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107화
오후는 난희가 출근 전에 차려놓은 아점을 챙겨 먹고 느긋하게 집을 나섰다. 그런데 가지고 나간 가방이 2개였다. 하나는 평소 섹스 도구들을 갖고 나갈 때 쓰던 백팩이었고, 다른 하나는 백팩 만한 크기의 손가방이었다.
그런데 특이한 건 어깨에 맨 백팩은 텅 빈 것처럼 가벼워 보였고, 오히려 손가방 쪽이 뭔가 가득 든 것처럼 보였다. 보통 뭔가 담아서 옮길 일이 있으면 손에 드는 가방보단 어깨에 메는 백팩에 먼저 채워 넣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째서...
아무튼 그런 오후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호텔이었다. 그곳은 지난 번 난희와 데이트를 했을 때 난희의 똥꼬를 처음 개통해줬던 바로 그 스위트룸이 있는 곳이었다. 오후는 그 스위트룸을 또 예약했다. 그리고 그 방에 손가방을 놓은 뒤 백팩만 다시 메고 나와 설희가 다니는 S대로 향했다.
마침 수업이 끝나고 하교하던 설희는 오후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달려왔다.
“오빠!”
오후는 허세 가득한 얼굴로 시니컬하게 웃으며 손만 살짝 들어 대꾸했다.
“어.”
설희는 유독 더 방긋방긋 웃으며 살갑게 굴었다.
“언제 왔어요? 많이 기다렸어요?”
오후의 비위를 최대한 거스르지 앉고자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오후는 그런 설희의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지만, 일부러 모른 척 시치미를 떼며 대꾸했다.
“아니, 방금 왔어. 가자. 난희 일 끝날 때 거의 다 됐다.”
“네.”
그런데 오후를 따라가던 설희는 자꾸만 오후가 어깨에 메고 있는 백팩 쪽으로 눈길이 갔다. 가방 안에 뭐가 들어 있는 지 궁금했던 것이다.
‘설마 또 이상한 물건들이...’
아니, 뭔가 성과 관련된 물건들이 들어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열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순 없고... 결국 고민 끝에 오후를 넌지시 떠봤다.
“오빠...”
“응? 왜?”
“혹시...”
“어, 말해.”
“저 선물 뭐로 준비하셨어요?”
오후는 피식 웃었다.
“왜? 궁금해?”
“아니 뭐 그냥...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도 되고 해서요...”
“저번처럼 난희 몸으로 준비하는 건 아닌지 궁금한 건 아니고?”
“예? 아, 아니 그게...”
그러나 얼굴엔 이미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게 다 드러나 있었다. 오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마. 똑같은 건 하지 않을 거니까.”
“네...”
하지만 전혀 걱정 안 되지가 않았다. ‘똑같은 걸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아무 것도 안 한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는 사이 둘은 난희와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에 도착했고, 곧 퇴근하고 온 난희와 만났다.
“왔냐?”
“어.”
그런데 난희는 바로 설희 옆에 바짝 달라붙어 붙어 귓속말로 물었다.
“오늘 뭐 한대? 알아봤어?”
설희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그래? 하아...”
난희 또한 금세 얼굴에 근심이 가득해졌다. 오후는 피식 웃었다.
“뭘 그리 속닥거리냐?”
둘은 동시에 화들짝 놀랐다.
“응? 아, 아냐. 아무 것도.”
“에? 아, 아무 것도 아니에요.”
“가자, 일식집 예약해뒀어.”
“어...”
“네...”
일식집에 도착한 셋은 별도로 마련된 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마침내 음식들이 코스로 차례차례 나오기 시작했다.
“생일 케이크는 이거 먹으면 배부르니까 나중에 호텔 가서 촛불 켜자. 그래도 돼지?”
“네, 괜찮아요.”
“그 대신 선물부터 줄게.”
오후는 그러면서 가방에서 준비해온 선물을 꺼냈다. 설희와 난희는 그 찰나를 놓칠세라 얼른 눈을 부릅뜨고 가방 안을 쳐다봤다. 그러나 오후가 가방의 지퍼를 손이 들어갈 만큼만 아주 살짝 열어 선물을 꺼냈기 때문에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오후는 그런 둘의 속내를 다 눈치 채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척 시치미를 떼며 선물을 설희한테 내밀었다.
“자, 열어 봐.”
오후가 내민 보석 상자 안에는 반지가 들어 있었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라 2개였다. 하나는 남자용이었다. 그렇다는 건... 커플링?! 설희는 깜짝 놀라 오후를 쳐다봤다.
“이건...”
오후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그러곤 보석 상자에서 반지를 집어 설희의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설희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와아... 감사합니다!”
커플링이라니... 너무도 좋았다. 게다가 난희는 빼고 자기와 오후만의 커플링. 오후가 남은 반지를 제 손에 끼려하자 설희는 화들짝 놀라며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다.
“제가 끼워드릴게요.”
“그럴래?”
“네.”
설희는 오후의 맘이 바뀔세라 얼른 오후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줬다. 그러곤 오후 손 옆에 자기의 손을 나란히 대보며 좋아라 했다.
“헤헷.”
오후는 피식 웃었다.
“그렇게 좋냐?”
“네, 엄청 좋아요!”
“훗, 녀석.”
설희의 복종심이 증가했다.
- 복종심: 392 (↑16)
- 분노: 10 (↓10)
오후는 난희를 슬쩍 쳐다봤다. 오후와 눈이 마주친 난희는 흠칫 놀라며 시선을 피했다. 설희와 오후의 커플링을 의식하는 것이었다. 오후는 피식 웃으며 가방에서 또 다른 보석 상자를 꺼내 난희한테 건네줬다. 난희는 얼떨떨해하며 오후를 쳐다봤다.
“이건 뭐...?”
“열어 봐.”
난희는 혹시나 하며 상자를 열어봤다. 설희는 옆에서 마찬가지로 ‘설마...’ 하며 그것을 바라봤다. 그리고 역시나 상자 안에선 반지가 나왔다. 오후와 설희의 반지와 디자인이 아주 비슷한, 아니 크기만 다를 뿐 완전 똑같은 반지였다. 오후는 난희의 손가락에 그 반지를 끼워주었다. 난희는 배싯 웃었다.
“...”
방금 전의 소외감이 단번에 완전히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복종심도 올랐다.
- 복종심: 400 (↑8)
- 분노: 5 (↓5)
반면 설희는 살짝 실망을 한 눈치였다. 완전 좋다가 만 기분이었다. 복종심도 도로 조금 떨어졌다.
- 복종심: 390 (↓2)
- 분노: 10 (-)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뭐, 지난 번 언니 생일 때 나도 목걸이를 받았었으니까...’
오후는 그런 설희한테 물었다.
“실망했냐? 너한테만 주는 게 아니라서?”
설희는 화들짝 놀라며 속내를 감췄다.
“아, 아뇨...”
“이번 생일만이야.”
“네?”
“둘이 같이 선물해주는 건 이번 생일만이라고. 첫 목걸이랑 반지는 다른 선물들과는 달리 의미가 있는 거잖아? 그래서 누구 한 명만 주기 뭐해서 같이 준 거야. 내년 생일 때부턴 각자 줄게.”
“네...”
“그럼 먹자.”
“네.”
“응.”
그렇게 셋은 차례로 나오는 코스 요리들을 맛있게, 그리고 배불리 먹었다.
“후~, 배부르다...”
“저도요. 숨도 못 쉬겠어요. 하~.”
“나도... 후우...”
난희는 그러더니 불쑥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화장실 좀 다녀올게.”
그러자 설희도 바로 따라서 일어났다.
“저도요.”
“그래. 다녀 와.”
난희와 설희는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약속이나 한 듯이 치마의 단추를 하나씩 끌렀다.
“휴우~, 배 터지는 줄 알았네.”
“저도요...”
실은 둘 다 다른 볼일이 있어서 화장실에 온 게 아니라 치마 단추를 끌르고 한숨 돌리려고 온 것이었다. 둘은 그러고선 살짝 무안해진 마음에 서로를 보며 피식 웃었다.
“훗.”
“헤헷.”
그러곤 차례로 변기칸에 들어가 오줌을 싸며 얘기했다.
“오늘은 그냥 넘어가려나?”
“뭐가요?”
“저번처럼 이상한 짓 하는 거.”
“아...”
“가방에도 뭐 없는 것 같지?”
“네. 꼭 속이 빈 것처럼 가벼워 보였어요.”
그러나 난희는 여전히 의심이 걷히질 않았다.
“흐음... 아무 것도 안하고 그냥 넘어갈 녀석이 아닌데...”
“그날 우리가 싫은 티를 많이 내서 이번은 그냥 넘어가려는 거 아닐까요? 아무리 그래도 오빠도 이젠 우리들 기분을 조금은 신경 써주고 있잖아요?”
“그런가? 그치만... 흐음...”
하지만 둘은 결국 확실한 답을 얻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의심을 걷지도 못한 채 화장실에서 돌아왔다. 그러자 오후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도 화장실 좀 다녀올게. 후식 나왔으니까 먹고 있어.”
“네.”
오후가 방문을 닫고 나가자 난희와 설희는 바로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를 쳐다봤다.
“열어볼까?”
“그럴까요?”
오후의 백팩을 열어보자는 뜻이었다. 하지만 선뜻 실행에 옮기진 못하였다. 오후의 귀신같은 능력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오후는 그간 마치 천리안이라도 가진 것처럼 둘이 하는 짓을 빠짐없이 체크해냈었다. 처음엔 CCTV를 해킹한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도 해봤지만, 지내고보니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았다. CCTV가 없어도 오후의 천리안 같은 능력은 어김없이 발휘됐었다. 그렇지만...
결국 둘은 이번엔 오후가 알아채지 못하길 바라며 오후의 백팩을 열어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하여 같이 백팩의 지퍼를 열고 가방 안을 살펴봤는데... 아무 것도 없었다.
“뭐야? 아무 것도 없잖아?”
설희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설마...”
그리고 동시에 둘의 폰에 기다렸다는 듯이 톡이 왔다. 설희와 난희는 흠칫 놀라며 떨리는 손으로 폰을 확인했다. 거기엔 오후로부터 이런 톡이 와 있었다.
- 남의 가방은 왜 뒤져 봐?
설희와 난희는 온몸에 소름이 좍 돋았다.
“엣?!”
“앗!”
폰을 들고 있던 손이 덜덜덜 떨렸다.
“어째서...”
사방을, 그리고 천장을 두리번 거려봤지만 역시나 CCTV 같은 건 찾을 수 없었다.
오후가 화장실을 간 건 다 이것을 노리고 그런 것이었다. 화장실에서 오줌을 싸며 ‘폰 주변을 엿볼 수 있는 뷰재킹 능력’으로 설희와 난희가 가방을 열어보는 것을 감시하고 있다가 바로 톡을 보낸 것이었다.
‘훗, 당황한다 당황해. 큭큭.’
설희와 난희는 오후가 화장실에서 돌아올 때까지 아무런 답톡도 보내지 못했다. 괜히 거짓 변명을 했다간 더 큰일이 날 수 있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오후가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오자 둘은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마냥 양손을 무릎 위에 얌전히 모으고 잔뜩 주눅이 든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으으...”
“흐으으...”
오후는 자리에 앉아 후식으로 나온 귤을 포크로 찍어 먹으며 빈정댔다.
“너네 둘 많이 컸다? 이제 나 없을 때 몰래 가방도 뒤져 보고 말이야.”
설희는 하얗게 질려 바들바들 떨었다.
“그, 그건...”
“왜 변명하려고? 해 봐.”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잘못했으면 바로 용서부터 빌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그게...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전 단지...”
“단지? 뭐?”
“에? 그, 그게...”
설희는 당혹스러웠다. ‘단지’라는 말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을 뿐 그 이후에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당황한 나머지 말버릇처럼 그렇게 말이 나왔을 뿐이었는데... 오후는 바로 그걸 꼬투리 잡았다.
“용서를 비는 데에 진정성이 없네? 막 나오는 대로 말하니까 말이 중간이 막히는 거지. 안 그래?”
설희는 하얗게 질리다 못해 완전 사색이 돼 버렸다. 마치 뱀 아가리에 목덜미가 물린 하얀 새앙쥐같았다.
“으으...”
오후는 난희를 찌릿 노려봤다. 난희는 거듭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앗!’
평소 도도한 난희답지 않게 덜덜 떨고 있었다. 손도 입술도. 그 떠는 모습이 설희 못지않았다.
‘으으...’
오후는 씩 웃으며 손을 털고 일어났다.
“그럼 벌은 다음 장소로 가서 받기로 하지. 여기선 제대로 된 벌을 내릴 수 없으니까 말이야. 후후.”
설희와 난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엣?!”
“에?!”
그러나 오후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자 같이 기겁하며 벌떡 일어났다.
“아, 네...”
“네...”
오후는 난희마저 급 존댓말을 하는 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후후, 녀석.’
둘의 복종심이 대폭 증가했다.
- 오난희
- 복종심: 412 (↑12)
- 분노: 4 (↓1)
- 배설희
- 복종심: 402 (↑12)
- 분노: 9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