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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3화 〉113회 (113/189)



〈 113화 〉113회

"으, 으음...!"
"이게 끝이야? 그럼 조금 실망할지도 모르겠는 걸. 좀 더 힘내봐."

거대한 주먹이 몽글거리는 검은 안개에 감싸인 실험체가 이를 악물며 허리를 비틀고 어깨 근육을 비정상적으로 부풀리는 등 용을 썼지만, 몽환적으로 흔들리는 검은 안개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의 주먹을 버텨냈다.


"흠, 느껴지는 힘을 보면 제법이긴 한데..."

내가 빙긋 웃는 것과 동시에 옆구리를 비롯한 좌반신에서 새파란 불빛이 번쩍였다.
찰나의 순간 수백  정도 맞은 것 같다.

"앗 따거! 야! 그만 좀 해라!"
"...진짜 말도 안 돼...!"


전기를 다루는 실험체의 얼굴에 좌절이 스쳐지나갔다.
하긴,  번을 공격하든 끄떡도 하지 않으면 질릴만도 하지.


"...응?"

묘하게 찐득한 느낌에 불현듯 아래를 내려다보니 튼튼한 합금으로 이뤄진 바닥에 스파크가 튀며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고 있었다. 전기 지짐이가 강하긴 하구나.


"넌 안 나서?"
"......"


커다란 날개와  3의 눈을 지닌 실험체가 시간이 지나도 나서지 않았기에 바라봤지만, 그녀는 어쩐지 흐리멍텅한 눈으로 초점을 흐리고만 있었다.

"아, 미안해 주인. 그 여자가 계속 귀찮게 하길래 지배해버렸어."


미쉘이 내 앞으로 포르르르 날아오더니  손을 모아 합장하듯 사과를 해온다.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웠냐.

"뭐? 뭘 귀찮게 해?"
"정신 마법 비슷한 걸 쓰더라고. 진짜 웬만하면 무시하려고 했는데, 주인은 공격 안하고 나를 방해하기만 하더라고? 그래서 반격해버렸지."
"흐음."


아무래도 정신 계열 능력자였던 모양이다.

"상관없어. 어차피 그쪽이었으면 미쉘 네게 맡겼을 테니...다른 놈들은?"
"보시다시피."

그녀가 자랑스럽게 두 팔을 뻗으며 가슴을 펼치자 거유가 출렁출렁 흔들린다.
거유라고는 해도 크기로 따지면 둥글게 만 엄지 정도였지만.


파지지지직!

"아따따따따! 이 시벌년이 진짜!"


또 불빛이 번뜩이며 강렬한 정전기가 전신을 따끔하게 만든다. 홧김에 원념의 파동을 날렸지만 전기 뱀장어 같은 여자는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요리조리 여유롭게 피할 뿐이었다.

"헹! 그런 공격에는 죽어도 안 맞지롱!"
"어휴 저거...미쉘. 넌 이 놈 처리해."
"응."


강철 근육몬을 미쉘에게 넘긴 나는 감정을 일으키며 전기녀를 가리켰다.


"네가 무슨 짓을 하든 전부 피할 수 있거든!? 이렇게 된 이상 정전기로라도 죽여주마!"
"그럼 저주도 피해봐라."
"뭐?"
"발정."

  마디.
별 것 아닌  같은 그 읊조림에 거대한 저주의 기운이 움직였다.

"어, 어흑...!?"


묘기 부리듯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재주를 넘던 여자가 별안간 발걸음을 멈추고 당황한 얼굴로 부들부들 떨었다.

"오, 통하네? 그런 쪽 감각이 전부 제거당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성큼성큼 다가가 음흉하게 웃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도 그녀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허벅지를 배배 꼬기만 했다.


"아, 아으...!? 내,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야...!"
"닥쳐 이 년아. 내가 지금 기분이  안 좋거든?"

짜악!
강하게 엉덩이를 후려치자 그녀의 눈에서 불빛이 일더니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벌린 입을 뻐끔거렸다.


"아...흥야아...!?"
"오...자세히 보니 꽤...?"


그녀의 엉덩이를 슬슬 쓰다듬으며 살펴보니 꽤 미인이다. 물론 피부가 비늘로 덮여있고 드림아웃의 유저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가슴 크기도 봐줄만하고 엉덩이도 그럭저럭 통통하니 먹을 만은 할 것 같다.

"특별히 데려가주마. 아리 위에 타."

짜아악!


"아흐윽...!? 그, 그만 때려어어...!"

엉덩이에서부터 치민 강렬한 충격에 그만 주저앉아버린 그녀는 고간을 축축하게 적시며 눈을 날카롭게 치떴다.

"어허. 어딜 노려봐?"
"응햐아앗!?"

가슴을 움켜쥐고 반죽 주무르듯 주무르자 허리를 젖히며 펄쩍 뛰어오른다.
오, 비늘은 단단한데 비늘 아래에서 말캉함이 느껴지는 감촉이 엄청 신기하네...그런데 유두는 또 제대로 인간 여자의 유두로군.

"윽...아읏...햣...!"

그녀는 전기를 내뿜으며 내 손목을 움켜쥐었지만, 힘이 풀리는 모양인지 악력을 높였다 줄였다를 반복했다.

"이게 기분 좋아? 응?"
"으앙...하아앙...아으...!"


그녀는 어떻게든 반항해보려는 듯 이를 갈거나 얼굴을 억지로 일그러뜨렸으나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금세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며 칠칠맞게 입을 벌렸다.


"아아아...아하아아아앙...!"


그리고는 부들부들 떨며 헤벌죽한 얼굴로 절정을 맞이한다.


"젖꼭지만으로 가버린 거야? 하하, 음란한 년이로군."
"크윽...아, 아냐...!"
"닥치고. 난 바쁜 몸이니까 잔말 말고 올라타기나 해."

그녀를 번쩍 들어올려 아리 위에 던지고 올라탄 나는 그녀의 축축하게 젖은 고간을 문지르며 미쉘 쪽을 바라봤다.

"아, 주인. 마침 끝났어."
"좋아."

이전 층과 마찬가지로 유리벽을 부수고 미쉘의 능력으로 실험체들을 지배한 뒤 아리에게 고개를 까딱거렸다.

-쉬이이잇...!

구체적인 명령 없이도 내 말을 알아들은 아리는 전신에서 음습한 냉기와 전격을 내뿜으며 바닥에 대가리를 박았다.

격렬한 떨림과 두부처럼 으깨지는 합금, 유리처럼 산산조각나는 결계와 마법 장벽.


"으아악!?"
"제길! 여기까지 뚫리다니! 방어용 실험체들은 대체 뭘 한 거야!"
"공격! 공격해라!"


마지막 층에서는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우루루 몰려 있었는데, 이전 층과는 달리 수많은 방과 유리벽 대신 수십 개의 캡슐들이 놓여있었다.

십중팔구는 드림아웃의 고인물들일 것이다.
저중에는 아마 자기가 실험체가 됐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현실의 몸을 유린당한 가엾은 이도 있겠지.

"...하하."

정말로 기분 더럽다.

"여긴 연구원들이 더 많은 건가.  새는군. 최종 보스 같은 걸 기대했는데...하긴, 여긴 게임 속이 아니니까. 미쉘. 부탁해."
"응."


그녀는 귀찮다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충실하게 힘을  그들을 지배했다.
아티팩트화된 총과 칼로 저항하는 이들도 있었으나 신경 쓸 정도도 아니었다.


"한다연 어딨어?"
"저기...있습니다..."


지배당한 연구원들은 일제히 하나의 캡슐을 가리켰다.


"이게 한다연...마리링인가."

그녀의 모습은 확실히 인간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아니라고도 할 수 없었다.
머리칼 대신 꿈틀거리는 반투명한 오색의 촉수, 코 밑부터 입과 턱에는 마치 몬스터의 아가리를 끼워 맞춘 것처럼 붉은 피부와 두껍고 예리한 이빨이 가지런하게 자라 있었으며 양쪽 귀의 끝이 뒤통수를 넘어갈 정도로 길었다.

목 밑으로는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깨워."
"...네."


무표정을 유지하며 힘 없는 발걸음으로 컴퓨터 앞에  연구원 하나가 무언가를 조작하자 캡슐의 문이 천천히 열리며 자욱한 연기가 빠져나왔다.


드러난 그녀의 몸은 그래도 첫 번째 층의 실험체들처럼 심각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심플해서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인다.
양 팔꿈치와 종아리 밑으로 불타는 암석의 건틀릿과 부츠를 장착한 것처럼 두툼한 손과 다리를 지녔는데, 손가락과 발가락의 마디가 없었고 손톱, 발톱이 없는 대신 손가락, 발가락 끝이 칼처럼 통째로 예기를 지녔다.
몸 밑으로는 내 손에 음부를 문질러지고 있는 전기녀보다 커다란 비늘로 덮여 있었는데 붉은 팔다리와 연관이 있는 건지 붉게 발광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녀의 다리 사이로 보이는 길고 두꺼운 파충류의 꼬리가 시선을 차지했다.

"분명 인간을 몬스터처럼 만드는 실험이라고 했지...이건 무슨 몬스터야?"
"드래곤과...레드 슬과임과...라바 골렘...의 합성입니다..."

한 연구원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합성? 그리고 말 좀 빨리해."

내 말에 미쉘이 손을 휘저었고 연구원은 잠시 몸을 부르르 떨더니 눈에 약간의 총기가 돌았다.

"인간도 물건처럼 몸 안에 일정 패턴의 회로를 새기고 적절한 출력의 마석을 배치하면 몸이 변이합니다. 물론 물건에 새기는 것처럼 크고 간단한 게 아니라 유전자 단위의 패턴 회로입니다. 단순하게 유전자 변이라고 보면 더 간단하겠군요. 보통 한 명의 인간에 하나의 몬스터 회로 밖에 새길  없습니다만, 한다연의 몸에는 무려 세 가지 몬스터 회로를 그리는  성공했고 한다연 또한 그것을 버텨냈습니다. 게다가 라바 골렘은 생물조차 아니죠. 저희는 그 원인을 뇌의 상태와 정신력으로 보고 있습니다만 아직 정확히 밝혀진 건 없습니다. 그러나 한다연 양 같은 케이스가 전무후무하다는 건 확신할  있습니다."
"그렇군. 알았으니 좀 닥쳐."
"......"


그때, 누워 있던 한다연의 몸이 꿈틀거리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으, 으음...?"
"일어났냐? 백마 탄 왕자님 등장이시다. 소원이 이뤄진 기분이 어때?"

히죽 웃으며 내려다보자 그녀는 흐릿한 눈으로 잔잔하게 웃어보였다.


"아하하...백마가 아니잖아...거대한 뱀을 타고 오는 왕자님이 어딨어?"

저 흉악한 입으로 잘도 말하네.

"여기 있지."
"게다가 못 생겼어...잘 생긴 왕자 데려와."
"......"
"근데 뭐지...어떻게 아리가 현실에...여기 게임 속인가?"
"어휴...현실이야 현실. 정신 차려."
"끄응..."


상체를 일으켠 그녀는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더니 어이 없다는 듯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빠른 거 아냐? 게다가 지나치게 깔끔한데? 나는 싸울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는데..."

완전히 일어선 그녀가 나를 내려다봤다.
누워 있을 땐 몰랐는데 나보다 머리 하나는  크다. 다만 카론처럼 전체적으로 큰 게 아니라 그런지 엄청나게 높은 굽 구두를 신은 여자를 마주한 기분이다.


"아하하. 한길이가 작다."
"커서 좋겠다 임마."
"...나 이제 자유가 된거야?"
"그래. 넌 이제 자유야."

내 선언에도 그녀는 실감나지 않는다는 듯한 얼굴로 흐릿하게 웃을 뿐이었다.

"그 여자는 또 뭐야? 하여간 밝힌다니까..."
"아니, 건방지게 까불더라고. 그래서  혼내는 중이었지."
"아으으...응헤에에...!"

그 사이  번이나 절정을 맞이한 전기녀는 풀린 눈으로 축 늘어진 채 내게 몸을 기대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질벽을 매만지자 늘어졌던 몸이 튕기며 활처럼 휜다.


"...나 이제  하면 돼?"
"응? 글쎄? 그걸  나한테 물어봐?"
"......"

마리링...아니, 한다연이 나를 새침하게 노려봤다.
입이 흉폭한 괴수의 입이라 그런지 조금 움찔하게 된다.

"이 몸으로 나가면 사람들이 어떻게 보겠어?"
"에엥...그렇게 이상하게 보진 않을 걸? 변신 계열 각성자도 있으니까..."
"그런 말이 아니잖아 바보야."

노려보는 눈이  강해졌다.
 어쩌라고.

"난 아직 사람들 앞에 나설 자신이 없어. 게다가 기반도 없고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고 뭘 해야 할지도 몰라. 뭐, 이건 어렸을 때부터 그랬지만...하여간 한길이 네가 끝까지 책임져야지."
"물에 빠진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구만..."
"...흥, 알겠어. 알아서 잘 살아보지 뭐. 난 이만 가볼게. 여기 있기 싫으니까."


그녀가 정말로 가버릴 것처럼 다리를 굽히며 천장의 구멍을 올려다보자 나는 급히 그녀의 팔을 잡았다.

"야야. 농담이야 농담. 알았어. 내가 어떻게든 해줄게."

마침 내게는 상당한 규모의 세력도 있으니 한다연과 다른 실험체들을 수용할 정도는 될 것이다.


"정말? 책임져 줄거야?"
"그래그래."
"헤헤헤..."


어린애처럼 웃는 모습에 나도 따라 웃고 말았다.

"아으으으응...!"

그 사이  절정을 맞이한 전기녀가 허리를 젖히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

나야 원념합일을 쓰면 단번에 중국으로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까지 데리고 갈 수는 없었기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신도들에게 악신의 축복을  한다연과 실험체들, 그리고 정신 지배를 당한 연구원들을 모조리 인도했다.
마지막 층에 있던 캡슐들은 굳이 열지 않고 통째로 넘겼고 말이다.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내게 절대 충성하는 한국 지부의 신도들을 믿는 수밖에.


설마 수 백이 넘는 인원을 떠맡게 될 줄은 몰랐던지 그들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긴 했지만, 잘 부탁한다는  말에 눈동자를 불태우며 뜨거운 열의를 보였다.

든든하긴한데 뭐 해준 것도 없는 내게 저렇게 충성을 바치니까 조금 부담스럽네.


"한길아~! 나중에 꼭 다시 볼 수 있는 거지? 응?"
"그렇다니까 그러네. 안심하고  봐."

한국 교단 지부로 안내받으면서도 불안한  몇 번이나 뒤돌아보는 다연에게 쓰게 웃어주며 그녀가 보이지 않게  때까지 배웅한 나는 기지개를 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조금 쌀쌀한 가을 하늘은 구름 한  없이 청명하고 높았다.


"한 건 해결."


씨익, 주체할 수 없이 튀어나오는 미소를 그리고 감정을 끌어올린 나는 원념합일을 사용해 단번에 중국으로 이동했다.

***

"갔다 왔어요."
"수고하셨습니다 한길 님.  한국 지부장에게 연락을 받은 참입니다."


그나마 익숙한 공간으로 돌아오자 긴장이 풀리며 노곤해진다.


"아리. 나와."
-쉬리리릭...

검은 뱀이 모습을 드러내자 송선재는 녀석에게도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리 님도 수고하셨습니다."
-별 것 아니었다.


거들먹거리는 녀석을 보니 헛웃음이 나온다.


"곧바로 드림아웃에 접속할 거니까 준비해줘요. 아저씨."
"네? 벌써 들어가십니까? 하, 하지만..."
"왜요? 뭐 더 할  있어요?"
"그건 아닙니다만..."
"그럼 접속할게요. 저 혼자서만 현실에서 재미 보는 건 뭔가 죄책감이 느껴져서...아, 한다연이 좀 많이 신경 써주세요. 아저씨."
"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일어날 때는 꼭 한국이었으면 좋겠네요."
"노력해보겠습니다."
"하하, 재촉하는 건 아니고요."


내 캡슐에 드러누운 나는 환하게 웃으며 송선재 아저씨를 바라봤다.

"그럼 수고하세요."
"수고랄 것도 없습니다. 당신이 제게 주신 것에 비하면."
"아하하...아리 너도 수고해."
-걱정하지 말고 게임을 즐기십시오. 나의 창조주시여.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준 나는 천천히 닫히는 캡슐문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

"아아앙! 하앙...! 하아, 하악...클라라 언니이..!"
"묘란..으응, 기분 좋아...!"
"...?"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본 광경은, 서로의 몸을 겹친 채 보비고 있는 묘란과 클라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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