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화 〉008. (8/138)



〈 8화 〉008.

다른  몰라도, 쓸만한 전투화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하여 전투화 무더기가 쌓여있는 곳으로 가보니, 나름 친절하게도 제 짝마다 끈으로 묶여있는 것들이 눈에 띄었다.

“버릴 때부터 이렇게 묶어서 내보내는구나.”

하지만 양쪽 전투화가 모두 망가진 경우는 드물기에, 멀쩡한 쪽을 좌우로 맞춰서 조합해야 했다.

‘어차피 끈을 풀어야 하는구나.’

가까이 있는 것들부터 묶여있는 것을 풀어내니, 멀찍이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쪽에서 하네? 오씨가 보냈지?”
“아. 예. 이쪽이 유리가 없다고.”
“유리는 없지만, 녹슨 못이 있을 수 있지. 장갑은 잘 꼈고?”

김환수라고 했던가.
그는 파상풍을 조심해야 한다며 일단 장갑부터 꼼꼼하게 확인하고 작업하라고 조언했다.

“그런데... 어느 수준까지 분류해야 할까요?”
“음. 기준이 필요하겠네.”

밑창이나 굽이 망가진  고칠 수 있다.
하지만 가죽이 찢어지면 버려야 한다고 김환수가 말했다.

“경우에 따라선, 밑창이나 굽은 거의 새삥인데, 가죽이 상해서 버려진 것들도 있거든.”
“예.”
“그런 건 따로 빼놔. 밑창하고 굽만 떼어서 모으면 좋긴 한데, 오늘  작업까지 하긴 어렵겠고.”
“가능하면 해보겠습니다.”
“의욕은 좋은데, 오늘만 일할 거 아니잖아. 그리고... 아, 버려야 하는 전투화는 끈도 다 뽑아서 따로 빼내고. 다 쓰일 데가 있다는 모양이야.”
“예.”

그렇게 각각의 분류법을 알려준 김환수는 잠깐 함께 일하며  가지 조언을 더 건네고 나서 돌아섰다.

“일단 오늘은 여기서... 아니다. 고글이 없어서 문제네. 새 보급이 나오면 그때 일반 쓰레기 쪽도 맡아야  거야. 일단 여기만 도맡아봐.”
“알겠습니다. 보급이 많이 늦어지나요?”
“원래 그래. 신청 넣었으니까 늦어도 다음 연결 땐 보내겠지.”
“오늘 정오에 죄수들이 온다던데요.”
“그렇게 바로는 안 나와. 아마 그 다음편일걸. 죄수는 아니어도, 우편이나 보급품 때문에 주기적으로 연결하니까.”
“그렇군요.”
“혹시, 집에 보낼 편지 같은 거 있나? 필요하면 대신 보내줄 수 있는데.”
“아... 괜찮습니다.”
“뭐, 필요해지면 말하고.”
“예. 신경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이따 점심시간 되면 저쪽 스피커로 알려줄 거야. 아니다. 단말기 있었던가?”
“아까 라커룸에 두고 가라고 하셔서....”
“아. 그렇지. 일할 땐 빼놔야지. 그러면 이따가 점심 때 갖고 와. 이쪽 커뮤니티에 등록해줄게.”
“아. 예.”

그렇게 돌아선 김환수가 멀어졌다.
잠시 숨을 고른 최강혁은 주위를 슬쩍 돌아본 후 본격적으로 분류작업을 시작했다.

-스캔을 완료했습니다.
-스캔을 완료했습니다.
-스캔을 완료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장난치냐고 할 만큼 대충대충 훑는듯한 속도.
하지만, 이미 스캔을 마친 대상이니 어디가 문제고 어느 정도 손상인지까지 파악된 터라 거침이 없었다.

“이건 단순 흠집이긴 한데... 이렇지.”

그냥 눈으로 보아선  수 없었을 가죽의 흠집. 하지만 조금 힘을 주어 눌러보니 우지직, 하며 그럭저럭 남아있던 부분이 찢어져 구멍이 뚫렸다.

“뭐에 이렇게 된 걸까.”

단순히 외부에 오래 노출되어서 삭았다고 보기엔 어려웠다.
뭔가에 할퀴어지면서 동시에 특정한 액체에 맞은 느낌인데, 아마도 몬스터와의 전투 과정에서 그렇게  듯 보였다.

‘경우의 수가 많구나.’

스캔으로 몇 종류의 가능성 높은 몬스터들이 나오긴 했지만, 정확한 대상까지는 알 수 없었다.

“어?”

그러던 와중, 몇몇 전투화에서 비슷한 흔적을 발견하기도 했다. 몬스터의 공격 흔적도 있었고, 아마도 사체 정리를 하다 묻은 것 같은 자국들도 있었다.

그 중에서 눈에 띈 것은 단순히 찢어지기만  것이 아니라, 그 끄트머리에 박혀있는 부러진 발톱이었다. 아마 빼낸다고 뺀 모양인데,  과정에 부러지면서 끝부분이 남은 듯 보였다.

[와일드 밀리칸의 발톱]

시스템이 그것의 주인을 알려주었다.
처음 보는 이름이었지만, 사실 몬스터들에 대해서 아는 게 그리 많지는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발톱 끝이라 그런가, 마나량이 대단치는 않네.’

이후로는 비슷한 것들이 나올 때마다 적당히 루팅하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난 게 있으니, 최강혁은 한쪽에 제법 쌓이고 있는 버려야 할 전투화들을 보았다.

‘잠깐만.’

분명 누가 봐도 버려야 할 것들이었다.
각각 차이는 있지만, 가죽 부분이 찢어진 건 버려야한다고 이미 언질도 받았다.

“.......”

하지만 주변 눈치를 살핀 후에 그것들  하나를 통째로 루팅해본 그는 인벤토리에 들어있던 그것을 이리 저리 만져보고 분석해보았다.

“그냥 하나로는 안 되는구나.”

이어서 다른 전투화를 추가로 루팅한 후에야, 자신의 짐작이 맞았음을 알 수 있었다.

조합 (고유)

그가 갖고 있는 고유 스킬.
그것을 활용하면 망가진 전투화를 적당히 섞어, 온전한 상태의 것을 만들 수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렇게 각각 다른 부위가 손상된 것을 조합하고 나면... 손상되지 않은 하나하고 나머지 부분이 남는 거군.’

완전히 새것으로 만드는 건 불가능했다.
있는 재료를 조합하는 것일 뿐, 상태 자체를 바꾸는 건 아니라고 시스템이 조언해주었다.

하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또 다른 고유 스킬인 ‘흡수’를 연계해서 활용하면 되었다.
흡수는  상태 그대로가 아니라 물질의 최소단위까지 분해해서 저장하기에, 그렇게 분해한 것을 재구성해서 가죽 상태를 최상으로 복원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역시 체내 마나를 써야 하는구나.’

방법이 생겼다고 해서 마구마구 써먹을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혹시나 하고 시도해보니,  켤레 정도야 큰 문제는 아니지만 대량으로 하는 건 부담이 될 것 같았다.

‘그래도 그게 어디야.’

버려져야 할 전투화들을,  일부나마 멀쩡하게 바꿔줄 수 있다.
가죽 손상만이 아니다.
밑창과 굽 부분 역시 흡수와 재구성을 통해서 아주 새것 상태로 만들 수도 있다.

‘재활용 전문가가 될 수도 있겠는데.’

이미 쓰레기장에 버려진 것들이기에 루팅이나 흡수의 제한은 없었다. 신이 나서 이것 저것 해보며 작업을 이어가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밥들 먹고 하자! 밥들 먹고 하자! 밥들 먹고....

문득 아까 전 김환수가 이야기했던 쪽에서 녹음된 듯한 음성이 반복재생되어 들려왔다.

‘저런 식으로 알려주는 건가.’

간단한 음악이나 신호음 정도를 짐작했는데, 직설적인 느낌이 강했다.

‘두 분 밖에 못 만났지만, 그런 느낌이긴 했지.’

각자 성격은 다르지만, 하고 싶은 말은  하는 듯한 사람들이었다.
슬슬 자리를 털고 일어난 그는 시간이 난 김에, 그가 재생시킨 전투화로 갈아신고 사무실로 향했다.

그 앞쪽 공터엔 이미  사람이 나와 대기하고 있었다. 전자담배를 물고 있는 이도 보였고,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이도 있었다.

“오. 저기 오네. 신참!”

오형진이 그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얼른 마주 인사를 건네고 그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도 비슷하게 허리를 숙이니, 저마다의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많았다.

“새로 왔다는 친구야?”
“멀쩡하게 생겼구만. 어쩌다 여기까지 굴러들어왔대?”
“무슨 죄라고 했지?”
“과실치사래.”
“운전하다 사람 친 건가?”
“그건 모르는데.”
“그 정도로 여길 보내진 않지 않아?”

아직 여기까진 상세한 내용이 퍼지지 않은 걸까.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던 이들과 다시금  명 한 명 인사를 주고 받은 최강혁은 사무실에서 걸어나온 김환수를 보았다.

그는 안에서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표정이 그리 좋지 못했다.

“왜?”
“오늘 같이 들어오기로 했던 보급이 펑크났단다. 죄수들만 온대.”
“지난 번에도 미뤘잖아?”
“그러니까.”
“일처리 시발 진짜 좆같이들 하네.”
“어디 뒤로 빼돌리고  닦는 거 아냐?”
“월급이라도 안 밀리니 다행이긴 하지만.”
“애초에 월급이 어디 있냐.  코인으로 주는데.”
“아. 그렇지.”
“그래도 환전은 되잖아.”

이어진 불평과 수다 속에서 최강혁은 새로운 지식도 몇 가지 얻을 수 있었다.
캠프에서 일하는 이들이라면  직종과 부서는 상관 없이 모두 코인을 급여로 지급받는다는 것이다.

다만 개개인의 월급이 다르듯 코인의 액수가 다른 건 당연했고, 그렇게 받은 코인으로 뭔가를 사거나 아니면 계좌 연동을 통해서 지구 쪽의 화폐로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고 했다.

‘환전은 되지만, 이쪽에서 인출은 안 된다는 건가.’

그러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지만, 지구 쪽의 가족들에게 송금을 하거나 아니면 그쪽의 예금 적금을 부으려면 그렇게 한 단계 거쳐야 한다는  했다.

“신참은 단말기 갖고 따라와. 다들 먼저 출발하고.”
“왜. 오래 걸려?”
“어지간하면 같이 가지 왜.”

사람들의 물음에, 김환수는 그럼 기다리고 있으라고 짧게 답했다. 최강혁은 얼른 탈의실로 가서 개인 라커에 있던 단말기를 챙겨왔다.

“들어가자.”

사무실로 들어가니 대여섯 명의 직원들이 저마다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바깥에서 들었던 대로라면 엉망진창인 이들일  같은데, 막상 눈으로 보니 다들 열심이었다.

‘지구 쪽 문제인가.’

김환수를 따라 사무실 직원  하나를 찾아가니, 그쪽에서 이미 행정 공무원한테 자료를 받았다며 다시금 서명과 지문 확인을 이야기했다.

“개인 계정은 그쪽에서 다 만들어줬고요. ...아. 단말기가 있으시면  편하죠. 아니면 매번 이쪽으로 오셔야 할 텐데.”

그의 단말기를 받아  가지 조치를 취하고 돌려준 직원은 앞으로  부탁한다고 가볍게 인사했다.

“급여는 개인 계좌로 바로 들어갈 거예요. 야근 특수가 있긴 한데... 뭐, 강제하는 건 아니니까 차근차근 알아보시고. 다른 건 그쪽 사수분한테 잘 배우시면 되겠고.”
“벌써 다 가르쳤어. 가도 돼?”
“예. 식사 하셔야죠. 다른 분들은요?”
“밖에서 기다리지.”
“그럼 얼른 가세요. 늦으면 또 모자란다고 시끄러워질 텐데.”

무슨 이야기인가 했는데, 오래지 않아 알게 되었다. 그곳 직원들이 향하는 곳은 어제까지 일하던 뷔페형 식당이 아니라 다른 방향이었다.

‘직원용 식당이구나. 문전박대를 당했었는데.’

이곳에 들어온 초반, 잘 모르고 일단 부딪쳐가며 돌아다녔을  가볍게 무시당하고 넘어갔던 곳이었다.

‘식판은 오랜만이네.’

따지고 보면 이쪽도 뷔페 비슷한 형식이긴 했지만, 반찬 가짓수가 한정되어있고 그 질이 그리 높지는 않았다.
게다가 인기가 있을 법한 반찬은 주방 직원이 퍼주는 식이라, 왠지 군대가 생각나는 느낌이었다.

‘하루 세 끼를 그쪽 식당에서 먹어도 될 급여가 나온다더니, 그냥 급여 이야기였나.’

다행히 맛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여러 모로 양이 아쉬워보였다.
그나마 밥과 국은 마음껏 퍼갈 수 있다고 해서 정말로 양껏 펐더니 같이  직원들이 껄껄 웃었다.

“나도 처음엔 저렇게 먹었지.”
“다 먹을 수 있긴 한 거야?”
“젊잖아. 먹고 일어나면  꺼질 나이지.”
“어우. 보기만해도 더부룩해지는데.”

길다란 식탁에 몰려앉은 그들은 저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개인 신상에 대한 질문이 오기도 했지만, 거슬리는 투는 아니어서 그럭저럭 답했다.

“이야. 잘 먹네, 우리 신참.”
“이름이 뭐랬지? 최강 뭐랬는데.”
“혁입니다. 최강혁.”
“아 그래. 최강혁. 많이 먹고 힘좀 쓰라고.”
“오전에는 안 뵈던데?”
“전투화  가있었잖아. 고글 없어서.”
“아. 그거... 그새끼들 일부러 그러는 거 같지 않아? 싸제 사다 쓰라고 말이야.”
“하루 이틀이야? 버티면 나오겠지.”
“일반 쓰레기쪽 일손 모자란데... 내가 전에 쓰던 거라도 물려줄까?”
“그거 깨져서 바꾼 거 아니었어?”
“금은 갔지.”
“에이. 그럼 안 돼. 사무실 지랄하잖아.”

뭔가 한 마디가 나오면 다들 숟가락을 얹으니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우걱우걱 밥을 퍼먹던 최강혁은 금세 그걸 다 먹고도 배가 안 차서 한 번 더 리필을 해왔다.

“이야....”
“전투화 분류는 좀 할 만해?”
“아... 조금 적응된 것 같습니다.”
“얼마나 했어?”
“뭘 그런 걸 물어. 첫날인데.”

거의 50은 되어보이던 직원의 물음에, 비슷한 또래로 보이던 동료가 어깨를  치며 제지했다.
하지만 이어서 최강혁이 자신이 분류한 전투화 숫자를 대강 기억하고 이야기하자 다들 표정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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