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화 〉25회
테리어는 날마다 내 밤시중을 들어줄 여자를 보내왔다.
당연히 레드 러브를 지참시킨 채 말이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데다 온 몸이 단련된 근육으로 꽉 들어찬 블란체(Blanche).
오자마자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들이밀며 항문을 어필했던 쉐리(Cherie).
조교당한 결과라며 어린 남자아이의 자지만한 유두와 클리토리스를 수줍게 내밀던 아이린(Eileen)까지.
그 외에도 기타등등 기타등등. 날마다 최소한 한 명 이상의 여자가 찾아왔고 하나같이 저주에 굴복해 나를 주인님이라 부르게 되었다.
"흠, 여자는 문제가 없는데 남자들이 문제란 말이지..."
"츄릅, 쮸르릅..! 푸핫. 주인님. 남자 취향은 없어?"
이 없는 잇몸으로 자지를 물고 있던 진주가 묻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의 입은 시간이 지나도 도통 잊혀지지가 않았기에 묘란과 같이 곁에 두고 오나홀로써 자주 써먹고 있었다.
"끔찍한 소리 하지마. 내가 뭐가 좋아서 남자랑 뒹구냐?"
"그야 금방 질리니까."
"질린다고...?"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자 그녀는 잘 익은 벼이삭 같은 머리칼을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 손으로는 기둥의 뿌리 부근을 꽉 쥔 채 위아래로 문지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고환을 부드럽게 주무르면서 말이다.
"알다시피 유저들은 전부 선남선녀인데다 이상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잖아?"
"그럼 좋은 거 아냐?"
"응. 처음엔 물론 좋지. 끔찍한 짓거리나 성격은 둘 째 치더라도 그런 사람들과 섹스할 수 있다는 건 커다란 즐거움이야. 하지만 말야. 몇 십 명만 경험해도 그런 소리는 쏙 들어갈 걸? 주인님도 지금은 나와의 섹스를 즐기지만, 아마 나중에는..."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은 그녀는 이내 밝게 웃으며 귀두를 핥았다.
"하여간, 내 감상을 말하자면 성격만 다른 복제인간을 상대하는 것 같았어."
"복제인간이라...잘 와닿지가 않는 걸."
"처음엔 다들 그래. 하나 같이 훤칠하고 잘 생긴데다 몸매 좋은 미남들...으윽,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토 쏠린다. 정말 질려."
"그 정도야?"
"그렇다니까. 그래서 유저에게 질린 대부분의 유저들은 엔피시에게로 시선을 돌리는데...지금까지 휘황찬란한 사람들하고만 섹스하던 인간이 평범하거나 못 생긴 외모의 엔피시들로 만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잘 생기고 예쁜 유저에게 질린 거라며? 그럼 오히려 못 생긴 엔피시가.."
"그거랑 취향이랑은 다른 거야. 질린 건 질린 거고 눈에 차지 않으면 즐겁지도 않고 기분 좋지도 않아."
"그, 그래?"
"응. 그래서 많은 유저들이 동성에게 눈을 돌려. 동성이긴 하지만 그들은 최소한 엄청나게 잘 생기고 예쁘니까. 아니면 몬스터나 신체 개조 같은 매니악한 취향에 눈뜨거나."
"......."
지금의 나로선 잘 상상이 가지 않는 이야기로군.
나도 나중에 닳고 닳으면 그렇게 되려나?
"이렇게 말하는 나도 한 때 수많은 여자들을 따먹고 다녔단 말씀."
"헤에, 그건 흥미로운 이야긴데."
내가 눈을 반짝이자 진주는 요염하게 키득거리며 묘란에게 관능적인 시선을 보냈다.
"남자끼리는 극혐하면서 여자끼리는 흥미진진한 거야? 후훗, 주인님이 원하면 당장 농밀한 레즈 섹스를 보여줄 수도 있어. 마침 이 언니는 내 취향이기도 하니까."
"나, 나는 아직 그 단계까진 안 갔어! 꿈도 꾸지 마!"
진주의 시선에 묘란은 팔에 돋는 닭살을 긁으며 내 뒤로 숨어들었다.
"어? 그래? 언니는 레벨 몇인데?"
"음...89."
"아하. 그렇구나. 애매한 레벨이네. 초보자라고 부르기도 뭐 하고 중수라 부르기는 한참 부족한...에이 뭐야. 기대했는데."
어깨를 으쓱인 진주가 잇몸으로 귀두를 콱콱 씹고 우물거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하여간, 그런 과정에서 동성에게조차 질리게 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저 강렬한 쾌락을 찾아 헤매게 돼. 예컨대 레드 러브처럼 말이지."
"그런가...으음, 나는 아직은 여자를 맛보는 것만 해도 벅찰 지경이야. 남자랑 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아."
아무리 테리어에게 빅 엿을 먹이고 싶다 해도 말이지.
"그래? 으음..."
"그러니까 진주야. 혹시 레드 러브에 중독된 남자 길드원들이 몇 명인지 알고 있어?"
"응? 거의 대부분은 알고 있지. 아니, 것보다 오히려 중독되지 않은 사람이 더 적을 걸."
"그렇단 말이지? 그럼 말야. 내 부탁 좀 들어줄 수 있어?"
"당연하지. 그냥 명령하기만 해. 뭐든지 할게. 지금은 레드 러브보다 강렬한 쾌락을 주는 오빠가 내 주인이니까. 아마 오빠를 거쳐 간 다른 여자들도 마찬가지일 걸?"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눈빛이 한없이 진지해서 무서울 지경이다.
"크크, 그렇단 말이지..."
손을 뻗어 그녀의 입술을 옆으로 벌리자 새빨간 혀와 이 없는 잇몸이 드러났다.
처음엔 조금 징그러웠는데 익숙해진 지금은 너무나 음란해 보인다.
사람의 인식이라는 게 참 신기하다니까.
"그럼 레드 러브에 중독된 남자들 위주로 소문을 흘려 줘. 내 스킬이 레드 러브를 뛰어넘는 쾌락을 주고 벌써 몇 명의 여자는 그 쾌락에 반해 주인을 바꿔 치웠다고 말이야. 아주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할 수 있겠어?"
"응. 그 정도야 아주 쉽지. 굳이 입으로 떠들 필요도 없어. 귓속말을 이용하면 먼 거리에서도 단 둘이 대화할 수 있으니 남자 쪽이 떠들고 다니지만 않으면 겉으로 드러날 일은 없을 거야."
"흠, 혹시 몰라서 묻는 건데 그 정도로 테리어에게 충성심 있는 놈이 있어?"
내 말에 진주는 히죽, 새빨갛고 부드러워 보이는 잇몸을 드러내며 웃었다.
"없어."
아주 단호한 목소리였다.
***
소문을 흘리는 계획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진주와 대화를 나눈 그 날 바로 한 남자가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 찾아온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저, 저기...안녕하세요? 저는 아벨(Abel)이라고 하는데요..."
자기 소개를 하며 천호, 천호를 쓰다듬고 있는 클라라, 그리고 내 곁에 있는 묘란과 진주를 쳐다 본 아벨이 마침내 내게 시선을 향하고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는 작은 신장에 탄탄하고 마른 몸, 갈색 머리칼에 순진해 보이는 초롱초롱하고 커다란 눈과 조각 같은 코를 가진 남자였는데, 강아지처럼 귀엽게 생긴데다 어째선지 여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호감이 생기는 인상이었다.
나는 진중한 태도로 짐짓 분위기를 잡으며 그를 맞이했다.
"무슨 일로 찾아왔지?"
"그게...커흠, 당신이 레드 러브보다 강한 쾌감을 주는 스킬을 가지고 있다 들어서..."
"물론 가지고 있지. 당장 네게 걸어줄 수도 있어."
"저, 정말요!? 부탁드려요! 원하신다면 몸이라도...!"
눈동자에 거침없는 열기를 품은 채 당장 장비를 벗으려 하는 아벨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그를 막았다.
쾌락이라는 게 정말 무섭구나.
아니, 고인물이 느끼는 정체감과 지루함이 무서운 건가? 뭐가 됐든.
"그만! 나는 그런 취향 없어!"
"네...? 그럼 어떤 조건이면 스킬을 써 주시나요?"
"......"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에 할 말을 잃었다.
돈이나 아이템 같은 건 떠올리지조차 못하는 거냐. 어지간하네..
"별 거 아냐. 지금 난 내 스킬을 대가로 내게 충성을 바칠 사람을 구하고 있거든."
"아하. 알겠어요. 테리어를 배신하고 한길 님 밑에서 충성을 다하면 되는 거죠? 아, 물론 당분간은 비밀이겠고요. 테리어에게 크게 한 방 먹일 기회가 필요하실 테니."
"...어어...응.."
주저하지 않고 배신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너무 익숙한 대응 아니냐.
대체 얼마나 닳고 닳은 거야?
"커흠, 만약 배신한다면 각오..."
"아하하, 그럼 그 저주라는 걸 달게 받을게요. 자, 어서 쾌락 스킬이나 써주세요."
"......"
너무 가벼운 거 아니냐. 무서울 지경인데.
"그, 그럼..."
그에게 저주를 걸고 그 대가로 한 번 죽은 뒤 부활하여 쾌감을 15배 정도 증폭시켜주자 아벨은 그 자리에서 무너져내리며 사정해버렸다.
"아흑..하으윽...!"
"......"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침과 눈물을 넘치도록 흘리며 바지를 적신 채 헐떡거린다. 못 볼 꼴을 본 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그를 서둘러 밖으로 내보냈다.
밖에는 내가 미리 대기시켜 둔 부하들...즉, 복종시킨 여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적당히 상대해 줘. 누가 할래?"
"저요! 저요!"
"제가 할게요! 제발!"
서로 경쟁적으로 손을 들어올리는 십여 명의 여자들이 내뿜는 기백이 무시무시했기에, 나는 대충 손에 잡히는 대로 쾌감을 증폭시켜준 뒤 손짓했다.
"너무 오래 하지는 말고. 뼈 삭는다."
"네, 네헤에...!"
"아흐으...!"
휘청거리며 아벨을 끌고 어딘가로 향하는 여자들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히죽, 웃어보였다.
그것을 시작으로 하루가 멀다하고 남자들이 찾아와 내게 저주를 요구했다.
그 와중에 소문을 접한 여자들까지 은밀하게 찾아왔기에, 킬유 길드의 길드원들은 빠르게 내 지배하에 들어오게 되었다.
***
"...아주 즐거운 모양이죠?"
"응?"
천호와 떨어지기만 하면 무감정하고 무표정하게 변하는 클라라의 가슴을 주물거리고 있는데, 느닷없이 찾아온 레아가 갑작스레 톡 쏘자 나는 멍하니 그녀를 쳐다봤다.
"...흥!"
며칠 동안 안 보인다 싶더니 갑자기 찾아와서 노려보는 모양새가 아주 사납다.
설마 사랑의 저주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건 아닌 것 같군.
잠시 지켜보니 그녀는 낯빛을 눈에 띄게 붉힌 채 거칠어지는 숨결을 필사적으로 억누르며 허벅지를 배배 꼬고 있었다.
나는 웃으며 그녀에게 손짓했다.
"부러워? 부러우면 너도 해줄게. 이리 와."
"무, 무슨...! 제가 왜 부러워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
목소리는 뾰족하고 퉁명스러운데 그녀의 몸은 어느새 내 곁으로 다가와 있었다.
"하하하. 자, 여기 앉아."
"......"
더욱 얼굴을 붉힌 그녀는 얌전히 내 옆에 앉았다.
클라라의 가슴을 주무르던 손을 그녀의 어깨에 두르자 숨결이 더욱 거칠어진다.
"후우...하아...."
마치 흥분한 고양이 같은 숨소리가 귀엽게 느껴진다.
"레아. 내가 이러는 게 싫어?"
"시, 싫...싫으...!"
당장 싫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자 당황하면서도 애절한 눈빛이 내 쪽으로 향했다. 그러더니 갑작스레 왈칵 눈물을 쏟아내는 것이 아닌가.
"어? 레아? 갑자기 왜 울어?"
"대, 대체 제게 무슨 짓을 하신 거예요..! 흑...! 잠도 편하게 못 잘 지경이라고요!"
"......"
"다, 당신 따윈 안중에도 없는데...정말인데...! 계속 떠올라요. 흑..! 당신의 얼굴을 떠올리면 몸이 달아올라서 미쳐버릴 것만 같다고요. 훌쩍, 게, 게다가...그리워요. 그립고 간절해서 미쳐버릴 것만 같아요...다, 당신이...나를 만져주길 바래요. 사랑한다 말해주길 바래요. 그런 내 자신이 당황스럽고 이상해서 미쳐버릴 것만 같아요!"
"호오..."
생각보다 사랑의 저주가 강력한 모양이다. 감정을 전력으로 끌어올린 것도 아니었는데...제길, 8할의 대가가 그 정도니 전력이었으면 어땠을지 상상도 안 간다.
감정을 원하는대로 조종할 수 있는 내 전력은 10할이 아니라 그 이상이니까.
"그래서?"
"그, 그래서라니...당신...사람을 이렇게 만들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건가요..?"
"아무렇지 않진 않아. 단지...레아, 레벨이 어떻게 돼?"
"네? 갑자기 무슨..."
"잔말 말고."
"...배, 백 오십 정도..."
"과연, 너도 드림아웃에 그렇게 오래 갇혀 있진 않았구나?"
"...일 년 하고도 육 개월 정도 됐어요."
"그렇군. 흠, 레아. 내가 그 저주를 풀어주길 바래?"
"...그, 그게.."
"어라? 바라지 않는 거야?"
당장 풀어달라 말할 줄 알았기에 살짝 놀랐다.
물론 풀어줄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 그럼...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은 어떻게 되는 거죠...?"
"그거야 모르지. 나도 그 저주는 너한테 처음 써보니까. 깔끔하게 사라질지도 모르고 그 영향이 남아 있을지도 몰라. 네가 원한다면 당장 풀어줄 수도 있는데?"
슬쩍 웃음을 머금고 바라보자 그녀는 심각하게 고뇌하더니 잘게 떨며 고개를 내저었다.
"...시, 싫어요.."
"호오? 왜?"
"무, 무서우니까요..! 믿을 수 없지만...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된 자신을 상상할 수 없어요!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 생각하면...무서워요. 흑...!"
"......"
생각보다 강력하네. 사랑의 저주. 솔직히 깜짝 놀랐다.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그래? 으음...미안하지만 난 너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진 않아."
"....!"
커다란 충격을 받은 듯 레아의 두 눈이 부릅 떠지고 입이 쩍 벌어졌다.
"하지만 말이야..."
슬쩍 어깨에 두른 손을 내려 가슴께를 간질이자 그녀는 충격을 받은 와중에도 몸을 움찔 튕기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하으으...!"
"네가 내 오나홀이 되겠다면 기쁘게 받아줄게. 어때?"
"그, 그런...그럴 수가...! 당신, 그러고도 사람이에요..?"
"물론 이래 봬도 사람이지. 나도 몰랐는데 나는 상당히 사디스트인 모양이야. 지배하는 게 좋고 망가지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워."
"흑...!"
"어차피 거부할 수도 없잖아? 안 그래?"
클라라의 엉덩이를 툭툭 두들겨 가도 된다는 사인을 보낸 나는 클라라가 떨어지자마자 레아를 눕히고 그녀의 위에 올라탔다.
새하얀 목덜미를 드러내며 이를 드러낸 그녀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경멸스럽다는 듯 나를 노려봤다.
"아, 악마! 어떻게 사람 마음을...!"
"지금 거부하면 난 너를 평생 안지 않겠어."
"....흑, 흐으윽...! 흐아아아앙...!"
마침내 얼굴을 가린 채 통곡하기 시작하는 레아의 옷을 천천히 벗겨 낸 나는, 그녀의 하얗고 늘씬한 몸을 독사처럼 탐하며 천천히 음미했다.
발정의 저주와 사랑의 저주에 걸린 레아는 결국 이 날, 내게 굴복하고 오나홀이 되겠다고 맹세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