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9화 〉169회 (169/189)



〈 169화 〉169회
대학을 다니기 시작한 뒤 규칙적인 일정이 이어졌고 강의는 지루했지만, 대학 생활이 마냥 지루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마셔라 마셔!"
"젊은 놈들은 늙은 것들의 2배를 마셔야 할 것이야!"

학부생의 숫자가 적고 헌터라는 공통 분모가 있어 유대감이 높은 헌터 실전 전투 학부는 빈번하게 학부 단위로 놀러갔기 때문이다.
남녀 비율도 적당하고 성격도 유쾌한데다 자신감 있는 사람이 많았기에 그들과의 술자리는 매우 재밌었다.


"그, 그만..."
"크크, 뭐가?"
"크윽...!"

물론, 노는 것 말고도 남몰래 재미 보는 즐거움도 있었고 말이다. 전희성의 엉덩이를 주무르던 손을 거둔 나는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며 술집을 가득 채운 학부생들을 쳐다봤다.


"흐흐흐..."


역시, 이 학부는 꽤나 물이 좋다. 각성이 정말 외모를 고르기라도 하는 건가? 아니면 각성하면서 외모가 변하는 건가?


"한길아~"
"우왁?"


갑작스레 묵직한 것이 뒤통수에 내려앉았다.
급히 뒤돌아보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송순아가 내 머리에 풍만한 가슴을 올린  끌어안고 있었다.


"뭐야, 벌써 취했냐?"
"안 치해써..."
"취했구만. 나 참..."
"이 나쁜 노마! 너 그러케 살믄 안대!"


퍽퍽, 옆구리를 때리는 매운 주먹.

"아야. 근데 이 놈이 왜 이래? 야, 가만히 있어. 여기 앉아."


그녀의 손목을 끌어 내 다리 위에 앉힌 나는 벗어나려는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으응...음..."


잠시 버둥거리던 그녀는 흐리멍텅한 눈으로 입맛을 다시더니 내 맥주잔을 들고 홀짝이기 시작한다.

"야, 그만 마시는 게 좋을  같은데?"
"시꾸라!"
"어휴, 그래. 마음대로 해라."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드니 같은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묘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이 테이블에는 민강민과 전희성, 나, 그리고 이름 모를 학부생이 남녀  명씩 앉아 있었다.


"뭐야? 왜 그렇게 쳐다봐?"
"아니...선배 언제부터 순아랑 그렇게 친해졌나요?"
"응? 아."

그제야 너무 격의없이 대했다는  깨닫고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아 뭐, 어제부터  트고 친해졌지."
"그래요? 흠...근데 그래도 괜찮아요?"
"응? 뭐가?"
"나는 선배가 정윤지 선배랑 사귀는  알았는데요."
"아, 그거? 맞아. 근데 윤지가  마음이 넓거든."
"허어..."

그는 조금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곧 신경 끄고 자신의 맥주잔을 홀짝이기 시작했다.

술을 홀짝이며 옆에 앉은 전희성과 다리 위에 앉은 송순아의 몸을 남몰래 주물럭거리는  스릴 있으면서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같은 테이블에 앉은 애들과 말하는 것도  재밌었기에 나는 어느새 꽤나 많이 마시고 말았다.

그래봤자 그다지 취하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원래 내가 말술이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각성 능력은 취기도 잡아주는 건가? 거 편리한 힘이네.

-꺄아아아악!
-균열이다!

"응?"
"뭐야?"

그때, 건물 밖에서 소름끼치는 비명 소리와 함께 괴성이 울려퍼졌다.
급히 창문으로 살펴보니 길거리 한복판에 뚫린 균열에서 몬스터들이 대량으로 몰려나오고 있었다.

"제길! 뭐야? 피난 경보도 없었잖아!"
"미탐지 균열인가! 모두 나서!"
"무기가 없는데!?"
"젠장! 장비를 전부 두고 왔어!"


그래도 예비 헌터들이라고 도망치지 않고 싸울 생각부터 하는 모습이 대견하기는 했지만, 설령 장비가 있더라도 지금 나오고 있는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균열에서 튀어나온 놈들이 오우거, 트롤 같은 거대한 놈들이었기 때문이다. 저 정도 몬스터라면 C급에서 B급 헌터들이 몰려와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균열이라면 보스 몬스터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만약 있다면 A급에 달하는 녀석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모두 진정해! 맨 몸으로 나설 생각은 말고! 일단 침착하게 학교로 돌아가는 것부터 생각하자! 지금 필요한  장비야!"


민강민의 외침에 단숨에 취기가 가신 학생들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인다.

-크워어어어!!
-캬아아아악!

그러는 사이에도 무더기로 튀어나온 몬스터들은 주변 사람들을 향해 마구잡이로 들이닥치고 있었다.


"쳇, 술맛 떨어지게시리..."


인상을 찌푸린 나는 다리 위에 앉아 있던 송순아를 옆에 두고 출입구로 향했다.


"한길 선배! 어쩌게요!?"
"어쩌긴  어째? 쳐죽여야지."
"네? 장비도 없이요?"
"난 장비가 필요 없는 몸이라."

손을 휘적이며 술집을 나서자 어느새 따라붙은 묘란이 자신의 단검을 손에 쥐고 있었다. 샤미엘이 만들어준 장비로 매우 단단하고 날카로울 뿐만 아니라 온갖 옵션과 효능이 덕지덕지 붙은 굉장한 단검이다.

"무기 가지고 있었네?"
"그럼, 이건 불안해서 떼놓지도 못해. 잃어버리면 사흘은 통곡할 거야."

단검을 소중하게 쓰다듬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고는 건물을 나와 몬스터 무리에 뛰어들었다. 그 짧은 사이 당한 인간들의 피와 살점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다.


"빌어먹을 몬스터 새끼들이...!"

뿌드득! 일반인들이 죽는 모습을 보는 순간 이성이 반쯤 날아갔다.
처참하게 죽은 부모님이 떠오른다.

망할, 좆같은, 쓰레기들이!

"공포에 미쳐 날뛰어라! 이 개같은 새끼들아!"
-캬아아악!
-크롸아아악!?

저주의 기운이 스며든 수백의 몬스터들이 일시에 파들파들 떨며  자리에서 뒹굴기 시작했다.


"묘란! 간다!"
"응!"


원념의 파동을 내보일 수도 없고 모습이 널리 알려진 천호와 아리도 소환할  없었기에 내겐 공격 수단이 신체 능력 밖에 없었다.


"후욱...!"

하지만, 그것도 쓰기 나름이다. 게다가 원념의 파동도 조금씩 사용하면 유용한 무기가 된다.

-카학...!?
-카르륵...
-크하악!?


주먹 언저리에만 옅게 끌어올린 원념의 파동에 막대한 물리력을 실어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두껍고 단단한 몸을 지닌 오우거와 바퀴벌레 같은 재생력을 가진 트롤의 몸이 꿰뚫리고 터져나가나다. 묘란과 비교하면 매우 느리지만, 그래도  분이면 수백 정도는 간단히 처리할 수 있을 속도.

"민간인들을 대피시켜! 몬스터들을...응?"

그때, 뒤늦게...아니, 객관적으로 보면 매우 빠르게 도착한 각성자들이 쓰러진  발광하는 몬스터의 이상 행동을 보고 멈칫했으나 발버둥치는 것만으로도 피해가 생겼기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기를 치켜들었다.

"모조리 소탕한다!"
"네!"

헌터들이 몬스터들을 썰기 시작한 것과 동시에 일단 무리가 현장에 도착했다.

"신의 이름으로 부정한 것들을 청소한다!"
"신의 이름으로!"
"믿사옵니다!"

교단의 신도들이었다. 그들은 전신에서 검은 기운을 줄기줄기 내뿜으며 맨 몸으로 몬스터들을 쳐죽이기 시작했다.

"흐음..."


한  물러나  무리가 몬스터들을 학살하는 광경을 지켜보던 나는 각성자들이 신도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모습을 보고 흐뭇하게 웃었다.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슬쩍 물러나 신도들의 보조를 맞춰 몬스터를 썰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니 뿌듯한 감정이 치민다.


"괜한  한  아니구만..."

강원도 탈환과 각국의 헌터에게 악신의 축복을 내려 도움을 준 것이 교단 이미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긴 한 모양이다. 대략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실제로 체감하니 괜히 어깨가 으쓱 추켜올라간다.

그들 손에 의해 수백의 몬스터들은 간단히 제압되었다.
보스 몬스터가 없는 균열이었는지 몬스터를 꾸역꾸역 뱉어대던 균열은 시간이 지나자 저절로 닫혀버렸다.
저렇게 제 할 일만 하고 사라져버리는 균열과 던전을 보면 정말 화를 주체할 수가 없다. 대체 정체가 뭐길래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건지.


"한길아!"
"한길 선배! 괜찮아요!?"

그제야 학교로 되돌아가 장비를 갖추고 돌아온 학우들이 내 곁에 서서 거친 숨을 몰아셨다.

"아, 괜찮아. 헌터랑 신도들이 빨리 와서 알아서 처리해줬어."
"휴, 다행이다..."
"그래도 피해가 크지 않은 것 같네요?"
"진짜 십년감수 했네요..."


술기운이 남아 있어 얼떨떨한 애들의 얼굴을 보니 그저 웃음이 나왔다.

***

한가롭게 캠퍼스를 거니는 건 내게 상당히 인상 깊은 일이었다.
활기를 뿌려대는 젊음, 즐거움 가득한 목소리와 웃음 소리, 뜨거운 태양과 그것을 달래는 차가운 커피.


"오빠. 늙은이 같아."

게다가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아내까지.
마치 정말로 대학생이 된 것 같아 뭐라 형용할  없는 포근하고 즐거운 기분이 느껴졌다.

"남들이랑 똑같이 행동하는  왜 나만 늙은이야...게다가 늙은이 같은 놈을 좋아하는 게 누군데?"


주물주물, 짧은 핫팬츠에 갇힌 빵빵한 궁둥이와 토실토실한 허벅지를 주무르자 화들짝 놀라 팔에 안긴 묘란이 눈을 흘긴다.

"오빠! 다른 사람이 보니까 밖에선 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하핫. 귀여운 녀석.


이렇게 투닥거리는 것도 뭔가 청춘의 한 페이지 같아 감성을 간질여댄다.


"아! 한길아 안녕!"
"저번에 엄청 활약했다며!?"
"너 장학금 받는다는 소문이 있던데?"


친근하게 인사해오는 아이들을 보는 것 또한 꽤나 기쁘고 재밌었다.
그러나.

"응?"
"아!?"
"미탐지 던전이다!"
"모두 물러나! 물러나라고!"
"헌터 협회에 연락해!"
"교단이 더 빠르지 않을까?"

빌어먹을.
느닷없이 튀어나온 게이트가 모든 걸 망쳐버렸다.
균열처럼 몬스터가 무작정 튀어나오는 건 아니라 다행이지만, 평화롭고 안락하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깨져나가고 긴급한 긴장감이 감돈다.


"...에휴.."

던전과 균열이 급증하고 있다더니 이건 뭔가 심상치가 않네.

마음 같아선 당장 들어가 안에 있는 몬스터들을 쳐죽이고 싶었지만, 너무 눈에 뛰기에 그만뒀다.


***


헌터 실전 전투 학부에서는 달에 한 번, 던전 실습을 한다.
파밍용 던전을 가진 길드의 허가 하에 직접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이다.
12시간 동안의 토벌 수, 피해량, 사체 처리 등등의 요소를 성적에 반영하며 그 모든 과정은  파티를 추적하는 드론에 의해 영상으로 기록된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던전 실습을 시작한다. 나눠진 구역으로 신속하게 이동하도록."

교수인 진서정의 말에 4인 1조로 이뤄진 파티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3대 길드  하나인 마탑이 소유한 이 던전은 C급에 가까운 D급 던전으로, 학생 실습으로는 꽤 수준이 높은 편이라 한다. 출몰하는 몬스터는 홉 고블린과 오크, 거대 강철 고슴도치와 납치 두더지, 깃털 와이번 등등이라고 한다.

"애들아. 좀 천천히 가자."
"오빠! 늦장 부리지 마!"
"서두르지 않으면 도중에 신호가 올 수도 있어요."

우리 조는 나와 묘란, 전희성, 송순아였다.
1등 하지 못하면 그게 이상한 드림팀이라  수 있다.
너무 노골적이라 조금 양심에 찔릴 지경이다.
학교측에서 성적에 맞춘 파티를 짜주는 게 형평성이 좋겠지만, 학생들끼리 사람을 영입하고 파티를 짜는 것도 교육의 일환이라 한다.

스파르타...라기보다는, 그냥 파티 밸런스 맞추기 빡세서 변명하는 걸로 밖에 안 보인다. 하긴, 각성 계열, 성격, 전투력이 전부 다른 학생들을 평준화 시키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 반드시 불평불만이 나오기도  테고.

"여기야?"
"여기 같아."


우리들의 스타팅 포인트는 깊은 숲 속 어딘가였다.

반짝반짝.

리더인 전희성이 장착한 목걸이 형태의 블랙박스에서 붉은 빛이 몇  점멸한다.
실습을 시작한다는 신호다.


"이제 시작된 거야?"
"그래! 빨리 움직이자! 가장 먼저 보스 몬스터를 죽여야지!"


이 던전의 보스 몬스터는 학생들이 상대하기에는 조금 벅차기에 마탑 길드원들이 반쯤 죽여놓았다고 한다.
나는 서두르는 송순아를 뒤에서부터 끌어안으며 풍만한 가슴을 주물렀다.


"자자, 그렇게 서두르지 마. 그러다 몬스터한테 기습이라도 당하면 어쩌게?"
"그럴 일 없어! 흙을 다루는 내 능력은 일정 범위 안에 있는 기척까지 느낄  있게 해준다고?"
"그래? 참 좋은 능력이네. 됐으니까 천천히 가자."
"아흣...!? 잠..."
"희성이 너도 이리와."


훤칠한 전희성을 오른쪽에, 작은 송순아를 왼쪽에 끌어안은 채 가슴을 주무르자 그녀들은 몸을 비틀며 저항했으나 적극적으로 빠져나오려 하진 않았다.

"흐흐...젖꼭지가 부풀어오르는데?"
"진지하게 해줄래?"
"맞아! 이러다 꼴찌하면 책임질 거야? 지금쯤 다른 파티원들은 빠르게 나아가고 있을 거라고!"
"에이, 이 정도로 뭐 어때. 아, 섹스하고 싶다."


그녀들의 가슴을 마구 주무르며 얼굴과 목덜미에 키스 세례를 퍼붓자 그녀들은 합심해서  얼굴을 밀어낸다.

"지금은 좀 참아. 드론이 찍고 있다고."
"맞아! 이런 짓   걸리면 성적에 불이익이 올 수도 있어!"
"희성아, 순아야. 못 들었어? 섹스하고 싶다니까?"


히죽, 음흉하게 웃으며 발기되어 빵빵해진 바지를 들이밀자 그녀들의 얼굴이 발갛게 물든다.

"으응...나, 나중에  테니까..."
"그, 그래...나중에...질릴 때까지 하게 해줄 테니까 제발..."
"아하핫, 농담이야 농담. 마음 같아선 여기서 해버리고 싶지만...뭐, 어쩔 수 없지."

하늘을 수놓은 드론들을 노려보며 입맛을 다셨다.

"뭐, 좋아. 그럼 적당히 사냥이나...응?"


다음 순간, 던전 내부의 압력이 폭증하더니 묵직하게 머리를 짓눌렀다.

"뭐야?"

-치직...지지직...긴급 상황! 던전 변이...당장...탈출...

웬만해선 먼저 연락할 일이 없을 거라던 통신기에서 교수의 목소리가 울렸으나 이내 끊어졌다.

-크르르르르...!
"흠..."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난 트윈 헤드 오우거를 올려다보며 턱을 쓰다듬은 나는, 빠르게 비행하는 와이번과 날개 달린 악마종에 의해 드론이 격추되는 걸 보며 나직하게 한숨을 내셨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데? 던전에 균열에 던전 변이에...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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