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028.
‘5년 추방이라.’
캠프 장벽 바깥이 어떤 세상인지는 이미 여러 사람을 통해서 충분하고 넘치게 들어왔다.
개중에는 과장된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들도 더러 있었지만, 그래도 그런 과장조차 기본 뼈대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살려달라 매달리고 싶진 않아.’
어차피... 돌아갈 곳도 없지 않나.
“최강혁씨. 나오십쇼.”
그 때, 군인 둘이서 그를 불러냈다.
그제야 조사실을 나온 그는 그들이 이끄는 대로 차에 올라탔다.
‘이 방향은....’
어디로 가는 건가 했더니, 그의 숙소가 있는 쪽이었다. 실제로 그곳 앞에 도착해 차를 멈춘 그들이 말했다.
“혹시 챙겨갈 것이 있으면 챙기십시오.”
“.......”
그제야 군인들을 다시 돌아본 그는 그들이 새로 온 이들이 아니라 원래부터 근무하던 이들임을 알아보았다.
“배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요.”
“혹시 총 같은 거 있으십니까?”
둘 중 하나가 물었다.
그러면서 슬쩍 자신의 안주머니에서 권총 하나를 꺼내기도 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괜찮은 게 아닙니다. 뭐라도 들고 가셔야 그나마....”
“장벽 출입구에 금속 탐지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챙겨봐야 들키잖아요.”
“그, 있잖습니까. 루팅이니 뭐니 하는 거요.”
“잘 아시네요.”
핑계를 대보려고 했는데, 저쪽도 알만큼 아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받지는 않았다.
“일련번호 있을 것 같은데요. 구입 기록도 있으실 테니, 언젠가 소지한 총기를 확인하게 되면 곤란해지실 겁니다.”
“그건 그렇지만....”
“전 걱정하지 마세요. 각성자 아닙니까.”
웃으며 차에서 내린 최강혁은 가벼운 걸음으로 숙소를 향했다.
그러다 문득 뭔가 달라졌음을 깨닫고 옆을 보니, 그 곳에 있던 두 동의 작업장이 보이지 않았다.
‘그 며칠 새에 철거를 해버린 건가. 여러 모로 빠르네.’
숙소는 멀쩡했다.
아마 다른 이가 쓸 수도 있겠지 싶었다.
그곳으로 들어간 그는 마지막으로 뜨끈한 물에 샤워를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후....”
밖으로 나오니, 그를 데려다준 군인들의 차량이 보이지 않았다. 대신 멀리서 좀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소리와 진동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동안 고마웠다.”
다시금 뒤로 돌아선 최강혁은 잘 닫은 현관을 탁탁 두드리며 말했다.
도로 쪽으로 나가서 기다리니, 다섯 대가 넘어가는 군용 장갑차량이 눈에 들어왔다.
“타십쇼.”
“묶는다고 들었는데요.”
“묶여주실 겁니까?”
군인의 물음에서 다소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최강혁은 웃으며 두 손을 내밀었다.
“절차대로 하셔야 문책이 없겠지요.”
“협조 감사합니다.”
고개를 끄덕인 군인이 포승줄로 그의 두 손목을 감아 묶었다. 아주 세게 묶지 않은 것은 그의 배려에 대한 나름의 보답인 듯 했다.
“이곳으로 갈 겁니다.”
배려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다른 군인이 타블렛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주변 지도인 듯 했는데, 캠프가 있는 곳에서부터 정확히 50킬로미터 떨어진 위치였다.
“이쪽에 있는 게 호수입니다. 작은 물줄기가 이쪽으로 나있고... 여기 강으로 이어집니다.”
“호숫가 근처에서 최대한 버티시는 게 유리할 겁니다. 그곳은 다른 사냥감들도 넘쳐서... 인간만큼 작은 것들은 굳이 노리지 않는 녀석들이 많아요.”
“좋은 정보군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최강혁은 문득 주위를 돌아보고 나서 물었다.
“혹시, 고윤호씨는 어디 계시는지 아십니까?”
“누구요?”
“고윤호씨라고... 퇴직을 신청했을 겁니다.”
“퇴직 요청자들은 따로 숙소에 격리 중입니다.”
“그렇군요.”
붙잡혀서 취조를 당하진 않나 걱정했는데, 아니라면 다행이었다.
“그쪽에, 저는 괜찮으니 걱정 말라고 전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음... 노력해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럼 가시죠.”
장갑차에 올라탔다.
죄수를 추방하는 일이지만, 정해진 위치까지 다녀오는 동안의 위험은 어쩔 수 없으니 제대로 된 병력이 호송하는 것이었다.
“.......”
내부엔 자그마한 창도 나있지 않았다.
대충 방향을 짐작한 최강혁은 어느 순간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차량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옆에 앉은 군인들을 보니, 그들 중 하나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밖으로 나온 것이다.
‘블러핑은 아니었구나.’
어쩌면 그럴 가능성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밖으로 내보내려고 하면 그가 알아서 길 거라고, 그러니 강하게 밀어붙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하지만 그가 보았던 사령관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실제로 허장성세가 아니었고, 그는 계속해서 기지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이거 받으시죠.”
누군가가 낡은 더플백을 건네었다.
뭔가가 가득 들어차있었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가 지금까지 알고 지냈던 이들이 저마다 이것 저것 넣어준 것이라고 했다.
“김환수라는 분이 주시더군요. 원칙대로라면 허용되지 않습니다만....”
“고맙습니다.”
새로 온 군인들이라고 해서 다들 매정한 이들은 아니었다.
어차피 가는 마당에 그 정도는 괜찮지 않냐는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이다.
“세 시간 정도 걸릴 겁니다.”
“미리 잠을 보충해두시는 것도 좋습니다.”
지금 상황에 잠을 잘 수 있을까 싶지만, 나름 그를 배려한 조언이었다.
“이제 풀어드리죠.”
옆에 있던 군인이 그의 손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최강혁은 더플백 입구를 살짝 열어보고 픽 웃었다.
‘자리만 차지하게....’
쓰레기장에서 쓰던 것으로 보이는 안전모가 있었다. 바깥이 위험하다고 하니, 헬멧 대신에라도 쓰라는 걸까.
‘마음은 고맙네.’
그 옆을 조금 벌려서 안쪽을 들여다보니, 옷이나 속옷, 망치와 펜치 같은 각종 도구, 접이식 다용도 칼 따위가 제멋대로 섞여있었다.
‘다들 고맙습니다.’
조금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가족도 더는 없고, 이젠 정말로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걸까.
더플백을 다시 잘 닫은 그는 그것을 앞에 내려놓고나서 눈을 감았다.
돌 밟히는 소리.
거칠게 흔들리는 차량.
어딘가와 무전을 주고 받는 목소리.
“......?”
그러던 중, 얼핏 총소리 비슷한 게 들렸다.
잘못들은 게 아닌지, 무전병이 확인을 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빅버드랍니다. 저격 성공했고요.”
“알았다.”
빅버드라면 들어본 적이 있었다.
타조처럼 날지 못하는 새라던가. 덩치는 타조보다 크고, 굉장히 포악하다고 했다.
“총소리를 내도 됩니까?”
“그냥 가다가 마주치는 것보단 낫습니다.”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군인이 말했다.
‘음.’
총소리를 들어서일까.
그제야 조금씩 긴장이 되었다.
‘정말 이곳에서 죽게 되는 건가.’
여전히 실감이 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지금의 멍함은 일종의 현실도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텨야지.’
가만히 죽어줄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것을, 아니 그 이상을 해볼 것이다.
***
“다 왔습니다.”
이동하던 장갑차가 정지했다.
최강혁은 군인이 내민 장치를 보았다.
“이게 뭐죠?”
“여기에 피를 묻혀주셔야 합니다. 생존 확인 장치죠.”
“피요?”
“예. 잠깐 따끔하실 겁니다.”
군인이 볼펜 비슷하게 생긴 도구를 그의 손가락 끝에 가져가 찰칵, 하니 정말로 잠깐 따끔하며 그곳에 피가 맺혔다.
“여기 묻히면 된다고요?”
“예. 됐습니다.”
“그 장치로 제가 죽었는지 아닌지를 알아요?”
“네. 정확한 위치 같은 것까진 알 수 없지만, 생사 여부 하나는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아티팩트죠.”
“비쌀 것 같네요.”
“보급형이라서, 그렇게 비싸진 않습니다.”
장비를 도로 챙기는 군인에 이어, 밖에서 장갑차 후면을 열어 젖힌 이들이 서두르라는 듯 손짓을 했다.
“내리셔야 합니다.”
“네. 갑니다.”
그렇게 떠밀리듯 차량 밖으로 내리니, 어느새 낮이 지나고 어둑어둑한 저녁이 되어가고 있었다.
“저쪽이 호수입니다. 지도 기억하시죠?”
“예. 대충.”
“건투를 빕니다.”
군인들은 별다른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을 마주친 후에는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재빨리 각 차량에 올라타 그대로 멀어졌다.
“.......”
허허벌판에 혼자 남은 최강혁.
그는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바깥이 이렇게 생겼었구나.’
지구와 그렇게 다르진 않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었지만, 이렇게 보니 정말 그랬다.
드넓은 평원 한복판.
한쪽으로 길게 나있는 차량들의 바퀴자국을 제외하면 그저 푸른 풀들과 멀리 보이는 숲, 그너머에 병풍처럼 자리한 높은 산들 뿐이었다.
인간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곳.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는 적어도 핍박을 받을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이곳에선 죄수가 아니니까.’
죄수와 사냥감.
어느 쪽이 나은 걸까.
“움직여야지.”
크고 시끄러운 차량들이 잔뜩 왔다 갔으니, 예민한 녀석들이 있다면 관심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전에....’
최강혁은 바닥에 내려놓았던 더플백을 고스란히 루팅해버리고, 반대로 인벤토리 안에 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제법 단단해보이는 가죽 재질의 전투조끼도 있었고, 무릎과 팔꿈치를 보호해주는 장비도 착용했다.
헬멧은 아니지만, 머리를 감싸는 형태의 헤드기어도 있었다.
눈에 띄는 부분은 그런 장비들이 모두 같은 재질로 보인다는 점이었는데, 다름아닌 전투화에 쓰이던 가죽이었다.
‘몇겹 겹쳤더니 나름 단단해.’
몬스터들의 공격까지 막아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천 재질의 옷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었다.
각 장비들은 전투부대원들의 것들을 스캔한 대로 본따 만들었기에, 형태가 그럴싸한 건 당연했다.
스으으-
이어서 그의 두 팔을 통해 흘러나온 검은 물질이 곧 하나의 형상을 이루었다. 미리 흡수해둔 보병소총이었다.
인벤토리 안에서 꺼낸 탄창을 결합하여 장전한 그는 안전 상태로 레버를 돌린 후 어깨에 견착해 이쪽 저쪽으로 겨누어보았다.
후우.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최강혁은 총기 멜빵을 어깨에 걸고 사이즈를 조절한 후, 비로소 주위를 돌아보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물가 근처에 있는 게 상대적으로 안전할 거라고 했었지.’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냥감들이 더 먹음직스러울 테니까’라는 이유였다.
나름 근거가 있는 조언일 테지만, 그다지 설득이 되는 기분은 아니었다.
‘난 운이 나쁜 편이니까. 뭐, 이쪽에 들어와서는 계속 좋았지만... 결과가 이렇잖아.’
새로 온 사령관에게 바싹 기어야했을까.
그랬다면 뭐가 어떻게 되든 계속 캠프에 남을 수 있었을까.
‘목줄이 채워지고 싶진 않아.’
자신에게 반골 기질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그때는 왠지 굽히고 싶지 않았다.
‘잔탄이... 음?’
조금 걷던 그가 발을 멈춘 건 얼핏 지나왔던 곳 인근에서 빛나는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차량 바퀴자국 근처에 뭔가가 있었는데, 다시 보니 수상한 무언가가 아니라 금속 상자였다.
“뭐지?”
군인들이 뭔가 빼놓고 간 건가 싶어서 조심조심 다가간 그는 바닥에 놓여있던 것이 다름아닌 탄약상자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일부러 두고 간 거구나.”
총도 없이 총알만 두고 가는 건 뭐냐,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는 왠지 짐작이 되었다.
‘나한테 총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고마운 일이다.
총과 달리 탄약은 부대에서 수량 파악을 하더라도 ‘외부에서 사용했다’는 식으로 얼버무릴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몇 발이야?’
탄약상자는 새것이 아니었다.
열어서 안쪽을 보니, 10발 단위로 클립이 채워진 소총 탄약이 2백발 정도 되어보였다.
수류탄도 두 개나 있었다.
‘대검도 한 자루 넣어줬네.’
그것들을 잘 루팅한 최강혁은 소총 끝에 대검을 결합하고, 탄창을 뽑아 여분의 탄약을 더 채워넣었다.
‘어지간하면 쏘지 않는 게 좋을까?’
총소리를 듣고 몰려오는 놈들도 있어서, 전투가 쉽게 끝나지 않는다던 경험담을 들어본 바 있었다.
‘일단 혼자서도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 만한 장소가 필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