! 헤그윽!"
"더 조여!"
한층 더 강하게 박아올리며 후장에 손가락을 집어넣자 그녀의 하반신에 바짝 힘이 들어간다.
"거, 거기이이인...!"
"시끄러, 잔말 말고 혀 빨아."
"응뷰우웁, 츄르릅! 에베에읍..!"
추잡한 소리가 울려퍼져도 개의치 않고 혀를 얽은 나는 그녀의 질내를 마구 휘저으며 항문을 활짝 벌렸다.
그러자 그녀는 까치발을 파들파들 떨며 눈을 뒤집었다.
"윽...!"
"흐그아아앙! 아그으으읏!"
엄청난 조임에 부지불식간에 사정하고 말았다.
"하악, 하아아악...!"
서로의 가랑이를 맞댄 채 문지르길 몇 분. 온 힘을 다한 사정이 멎자 나는 그제야 멎었던 숨을 내쉬며 자지를 빼냈다.
"후우...자, 마무리 해."
그녀를 쭈그려 앉히고 얼굴에 자지를 올리자 그녀는 흐리멍텅한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멍하니 있으면서도 조건 반사적으로 자지를 입에 물었다.
"응..쮸릅, 쮸르르릅, 쮸으읍...!"
"우앗...!"
갓 사정한 귀두를 까끌까끌한 혀가 핥아대고 강력한 흡입력으로 빨아들이자 요도에 남아있던 정액이 강제로 빨려들어간다.
그 상태로 다시 몇 분을 멍하니 있었다.
"휴우...이제 갈까."
"...응."
짧게 대답한 그녀는 주섬주섬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내 옷매무새까지 정리해주더니 일명 공주님 안기 식으로 나를 번쩍 들어올려 뭐라 할 새도 없이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비명조차 새나오지 않았다.
내 무게가 더해졌음에도 사뿐히 착지한 그녀는 그 다음엔 어떻게 할 것이냐는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본다.
"끄아아아아아아!"
"흐그으으으으!?"
"사, 살려 줘! 살려 줘어어어어어!!"
정원의 풍경을 보진 않았지만, 울려퍼지는 비명과 함성으로 이미 지옥도가 펼쳐졌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다, 다음부턴 좀 말하고 행동해 줄래?"
"알겠어."
안 그래도 떨리는 손발을 한층 더 심하게 후들거리며 땅을 밟은 순간, 수많은 메시지가 귓가를 뒤덮었다.
[신적인 존재가 당신에게 압력을 가해 상태 이상 '공포'에 걸립니다.]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원한'스텟으로 상태 이상 '공포'에 저항하였습니다.]
[신적인 존재가 당신을 주시함으로써 상태 이상 '마비'에 걸립니다.]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원한 스텟으로 상태 이상 '마비'에 저항하였습니다.]
[신적인 존재가 당신을 향해 경고성을 발하여 상태 이상 '혼미', '혼돈', '공황'에 걸립니다.]
[인간의 경지를 초월한 '원한'스텟으로 상태 이상 '혼미', '혼돈', '공황'에 저항하였습니다.]
"...응? 뭐야?"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코끼리의 절반 정도 될 것 같은 거대한 짐승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백호...아니, 해태? 뭐지?"
일단 전체적인 생김새를 보면 고양잇과 같았으나 이마에는 거대하고 푸른 뿔이 당당하게 치솟아 있었으며 눈동자를 비롯한 눈매와 눈썹까지 푸른 불길에 맹렬히 휩싸여 있었고 짙은 구름처럼 새하얀 갈기를 풍성하게 두르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꼬리는 거대한 뱀이었고 거죽은 비늘을 바늘 형태로 갈아 꽂아놓은 것처럼 매우 날카로운 털인지 뭔지가 반짝이고 있었으며 겨드랑이 아래에는 비단을 접어 만들어낸 듯한 앙증맞은 날개가 돋아 있다.
"어, 음...."
전체적으로 이것저것 섞어 놓은 것 같은 해괴한 짐승이었다.
문제는 녀석이 풍기는 분위기가 지나치게 묵직하고 성스럽다는 것이겠지. 저렇게나 뒤죽박죽인 형태를 하고 있는데도 두려움보다 경외심이 든다니 신비로울 지경이다.
"아, 아으윽...!"
그때, 그 짐승의 곁에서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사람들처럼 비명을 지르거나 날뛰지도 않고 나를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와우. 역시 성녀인가. 그 저주를 어느 정도 약화시켰나봐?"
"다, 당신...! 당장 이 저주를 풀지 않으면...!"
"그러고보니 성녀는 신수를 다룬다고 했었지. 이게 그 신수인가?"
이죽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순간, 짐승의 바늘 같은 털이 일제히 솟구쳤다.
"크르르르...!"
"워후, 무서워라. 주인을 확실히 지키려 하는군. 아주 충성심이 깊어."
"처, 천호는...명령하면 몇 번, 몇십 번이라도 당신을 쫓아가 죽일 거야. 그 꼴 나기 싫으면 당장 이 저주 풀어...!"
주저앉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음에도 클라라의 눈은 예리하게 벼려져 있었다.
"천호? 이 짐승 이름이 천호야? 하늘의 호랑이라...하핫, 도저히 호랑이처럼은 안 보이는데. 그것보다 너 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 저주는 어떻게 하게?"
빙글거리며 비웃자 그녀의 입가가 바르르 치켜올라간다.
"이, 이까짓 저주...! 내 신성력만 회복되면...!"
"아, 그럼 지금은 신성력을 전부 소모했다는 소리구나? 후후, 그럼 지금 저주를 퍼부으면 정신 못 차리겠네?"
"뭐...!?"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감정을 끌어올리자 그녀의 낯빛이 새파랗게 질린다.
그 표정을 즐기며 저주를 걸려던 찰나, 한 가지 좋은 생각이 반짝였다.
"음...잠깐, 그게 되려나?"
실현될 지 알 수 없었기에 고민했으나 이내 가볍게 털어버렸다.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면 할 수 없는 거니까.
"신성력을 봉인하겠다."
약 8할 정도로 끌어올린 감정으로 저주를 내뱉은 직후, 시야가 한층 낮아졌다.
"어...?"
고개를 내리니 두 다리가 말 그대로 터져나가 있었고 골반 또한 정체불명의 작용으로 인해 산산조각 으깨져있었다.
"끄아아악...!?"
"오빠!?"
지독한 통증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자니 등 뒤에서부터 껴안아온 부드러운 감촉이 내 상처를 향해 엘릭서를 콸콸 쏟아낸다.
"으, 끄으윽...!"
상처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회복되어 터져나갔던 두 다리가 순식간에 멀쩡해졌다. 역시 엘릭서, 비싼 값은 톡톡히 하는군.
"후우...!"
식은땀이 뻘뻘 흘렀지만 나는 씨익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어때? 성녀님. 신성력은 회복되고 있나?"
"....!"
내 말에 잠시 허공을 바라보던 클라라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상태창이라도 확인한 거겠지. 보아하니 신성력이 회복되지 않는 모양이로군.
설마 이게 될 줄은 몰랐는데...신성력은 물리적인 게 아니라 통한 건가? 저주의 쓰임새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겠군. 젠장, 과제가 쌓이는 기분인데.
"자, 이제 어쩔래? 너는 저주에 걸렸고 신성력이 회복되지도 않아. 네가 데려온 성기사들도 정신을 못 차리고 벌벌 떨고만 있어. 남은 건 천호 뿐인가?"
"큭...!"
"솔직히 나도 내가 이렇게나 강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하핫. 나 완전 사기캐네?"
내 힘을 체감하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그 동안 강해지기 위해 발악했던 게 바보같이 느껴진다.
"자, 그럼 마무리로 이 녀석에게도 저주를 걸어볼까?"
"아, 안 돼...!"
내 손가락이 천호를 가리키자 클라라의 두 눈이 질끈 감겼다.
"그래도 신수니 나름대로 전력을 다해야겠지?"
9할의 감정을 끌어올린 나는 신수를 향해 고했다.
"공포에 미쳐 날뛰어라."
재생되었던 다리가 다시 고통을 호소하는 것과 동시에 온 몸의 살이 터져나갔다.
익숙해질 만도 하건만, 나는 마치 태어나서 처음 고통을 맛보는 것처럼 생경한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빌어먹을...더럽게 아프네..!"
[신적인 존재가 당신의 저주를 뿌리쳤습니다.]
"...뭐?"
순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고통도 잊고 멍하니 천호를 바라봤다.
"크아아아아!!"
너무나 멀쩡한 기색으로 달려든 천호는 그 거대한 앞발로 나를 내리눌렀다.
잔상이 보일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기에 반응이고 뭐고가 아예 불가능했다.
"크헉!?"
"꺄아악!"
안 그래도 숨이 턱 막힌 상태인데 나를 끌어안고 있던 묘란의 비명까지 귀청을 쩌렁쩌렁 울리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무, 무슨...!"
말도 안 돼. 저주가 통하지 않는단 말야? 그럼 이 괴물을 어쩌라고!
"크, 크흐흐...천호를 너무 얕본 모양이네..빠, 빨리 내게 걸린 저주를 풀어. 안 그러면 정말로...네, 네 계약기간이 끝날 때까지 몇 번이고 죽이겠어...!"
공포와 광기로 물든 클라라의 웃는 얼굴을 본 나는 침을 뱉을 기세로 험악하게 마주 웃어주었다.
"저, 저주가 아직 약한가 봐...? 과연 네가...네 주변에서 뒹굴고 있는 녀석들과 같은 꼴이 돼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나 보자...!"
죽는 건 별 거 아니다.
고통스러운 건 싫지만 어차피 그것도 한순간인데다 나는 잃을 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내 저주는 조금 다르지.
지금 치킨 게임을 해보자는 거야? 누구 근성과 배짱이 더 큰가 겨뤄보자고? 이거 어쩌나. 내가 너무 유리한데.
"공포에 미쳐 날뛰...!"
"크롸아아앙!"
"커헉...!?"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시야가 홰까닥 돌아가고 전신에서 비롯된 끔찍한 골절음이 두개골을 쩌렁쩌렁 울렸다.
"크르르르르!"
천호가 앞발을 휘둘러 머리를 내리꽂은 모양이다.
방해받은 것보다도 온 몸을 헤집는 끔찍한 고통에 순간적으로 꼭지가 돌았다.
"이 빌어먹을 괭이 새끼가..!"
삐그덕삐그덕, 억지로 고개를 위로 향하니 거대한 발톱 사이로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자신의 주인을 건드린 것에 매우 화가난 듯, 이를 드러내 보이며 불타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크롸아아아아!"
마침내 그 흉성이 폭발해 앞발에 무게가 실리자 상체의 뼈가 버티질 못하고 그대로 무너져내렸다.
"끄...으으윽...!"
진짜 미친듯이 아파서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다.
"너...이 씨발...!"
점점 까맣게 물드는 시야. 나는 이를 아득바득 갈았다.
"내가...그냥 뒈질 것...같냐...!?"
최후의 의식을 필사적으로 쥐어짜낸 나는 스스로도 믿기지 않을 집중력으로 감정을 끌어올렸다.
[스텟 '원한'이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공포에...미쳐 날뛰어라...!"
"크르르르륵!"
클라라에게 저주를 건 것을 뒤늦게 알아챈 천호가 내 몸을 아예 곤죽으로 만들어버렸다.
"쿨럭...!"
완전히 검게 물든 시야와 깜박거리는 의식 속에서 천호를 향해 가까스로 스킬을 쥐어짜내 발동한 나는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