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3화 〉063화 오토넨 (09) (63/99)



〈 63화 〉063화 오토넨 (09)

“어떻게?”

이졸드가 물었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일단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까, 오늘은 자고 내일 생각하자.”

“크누트 님?”

켈레이드의 표정이 변했다.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짓는 녀석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왠지 뿌듯함이 느껴졌다.

“뭐 어때? 오토넨  새끼가 우릴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아닙니까? 상대는 생명력을 잔뜩 빨아먹은 마법사입니다. 약하다고는 하지만 여신의 사제이기도 하고요.”


“뭐야. 그렇게 뒷일이 걱정돼?”

“물론입니다. 어쩌면 놈은 저보다도 강할지도 모릅니다.”


글쎄. 켈레이드 레벨이 350쯤 됐었지? 분명히 높은 수치긴 하지만, 위협적인 건 아니다. 그러니 심드렁한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다.

“그래서?”

“그, 그게…….”

녀석이 뭘 말하고싶은지는 알겠다. 나와 이졸드가 둘이서 자기를 잡는  고생을 했으니, 우리 레벨이 굉장히 낮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러니까, 오토넨이랑 비슷한 정도라고 생각하고 있을 거란 말이다. 그걸 대놓고 자기 주인 앞에서 말한다면 화를 낼까봐 저렇게 우물쭈물 하고 있는 걸 테고.

“지금 너, 우리 레벨이 겨우 한 400정도 될 거라고 생각하는  아니지?”

이졸드가 대놓고 그런 질문을 날렸다. 켈레이드는 뜨끔한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걱정 마. 우리 레벨은 999니까. 합쳐서 말고, 각각.”

“네? 그, 그런 말도 안 되는 레벨이…….”

“있어. 눈 앞에 멀쩡히 잘 걸어다니고 있잖아?”


나도, 이졸드도 피식 웃었다. 켈레이드는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고. 녀석은 머뭇대며 말했다.


“하지만, 레벨 500만 돼도 신의 영역이라고   있습니다. 지상의……. 일개 인간이 그만한 힘을 가진다는  듣도 보도 못한-”

“거 참, 내가 그 신을 두들겨 팼다니까?”

그렇게 말하니 켈레이드는 조용해졌다. 녀석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러고 보니 그러셨다고 했지요.” 하고는 더는 말이 없었다.

“아무리 약해졌다고 해도 일개 인간이 신을 두들겨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만, 레벨이 그렇게 높으시다면 충분히 가능한일이겠죠.”


“뭐야. 내가 거짓말   알았어?”

웃는 낯으로  말이었지만 거기 섞인 언짢은 기분까지 다 숨길 수는 없었다. 이게 지금 누굴 허풍쟁이로 알고 있어? 내가 그렇게 생각하며 녀석을…… 노려본 것 까지는 아니고, 살짝 흘겨봤다. 입은 여전히 웃고 있었고.

“아, 아닙니다! 그냥, 조금, 믿기 힘든 말씀이라……!”


“됐다, 됐어. 내가평소에 얼마나 허당처럼 보였으면 그런 말을 가지고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했겠냐?  업보려니 해야지.”

“그러게. 아저씨 반성 좀 해. 평소에 얼마나 만만하게 보였으면 그런 소리를 들어?”


이졸드까지 끼어들어서 켈레이드를 갈궜다. 켈레이드는 어깨를 팍 움츠리고 죄송합니다 소리만 연거푸 내뱉어 댔다. 뭐, 애 괴롭히는 건 이 정도로 해 두고. 나는 켈레이드에게 말했다.


“아무튼, 니 말은 이거지? 다른 마법진들을 이대로 놔 뒀다간 오토넨이 얼마나  질지 모르니 한시라도 빨리 해체해야 된다고?”

“네, 크누트 님.”

“그래. 그거도 맞는 말이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졸드가 내게 덧붙였다.

“아무리 우리보단 약하다고는 해도, 세다고 해서 덜 귀찮은  아니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답은 나왔나. 나는 손뼉을 쳐서 켈레이드를 주목시켰다. 녀석은 주눅든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녀석에게 말했다.

“자, 그럼 남은 마법진들도 수고해 줘, 켈레이드.”


“……네?”

켈레이드는 갑작스러운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거 참. 이걸 일일이 설명을 해 줘야 알아듣나? 나는 녀석에게 차근차근 설명해 줬다.


“자. 봐라. 마법진을 마저 해체  하면 위험하다고 그랬지?”


“네, 네.”

“그런데 그걸 해체할수 있는  너 하나 뿐이지?”

“그, 그렇습니다.”

“그런데 나는 밤이 늦어서 졸리다고.”

“그, 그게 무슨…….”

내 친절한 ‘설명’에 이졸드가 키득대며 웃었다. 나는 켈레이드에게서 몸을 돌리고 등 뒤에 손을 흔들어 줬다.

“자, 그러면 마법진 해체, 잘 부탁해.”




농담이 아니었다. 한번 죽었다 되살아나 보니이건 또 은근히 피곤했다. 켈레이드를 뒷골목에 버려 두고 큰길로 나오자 마자 내 입에서는 하품이 새어나왔다.

“아하으음……. 진짜 너무 피곤한데, 이건.”


“아저씨, 많이 피곤해? 어부바 해 줄까?”


“……넌 켈레이드 따라가 보지 그래?”


이졸드는 내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오며  귀찮게 했다. 녀석은 쉴  없이 떠들어댔다.

“에이, 걔 실력은 확실한데 뭐 어때?”


“……니가 걔를 동료라고 생각 안 하는 건 알겠는데, 적어도 노예 관리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어야 되는  아냐?”

“상관 없어.”


상관 없다고? 나는 피곤한 눈을 억지로 치켜뜨며 이졸드를 쳐다봤다. 이졸드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이건 또 웬 황당한 소리래?


“켈리도 충분히 세고, 자기 몸 지킬 정도는 되잖아? 무슨  생기면 알아서 몸 피하겠지.”

“…….”

“뭐, 그러다 죽으면 노예 하나 없어지는 거고.”

“대단하다. 대단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이졸드에게서 몸을 돌리고 여관방을 향해 걸어갔다. 내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니 이졸드 녀석은 내 뒤를 방방 뛰듯이 하며 따라왔다. 그러면서 말했다.


“아저씨 안 피곤해? 내가 업어주겠다니깐?”

“아, 됐다고. 내가 걸어가지도 못할 것 같아?”


“아이, 그러지 말고. 응? 아저씨도 피곤하잖아. 내가 업고 가면 아저씨도 편하고, 나도 좋고.”


“……내가 편한 건 그렇다 치고, 너는 좋을 게 뭔데?”

“에헤헤.”

이졸드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살짝 돌렸다. 내 눈이 이졸드의 가랑이로 향하는 게 이상한 일만은 아닐 거다. 그리고 녀석은 당연히…… 내가 걱정한 대로…….

“아, 아무튼. 서로 좋은 일이잖아. 응?”


“서로 좋기는 무슨.”

너한테 좋으면 나한테는 무조건 안 좋은 거다. 하는 말이 목구멍에 한가득 차올랐다. 내가 하려는 말이 뭔지 알아차린 듯이, 이졸드는 내게 찰싹 달라붙었다.


“아이잉, 아저씨이~.”

이졸드는 자그마치 애교를 떨기 시작했다. 녀석의 가슴이 내 팔에 닿았고,  옆구리에 녀석의 무시무시하게 발기한 자지가 닿았다. 이졸드의 애교 섞인 목소리도, 가슴도 충분히 좋았다.


하지만  이상으로 좆같았다. 그 거대한 자지가 내 몸에 비벼지는 감각은, 옷 너머로 전해질 때조차도 역겹기 그지없었다. 졸음이 순식간에 달아났고, 나는 펄쩍 뛰어서 이졸드에게서 멀어졌다.


“아, 진짜! 그거 좀…….”


하지만 정신이 들었다는 건 느낌 뿐이었는지, 나는 허무하게 이졸드에게 단단하게 붙잡혔다. 녀석은 실망한 표정과 화난 표정이 반반씩 섞인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저씨.”

이졸드가 가슴을  팔뚝에 부비며 나를 불렀다. 그리고 자지도. 이졸드의 가슴 느낌은 좋았지만 아랫도리 쪽의 감각은 정말로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저히 떨어뜨려 놓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녀석은 단단하게 내 팔뚝을 붙잡고 거기에 가슴을 부비며, 기괴한 크기로 발기한 자기 자지를 내게 과시하고 있었다.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이졸드의 가슴은 가슴대로제대로 즐기지 못하면서, 그러면서 녀석의 자지의 위협에는 그대로 노출된 채 대답했다.


“으, 응?”

이졸드의 얼굴에서 화난 표정의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다.

“자꾸 앙탈 부리면 확 발정내 버린다?”


“…….”

나는 할 말을 잃고 입을 떡 벌리고 이졸드에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말도  되는 협박이야? 하지만 녀석은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떡할래? 강제로 발정나서 옮겨질래? 아니면 순순히 안길래?”


“안겨? 아까는 업겠다며?”

“그러게 순순히 제깍제깍 업혔으면 공주님 안기를 당할 일도 없었을 거 아냐.”


이졸드는 그렇게 말하곤 으흐흐 하고 음흉한 웃음소리를 냈다. 젠장. 이졸드는 점점 더 내게 끈적끈적하게 다가왔고,나는 눈을 꽉 감고 말했다.


“그래. 맘대로 해라. 제기랄.”





그렇게 해서 나는 이졸드에게 공주님 안기로 안겨져서 여관방으로 향했다.


이거, 생각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다.


승차감이 안 좋다는  아니었다. 힘 민첩 모두 최대치인데 흔들린다거나 불편하다거나 하는 느낌이 들 리가 없었으니까.


정확히는 공주님 안기로 옮겨지면서 취할 수 밖에 없는 자세가 문제였다.


이졸드의 얼굴이 너무 가깝다거나, 녀석의 가슴이 자꾸 내 몸에 닿았다거나 하는 건 오히려  문제가 아니었다. 심지어는, 그래.  옆구리에 자꾸 닿는 녀석의 발기한 자지조치도 그랬다. 진짜 문제는 이졸드가 나를 안은 자세였다.

이졸드는 내 등허리와 오금을 받치고 안고 있었고, 그대로 힘을 풀고 있으면 허리가 뒤로 꺾여서  늘어져 버렸다. 이졸드도 그렇게 큰 키가 아니라서, 그러고 있으면  긴 머리카락이 죄다 바닥을 빗자루처럼 쓸어 버리게   뻔했다.


억지로 허리를 세우고 있기도 힘들었다. 다른 것보다, 졸리고 피곤했다. 그래서 나는 두 팔로 이졸드의 목을 감싸고 있어야 했다.


“어때? 아저씨?”

“……너 알면서 묻는 거지?”

이졸드의 얼굴이 이렇게 가까운 것도 내가 녀석의 목을 끌어안고 있어서였다. 녀석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고, 나는 조그맣게 욕설을내뱉으며 녀석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이 자세가 그렇게 치욕스러울 수가 없었다.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여자애의 품에 안겨서, 여자애 취급을 당하면서도 거기서 벗어날 수 없는 기분이란 건……. 참담함 그 자체였다.


물론 녀석에게서 벗어날 기력도 없을 만큼 지쳐 있는 건 절대 아니었다. 어떻게든 발버둥을 치고, 주먹질, 발길질이라도 하면 벗어나는  까지는 가능할 거다.


그리고 그 직후에 발정이 나서 이졸드에게 박아 달라고 애원하게 되겠지.

이졸드의 몸에서는 달콤한 여성의 향기가 났다. 그 점이 나를 더 미치게 만들었다.

나는 분명히 피곤하다고, 졸립다고 생각하고 있는데도  몸은 멋대로 이졸드의 체취에서 섹스할 준비가 다 된 여자의 기운을 느끼고 있었다.


내 몸은 천천히 달아올랐다. 이졸드의 냄새 때문에, 그리고 내 몸에 비벼지는 이졸드의 가슴 때문에, 또 이졸드의 몸에 비벼지는 내 가슴 때문에.

내가 어떤 상태인지는 이졸드도 충분히 알고 있을 거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졸드는 충분히 부드럽게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지만,  조그만 충격마저도 내 몸의 흥분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었다.


“……진짜로 숙소까지 이러고  거야?”

“당연하지.”

“내, 내려 줘!”


나는 이졸드에게서 벗어나려고 몸을 크게 흔들었다. 이졸드는 발걸음을 멈추고 내가 벗어나지 못하게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웃차차. 그렇게 흔들면 떨어져요, 귀여운 아가씨.”

“누, 누가 아가씨야! 기분나쁘게, 진짜.”

“흐음. 아가씨 취급해줄 때 순순히 받지 그래?”

이졸드는 씩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아니면 확 발정내 버린다?”

……젠장. 이런 미친 스킬이 어딨어? 나는 이졸드보다 사랑의 묘약을 입에 빨리 털어넣지 못한 걸 원망하며 녀석의 목을 세게 끌어안았다. 녀석이 불만을 품고 허튼 짓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절대로 흥분해서라거나,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든, 이졸드는 상관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나를  안에 꼭 안은 채로, 이졸드는 여관방까지 뚜벅뚜벅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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