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106회
그녀를 마주하고 느낀 첫인상은 '보석'이었다.
새벽녘 별하늘 풍경처럼 푸르스름한 머리칼은 등허리까지 내려와 풍성하게 찰랑거렸고 새하얀 피부는 빛을 반사할 정도로 반짝거렸으며 크고 동그란 눈동자는 그녀의 각오를 나타내듯 반짝이고 있었다. 작달막한 신장을 가져 끌어안으면 품 안에 쏙 들어올 것 같았으나 그 짜리몽땅함을 무마하기라도 하려는 듯 풍만한 흉부와 두툼한 골반이 몸매의 굴곡을 더욱 가파르게 만든다.
노출이 비교적 적은 드레스를 입고 있음에도 그러한 몸매가 드러날 지경이니 벗으면 얼마나 대단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이상할 정도로 커다란 반지가 어울리지 않아 조금 거슬리긴 하지만...굳이 단점을 찾을 수가 없는 여자였다.
"흐음...그러니까 네가 이 나라의 황녀라고?"
카론의 허벅지 위에 앉아 풍만한 유방에 뒷머리를 기대며 물어보자 맞은편에 경직된 자세로 앉아 있던 여자가 주먹을 꼭 그러쥐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절도 있고 우아한 동작에 기품 있는 몸가짐이 과연 황녀라고 할 만했다.
"그렇습니다. 라바크 제국의 첫 번째 황녀, 아이리벨(Iribel)이라고 합니다."
"그래. 아이리벨...듣자하니 진격을 멈춰줬으면 좋겠다고?"
"아무런 대가 없이 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만한 '사례'를 하겠습니다."
"사례라...크크. 듣기 좋은 말을 해주잖아. 당연히 그 사례에는 너도 포함돼 있고?"
"그렇습니다."
그녀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데드 군단을 멈추기 위해 황녀를 바친다라...급하긴 급했나 보네? 게다가 힘의 격차도 잘 아는 것 같고...하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지금 사례를 받지 않아도 수도를 함락해버리면 어차피 전부 손 안에 들어오는데?"
"...순순히 당하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저희에겐 아직 제국군 100만과 신성교의 병력들이 50만 명 정도 있습니다. 게다가 신성교가 추가로 보내는 병력도 속속들이 추가되고 있고요. 마왕 님도 심각한 타격을 입는 건 바라지 않을 것입니다."
"어쭈. 협박하는 거야?"
"아뇨. 그저 저희 라바크 제국의 대응을 미리 알려드린 것 뿐입니다. 선택은 마왕님의 몫입니다."
"말은 번지르르 한데...뭐라 했더라? 제국군 100만에 신성교 50만? 크크. 그 정도는 나 혼자서도 전부 없앨 수 있는데 어떡하나?"
"...설령 그렇다해도 저희 라바크 제국은 끝까지 저항할 것입니다."
"푸하핫. 그 거짓말 진짜야? 언데드 병력을 뒤따르는 라바크 제국 귀족들의 병력들을 설마 못 봤다고 하진 않겠지? 대세를 읽은 놈들은 진작에 투항했어."
"......"
아이리벨의 입이 꾹 다물렸다.
"오히려 내가 제안하고 싶네. 너의 그 미모와 몸을 이용해 내 노리개가 되라고. 그럼 최소한 목숨은 부지할 수 있거든? 게다가 내 이쁨을 받으면 그에 걸맞는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지. 어때?"
"......"
"뭐, 거부하더라도 네게 선택권은 없지만 말야. 저기서 범해지고 있는 암캐들 보이지?"
마차 한 구석을 가리키자 그녀의 눈동자가 슬쩍 그쪽으로 향한다.
"응헤에에에엑...! 아히이이잇!?"
"카하앗....! 호오오오옥...!"
타락한 네 명의 성녀들이 에필리아의 끝없는 성욕에 농락당하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거근이 음부를 한껏 벌리고 빠르게 속살을 문지르며 끝없이 정액을 뿜어내는 광경에 그녀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린다.
"제국의 황녀 정도 되면 얼굴은 알려나? 신성교의 성녀였던 여자들이야. 지금은 그저 성욕 배출용의 정액 닦이지. 그 고결한 성녀도 저렇게 타락했어. 네가 버틸 수 있을까?"
"윽...!"
커다란 눈동자와 붉고 도톰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제발...부탁드립니다. 라바크 제국을...구원해주세요."
"구원해달라...크크. 아까부터 반역자에게 할만한 말이 아니구만."
대놓고 비웃자 순간 아이리벨의 눈동자가 촉촉해지나 싶었으나 그녀는 굳세게 입술을 앙다물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기특하기도 해라.
"클라라. 이리와."
"네. 오빠."
가까이 다가온 그녀를 무릎 꿇리고 카론의 탄탄한 몸에 거의 눕듯 기댄 채 엉덩이를 내밀었다. 그러자 클라라는 헌신적으로 내 항문을 핥아대기 시작한다.
"후우...좋군. 아, 참고로 클라라도 성녀였어. 알고 있으려나?"
자지가 강철 기둥처럼 우뚝 서며 울퉁불퉁한 핏줄을 과시하자 내 여자들이 다가와 혀를 날름거렸다.
묘란과 클라라는 자지 구석구석을 쓸어올리다 혀가 마주치면 그대로 서로의 입 안을 맛보다 다시 자지를 핥기를 반복했고 샤미엘과 론스터는 불알과 가랑이 깊은 곳을 물고 빨기에 여념이 없었다.
"미쉘."
내 부름에 목덜미의 날개 문신에서 빛이 솟아오르더니 새까만 요정이 포르르 날아들었다.
"불렀어? 주인."
"그래. 입이 심심하네."
"윽...또?"
"자."
입을 쩍 벌리자 그녀는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술을 짚고 입 안으로 하체를 담궜다.
달콤한 맛이 부드럽게 퍼져나가자 만족스러운 미소가 그려진다.
"...윽..!"
음란하고 천박한 장면을 마주한 아이리벨은 두려움과 혐오스러움이 뒤섞인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부들부들 떨었다.
"크크크...나는 진군을 멈출 생각이 없어. 라바크 제국은 반드시 멸망할 것이고 나는 이 땅의 주인이 될 거야. 자, 어쩔래? 어떤 선택을 할래?"
"하앙, 하우읍."
"츄릅, 츄르르릅...!"
"우물우물..."
"핥짝, 핥짝..."
내 질문과 음란한 소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리벨을 압박했다.
"흐윽...라바크 제국은...이대로라면 정말로 끝나버리는 것이군요."
마침내 현실을 받아들인 그녀는 흐느낌과도 같은 신음을 흘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그래. 그러니까..."
"푸후훗...아하하하핫!"
"엉?"
"연기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네요."
이 여자가 갑자기 미쳤나?
"유감스럽지만 마왕이여. 그렇게 둘 수는 없습니다. 이 한 몸을 불사르더라도...!"
"응?"
다음 순간, 아이리벨이 끼고 있던 반지에서 눈부신 빛이 터져나왔다.
그녀와는 도통 어울리지 않아서 계속 거슬리던 그 반지다.
"스스로의 어리석음과 자만과 방심을 원망하도록 하세요!"
"뭐, 뭐야!?"
반사적으로 감정을 끌어올려 일으킨 원념의 파동을 조종해 서둘러 반지를 뺏으려 했지만, 아이리벨은 결연한 표정으로 반지를 감싸고 몸을 웅크렸다.
그 사이, 터져나온 빛줄기가 허공에 멈춰섰다.
"어...?"
정체 불명의 길쭉한 발광체가 마차 내부를 가득 채운 상태. 영문을 알 수 없어 멀뚱히 두 눈을 깜빡였다.
곧 그 빛줄기들은 터져나온 궤적을 따라 소용돌이치듯 되돌아가기 시작했는데 단순히 되돌아가는 게 아니라 허공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끌어모으듯 맹렬하게 진동하며 묵직하고 긴박한 기류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러한 빛줄기들은 아이리벨의 반지를 향해 끊임없이 모여들고 있었다.
"자, 잠깐...! 이거 설마...!"
"오빠! 위험해!"
"주인님!"
위험을 감지한 여자들이 황급히 행동하려는 그 순간, 짐승 같은 손톱과 어금니를 드러낸 에필리아가 말릴 새도 없이 아이리벨에게 달려들더니 웅크리고 있는 그녀의 양 어깨를 잡고 그대로 뜯어내버렸다.
"꺄아아아악!?"
마차 내부가 순식간에 비명과 핏줄기로 가득 찬다.
"크르르르륵...!"
어떤 짐승인지 가늠할 수 없는 흉폭한 얼굴로 거칠게 목을 긁은 에필리아는 핏물이 줄줄 흐르는 아이리벨의 양 팔을 끌어안은 채 순식간에 마차문을 부수고 튀어나갔다.
"자...잠깐! 에필리아! 어딜 가는 거야! 멈춰!"
"크르르아아아!"
내 말에도 멈추지 않고 수직으로 십여 미터를 도약한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아이리벨의 두 팔을 내던졌고 그것들은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직후, 두 팔이 날아간 방향 저 너머에서 폭발이 일었다.
"크윽...!?"
"꺄아악...!"
몇 초 만에 수백 미터는 멀어졌으나 어마어마하게 뜨거운 폭발의 여파는 이곳을 여유롭게 덮고도 남았다.
성역으로 강화된 언데드들이 폭심지와 가까운 놈부터 순차적으로 증발해버리는 모습을 보니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한다.
"증오의 굴레!"
"크, 크윽...!"
클라라가 황급히 방어막을 펼치는 것을 보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도 원념의 파동을 퍼뜨려 일행들을 감쌌다. 특히 죽으면 되살아날 수 없는 카론과 아직 추락중인 에필리아를 더욱 세심하고 두껍게 둘러쌌다.
"...커헉...!?"
"크학...!"
그러나 폭발의 어마어마한 충격은 기어코 카론과 에필리아의 입에서 핏물을 쏟게 만들었다.
"이런 빌어먹을...!"
특히 신경 쓴 그녀들이 그런 상태인데 다른 여자들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눈과 귀, 입에서 핏물을 쏟아내느라 정신을 차리지도 못할 지경이었다.
폭발의 여파는 고작 몇십 초 였으나, 모든 이를 빈사 상태로 만들기엔 충분했다.
"허억, 허억...!"
나는 어느새 원념합일이 발동된 상태였기에 도중부터 피해를 입지 않았으나 내 여자들은 하나 같이 피를 흘리며 널브러져 있었다.
숨소리는...들리지 않았다.
"...뭐야 이게."
-그어어어어...
-아아아아...
깨끗하게 불 탄 평원에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몇몇 언데드들의 곡하는 소리만이 내려앉는다. 너무나 고요하고 공허하다.
너무나 갑작스럽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기분이다.
"......"
잃은 건가?
"...으드득!"
순식간에 치밀어오른 뜨거운 열기 때문에 머리 뚜껑이 터질 뻔했다.
"후욱, 후욱...!"
아냐. 진정하자. 단정하지 말자. 유저는 죽여도 죽지 않는다. 쓸데없는 걱정이다.
카론과 에필리아가 걱정이긴 하지만 괜찮을 거다. 보통 녀석들이 아니니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리 없다.
"....아."
그러나 한참을 들여다봐도 카론과 에필리아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후우우욱...! 아극, 끄륵...!"
분노. 증오. 원한.
꾸역꾸역 치밀어오르며 들끓는 감정이 너무나 커서 뇌신경이 모조리 타버릴 것만 같다.
쏟아내야 한다. 이 감정을 어딘가로 쏟아내야만...
"으, 으응...!"
"크으윽...!"
작고 여린 신음이 귀청을 울림과 동시에 시야에 담고 있던 두 여자가 몸을 꿈틀거렸다.
"카, 카론!? 에필리아!"
감정이든 뭐든 모조리 내팽개치고 그녀들을 향해 달렸다.
"하으윽...여, 여보..."
"주인...님..."
살아있었다. 그녀들의 희미한 시선에 나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움켜쥐며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아하핫...!"
잃지 않았다. 과거는 반복되지 않았다.
그 기쁨과 환희가 부정적인 감정들을 모조리 밀어낸다.
"쿨럭! 으으으...!"
"아으으...!"
"이, 이런!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클라라는 물론 다른 성녀들도 기절한 상태였기에 회복 스킬을 기대할 순 없는 상황.
"어쩌지? 어떻게 해야...아!"
인벤토리 구석에 처박혀 있던 엘릭서를 떠올리고 허겁지겁 꺼내 그녀들의 얼굴과 몸에 들이붓고 유리병 주둥이를 통째로 입에 물렸다.
모든 여자들에게 그런 처치를 해주려니 고작 몇 분 동안 몸이 여러 개였으면 좋겠다고 몇 번을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으, 으음..."
"으으..."
간혹 인상을 찡그리며 신음을 내뱉긴 했지만,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모습으로 규칙적인 숨결을 내뱉는 모습들을 보니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다행이다...정말 다행이야..."
털썩 주저앉으니 엉덩이가 축축했다.
"이런..."
워낙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땀을 한 바가지는 흘려서 전신이 흥건하게 젖어있었다.
이만큼이나 땀을 흘리고 있었는데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온다.
"후우..."
만약 폭발이 마차에서 일어났다면 모두가 무사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돋는다. 만약 그렇게 됐다면, 나 자신을 제어했을 자신이 없다.
에필리아가 우릴 살렸다. 나중에 칭찬과 함께 포상을 줘야지.
"...응?"
"시, 신이시여..."
시야 한 구석에 무언가 꿈틀 거리는 게 들어와서 자세히 봤더니 카멜로였다.
그는 이전보다 더한 상처로 가득한 몸을 질질 끌며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우와, 너 살아있었어? 굉장하네."
"시, 신이시여...무사하십니까...?"
"보다시피."
"다, 다행...입니다...신이시여...저는...여기까지인 것 같..."
"어딜 마음대로 죽으려고? 어림도 없지."
엘릭서를 통째로 뿌리고 입에 엘릭서를 물려주자 그의 몸이 순식간에 치유되기 시작한다.
"아, 아아아...!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오냐. 알겠으니까 언데드들이나 멀쩡한 놈들로 추려봐."
"네! 알겠습니다!"
당장 달려가는 그를 흐뭇하게 바라보던 나는, 지평선 너머가 이상하게 뿌옇다는 걸 발견하고 인상을 폈다.
"뭐야? 폭발 때문에 흙먼지가 흩날려서 그런가? 뭐가 저렇게...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그 뿌연 덩어리는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저건..."
그제서야 아스라한 함성이 귓가를 간질인다.
"......"
군대였다. 그것도 낯익은 갑옷을 걸치고 무기를 든 채 말을 탄 기마병.
눈대중으로만 살펴도 수십 만에서 수백 만은 될 법한 무리들이 지평선을 가득 메우며 이쪽을 향해 맹렬히 달려오고 있었다.
-키힉! 키히히힉!
-전부 죽여버리겠다!
병사 뿐만이 아니었다.
실루엣은 인간과 같으나 날개를 펼친 채 허공을 수놓는 마족들 또한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아하하. 그렇군. '악의 씨앗'을 확실하게 마무리지으러 오는 거냐."
물어볼 것도 없이 제국군과 신성교의 병력들이리라.
마족들은 유물을 이용해 소환한 것일 테고...신성교가 있는데도 마족을 소환하다니, 어지간히 궁지에 몰렸던 모양이로군.
"재밌네. 재밌어..."
가라앉았던 분노와 증오, 그리고 원한이 다시 들끓었다.
"내 여자들을 건드린 대가가 어떤 건지 확실하게 알려주마...!
뿌득! 뿌드드득!
저도 모르게 이를 갈아붙이며 놈들을 노려봤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천호! 여기를 지켜!"
-크르르으응...!
푸른 불길을 휘감은 천호가 듬직하게 소환되는 걸 바라보며 전력을 다해 감정을 일으키자 신체 말단부에서부터 검은 입자가 되어 일렁이기 시작하고 육체라는 틀이 사라진 감정이 한계를 모르고 고양된다.
[스텟 '원한'이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스텟 '원한'이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스텟 '원한'이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스텟 '원한'이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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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게 귀청을 때리는 알림음을 들으며,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로 그들을 향해 짓처들어갔다.
몰아치고 몰아쳐서 모조리 쳐죽여주마.
살려달라는 비명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오기도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