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99회
"자, 잠깐. 실험체? 인공적인 각성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 그럼 게임의 스킬을 현실에서도 쓸 수 있다는 말이야?"
"뭐어? 아하하! 한길이 너 상상력이 풍부하구나?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아, 근데 조금 비슷하긴 해."
"......"
"천천히 설명해줄게. 으음,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하려나..."
이어진 그녀의 이야기는 믿기 힘들 정도로 비현실적인 요소들의 향연이었다.
가상현실게임...아니, 더 정확히는 사람의 인체에 마석을 생성시키는 매커니즘은 본래 몬스터의 몸에 마석이 생성되는 원리와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인공적인 각성은 거기에서부터 비롯됐다.
과정이 같다면 결과도 같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을, 몬스터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혹은 몬스터와 같은 능력을 지니게 할 수 있지 않을까?
마나와 마석이라는 비현실적이고 정체불명인 에너지를 이용해서.
마침 실험체는 넘쳐흘렀다. 책임질 필요도 없고 윤리관이나 도덕관을 심하게 훼손하지도 않는다. 때마침, 정부에서도 관심을 보이며 설비와 자금을 마련해줬다.
연구자의 이론과 가설을 검증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 놓칠 리가 없다.
물론 이런 인체 실험이 이뤄지고 있다는 건 비밀이긴 하다.
여론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타국의 견제를 받을까봐.
애당초 타국에서도 이것과 비슷한 실험을 하고 있기에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하하."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그 중에서도 가장 각광 받는 실험체는 드림아웃의 고인물들이라 한다.
두뇌를 가장 활발하게 움직여 온갖 고난을 헤쳐나오고 위대한 업적을 이루며 성취감을 느낀 인간들은 마석 또한 활발하게 성장한다. 최상의 실험체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의 고인물들은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실험체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나는 그 중에서도 가장 소중하게 다뤄지고 있는 실험체야. 그들의 말에 따르면 불완전하고 다루기 힘들긴 해도 독보적이고 유일하다네. 그래서 현실에서도 이것저것 실험을 당했지. 마음 같아선 모조리 쳐죽이고 싶었는데...아하하, 몸에 이상한 칩이 박혀있어서 명령을 거부할 수가 없더라고."
"...그래."
인공적인 각성자를 만드는 위험한 일을 하는데 그 위험에 대비하지도 않을 리 없다.
"그럼 네가 말했던 그 이레귤러들로만 이뤄진 길드는..."
"연구자들이야. 그것 또한 실험이지. 초보자들을 데려다가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성장하도록 버스를 태워주며 경과를 지켜보는 거야."
"......"
"...후후훗."
담담하던 그녀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별안간 묘한 기색으로 웃는다.
"왜?"
"아쉽네 한길아. 우린 어쩌면 같은 연구실의 실험체가 될수도 있었는데...넌 정말 운이 좋구나?"
"...뭐?"
스산한 냉기가 목덜미에 내려앉았다.
"그게...무슨 말이야?"
"최근에 말이야. 연구원 놈들이 엄청 흥분했던 일이 있었어. 전무후무한 실험체를 찾았다나? 그 실험체는 일반인이었는데 드림아웃을 하며 머리에 마석이 생겼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각성까지 해버렸데. 보통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어떻게 그런 일이 생겼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머리에 마석이 생성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면서, 만약 네 몸을 조사해볼 수만 있다면 연구에 커다란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거라며 방방 뛰었었지."
"......."
"너도 알겠지만, 그 사람을 연구소로 가져오는 건 실패해버렸어. 각성 능력을 이용해서 일반인들을 수족처럼 다뤄 중국으로 도망쳐버렸거든."
"......"
"참고로 말하는 거지만, 녀석들은 아직 그 사람을 포기하지 않았어. 정부 또한 중국쪽에 그 사람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네."
"...하하."
"이제 네 처지를 알겠어? 한길아. 너는 싸워야만 해. 그 과정에서 나를 구해주면 더 좋고. 백마 탄 왕자님처럼 말이야. 그리고 그게 내가 널 찾아온 이유야."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에는 광기와 체념, 절망과 작은 희망이 뒤죽박죽으로 얽혀 있어 직시하기가 힘들었다.
"...쉬운 일이지."
"어? 뭐라고?"
"쉽다고. 그 녀석들을 쳐죽이는 것쯤은 말이야."
까드득, 나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난 네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해. 훨씬, 훨씬."
"글쎄. 설령 그렇다해도 힘들걸? 벌써 그 연구로 만들어진 실험체들이 사회에 비밀리에 퍼져 있어. 내가 알기로 S급 두명과 A급 수십 명이 헌터로 눈부시게 활약하고 있지. 참고로 말하자면 이건 '성과'가 아니라 '경과'야. 감당할 수 있겠어?"
"S급이라..."
이야기는 많이 들었고 모습도 많이 봤다. 허구헌 날 방송에 출연하니까.
"...우리나라에는 S급 헌터가 다섯 명 있었지. 그 중 누구야?"
"그건 나도 몰라. 내게 들려오는 정보는 단편적이거든. 그것도 내게 알려준 정보가 아니라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수집한 정보들이야."
마리링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S급. 그들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두렵지는 않았다.
"재밌네."
씨익, 웃자 마리링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자신감이 너무 지나친 거 아냐?"
"그럴 수도 있지. 난 아직 S급을 만난 적이 없으니까. 그러니 부딪혀봐야 하는 것 아니겠어? 으음...좋아. 마리링. 네 제안을 받아들일게. 동맹을 맺자."
"정말!? 나를 구해줄 거야!?"
활짝 웃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피식 웃었다.
"아, 그런데 마리링. 혹시 네 게임 플레이가 모니터링 당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건 안심해도 좋아. 내가 지랄발광을 해가면서 그걸 거부했거든. 뭐, 방송을 시청하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지만...지금은 방송을 켜놓지 않았어."
"그렇군."
"아, 하지만 너무 신뢰하지는 마. 나는 그렇게 알고 있지만, 사실 이 대화도 전부 듣고 있을지도 몰라."
"...그렇군."
잠시 생각하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테스트라고 했던가? 연구원들이 만든 길드."
"응. 맞아."
"녀석들을 쳐부수는 건 아무래도 상관 없는 거지? 네 진짜 목적은 놈들을 혼내주는 게 아니라 탈출하는 거니까."
"맞아."
"좋아. 그럼 일단 놈들은 무시하고 당면한 문제부터 처리해야겠어. 내가 지금 바쁘거든. 신성교를 상대하느라."
"...내 얘기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왜 우선순위를 드림아웃에 둬?"
"하핫. 내겐 이것도 중요하거든. 뭐든지 최선을 다해 즐기자가 내 모토야."
"......"
"구라지만."
"...장난치지 마."
순간 그녀의 눈빛에 화산과 같이 폭발적인 살기가 어렸다.
화들짝 놀란 나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녀가 이성을 잃으면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장난 아니야. 진짜 중요해. 내 각성 능력과 관련된 일이기도 하거든. 게다가 적어도 나는 위험을 피했으니 서두를 필요가 없잖아? 뭔가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이것저것 다 제치고 널 도와줄 정도는 아니란 말이지. 여기서 급한 건 너 뿐이야."
"...내가 줄 수 있는 건 뭐든지 줄게."
"뭘 줄 수 있는데?"
"...전부다."
"그래? 흐음..."
잠시 생각하다가, 인상을 찌푸렸다.
"안 돼. 그래도 역시 이쪽을 우선해야겠어."
"...어째서."
"신경쓰여서 네 일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거든. 그러니까 너는 일단 정보나 넘겨."
"무슨 정보?"
"현실에서의 네 위치, 그리고 상태...내가 널 구해주는데 도움이 될 그런 것들."
"......"
"그런 표정 짓지마. 빠르게 마무리하고 구해주러 갈게. 당장 네가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만. 너무 자신감이 넘쳐서 오히려 믿음이 안 가네. 어떻게 그렇게 확실하게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 말 심각하게 들은 거 맞아?"
"말했잖아. 내가 좀 쎄다고. 그러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뭐, 네가 예쁜짓 많이 하면 당장 박차고 나갈 수도 있겠지만."
마리링의 눈이 째릿, 나를 노려본다.
알기쉬운 표정을 지으니 귀엽고 얼마나 좋아?
"후우..."
그나저나 당분간은 바빠지겠군.
신성교를 빠르게 처리할 방법을 생각하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솔직히 조금 귀찮아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방금 그 얘기를 아리가 전부 들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영특한 녀석이니 현실에서 알아서 조치를 취해놓겠지.
***
"아하핫! 빨리! 더 빨리!"
"자, 잠깐...! 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데? 말이라도 좀 해달라고!"
현재 나는 마리링의 손에 이끌려 히스마우의 번화가를 내달리고 있었다.
그 뒤로 묘란, 클라라, 샤미엘, 카론, 에필리아가 줄줄이 뒤따른다.
멋들어지게 웃는 모습을 보니 아까까지 했던 대화의 심각함이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정말 종잡을 수 없는 여자군.
"도움을 주려는 거야! 그래야 현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아하핫! 보아하니 넌 신도들을 모으고 있는 것 같던데? 그렇지?"
"그, 그렇긴 한데...! 쿨럭! 커헉!"
압도적인 신체능력에 끌려다니는 게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그런 나를 보고 마리링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응? 뭐야. 몸은 의외로 약하네?"
"나, 나...레벨 1이거든..? 하악, 하악!"
"뭐!? 아하하하! 재밌어! 레벨 1이 나보다 강하다고!?"
"너보다 강한 건가...?"
아까의 힘겨루기는 승부가 났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그녀가 나를 더 강하다고 말하니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자! 여기쯤에서 하자!"
히스마우 번화가의 광장.
사람들로 발 디딜 틈도 없으나 어딘가에서 잔잔한 음악이 연주되는 그곳 중앙에 당당하게 선 마리링은 나를 돌아보며 해바라기처럼 활짝 웃어보였다.
대체 뭘 하자는 건지...
"아, 잠깐. 일단 방송부터 켜고..."
"방송 켜는거야?"
"응? 그거야 당연하지! 그래야 흥이 오르잖아!"
허공을 조작한 그녀는 방긋 웃으며 활짝 편 두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마리링입니다! 오늘 게스트 있다고는 미리 말씀드렸죠? 짜잔! 요즘 핫한 그 남자! 찐마왕 박한길입니다!"
"우왓!?"
갑작스레 손목이 당겨졌기에 그녀의 얼굴과 바짝 붙고 말았다.
"아하핫. 여러분. 조금 진정하세요! 자! 한길아. 인사해!"
"...방송 화면이 안 보이잖아."
"아참! 미안미안!"
그녀가 급하게 방송 화면을 가시화시키자 우리 얼굴이 나오는 네모난 창과 미칠듯이 밀려 올라가는 채팅창이 보인다.
방금 켰음에도 시청자가 3만 명이 넘는다. 역시 다르긴 다르구나.
"어...안녕하세요. 박한길입니다."
-방가방가!
-방송 좀 켜! 제발!
-찐마왕을 여기서 보네 ㅋㅋㅋ
-진짜 많이 컸다.
"아하핫! 우리 한길이가 엄청 굳었네요! 하긴 이런 대기업에는 처음 출현해보는 걸테니!"
콧대를 높이며 어깨를 펴는 그녀의 행동에 채팅창이 웃음으로 도배된다.
-ㅋㅋㅋㅋ아
-팩트라 꼴받네 ㅋㅋㅋㅋ
-근데 엄청 친한 척하네?
-그러게. 게스트한테 반말하는 거 처음 봄.
"흐흐흐...사실 저랑 그렇고 그런 일이 있었거든요. 영혼의 교감? 같은 걸 좀 했어요."
-교..교...교미?
-ㅗㅜㅑㅗㅜㅑ
-이거 진짜 한 것 같은데?
-그 희귀하다던 마리링의 섹스...! 꿀꺽...!
-그걸 왜 방송 안하냐고!?
-ㄹㅇ루다가 마리링이 하는 거 본 적 없는데....한 적은 있음?
-몇 번 있긴 함. 그때 몇 발을 뺐는지 모르겠다 ㅋㅋㅋ
-마리링 섹스 영상 소장 안 하고 있는 흑우 없제?
"아이 참. 여러분 그런 거 아니에요~"
이러쿵저러쿵.
너무 즐겁게 대화하고 있어서 끼어들기도 애매했기에 나는 멀뚱히 방송 화면을 바라보며 옆에 있는 묘란의 가슴을 주물거렸다.
-옆에 시선강탈 오지는데? ㅋㅋㅋㅋ
-야 마왕님 심심하신가보다! 좀 챙겨드려라!
-가슴 존나 크네 ㄹㅇ ㅋㅋㅋㅋㅋ
-저게 가슴이냐 농구공이냐?
그 채팅을 보고서야 정신을 차린 마리링이 휘릭,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차! 까먹고 있었네. 한길아 이리와!"
"응? 어어...어?"
"아이 참! 가슴 그만 만지고! 아니면 내 거 만지던가!"
내 손을 끌어 자신의 등허리를 휘감도록 한 그녀가 활짝 웃으며 자신의 가슴에 내 손을 얹는다. 거부할 이유도 없거니와 그런 걸 생각하기도 전에 손을 움직여 주물럭거렸다.
부드럽고 탄력적인 감촉. 속옷을 입지 않았는지 유두가 곧바로 만져졌다.
-ㅗㅜㅑ. 오늘 방송 자극적이네?
-마리링이 남자 손 허락하는 거 ㄹㅇ루다가 첨 봄;
-오늘 방송 낯설다...
-그 와중에 마왕님 손놀림 음탕한 거 보소 ㅋㅋㅋ
"에헤헤...어때?"
"응? 으음...좋은 젖탱이네. 특히 한 손에 안 잡힐 정도로 풍만하다는 게 높은 점수야. 젖꼭지도 쫄깃쫄깃한 게 좋네."
-ㅋㅋㅋㅋ마왕님 어휘 선택 실화?
-여자가 장난감이야!? 어!?
-상남자 보소 ㅋㅋㅋㅋㅋ
"그래? 아하핫. 네가 좋다면 괜찮겠지! 아, 하여간, 지금부터 노래하겠습니다!"
-갑자기?
-또 또 저런다 ㅋㅋㅋㅋ
-급발진 언제 봐도 적응 안 되네 ㅋㅋㅋㅋ
마리링은 정말로 갑작스레 노래하기 시작했다. 내게 가슴을 주물러지면서 말이다.
"...윽...!?"
동시에 새빨간 기운이 몰려와 뇌리를 잠식한다.
즐거움, 기쁨, 고양감, 흥분...과 비슷한 광기.
순식간에 시야가 어지러워지고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마왕님은 과연 참을 수 있을까?
-그래도 마왕인데 버티지 않을까?
-ㅋㅋㅋ지금까지 버티는 사람 못 봐서 버티는 모습이 상상이 안 감.
흐릿한 시야로 스쳐지나가는 채팅창을 보며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그 플래시 몹, 미리 준비한 게 아니었구나.
[스킬 '광기열락(狂氣悅樂)'에 정신이 잠식당합니다.]
[스텟 '원한' 과 스킬 '아리'에 의해 스킬 '광기열락(狂氣悅樂)'에 저항합니다.]
"후우...!"
알림음이 나오자 그제야 정신이 맑아진다.
-어? 정신 차렸는데?
-ㄹㅇ로? 개쩌네;
-마왕니뮤ㅠㅠ 지구뿌셔 젖탱이 뿌셔ㅠㅠ
-와 진짜 버티네. 버티는 거 첨 봄.
"아ㅡ! 아아아ㅡ!"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우리를 둘러싼 모든 사람들이 마리링의 노래에 맞춰 노래하며 춤추고 있었다. 광기에 찬 그 눈들을 보니 살짝 주눅이 든다.
"...응?"
문득 돌아보니 묘란을 비롯한 일행들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마리링을 따라 노래부르거나 춤추고 있었다.
"......"
난리도 아니다. 어느새 주변에 노래하지 않고 춤추지 않는 인간은 나밖에 없었다.
소외감이 느껴질 지경이다.
"아, 아니...이거 어떡하지? 야! 마리링! 여기서 나보고 뭘 하라고!?"
"아아아아ㅡ! 아아ㅡ!"
그녀의 가슴을 꽉 움켜쥐며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할 정신이 없어보였다.
-우왕좌왕 개꿈잼 ㅋㅋㅋㅋ
-근데 내가 저 상황이면 무서워서 지릴듯;
-난 이미 기절함 ㅋㅋㅋㅋ
-내가 저 상황이면 무서워서 정신 놓고 같이 노래부를 거임.
"아니, 하...이거 뭐 어쩌라는..."
찌이익!
그때, 마리링이 자신의 옷을 찢어발겼다.
-시작됐다!
-언냐 오늘도 예쁜 몸이에요!
-더 찢어라! 더 찢어라!
폭발하는 채팅창을 보며 나는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제정신인 사람이 나밖에 없는 것 같아서 정신이 아득해진다.
-쉬이이익...!
그때, 왼팔의 뱀문신이 불길하게 빛나더니 작은 모습의 아리가 튀어나와 혀를 낼름거렸다.
"어? 아리? 갑자기 왜 나왔어?"
[스킬 '아리'가 스킬 '악신의 축복'을 사용하길 바랍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
"어? 뭐? 갑자기?"
-쉬리리릭, 쉬리익...!
영문을 모르겠다는 내 시선에 아리는 마치 자신을 믿으라는 듯 눈웃음을 그리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뭘 하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야지."
아리가 내게 해가 될 일을 할 리가 없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감정을 끌어올려 원념의 파동을 일으켰다.
아리를 통해 증폭된 원념의 파동은 광장에 있던 수백, 어쩌면 수천명 단위의 인간들에게 균일하게 주입되었다.
다음 순간.
[스탯 '악신성(惡神聖)'이 일정 경지에 올라 스킬이 생성됩니다!]
"...어?"
나는 깜짝 놀라 입을 쩍 벌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