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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화 〉021화 성별의 물약? (03) (21/99)



〈 21화 〉021화 성별의 물약? (03)

켈레이드가 도착한   뒤로도 거의 20분은  지나고 나서였다. 그 20분 동안 이졸드는 끊임없이 나를 짜증나게 했다. 그래도 만약에부터 시작해서, 낳게 되면 어쩔 거냐느니, 그렇게 나쁘진 않을지도 모른다느니…….

내가 참다 못해 또 다시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이졸드는 조용해졌다. 그때서야 손에 뭔가를 들고 돌아와서는, 켈레이드도 내가 지른 소리를 들었는지 내 눈치를 슬금슬금 보는데, 그게 또 기분이 더러웠다.


아니, 이졸드든 켈레이드가 뭔 짓을 했어도 내 기분은 더럽기만 했을 것이다. 내 태도가 문제라는  나도 알  있었지만, 그래도 그게 내가 마음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되는  아니었다. 나는 머뭇대는 켈레이드를 향해 내뱉었다.


“그래서?”


“네?”

켈레이드의 되물음에 다시 짜증이 솟구쳤다.


“왜 약효가 안 듣는 거냐고!”

“아, 죄송합니다.”

켈레이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아마도…….”

“빨리 말 안 해?”

“아저씨, 잠깐 진정 좀 하고 말하자.”


내 어깨를 잡은 이졸드의 손을 뿌리치며 내가 말했다.

“아, 너는 좀 가만 있어!”


“아저씨 걱정해서 하는 말이잖아!”


“뭘  걱정해?  뱃속에 있는 니 애 걱정하는 거겠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이졸드의 얼굴이 굳었다. 내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이래서는 내가 임신했다는 걸 받아들인 것 같잖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말을 잘못했다고 말을 바꿀 수도 없었다. 이졸드가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시선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이졸드를 노려보는 것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여기서 밀리면 앞으로 영영 밀린다.

“아니, 아저씨 지금 흥분했어. 일단 진정하고 켈리 하는 말 들어 봐.”

“흥분? 아니? 나 지금 멀쩡한데?”

“내가 그런 뜻으로 말한 거 아닌 거 알잖아.”

“그럼 뭔데!”

아까부터 임신 가지고 속을 그렇게 긁어 놓더니, 이젠 날 걱정하는 척 하는 꼴이 역겨웠다. 이졸드는 할 말이 없는 건지, 아니면 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눈썹을 찌푸리고 입을 우물거렸다.. 나는 그런 이졸드에게서 다시 몸을 돌렸다.

“켈레이드!”

“네, 네!”

“시끄러워!  안 먹었으니까 조용히 대답해!”


켈레이드는 나를 보고 있지 않았다. 내 뒤, 이졸드 쪽을 쳐다보면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에게 내가 다시 소리쳤다.


“어딜 보는 건데! 똑바로 집중 안 해?”

“죄, 죄송합니다.”


켈레이드는 고개를 푹 숙였다. 한 대 내리찍어 주고 싶은 모습이었지만, 그랬다가는 이 년 죽겠지. 나는 화를 삭이며 말했다.

“그래서, 어떻게  건데?”

켈레이드는  눈치를 슬슬 살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화, 확실히 임신한 경우에는 물약이  듣는 게 맞긴 했습니다만…….”


젠장.


“하지만, 제 사견입니다만……. 그 짧은 시간에 임신한다는 건, 아마 어렵지 않을까요……?”

생각해 보면 그렇긴 했다. 근데 그러면  물약이 안 통했다는 거지?

“그럼 니 생각엔 뭐가 원인인데?”


“그건 저도 모릅니다.”

“야.”


“네?”


나는 이를 빠드득 소리가 나게 갈며 말했다.

“이게 진짜 뒤질라고……!”


“죄, 죄송합니다!”

켈레이드는 허리를 깊이 숙였다. 거의 180도로 접힐 것 같은 각도였지만, 그렇게 절을 한다고 해서 내 화가 가라앉을 리는 없었다. 나는 켈레이드의 얼굴을 발로 걷어찼다.

“꺅!”


“뭐,  하는 거야?”

와장창, 쨍그랑 소리를 내며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조금은 나아졌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속이 확 풀린다거나 하진 않았다.

이졸드가 다급하게 켈레이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나는 둘을 남겨 두고 켈레이드의 연구실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켈레이드의 연구실을 뒤졌다. 온갖 약품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나는 마법이나 연금술을 전혀 모르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나한텐 감정 스킬이 있으니까.

나는 손에 잡히는 물약을 아무 거나 집어들고 감정을 시도했다.

-치유의 물약
-복용자를……..


 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나오는  중간에 멈추고 물약을 뒤로 던졌다. 다른 물약을 집어들고 감정했다. 이번엔 마력 물약이었다. 이것도 필요 없다. 역시 뒤로 던졌다.


휙, 쨍그랑, 휙, 쨍그랑.


수십 병의 귀중해 보이는 물약들이 깨져서 사라졌다. 그중에는 유독물질도 있었고,  뒤에서 폭발이 몇 번 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그런 데 신경쓰지 않고, 켈레이드의 물약들을 하나하나 감정하고, 깨뜨리기를 반복했다.

아무리 찾아 봐도 지금 상황을 반전시킬 만한 물약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다시 짜증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왜 도움될  하나도 없는 거냐고!”

“세상에, 대체 얼마치 물약을 이렇게 다 깨먹은 거야?”

등 뒤에서 이졸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뒤를 돌아봤다. 거기엔 켈레이드를 부축한 이졸드가 서 있었다.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를 숨기지 않고 녀석을 노려보며 말했다.

“방해하지 말고, 닥치고 있어. 니가 내 상태 해결해  거 아니면.”


“……아직 뭐 마시진 않은 것 같네.”

이졸드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내가 뭘 마시든 니가 뭔 상관인데?”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도 켈레이드가 고이 병입해둔 물약들은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깨져 나가고 있었다.

오우거 힘의 물약, 현자의 차, 고블린 지능의 물약……. 고블린 지능의 물약? 젠장. 무슨 저주받은 아이템인 거냐. 나는 그걸 등 뒤로 집어던졌다. 다른 물약들처럼, 쨍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뒤로도 수십 병의 물약이 깨졌다. 아니, 십수 병인가? 일일이 헤아려 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나한테 도움  되는 그깟 물약 따위가  개가 깨졌든 무슨 상관인가.

그렇게 물약들을 마구 깨부수고 있으니 원래 목적을 잊어버릴  같았다. 중간에 감정되지 않는 물약도 집어던질뻔 했다가 간신히 손을 멈추고 그걸 도로 붙잡았다. 나는 그 물약을 켈레이드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이거 무슨 물약인지 기억해?”

켈레이드는 으으, 하고 신음소리를 내며 고개를 들었다. 녀석의 눈이 크게 뜨였다.

“그, 그거……. 피임-”


피임? 하는 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약병 뚜껑을 따고 내용물을 입 안으로 흘려넣었다. 코가 다 아릴 정도로 시큼한 맛이었다.

“으윽.”


“그, 그런!”

“아, 아저씨! 그걸 그렇게  먹으면……!”

털썩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졸드가 내 곁으로 다가오는 낌새가 느껴졌다. 나는 이졸드의 손을 뿌리치고 말했다.

“가까이 오지 마.”

이졸드는 내게서 한 걸음 물러나며 손을 들었다. 젠장. 이러니까 내가 무슨 정신병자 인질범이라도  것 같았다. 나는 몸을 돌려 녀석을 노려보며 말했다.


“하. 이걸 어쩌냐? 피임약 먹어 버렸는데? 니 애 낳을 일은 영영…… 아흑?”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갑자기 갑자기 업적이 떴다.

##용족의 피임약을 사용했습니다! 특수 업적 <용처럼 피임하기>를 얻었습니다!
##특수능력 <산란체질>을 얻었습니다(질내사정 당할 시 무정란을 낳게 됩니다).
##용족의 피임약을 사용했기 때문에, 용족의 피임약의 상세정보가 공개됩니다.


……뭐?

나는 허겁지겁 상태창을 열었다. 아니, 열려고 했다. 그러기 전에 아랫배가 참을  없이 뜨거워졌다. 발정났을 때와는 전혀 달랐다. 그러니까, 배가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배가 압박받는 느낌이 괴로웠다. 고개를 숙이니 내 커다란 가슴골 사이로 분명히 튀어나온 내 아랫배가 보였다. 평소보다 주먹 두 개 정도 크기만큼 부풀어 올라 있었다.

“아, 아저씨?”


“뭐, 뱃속에 뭐가 들었어!”

그 말을 들은 이졸드가 내게 달려왔다.


“아읏!”

이졸드는  아랫배에 손을 가져다 댔다. 덜그럭거리는 뭔가가 이졸드의 손 너머에서 느껴졌다. 한  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게 있는 위치는…… 분명히 자궁이었다. 이졸드가 나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알?”

이졸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배를 몇 번 더 눌렀다.

“하으윽, 그, 그만!”


 안쪽에서 뭔가가 덜그럭거리는 게 느껴졌다. 조그맣고 동그랗고 딱딱하게 덜그럭거리는 것.  느낌에도 그건 분명히 알이었다.


이졸드는 내 배에서 손을 떼고, 이번엔 귀를 바싹 들이댔다.  속을 몇  덜그럭거리게 만들더니, 이졸드는 몸을 세우고 나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번 쉬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알 리가 없잖아! 하고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하지만 입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이졸드는 이번엔 땅바닥에 널부러진 켈레이드를 향해 말했다.


“켈리?”


“ㄴ, 네. 주인님.”

“설명해 봐.”




-용족의 피임약
-유정란을 낳고 싶지 않은 용족의 탁월한 선택! 사용자가 원하지 않으면 절대 임신하지 않는다. 다만, 질내사정당하면 무정란을 낳는 부작용이 있다. 사용자가 알을 낳는 종족이 아니면 산란체질을 얻게 되니 주의!
-사용 효과
-임신을 원하지 않으면 수정하지 않는 체질이 됩니다.
-임신을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 질내사정당하면 무정란을 낳게 됩니다.
-산란체질이 아닐 경우, 특수능력 <산란체질>을 얻습니다.


나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머리를 감싸쥐고 상태창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졸드는……. 켈레이드한테 설명을 다 듣더니, 심각한 표정을 하고 웃음을 참기 시작했다.

“풉. 흠, 흠. 그러니까 아저씨 뱃속에 알이…….”


 말 뒤에는 또다시  하는 비웃음이 따라붙었다. 나는 이졸드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만 좀 쳐 웃어!”


“안 웃었…… 푸하하하!”


입가를 일그러뜨리더니, 결국은 배를 잡고 웃음을 터뜨리는 이졸드. 녀석의 웃음소리가 듣기 싫어져서 나는 귀를 틀어막고 고개를 푹 숙였다.  때문에 불룩하게 부풀어 오른 치마 윗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씨발!  좆도 니미 씨발! 아!”

눈 앞이 캄캄했다. 여자가 된 것도, 이졸드한테 툭 하면 발정이 나는 것도 적응이 안 돼서 미치겠는데 이젠 알을 낳아야 된다고?


내 청각은 예민했다. 귀를 막고 있어도 이졸드의 이죽거리는 소리가 고막을 찔러들려왔다.

“그래도 다행이네. 태아가 아니라 알이 든 거라서.”

나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소리를 지르려고 그런 건 아니었다. 그냥…… 속이 너무 답답했다. 그렇게 하면 속에 생긴 딱딱한 게 사라질까 싶었다. 당연히 그럴 리가 없었다.


오히려 숨을 들이마시려고 허리를 펴면 뱃 속에 들어찬 알들이 덜그럭거리는 게 느껴질 뿐이었다.

“아아아아악!”


“그렇게 소리 지르지 마. 태교에  좋아. 아니, 태아가 아니라 알이니까 난교라고 해야 하나?”

나는 고개를 치켜들고 이졸드에게 소리를 질렀다.

“닥쳐! 제발 좀 닥쳐! 어? 왜 그렇게  살게 구는 건데?”


그냥 콱 죽어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그 전에 이졸드를 죽여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눈 앞의 이졸드의 모습이 일그러져 보였다. 나는 서둘러서 눈가를 닦았다. 이졸드가 말했다.

“내가 뭘 못 살게 굴었다고? 아저씨가 제대로 설명도 안 듣고 그 ‘피임약’ 먹어서 그런 거잖아?”

“다 내 탓이라는 거야?”

“그렇잖아?”


사실이었다. 다  탓이다. 그러니 어디다 하소연할 수도 없다. 갑자기 아랫배에서 느껴진 복통까지 합해져서, 나는 정말로 울어버리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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