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6화 〉076화 오토넨 (22) (76/99)



〈 76화 〉076화 오토넨 (22)

이졸드를 찾으러 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멀리 하늘에서 충격파가 퍼져 오는 게 느껴졌고, 그걸 따라가기만 하면 됐으니까. 다만…….


“위치가 빠르게 바뀌고 있군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토넨 녀석, 도시 중심부로 이졸드를 유인하고 있어.”

젠장. 너무나 노골적인 함정의 징후에 나는 조그맣게 욕설을 중얼거렸다.


물론 이졸드가 오토넨의 함정에 무력하게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미 이졸드의 힘을 맛보고서도 오토넨 놈이 이졸드를 유인하고 있다는 거였다.


분명히 뭔가가 있을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엄청난 게 있을지도 모른다. 적어도, 오토넨이 생각하기엔 이졸드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만한 뭔가는 틀림없이 준비돼 있을 거다.


“그러니까, 얼른 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크누트 님.”


그렇게 말하는 켈레이드의 얼굴에는 한심하다는 표정이 잠시 스쳐지나갔다. 순간적으로 욱 하는 기운이 치고올라왔지만 별 수가 없다. 나는 지금 진짜로 한심한 게 맞으니까.

나는 비척비척대며 발걸음을 억지로 옮겼다. 빨리 걸으려면 그럴 수도 있고, 뛰려면 뛸 수도 있겠지만 그랬다간 좋은 꼴은 못 볼 거다. 어쩌면 또 발정(1)에 걸려버릴지도 몰랐다. 나는 숨을 고르며 들썩이는 배를 단단하게 움켜잡았다.

“노, 노력하고 있어.”

켈레이드의 표정은 다시 무감정하게 변해 있었다. 그래.  놓고 쪽 주는 것도 아니고, 지금 덤벼든다고 해서 상황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오토넨이라는 적에 맞서 사우려면 그런 분열은 불필요할 뿐더러 해롭기까지 하다.

그것도 하늘에서 들려오는 충격파가 점점 다가오고 있는 지금이라면 더더욱.


“옵니다.”

“응.”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검을 뽑았다.


저 멀리서 오토넨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대단하군요! 레이디 이졸드. 벌써  번이나 내 보호막을 찢어발기다니!”


“이, 자시이익!”


그리고 나서 충격파가 두  들려왔다. 한 번은 이졸드가 도약할 때 생긴 충격파일 테고, 다음 한 번은 녀석이 오토넨의 보호막을 때려부수느라 생긴 거겠지.

“광장 쪽이군요.”

그리고 이제 눈 앞의 골목만 돌면 광장이었다. 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충격파의 방향을 가늠했다. 기습을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하고 생각하고 켈레이드를 쳐다봤다. 녀석도 고개를 끄덕였다.

켈레이드는 주문을 중얼거렸다. 짧은 영창이 다 끝나자 내  주위에 마력이 퍼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호르마키 시 성문 앞에서 느꼈던 감각과 똑같았다. 켈레이드가 말했다.

“인식 방해 주문입니다. 부디 무운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광장 주변은 온통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열주는 온전하게 서 있는  하나도 없었고, 동상도 쪼개져 있었다. 길바닥은 여기저기 움푹 패여서 잡석다짐을 다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봤다. 이졸드가 아무리 레벨이 높다고는 해도, 시종일관 공세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오토넨은 이졸드가 지면에 착지하면 시전 시간이 짧은 주문을 난사했고, 그걸로 틈을 만들어 내서 또다른 대주문을 이졸드에게 날려 댔다.

땅이 뒤집히고 폭음과 충격파가 허공을 가득 메웠다. 싯누런 불꽃이 혀를 날름거렸다. 이졸드는 불꽃의 도마뱀을 워해머로 내리찍고 몸을 피했다.


“마력이 넘치나 보구만, 이 자식!”


“물론입니다. 아직 4천 500  분의 생명력이 남았으니까요.”

오토넨 놈, 아까는 5천 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 새 500명의 생명력을 뽑아다 써 버렸다고? 내 생각이 통하기라도 한 듯, 이졸드가 비아냥대는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500명 분을 썼다 이거지? 앞으로 3시간정도면 너도 끝이구만.”

이졸드의 자신만만한 선언에 오토넨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 시간 동안 당신이 무사할 리가 없지요.”

“헹. 4시간도 필요 없어.”


오토넨은 빠른 속도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졸드는 몸을 날렸다. 주문 시전은 아주 빨랐다. 그리고 이졸드는 훨씬 빨랐다. 그녀는 사방으로 충격파를 일으키며 도약했고, 허공에 뜬 오토넨을 향해 손에 들고 있던 거대한 워해머를 전력으로 휘둘렀다.


 하는 굉음 다음에 쨍그랑 하는 보호막 깨지는 소리가 났다. 오토넨은 신음 소리를 집어삼켰다.

“큭……!”

귀가,  안쪽에 든 뇌수가 웅웅대며 울렸다. 오토넨의 주위로 두터운 보호막이 깨져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마력이 깨지며 흩어지는 장면이 눈에 똑똑히 보였다. 한밤중의 어둠 속에서도. 이제 거리는 충분히 가깝다. 오토넨 놈이 다시 방어 주문을 중얼거리며 외우는 사이, 나는 오토넨의 거의 바로 밑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오토넨의 정신이 딴  팔려 있는 지금, 놈의 방어 주문을 없애 버리면…….


물론 나는 지금은 이졸드처럼 허공을 가르며 뒤어올라 칼질을  댈 수는 없다. ……내  상태가 정상이 아니니까. 칼을 내다 집어던지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고.


하지만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내게는 늘어나는 검이 있다. 천상에서  원소로 만들어진, 메르징거 변경백의 검이.

나는 조용히 말했다.


“늘어나라.”


 손에 들린 날 길이 1미터 20센티미터의 장검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뒤로 쭉 뺀 검이 점점 더 길어지고, 무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충분히 무겁고 길어진 검을, 나는 휘둘렀다. 있는 힘을 다해서.

“죽어라아아!”


“뭐,뭣?”

쨍그랑 하며 인식 방해 마법이 깨져나갔다. 그리고 오토넨이그 소리를, 내 외침까지 더해져 사방에 카랑카랑하게 울리는 그 소리를 알아차리고 시선을 아래로 돌렸다.

내 검은 10 미터도 넘게 늘어나 있었다. 어림잡아 셈해 봐도 무게는 천 배는 늘어났고, 전력으로 휘둘러지는 1 톤짜리쇳덩이는 레벨 300도  되는 마법사의 방어 주문 따위는 가볍게 날려버릴 위력이 있었다.

내 검이 허공을 가르며 오토넨에게 날아갔다. 칼날이 오토넨에게 닿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1 톤짜리 검에 비하면 그 무게는 깃털에도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미미한 것이었다.


칼날이 땅바닥에 내리찍혔다. 오토넨을 그 사이에 두고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날붙이가 살을 써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대신에, 거대하지만 급조된 마력의 장벽이 산산이 부서지는 느낌은 분명히 손아귀에 전해졌다.

“크아아악!”

오토넨은 대주문이 파괴된여파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 댔다. 그 틈을 타서, 나는 이졸드를 소리쳐 불렀다.


“이졸드! 막타!”


그녀는 갑작스러운 사태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워해머를 비껴쥐고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잔뜩 피어오른 흙먼지 사이로 거대한 워해머를 든 이졸드가 내리꽂혔다.


“죽어!”

이졸드가 넣은 기합 소리는 알기 쉬웠다. 녀석은 말 그대로 죽일 기세로 내리꽂혔다. 자욱한 흙먼지가 더욱 짙게 흩날렸다.


“해치웠나?”


나는 검을 원래 길이로줄이고 흩날리는 흙먼지 쪽을 향해 걸어갔다.


“가까이 가면 위험합니다. 기다리십시오.”

어느샌가 켈레이드는 내 바로 뒤까지 다가와 있었다. 녀석은 내 어깨를 붙잡으며 말했다.

“상대는 끝을 알 수 없는 힘을 가진 마법사입니다. 먼지가 걷히고 시야를 확보할 때까지는기다리는  좋습니다.”

“설마, 이 폭발에서 살아남았을 리가 없잖아?”

폭탄이 터졌다거나 한 건 아니었지만,  충격파와 참상은 폭발이라고 하기에 충분했다. 나는 사방으로 흙먼지를 피워올리는, 폭심지라고 해도 좋을 그곳을 향해 턱짓했다.


켈레이드는 잠시 먼지구름 속을 매섭게 쳐다보더니, 신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히 마법사라고  만한 마력이나 생명력은 더는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혼 불태우기 주문의 영향 때문에 감각이 둔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걱정이 너무 심하네. 죽어서 그런 거겠지. 아무 것도 안 느껴진다면.”


켈레이드의 말을 들으니 마음이 놓였다. 아무리 수천 명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렇게 얻어맞고도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다. 놈이 인간이라면 말이다. 나는  마디 덧붙였다.


“이런 공격을 맞으면, 너라고 살아남을 수 있을 거 같아?”


“그건……. 아닙니다.”

흘끗 뒤를 쳐다보니 켈레이드는 고개를 천천히 젓고 있었다.

그래. 당연하지.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흙먼지는 천천히 가라앉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너머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하나, 워해머 자루를 땅에 짚고  날씬한 여자, 이졸드였다.



이졸드의 발 밑에는 피떡같은 형상으로 뭉개진 오토넨이 ‘펼쳐져’ 있었다. 깊은 구덩이 한가운데로 한때 오토넨이었던 물질들이 서서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졸드는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향해 말했다.

“휴우. 나이스 어시스트, 아저……씨……?”

그렇게 말하는 이졸드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하아. 나는 천천히 이졸드에게 다가갔다. 빨리 걷기는 무리였으니까. 이졸드는  쪽을 쳐다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배는 대체 뭐야?”


“그, 그게…….”


 말이 궁했다.


“갑자기 살이 찐 건 아닐 테고.”


“그,그렇지?”

이졸드의 노려다보는 눈빛을 피하느라 식은땀이 다 났다. 고개를 돌리고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으려니 녀석은 성큼성큼 다가와서 내 어깨를 턱 짚었다.

“고개 돌리지 말고.”

“으, 응.”

이졸드는 그렇게 말하고선내 두 뺨을 붙잡았다. 나는 강제로 이졸드와 얼굴을 마주보게 됐다. 아무 생각 없이 이졸드의 눈을 쳐다봤다. 무섭게 치켜뜬 눈빛이 무서워서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아니, 돌리려고 했다. 이졸드는   뺨을 단단히 붙잡고 있었다. 내 고개는 돌아가려다 말고 이졸드의 손길에 멈춰세워졌다.

“크누트?”

이졸드는 자꾸만 옆으로 새는 내 시선을 따라가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어, 응?”

“시선 돌리지도 마. 내 눈 똑바로 쳐다 봐.”

“응…….”


나는 천천히 이졸드와 눈을 맞췄다. 그녀의 파란 눈동자는 차갑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안 그래도 매서운 눈을 더 날카롭게 뜨고 있으니 위압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어떻게 된 건지, 얼른 설명해.”


“그, 그게 말이지…….”


“말 돌리지 말고!”

그녀의 호통 소리에 나는 눈을 찔끔 감았다. 그러자 다시 한 번 호통이 떨어졌다.


“눈 돌리지 말랬지!”

“제가 대신 설명드리겠습니다, 주인님.”

어느샌가 켈레이드가 내 바로 뒤로 다가와서 그렇게 말했다. 이졸드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내 뒤쪽에 서 있는 켈레이드를 향해 턱을 까딱거렸다.






켈레이드의 설명은 간단했다. 촉수의 최음제 때문에 예상과는 달리 발정이 훨씬 오래  버렸다는 설명 뒤에, 설명의 마무리가 붙었다.

“그렇게 해서, 크누트 님은 촉수괴물의 새끼를 뱄습니다.”

이졸드는 충격 같은  받지 않았다. 그녀는 간단하게말했다.


“그럴 줄 알았어.”

이졸드의 시선이 따가웠다. 눈길을 돌리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녀가 내 이마에 자기 이마를 맞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몸 함부로 굴리지 마. 알았어?”

“어, 응.”


이졸드는 내 대답을 듣고는 나를 끌어안았다. 그녀의 가슴이  가슴에 맞닿았다. 내 부풀어오른 배에서는, 거기 닿은 이졸드의 자지가 점점 발기하는 게 느껴졌다.


“자, 잠깐! 잠깐 기다려 봐! 여기 밖이고……!”

“뭐?”


이졸드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품에서 밀쳐냈다.

“누가 지금 섹스하자고 이러는 줄 알아?”


“아, 아니야?”

“당연히 아니지! 지금이 그거나 하고 있을 판이야?”


하긴 그렇다. 곧 있으면  경비대가 몰려올 테고, 그러면 이 난장판이 어떻게 된 건지도 설명해야  테니까. 게다가, 아무리 이졸드라고 해도 여긴 밖이기까지 하고. 그리고…….

“다, 다행이네.”

정말로 다행이었다. 그런 것들 말고도 나한테는 지금 당장 섹스를 할 수 없는 이유가 있기도 했으니까. 그걸 대체 어떻게 말해야 하지? 나는 이졸드에게서 고개를 돌린 채로 할 말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촉수 말입니까?”

켈레이드가 끼어들었다. 젠장. 얼굴이 또 다시 화끈거렸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다행이군요.”

“뭐?”


놀리는 것 같기도 하고,약올리는  같기도 한 말투였다. 나는 소리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정확히는 ‘내렸다.’ 내 발치, 구덩이 밑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그리고 남자의 목소리였다.


끈적하게 굳기시작한 피와 조각난 내장이 서서히 합쳐지고 있었다. 다진 고기처럼 변해가는 피웅덩이에서 오토넨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다시 1대 1……. 아니, 1대 2인가요? 아무튼, 크누트, 당신은 싸움에 끼지 못할 테니까요.”

오토넨의 말과 동시에 아랫도리가 축축하게 젖는 게 느껴졌다. 애액에 찔끔 젖는 수준이 아니었다. 흥건하게 물이 흘러내려 바지를 온통 적셨다. 양수가 터지고,  진통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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