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화 〉172회
너무 정신이 없었기에 진주, 블란체, 레아, 론스터 등을 밖으로 내보낸 뒤 옷을 입힌 라온과 마주앉았다.
"...라온."
"네. 아버지."
기쁘기 그지 없다는 듯 싱글벙글 웃으며 바라보는 아름다운 여신. 살결에서 빛이 나는 것 같은 고결함과 고고함을 지닌 그녀가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으니 백조가 까마귀 옷을 입은 것처럼 위화감이 장난이 아니다.
"어, 음...그래. 일단 축하해. 인간이 된 걸."
"감사합니다. 아,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라 할 순 없겠네요."
"응? 그럼 뭔데?"
"신격을 가진 인간이죠. 아버지처럼 말이죠."
"신위 스킬을 쓸 수 있다는 거야?"
"스킬...네. 비슷하죠."
"흐음...다른 능력은?"
"자세히 설명하면 복잡해지니 간단히 말하자면, 입력과 산출을 할 수 있네요. 현실에선 제한적이긴 하지만요."
"입력과 산출? 그게 뭔데?"
"요컨대 스텟을 제 마음대로 높이거나 줄일 수 있고 스킬, 혹은 공간을 창조할 수 있는 스킬이에요."
"......"
스케일이 다른데 그래. 제한이 있다고 했으니 자기 자신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거려나. 하긴, 다른 사람의 스탯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으면 개사기 중에서도 개사기지.
"내 몸을 뺏으려 했던 그 정체불명의 기운이랑 관련 있는 거야?"
"네. 맞아요. 프로그래밍과 비슷한 분야긴 한데...바이러스라고 해야 할까요? 그 때는 아버지 전용으로 세팅한 기운을 내뿜은 거죠. 의식을 죽이고 제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도록 말이에요. 그 기운을 입력과 산출로 만들어 냈답니다."
"살벌하구만...이리 와봐."
내 허벅지를 탁탁 두들기자 부드럽게 처진 눈매로 포근한 미소를 그린 그녀는 우아한 걸음으로 다가와 털썩, 엉덩이를 붙였다.
"흐읍..."
벼이삭에 백금을 섞은 것처럼 풍성하게 반짝이는 머리칼, 갈대 줄기처럼 가녀린 허리 라인과 농익은 과실처럼 영글어 탐스럽기 짝이 없는 유방, 가느다란 등허리와 풍만한 엉덩이의 부드러운 탄력, 뜨거운 체온, 심신이 편해지는 향기까지.
아, 존나 따먹고 싶다.
그런데 심장이 너무 미친듯이 뛰는데? 비정상적일 정도야. 이거 혹시...
"...라온."
"네. 아버지."
"내가 아빠라고 부르라 하지 않았나?"
"후훗. 왜 그러세요? 아빠."
"지금 내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는데."
"네."
"혹시 네가 뭔가 한 거야?"
"맞아요. 아빠의 호감을 얻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했어요."
"당장 그만둬."
"네? 하지만 그러려면 용모를 바꿔야만 하는데요?"
갸웃, 고개를 기울이는 라온.
"그게 무슨 말이야?"
"아빠가 말한 게 이 외형으로 유혹하는 걸 말했던 것 아닌가요?"
"...지금 다른 능력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다?"
"네."
"......"
하긴, 뭔가 하고 있었으면 에필리아가 가만히 있을 리 없지.
그럼 즉, 라온의 생김새가 순전히 내 취향에 직격이라는 소리인가?
"후우..."
등허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슬쩍, 가슴을 주무르는 것만으로도 손바닥에 짜릿한 쾌감이 올라온다.
"아앙, 우후훗. 인간의 육체에서 느껴지는 감각은 신기하네요."
더욱 뜨겁게 달궈진 라온의 몸이 살포시 기대온다.
"몸이 너무 민감한 거 아냐?"
"후훗, 걱정 마세요. 제가 이렇게 반응하는 건 아빠의 손길에 의해서만 가능하니까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저는 아빠에 의해 태어난 이후로 아빠에게 의존해 성장했어요. 그러니까 저는 오직 아빠의 영향 밖에 받지 못했고, 아빠의 마음에 들도록 외모를 조정할 수밖에 없었죠. 아빠의 관심을 끌고 마음에 들도록 말이에요. 그러니까 전 아빠를 위해 만들어진 거나 다름없어요. 다른 사람이 이런 식으로 만져도 전 아무것도 느낄 수 없을 걸요?"
"......"
내 손길에만 반응하는 전용 여신이라...시발, 존나 마음에 드네.
헤벌죽 풀어지려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억눌렀다.
"흐음, 글쎄?"
꽈악, 느닷없이 다가온 에필리아가 라온의 가슴을 꽈악, 쥐었다.
"아흐응!?"
어깨를 크게 떨며 허리를 활처럼 젖히는 라온. 그 모습마저도 고아해서 침이 꿀꺽 넘어간다.
"히힛. 주인님 전용은 아닌 것 같은데?"
"크윽, 에필리아! 힘을 사용하는 건 반칙이에요!"
"반칙은 개뿔. 라온 언니는 어디까지나 후순위거든? 그러니까 끼 부리지마. 언니들 눈 밖에 나고 싶어? 본처는 언니들이라고."
에필리아가 묘란, 클라라, 샤미엘, 카론을 가리키자 그녀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다가, 잘 모르겠다는 듯 순진한 미소를 머금는다.
"글쎄. 본처가 여러 명일 수 있나? 그냥 아빠가 가장 좋아하면 본처인 것 아닌가?"
어이쿠, 제대로 멕이는 한 방이다.
그 한 마디에 내 여자들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진다.
그나저나 에필리아는 라온에게 간섭할 수 있는 건가. 여러모로 라온의 천적이로군.
"아빠. 나 싫어?"
목을 휘감은 라온이 코 닿을 거리에서 눈망울을 찰랑이며 교태를 부린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자꾸 웃음이 나오네.
"아니."
"그럼 좋아?"
"좋아. 개좋아."
"에헤헷...!"
꽈악, 안겨온 라온이 내 여자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상은 간다. 내 여자들의 기세가 흉흉해진 걸 보면 꽤나 강력한 광역 도발이었겠지.
"라온. 아무리 네가 내 취향 저격이라 해도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는 녀석을 품을 생각은 없어. 알아 들어?"
"어머. 아빠. 무슨 소리에요? 제가 언제 시비라도 걸었어요?"
"......"
이 녀석 은근히 얼굴 두껍네. 하지만 그런 점도 마음에 드니 문제다.
존대랑 반말은 섞어 쓰는 것마저 귀여우니 말 다했다.
"크흠...어쨌건, 타이밍이 나쁘네. 하필 이런 때 몸이 완성되다니...유감스럽지만, 당분간은 너랑 놀아주기 힘들겠다."
"응? 왜요? 아빠."
"상황이 아주 안 좋아. 던전과 균열이 미친듯이 쏟아지고 있거든."
"아, 그거요? 에필리아에게 들었어요."
"...언제?"
"아하핫. 에필리아가 그래도 언니라고 주기적으로 찾아와서 이것저것 말해줬거든요."
"허어, 그랬어?"
내가 돌아보자 에필리아는 어째선지 찔끔 어깨를 떨고는 슬쩍 시선을 피했다.
"아 뭐...네. 그랬어요."
"게다가 이것저것 협박도 당했다니까요?"
"협박?"
"네! 제 능력은 위험하다면서 넘기라고 얼마나 을러대던지...무서워서 혼났어요."
"...에필리아. 왜 그랬어?"
"아, 그게..."
시선을 피하며 삐질거리던 그녀는 계속된 내 시선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라온의 능력이 있으면 주인님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랬어요!"
"...호오."
"주인님 허락 없이 싫어할 행동해서 죄송해요...용서해주세요."
용서를 비는 그녀의 눈망울은 촉촉했고 눈동자는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문득, 그 모습을 보니 에필리아도 감정이 참 풍부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능력을 얻기 위해서 라온을 협박했다니, 탐욕 없이는 하기 힘든 인간적인 행동 아닌가.
"아하핫."
그 에필리아가 탐욕이라니. 재밌네.
"나는 기쁘다. 에필리아. 네가 점점 인간적으로 변해가는 게 말야."
"...용서해주시는 건가요?"
슬쩍 눈치를 살피는 모습에 픽 웃은 나는 그녀에게 손짓했다.
"바지 벗고 여기 앉아."
"네?"
내 옆자리를 가리키자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변한다. 그곳에는 라온의 매끈하고 긴 다리가 쭉 뻗어 있었기 때문이다.
"라온에게 잘못을 했으니 라온에게 벌을 받아야지?"
"하, 하지만 주인님..."
"왜? 설마 자존심 상하기라도 해? 와, 우리 에필리아 진짜 사람 같아졌네?"
"으윽...!"
"그럼 더 해야지. 크크."
내가 음흉하게 웃자 샐쭉하게 노려본다. 오, 저런 표정도 짓네.
"......"
풀썩, 내 곁에 앉은 에필리아가 새침한 얼굴로 이쪽을 외면했다.
"라온. 에필리아의..."
"알아 아빠. 괴롭혀주면 되는 거지?"
말하기도 전에 뻗은 라온의 두 발이 축 늘어진 에필리아의 자지를 쿡쿡 건드린다.
과연, 나를 위해 만들어졌다더니 취향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군.
"크웃...!"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굴욕과 수치심으로 물든 에필리아의 얼굴은 매우 신선했다.
"자자, 어차피 얼마 버티지도 못할 텐데 뭘 그리 힘을 주고 있어?"
라온의 발이 유려하게 자지를 짓밟고 문지르자 자지가 점점 팽창하더니 고개를 살살 들어올린다. 에필리아는 최대한 저항하려는 것 같았으나 계속된 자극에는 이길 수 없는 모양이다.
"우후훗, 발딱 섰네. 귀여워라...아니, 징그러운 건가?"
쪼물쪼물, 처덕처덕.
하얗고 고운 발의 움직임을 따라 에필리아의 자지가 바들바들 떨리더니 쿠퍼액을 줄줄 흘렸다.
한동안 자지를 괴롭히던 라온은 다시 나를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는다.
"그런데 아빠."
"응?"
"던전과 균열 때문에 힘든 거야?"
"아...그렇지 뭐."
"그럼 내가 해결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응? 네가 어떻게?"
"말했잖아? 내 능력은 입력과 산출이라고."
"그런데?"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녀는 답답하다는 듯 볼을 부풀렸다.
"어휴...아빠의 능력을 증폭시켜줄 수 있다는 말이야."
"...엉?"
"예를 들면 스킬 '성역'의 범위를 지구 전체로 넓힌다던가?"
"...뭐라고!? 정말이야!?"
너무 놀라서 그녀의 턱을 잡아 고정시키고 두 눈을 빤히 들여다봤다.
"아앙. 박력 넘치는 아빠 멋져. 좋아."
"제대로 대답해!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당연하지. 그럼 내 능력을 뭐라 생각했던 건데?"
"난 당연히 너 자신에 한해서만 가능한 능력인 줄...네 능력 완전 개사기잖아! 밸붕! 아, 아니, 잠깐, 그럼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벌떡 일어난 나는 라온을 내 여자들 앞에 세웠다.
"아빠?"
"라온. 당장 내 여자들의 스텟 올려. 모든 스텟을 최대치로."
"어, 어어?"
"당장."
라온은 무어라 말하려 했지만, 내가 강권하자 할 수 없다는 듯 묘란, 클라라, 샤미엘, 카론, 에필리아를 차례대로 쳐다봤다.
"오빠...!"
"여보..."
감동한 내 여자들의 얼굴을 보자 순간 치솟았던 열기가 식어버렸다.
민망함에 머쓱하게 뒤통수를 긁적이게 된다.
"크흠, 커흠...너희들이 너무 약하니까 내가 자꾸 걱정되잖아."
"어휴...아빠. 이런 게 염장이라는 거죠? 좀 보기 싫네요."
라온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말한 직후, 정체불명의 기운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형태도 없고 색도 없는 기운.
라온의 말에 따르면 '입력'의 기운이 다섯 여자의 몸에 순차적으로 스며들었다.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
"산출 완료. 다 됐어요. 아빠."
"그래? 애들아. 어때?"
"그다지 달라진 걸 모르겠는데? 뭔가 하긴 한거야?"
내 말에 다섯 여자들은 자신들의 몸을 내려다봤지만,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확실히 겉보기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언니들 모두 눈을 감고 자신의 몸에 있는 마석에 집중해보세요."
"응? 알겠어."
라온의 말에 눈을 감은 그녀들은 곧, 몇 차례 몸을 움찔거리더니 두 눈을 부릅떴다.
"우와, 이게 뭐야...?"
"굉장하네..."
감탄사를 연발하는 그녀들의 반응에 나는 길게 목을 뺐다.
"왜 그래? 어떤 느낌인데?"
"엄청난 힘이 느껴져. 이 정도면...그냥 무적인 거 아냐?"
묘란의 말에 다른 여자들을 쳐다보자 그녀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휴우..."
어느 정도인진 모르겠지만, 반응을 보니 이제 그녀들이 던전으로 간다 해도 걱정을 조금 덜 할 수 있겠군.
"라온. 그 능력은 제한이 없는 거야?"
"당연히 무한하진 않죠. 최대치가 있어요. 드림아웃 기준으로 스텟의 한계는 99999 정도에요. 스킬은 아직 실험해보지 않아서 모르겠네요."
"99999라고? 엄청나네. 아, 뒷북이긴 한데 혹시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있는 건 아니지?"
"없어요. 있으면 제가 진작에 말했을 거에요. 게다가 문제가 될 수 있는 스텟은 아예 건드리지도 않았고요."
"문제가 될 수 있는 스텟? 그게 뭔데?"
"아빠의 '원한' 스텟 같은 거요."
"아..."
단박에 이해가 갔다. 그게 최대치가 되면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상상이 안 간다.
"어찌 됐든 정말 굉장한 능력이네...신기하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간단히 말하자면 마석을 매개체로 사람 자체를 아티팩트화 하면 되는 거에요. 아빠처럼요. 그래서 마석도 없고 각성하지도 않은 일반인의 스텟을 올리는 건 조금 까다로워요. 자세히 설명해 드릴까요?"
"아니. 됐어.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 테니."
"아하핫."
"그럼, 다음은 스킬을 실험해보자."
"좋아요. 어떤 스킬부터 하실 건데요?"
"음..."
당장 떠오르는 건 악신의 축복과 성역이다.
이것만 있어도 인류가 몬스터를 상대하는 게 훨신 수월해질 것이다. 악신의 축복 때문에 전 인류가 내게 경애와 숭배를 바치게 되겠지만...죽는 것보단 낫지 않겠는가?
"먼저 악신의 축복으로."
"네. 아리를 불러주세요."
"그래. 아리. 나와."
-쉬릭, 쉬리릭...
거대한 검은 뱀이 갈라진 혀를 낼름거리며 또아리를 틀자 나는 감정을 끌어올려 원념의 파동을 전력으로 일으켰다.
"후우..."
"준비 됐어요? 그럼 지금부터 아리에게 제 기운을 불어넣을게요."
"그래."
라온에게서 뿜어져나온 무형무취무색의 기운이 아리의 몸으로 스며드는 게 느껴진다.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아빠. 됐어요. 이제 악신의 축복을 명령하세요."
"...아리."
-알겠습니다.
즉시 원념의 파동을 받아들인 아리가 그것을 증폭했는데, 규모가 이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했다.
"와우..."
-쉬이이이익...!
뱀 특유의 숨소리와 함께 천장을 통과한 원념의 파동이 전 세계로 뻗어나간다.
그것을 느낀 나는 씨익, 웃어보였다.
-...음. 주인님. 문제가 조금 생겼습니다.
"응? 무슨 문제라도 있어?"
갑작스러운 아리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악신의 축복을 거부하는 인간이 있었습니다.
"거부? 그게 가능한가?"
-그게...약간 그 녀석들과 비슷합니다.
"그 녀석들?"
내 의문에도 스스로도 확신이 없는 것처럼 잠깐 눈동자를 굴리던 아리가 혀를 몇 번 낼름거린다.
-신성교 말입니다. 신성력을 사용해서 악신의 축복을 튕겨냈습니다.
"...뭐?"
황당하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다.
현실에서 신성교라니?
-게다가, 그 종류가 여러 가지입니다.
"종류가 여러 가지라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신성력의 종류가 저마다 다릅니다. 하나 같이 주인님의 기운과 상극이라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요. 게다가 규모와 위력도 저마다 다릅니다.
"...그게 뭔.."
-게다가, 방금의 축복으로 인해 그들도 주인님의 존재를 느낀 것 같군요.
"......"
뭔진 몰라도. 벌집을 건드린 기분이었다.
그것도 아주 거대한 벌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