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005. (5/138)



〈 5화 〉005.

“그러고보니 흙집 같은 걸 만들었다는 소문은 들었지. 괜찮은 거야?”
“혼자 지내는 데엔 충분합니다.”
“음. 그러면 돈이 모이는 대로 중고 단말기라도 찾아봐줄게. 액정이 금갔거나 하는 것도 상관 없지? 이쪽은 보통 그렇게 돼서 나온 물건이 많거든.”
“고장만 아니면 상관 없습니다. 그게 있으면 계좌가 없어도 코인을  수 있는 거죠?”
“은행 연동 없이 단말기로만 쓰려고? 고장나면 날려먹을텐데... 뭐, 어쩔 수 없긴 하겠네. 아무튼 알았어.”

그동안 문제 없이, 오히려 빠릿하고 깔끔하게 일을 처리해줘서일까. 담당자는 그를 제법 좋게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캠프에 비밀 같은 건 없으니, 과실치사라는 죄목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죄수에 대한 선입견 같은  없는 걸까.

“그럼 돌아가보겠습니다.”
“그래. 들어가.”

조용히 퇴근한 그는 야간 경계 근무자들과 몇몇 건물들의 직원들을 보았다.
저들 중에는 그를 경계하거나 업신여기는 이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눈에 익어서인지 특별히 내색하는 이들은 없었다.

‘별명도 생겼다고 했나.’

‘짬처리꾼’

사실 새롭게 만들어진 별명은 아니고, 예전부터 그 일을 하는 이들을 칭하는 말이라고 들었다.
어쩌면 그런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관두는 이들도 있었을  같았지만, 지금 그에겐 상관 없는 일이었다.

‘더 많은 마나가 필요해.’

인벤토리 제작에만 쓰이는  아니다.
체내 마나를 소모해서 할 수 있는 건  많이 있었다. 흡수할 수 있는 최대량을 늘릴 수도 있고, 신체의 특정 부위나 능력을 강화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확실히 수치화되어 보이는 건 아니지만, 일정시간 특정 부위를 강화하다보면 어느 정도 달라진 느낌이 오기도 했다.

‘부위를 정하지 않으면 전체적으로 알아서 강해진다고 했지.’

인터넷에서 유명했던 각성자들 중엔 특이하게 생긴 이들이 적지 않았다. 고릴라처럼 팔만 엄청 크거나, 시력이 몽골사람들 저리가라 할 정도로 좋았던 이들 등등.
아마 특정 부위만 집중적으로 강화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은데, 당장은 끌리는 부위가 없어서 따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음. 오늘은  일 없었나.’

며칠 전인가.
집에 와보니 벽 한쪽에 금이 가있었다.
지나가던 누군가가  번 걷어찬 듯한 모양새여서, 밤새 시간을 들여 보수하느라 인벤토리 추가 제작을 못했다.

이후로는 별 일 없었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문짝 대신 걸려있는, 누군가 버린 우비를 적당히 접어놓은 천막을 걷고 들어가니, 예전의 텐트보다는 조금 넓고 안락한 느낌의 실내가 나타났다.

들어와본 이는 없지만, 누가 보아도 겉에서  것과는 좀 다르다고  것이다.
원형의 내부는 마치 이글루처럼 잘 다져진 흙벽과 깎아낸 듯 편평한 바닥으로 이루어져있었고,  한쪽엔 돌침대 느낌의 단단한 침상이 자리했다.

‘이젠 등도  배기고.’

이불도 베개도 없는 건 처음부터 지금껏 변하지 않았지만, 각성자의 몸이어서인지 무리가 가진 않았다.

‘아직 넉넉하네.’

벽 한쪽에 붙어있는 토기 등잔.
비죽 튀어나온 심지에 인벤토리에서 꺼낸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이니, 컴컴하던 실내가 은은하게 밝아지며 조금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아무래도 등잔에 들어있는 기름이 잔반에서 뽑아낸 폐유다보니 그런 듯 했지만, 이제는 그런 냄새에도 익숙해졌다.

‘석기 시대도 아니고.’

새삼 흙집 내부를 다시 돌아본 최강혁은 픽 웃으며 침상에 걸터앉았다. 겉보기와 다르게 그 중간 즈음이 미닫이 형태로  수 있는 구조였는데, 그 안에는 여분의 옷과 양말 등이 들어있었다.

처음 보급받았던 것만이 아니라 다른 옷들이 섞여있는 건 그동안 안면을 익힌 이들로부터 얻어왔기 때문이었다.
식당의 담당자도 있었고, 잔반을 받으며 친해진 군인식당쪽의 취사병도 있었다.

‘새옷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겉옷이야 그렇다 쳐도, 속옷은 새것을  벌 얻기도 했다. 군인들의 속옷과 양말은 기본 보급이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데, 품질이 그리 좋지는 못해서 버려지는  있다던가.
취사병이 조금 챙겨줘서,  이상 속옷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래도 텐트는 못 구해준다고 했지.’

겉으로 너무 보이는 걸 갖다주긴 어렵다고 했다. 그나마 속옷이나 양말 정도가 최선이라고.
뭐, 돈으로 구하자면 못 구할 건 아니라는 것 같았지만 그에겐 돈이 없었다.
담당자가 맡아둔 돈은 단말기를 사는 데 쓰는 게 나을 테니 건드리지 않을 생각이고.

‘그럼 오늘도 시작해볼까.’

흙집을 짓고 나서 좋아진 것은 더 이상 밤에 작업을 할 때 주변 눈치를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도 있었다.
흙집 한쪽 구석엔 마치 옛날 탈옥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비밀스런 구멍이 있었는데, 그가 평소 흡수 작업을 하다 보니 생겨난 토굴이었다.

‘이쪽은 너무 팠나... 슬슬 메워야겠네.’

너무 한쪽을 파다간 문제가 생길 것 같아서, 주기적으로 다시 메우고 다른 곳을 파는 걸 반복하는 중이었다.
마나를 빼낸 흙과 돌은 푸석푸석해져서 지지력이 없는 탓에, 주변의 것들을 모아 채워야 하니 시간이 적잖게 들어갔다.

‘음. 이제 몇 칸이지?’

이제 첫날처럼 필사적으로 달려들지는 않는 터라, 하루에 1칸에서 2칸 정도만 만들고 끝낸 적도 있었다.
그래도 많이 만들었을  하루에 10칸 가까이 찍어내기도 해서, 지금 인벤토리는 정확히 52칸이 되어있었다.

‘뭉쳐놓으면 벽이 없어져서 좋아.’

인벤토리는 한 칸씩, 혹은 여러 칸을 따로 떼어놓을 수도, 아니면 하나로 뭉쳐놓을 수도 있었다.
뭉쳐놓을 경우엔 각 칸의 구분을 없애고 하나의 큰 공간으로 만들 수도 있는데, 지금 그가 사용하고 있는 방식도 그랬다.

‘굳이 구분할 만한 이유도 없고.’

공간이 하나라고 해서  내부에 넣은 것들이 제멋대로 섞이는 건 아니었다. 지금은 식당에서 얻은, 가스가 거의 바닥난 일회용 라이터 몇 개와 칫솔, 치약, 비누 등등의 자잘한 보급품, 양말과 속옷에 일반 보급 외투 하나 정도 넣으면 대부분 찼다.
52칸이라고 해서 엄청난 공간이 아니었다.
하나로 뭉쳐놓으면 대략 가로세로 40센티미터에 높이 30센티미터 조금 넘는 수준의 육면체 공간에 불과했다.
그나마 1칸일때보다야 장족의 발전이었지만, 확장할수록 넣을 만한 것들이 늘어나니 제자리걸음 같기도 했다.

‘그래도 해야지.’

느낌이 그런 것일 뿐, 정말로 제자리걸음은 아니다. 점점 더 여유공간이 생길수록 마나 추출 작업 속도도 그만큼 빨라지고 있다.

‘앞으로 일주일 안에... 잘하면 100칸도 가능할 것 같은데.’

일단 오늘 밤의 목표는 55칸으로 잡았다.
53칸째는 이미 절반 이상 만들어졌으니, 나머지 두 칸 정도는 날이 밝기 전에 가능할 것이다.

‘음?’

그렇게 흙과 모래, 알 수 없는 식물들의 죽은 뿌리 따위를 되는 대로 흡수하고 루팅하던 그가 행동을 멈춘  땅 속에서 새로 발견한  때문이었다.

‘뼈잖아?’

이런 곳에 왜 뼈가 있나 하고  주변을 좀 더 파들어가보니, 일부만 보이던 뼈가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냈다.

‘아....’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 뼈가 보였을 땐, 설마하니 공동묘지 같은 곳에 거주지를 지정한 건가 싶었다. 이대로 파들어가면 사람들의 뼈와 시체가 나오는 거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런데 막상 파보니 그건 아니었다.
출토되고 있는 뼈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짐승의 것처럼 보이는데, 어쩌면 몬스터의 것일 수도 있을 듯 했다.

‘총알 자국이 있네.’

온전한 형태를 갖춘 뼈도 있었지만, 이리 저리 깨지거나 부러진 것들이 다수였다.
개중에는 총탄에 맞은 듯 보이는 구멍이 보이기도 했는데, 아예 탄두가 여전히 박혀있는 것도 있었다.

‘몬스터 부산물이라.’

모든 몬스터들의 가치가 다 높은 건 아니었다. 종류에 따라서 값이 나가는 부위가 따로 있었다.
그렇게 비싼 부위를 제거하고 나면, 나머지는 특수 쓰레기 정도로 취급해 정리한다는 이야기를  적이 있었다.
그러면 이곳에 묻혀있는 건 그런 부분들을 제외한 나머지 찌꺼기들일까.

‘왜 이쪽에 공터가 있는지 대충 알겠네.’

사람들을 묻는 곳은 아니었으나, 분명 뭔가를 묻어 버린 곳은 맞는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혹시나 하고 스캔을 해보니, 해당 뼈의 주인이 무엇이었는지 시스템이 알려주었다. 개와 비슷한 형태를 가진 몬스터도 있었고, 그보다 커다랗고 강해보이는 종류도 보였다.

‘이건 그거네.’

또 다른 뼈를 발견해 스캔했더니, 왠지 낯이 익은 녀석이 튀어나왔다. 지금도 하늘 곳곳을 날아다니고 있는 익룡 비슷하게 생긴 괴조였다.

‘나한테는 좋은 일인가?’

스캔을 마친 뼈를 흡수해본 그는 그것이 돌멩이보다 더 강한 성질을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
철보다는 못한 수준이었지만, 적어도 그 안에 들어있는 마나량은 돌보다 많았다.

‘이 정도 깊이로 계속 찾아봐야겠어.’

이미 묻어버린 뼈들.
이쪽 캠프에선 사용 가치가 없는 버려진 것들이니 루팅도 흡수도 가능한 듯 했다. 잘 써먹을 수 있는 사람이 쓰면 된다.

‘몬스터 종류마다 마나량도 다르구나.’

몬스터의 종류, 또한 죽은지 얼마나 되었는지 등등의 차이로 들어있는 마나량이 달라지는  같았다.
그렇게 발굴과 루팅, 마나 추출과 찌꺼기 배출을 이어가다보니 꽤 이른 시간에 55칸을 완성할  있었다.
잠시 멈추고 밖으로 나가보니 아직 새벽이었다. 날이 밝을 때까지 계속 하면 57칸에서 58칸 까지도 가능할 것 같았지만, 당장 너무 서두르다가 지반이 무너질까 우려되었다.
하여 남은 시간은 적당히 속도를 조절하며 토굴을 일부 메우는 작업을 하니, 아침이 밝아올 즈음엔 56칸을 완성하는 데 그쳤다.


***

“새 죄수요?”
“못 들었나? 하긴, 그런  말해줄 리가 없지. 나도 얼핏 들은 건데, 며칠 후에 들어올 거라더군.”
“그렇군요.”
“반가운 눈치는 아니구만. 그럴 만도 하지.”

죄수에게 있어 새로운 죄수라는 건 동료가 아니라 불편한 이웃 같은 개념이었다.
게다가 감방 따위로 격리된  아니라 지금 그가 하는 것처럼 아무렇게나 방치될 가능성이 높으니, 새로  죄수의 행동 성향에 따라서 싸잡아 욕을 먹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니, 당분간 몸을 사리라고.”

담당자가 조언한 부분도 그런 쪽이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죄수들끼리 뭉쳐서 엉뚱한 짓을 벌이다 같이 추방되기도 했다고 말이다.

“여러 명이 들어오는 겁니까?”
“그건 모르겠는데, 일단  명은 아닌 것 같았어. 이쪽으로 온다는  흉악범일 가능성이 높다는 건 알고 있지?”
“그렇죠.”
“알면 됐어. 조심하라고.”

고개를 끄덕인 담당자가 안으로 들어갔다.
최강혁은 하던 일을 마저 마친 후, 빈병에 담아온 물로 목을 축였다.

‘집에 문을 달아두는 게 좋을까.’

새로 죄수들이 온다면, 그들에게도 텐트를 제공할 듯 보인다. 하지만 그들이 텐트에 만족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어쩌면 자신처럼 그것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그가 지은 흙집에 욕심을 내지 않을까?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인 것 같은데.

‘흙집 정도야 새로 지으면 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빼앗겨줄 생각은 없어.’

이제는 자신의 신체와 체력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긴 했지만, 그래도 겉으로 보기엔 그저 평범한 수준이었다.

‘키가 조금 자란 것 같긴 한데.’

새로 들어올 이들은 어떨까.
여러 명이라면, 그들이 합공을 한다면 맞서 싸워야 할까. 담당자가 조심하라는 건 그런 부분도 있었는데.

‘이쪽은 죄수의 인권을 챙겨주지 않으니, 싸움에 휘말리면 무조건 동반 추방형일 가능성이 커.’

아예 처음부터 문제 없이 제압해버리는  나을까. 그렇다고 죽여버릴 수는 없겠지. 방치한다고 해서 살인행위까지 용납하는 건 아닐 테니까.

‘귀찮은 일이야.’

흙집에 문을 만들어서 막는 게 나을까.
그렇다고 욕심을 안 부릴 것 같지는 않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면 초라하기 그지 없으니까.

하지만 담당자로부터 들었던 소문의 며칠 후. 정확히는 일주일 후에야 알게 된 것은 그가 우려했던 부분과 많이 달랐다.

“미군이요?”

새로 들어오기로 했던 범죄자들이 미국 사람들이었고, 동시에 미군들이 그곳에 추가주둔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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