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4화 〉144회 (144/189)



〈 144화 〉144회

협회 건물 내부는 장비를 착용한 헌터들로 꽤나 혼잡했다.
다들 뭐가 그리 바쁜지 저들끼리 무언가를 얘기하거나, 무언가를 찾아 두리번거리거나, 스마트 폰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자신의 번호가 호명되길 기다리고 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업무 안내와 경비를 동시에 진행하는 듯한 정장 차림의 헌터가 다가왔다.


"헌터증 발급과 등급 측정을 하려고 하는데요."
"그렇군요...뒤에 있는 분들도 동일한 업무인가요?"


그는 내 여자들을 보고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려 했지만, 눈동자가 떨리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괜스레 어깨를 으쓱 추켜세우며 그녀들을 돌아봤다.

"어떻게 할래?"
"나도 할래!"
"현재 힘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고 싶긴 하네요."
"당연히 해야지."


묘란, 클라라, 샤미엘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하다면 하겠어요. 여보."
"주인님 말에 따를게요!"

카론과 에필리아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허락을 구한다.


"좋아. 그럼 전부 등급 측정부터 하자."
"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각성자인지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실례."


그렇게 말하며 그는 네모난 형태의 밋밋한 막대기를 내 어깨에 가져다댔다.
그러자 즉시 막대기가 검게 물든다.

"음...확인되었습니다."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우며 잠시 굳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른 여자들의 어깨에도 막대기를 가져다댔다.


묘란, 클라라, 샤미엘, 에필리아의 몸에 닿은 막대기는 푸르게 빛났지만, 카론의 몸에서는 검게 물들었다.


"...전부 각성자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인식표를 가지고 2층으로 가셔서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주십시오."
"네. 수고하세요~"
"오빠 고마워! 일 수고해!"

묘란이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자, 딱딱하게 굳었던 그의 표정이 한 순간 헤벌죽 풀어졌다가 퍼뜩 정신을 차린 것처럼 원상복구된다.


"너..."


내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자 묘란은 찔리는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응? 왜? 뭐?"
"왜긴 왜야. 너 아무 남자한테나 꼬리 치고 다닐래? 응? 혼난다?"


보들보들한 볼따구를 잡고 쭉 늘어뜨리자 그녀는 엄살을 피우며 발을 동동 굴렀다.

"으에에~ 하지만, 이거 엄청 재밌는 걸 어떡해! 눈짓 한 번만 해도 남자들이 넋이 나간다고! 자존감이 엄청나게 올라가는 느낌이야!"
"어휴, 하여간..."

가만히 그녀의 볼을 놔준 나는 고개를 흔들며 2층으로 향햐는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오빠. 삐졌어?"
"그 말 들으니까 삐질 것 같은데?"
"치이..."
"따먹고 싶은 표정 짓지 마라. 여기서 콱 덮쳐버린다?"
"이히힛. 오빠. 사랑해~"
"어허, 유혹하지 말라니까?"


 팔을 끌어안고 가슴을 마구 밀어붙이는 그녀를 향해 짐짓 얼굴을 굳히고 헛기침을 하며 2층에 발을 내디뎠다.

"헌터증 발급과 등급 측정을 위해 오셨군요. 먼저 등급 측정부터 하겠습니다. 저를 따라와 주시겠습니까?"

에스컬레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미녀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가 내 뒤에 있는 여자들을 보고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뜬다.

"오오. 그쪽이 안내해 주는 건가요?"
"헤? 아, 네...네! 이, 이쪽으로...!"

말을 제대로 끝마치지 못한 그녀는 황급히 선두에 서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씰룩이는 엉덩이를 보며 음흉하게 웃고 있자니 이번엔 묘란의 손이 내 볼따구를 쭈욱 잡아늘린다.


"아야야야..."
"하여간 오빠는 이게 문제라니까. 내로남불이 너무 심한  아냐? 응?"
"아야야야야...!"


안내원을 따라 걷길 몇 분, '등급 측정'이라고 적힌 구역으로 들어서자 숫자가 적힌 무수히 많은 방이 우릴 맞이했다.

"이곳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505라 적힌 방으로 안내한 직원은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었다.
방 안은 단출하게 꾸며져 있었다.
커다란 기기와 그 기기에 연결된 복합적인 기기들. 그것 하나 뿐이었다.
언뜻 보기로는 인바디 측정 기기를 더 복잡하고 크게 부풀린 것처럼 보인다.


"흐음...직원분이 직접 측정해주시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저희 팀은 찾아오시는 분을 각자가 책임지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엄청 극진한 대우네요. 직원 수도 많은 모양이고..."
"후훗. 별  아니랍니다."

예쁘게 웃은 그녀의 얼굴을 보니 절로 미소가 나온다.

"내 뒤에 있는 여자들보다 예쁜데요? 저랑 식사나  번 하실래요?"
"네? 오호홋..."


천상계에서 내려온 듯한 미모의 여자들보다 자신이 더 이쁘다고 하니 그녀의 얼굴에 처음으로 영업용이 아닌 미소가 살포시 내려앉았다.

"오빠!? 나보고는 꼬리치지 말라더니!"
"시끄러 임마. 그럼 빨리 대주던가."
"으으...최대한 빨리 합의점을 찾아볼게."


그녀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내 팔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이 발판 위에 서주세요."


방금 대화를 들은 직원의 눈이 서릿발처럼 차가워졌기에 냉큼 발판 위로 올라갔다.

"이제 뭘 하면 되죠?"
"가만히 있으셔도 됩니다. 이 기계가 알아서 잠재된 힘과 능력을 파악할 테니까요."


그녀가 그렇게 말하며 버튼을 조작하자 푸른 기운이 뿜어져나와  몸을 구석구석 휘돈다. 침투하는  같기도 하고 겉도는  같기도 한 기묘한 감각이었다.


"...어?"

모니터를 바라보던 윤연화의 얼굴이 이상하게 일그러진다.

"왜 그래요?"
"아, 아니...측정 불가...라고 뜨는군요. 각성 계열은 제대로 나왔는데...혹시 힘을 제어하는 아티팩트를 지니고 있나요?"
"아뇨?"
"...다시 한 번 해볼게요."

다시 한 번 푸른 기운이 뿜어져나왔으나 결과는 같았다.

"아무래도  힘이 너무 커서 측정을 못하는 것 같은데?"
"그 반대일수도 있죠."
"뭐라고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던 윤연화는 슬쩍 눈짓하며 의사를 물었다.


"어떻게 하실래요? 정밀 검사를 받아보시겠어요?"
"정밀 검사요?"
"네. 여러 정밀 기기들을 이용해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습니다."
"금방 끝나는 겁니까?"
"아뇨. 사흘 정도 걸려요."
"하아...아, 귀찮네요. 전 됐으니 뒤에 있는 여자들부터 해줘요."
"알겠습니다."
"쩝..."

설마 측정이   줄이야. 이러면 계획이 처음부터 어긋나는데...할 수 없지. 편법을 쓰는 수밖에.

"나! 나부터 할래요 언니!"


묘란이 방방 뛰며 앞으로 나서자 출렁이는 거대한 흉부를 보고 넋을 잃었던 그녀는 몇 번 헛기침을 한 뒤 침착하게 그녀를 안내했다.

"발판 위에 서주세요."
"네!"

묘란이 발판 위에 서자 윤연화는 키보드를 조작했다.
묘란의 몸이 푸른 기운이 휩싸이는 걸 보며 스마트 폰을 꺼내들고 곧바로 송선재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신이시여.
"아, 아저씨. 저 등급 측정에서 측정 불가가 떴거든요?"
-역시 그렇군요. 인간이 만든 기계로 신을 측정할 수 있을리 없죠.
"아하하...그래서 말인데. 김혜천한테 말해서 내 이름으로 된 S급 헌터증 하나 발급하라고 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우와아!? 오빠! 이거봐! 나 S급 떴어!"
"...정말?"
"정말이야! 이거봐!"

방방 뛰는 묘란이 나를 화면 앞으로 끌고 갔다. 화면에는 여러 글자와 함께 S라는 알파벳이 큼직하게 출력돼 있었다.

드림아웃 캐릭터 기준으로 레벨 천 정도면 현실에서 S급이 뜨는구나.

"추, 축하드립니다..."

직원은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벌써 그러면 안 되지. 다른 여자들도  정도는 나올 텐데.

"이, 이럴 수가...?"


계속된 검사에서 내 예상대로 클라라, 샤미엘, 카론, 에필리아 모두 S급이 뜨자 윤연화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든다.

"저, 저기..."
"응? 뭔가요?"


기뻐하는 일행들 몰래 내 소매를 잡아당긴 그녀는 슬쩍, 자신의 스마트 폰을 내밀었다.

"버, 번호 좀  수 있을까요...?"

수줍은 그녀의 표정에서 타산적인 속셈을 발견한 나는 히죽, 음흉하게 웃었다.

"이제 제 매력을 알게 된 건가요?"
"...아 뭐...식사 한  정도야..."


튕기는 모양새가 귀엽네.


"크크. 그러죠 뭐."

나는 그녀의 폰에 내 번호를 찍어주었다.

측정 결과를 출력해서 1층으로 내려오니 얼마 지나지 않아 빳빳한 헌터 자격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물론  것도 포함해서.

"믿기지가 않네요...제가 S급 각성자가 되다니..."
"아하핫. 꿈이라면 절대 깨고 싶지 않네."

클라라와 샤미엘이 감회가 새롭다는 얼굴로 헌터증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녀들을 재촉해 차에 올라탔다.

"이윤호에 대한 정보는 찾았습니까?"
"네. 위치 특정에 성공했습니다. 당장 그곳으로 갈까요?"
"지금 어디있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E급 던전에 있습니다."
"그렇군. 곧바로 가주세요."
"알겠습니다."

***


대략 20분 정도 이동했을 즈음, 인적 드문 저택가 한 구석에 공간이 일그러져 형성된 듯한 푸른 동굴 주변으로 팬스와 경비 병력, 그리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던전 공략을 기다리는 청소부들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도  무리에 끼어있었다.
낯익은 얼굴들을 보니 그 때를 추억하게 되는구만.

"저기 있군."

본   됐음에도 곧바로 발견할  있었다.

D급 헌터 이윤효(李尹互). 서른 다섯. 훤칠한 신장에 댄디하게 잘 생긴 외모, 수준 높은 사교성과 매너를 갖춰 주변에서 호평을 듣는 인물이다.

겉으로는 말이다.

"너희들은 어쩔래? 따라올래?"
"응!"
"당연하지!"

묘란과 샤미엘은 냉큼 대답했지만, 클라라는 슬쩍 눈치를 살폈다.


"그래도 돼요?"
"물론이지."
"그럼 따라갈래요."

클라라의 얼굴을 보며 웃은 나는 곧바로 차문을 열고 나섰다.
갑작스레 나타난 리무진을 쳐다보고 있던 청소부 무리는 나와 다섯 여자들이 내려서자 경악으로 입을 쩍 벌렸다.

"박...한길?"


가장 먼저 나를 알아본 이윤효가 얼떨떨한 표정이 되었다가, 다섯 여자들을 보고는 추잡한 욕망으로 눈망울을 번들거렸다. 한 순간에 사라지긴 했지만, 나는 분명히 볼  있었기에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래. 너는 그래야지. 여전하구만. 망할 새끼.

"여어. 다들 오랜만이네? 윤효도 오랜만이고.  지냈나봐?"
"뭐?"

 하대에 윤효의 표정이 일순 경직됐으나 가면은 쉽사리 깨지지 않았다.
대신 녀석의 부하들이 분개한다. 똥찌꺼기 같은 놈들이다.

"박한길! 갑자기 말도 없이 안 나오더니 윤효 형님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저 시발놈이 머리가 돌아버렸나!"
"어디서 복권이라도 얻어걸렸냐? 아무리 그래도 네가 형님에게 그러면 안 되지! 얼마나 챙겨주셨는데!"

뭐? 챙겨줘? 저 자식이 나를?


"푸하핫."

나도 모르게 웃고는 분개하는 남자들을 쳐다봤다.

여재형(余再珩)
소수훈(蘇水訓)
박덕기(朴德夔)

전부 E급 헌터인 놈들은 금붕어 똥처럼 이윤효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사람들을 괴롭히고 뒷처리를 했던 놈들이다.


"지랄을 한다."
"뭐!?"
"저 자식이...!"
"자, 이거 보여?"


나는 이윤효에게 어깨 동무를 하며 헌터증을 꺼내 눈앞에서 살랑살랑 흔들어주었다.
굳이 편법까지 써가며 S급 헌터증을 발급 받은 건 오로지  순간만을 위해서였다.


"에, S급...!?"
"뭐, 뭐라고요? 형님. 정말입니까?"
"저 덜떨어진 놈이 S급이라고요?"
"말도 안 돼!"

똥찌꺼기 같은 놈들의 말에 히죽 웃으며 감정을 끌어올렸다.

"왜? 못 믿겠어? 응?"

원념의 파동이 뭉게뭉게 피어오르자 그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다.

"윤효야. 자식아. 아직도 던전이랑 균열 지역에서 살인하고 강간하고 그러냐? 응?"
"...!"

그의 뒤통수를 탁탁 때리며 비아냥거리자 그의 이가 악물리고 눈에 독기가 서린다.


"뭘 꼬라봐? 넌 지금 네 목숨 걱정해야지. 무릎 꿇어도 시원찮을 판에 말이야."
"저, 저기...!"
"응? 뭐야."


 봐도 신입으로 보이는 청년 하나가 비장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


"유, 윤효 형은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뭔가 착각하시는 거 아닌가요?"
"마, 맞아...!"
"저렇게 착한 사람인데..."

청년의 말에 동조하듯 몇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크. 여전히 이미지 관리는 빡세게 하나봐?"


나는 연신 윤효의 뒤통수를 때렸다.


"그래. 그 마음 이해해. 나도 처음엔 너랑 똑같았거든. 근데 이 자식이  짓거리 알면 그런  못할 걸? 너 적토마 길드에서 청소부로 일한  얼마나 됐어?"
"유,  개월 됐는데요..."
"그럼 슬슬 작업 들어갈 때 됐는데? 예쁜 누나나 여동생 있냐? 있으면 최근에 낌새가 이상하지 않았어?"
"...!"

짚이는 곳이 있는지 그의 눈이 부릅뜨인다.


"큭!  개...커흑...!?"


윤효가 뭔가 하기 위해 기운을 끌어올렸으나 원념의 파동에 짓눌려 아무것도 못했다.

"크크크...이미 여기 있는 윤효랑 저기 있는 찌꺼기 세 마리한테 신나게 따먹혔을 거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말야."
"그, 그럴 리가 없어!"
"없긴 뭐가 없어 병신아. 네가 인질이야."
"...뭐?"
"네 목숨이 인질이라고. 자기랑 떡 안 쳐주면 던전 안에서  죽여버린다고 협박했을 거란 말야. 그게 이 자식들 수법이라고."
"그럴 리가...그럴 리가!"
"그래. 못 믿겠지. 나도 그랬으니까. 그래서 개기다가 죽기 직전까지 맞았다. 아니, 정확히는 진짜 뒈질 뻔했는데 간신히 도망쳤지. 정말 운이 좋았어."


나는 계속해서 윤효의 뒤통수를 내리치며 청년을 안쓰럽게 쳐다봤다.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 없을 거다. 적토마 길드가 꽤 끗발 있는 곳이기도 하고 애초에 각성 경찰들도  썩어서 진작에 돌려먹었을 테니...네 누이들도 그걸 알고 어쩔 수 없이 몸을 허락했을 거야. 각성하지 못한 일반인들에겐 그게 현실이지."

그때, 이윤효가 발악하더니 힘겹게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이, 이 새끼가...! 박한길! 개소리 하지 마라!"
"응? 오, 꽤 근성 있네?"


이윤효가 핏발 선 눈으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 하는 것 같았으나 원념의 파동에 짓눌린 상태라 목소리를 내는 것도 힘겨운지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다.

"크윽...! 그, 그래서 날 죽이려 온 거냐...! 나, 날 죽이면 적토마 길드가 가만 있지 않을 거다! 아, 아무리 S급 이라도 적토마 길드는...!"
"푸하핫. 지랄하네. 적토마 길드장이 D급 헌터를 위해 S급 한테 덤빈다고? 제정신으로 하는 말이냐?"
"......"
"그것보다는 차라리 경찰이나 헌터 협회에 알리는  낫지 않을까? 응? 해봐. S급만 아니면 통할 걸? 어이쿠! 이게 뭐야? 왜  손에 S급 헌터증이 들려 있지? 이게  일이래?  이해 가냐?"
"...뿌드득..!"
"뭐, 걱정하지는 마. 죽이진 않을 테니까. 어디 보자, 일단은..."

나는 여재형, 소수훈, 박덕기를 쳐다보며 감정을 끌어올렸다.


"뭐, 뭐야!"
"이런 젠장!"
"크윽...!"

여재형은 당황해서 몸이 굳었고 소수훈은 도망치려 했으며 박덕기는 나름대로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누구 하나 원념의 파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단...팔이랑 다리 하나씩."
"크아아아악!?"
"아아아악!"
"끄아아아!"


녀석들의 팔다리가 하나씩 뽑혀나가자 핏물이 화려하게 튀어올랐다.

"한쪽 눈은 없애고 나머지 한쪽은 흐릿하게나마 보이게 해줄게. 혀는 그냥 뽑아버리고. 자지는 이제 필요없지? 그 동안 좆질 많이 했잖아? 뭉개버리고.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서 귀는 내버려두마."

내 의지를 따라 충실히 움직인 검은 안개가 눈알을 하나씩 짓뭉개고 하나 남은 눈의 각막을 깎아버린  고간을 짓뭉개고 혀를 뽑아내고 성대까지 찢어발기자 그들은 제대로 된 비명도 못지르고 거친 숨만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마무리로 가벼운 저주를 걸어주마. 너희들은 이제부터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공포에 미쳐 날뛰게 될거다. 평생 그 공포를 두려워하며 살아가라. 자살은 허락하지 않는다."
"....!?"
"!!!"
"!?!?"

내 읊조림이 저주가 되어 그들에게 스며들자 그들은 온전치 못한 몸으로 핏물을 흩뿌리며 벌레처럼 버둥거렸다.


"이런, 저러다 출혈로 죽겠네. 클라라. 치료해."
"네."


클라라의 힐이 스며들자 그들의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었지만, 추한 버둥거림은 멈추지 않았다.

"자, 이제  차례다."
"...허억, 허억...!"

벌벌 떨며 식은땀을 흘리는 윤효의 어깨를 두드리며, 나는 환하게 웃었다.

"에이, 너무 쫄지마. 내가 설마 죽이기야 하겠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