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1화 〉031. (31/138)



〈 31화 〉031.
탕!
타앙! 탕!

멈췄던 총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이미 쓰러져 피흘리고 있는 이들임에도 확인사살까지 행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하나 둘 모여들었다.

‘떠나는 건가.’

그들은 제각각 차량에 올랐지만, 일부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작은 트럭 하나 옆에 모여있는 이들이 뭐라 뭐라 대화를 하더니, 고개를 흔든 이가 수신호를 보이고 나서 다른 차량에 올라탔다.

‘두고 가는 것 같은데?’

이어서 출발하는 차량들.
현장에 남은  십여 명의 시체와 트럭 한 대 뿐이었다. 최강혁은 차량들이 시야 멀리까지 멀어진 후 주위를 다시금 돌아보았다.

‘위험하지만... 가야 돼.’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
정말 목숨을 걸어도 될 만한 상황 아닌가.

“......!”

마나를 소모해가며 후다닥 달려간 그는 시체들이 흘린 피웅덩이를 지나 빈 트럭  대에 도착했다.

“으음.”

운전석 바깥엔 역시나 옷이 벗겨진 남자가 죽어있었다. 깨진 차창과 운전석 주위에 뿌려져있는 피를 보면 어떤 상황이었는지 짐작되었다.

“루팅도 못하고, 흡수도 못하고....”

일단 트럭에 대고 스캔을 긁어보니, 고장난 것이 맞았다. 총이나 유탄에 맞았는지,  군데가 파손된 상태였다.

‘이건 몇 톤이나 나갈까? 1톤은 당연히 아니고... 2톤도 당연히 넘을  같은데.’

그리 큰 트럭은 아니지만, 군용 차량이라는 것을 감안해보면 아마 무거운 철을 사용했을 듯 했다.

하여 조금이라도 흡수하고 마나를 빼내려던 그는 차에 손을 얹었다가 다시 멈추었다.

‘잊고 있었어.’

그동안 행할 필요가 없었던 것.
인벤토리 제작이 무조건 마나만으로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 생각난 것이다.

‘오히려, 마나 말고는 지불할 만한 게 없어서 그걸 쓴 거였지.’

하지만, 이건 어떤가.
지금 보이는 트럭은, 비록 고장이 나긴 했지만 나름 가치가 높지 않을까?

“...이야.”

시스템으로 확인해보니, 트럭을 고스란히 지불하면 무려 인벤토리 427칸을 주겠다고 했다.

“미쳤냐?”

하지만, 그는 코웃음을 쳤다.
4백칸을 모으려면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긴 하지만, 적어도 그것보다 이 트럭의 가치가 높다는 걸 확신했다.

‘어딜 후려치려고.’

하지만 지금 당장 이것을 챙길 수 없다는 것도 분명했기에, 어쩔 수 없이  중간 어딘가에서 타협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걸 어떻게  고쳐본다고 해도... 막 몰고 다닐  있는 건 아니니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시스템의 기준에 의하면 트럭의 소유권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듯 했다.

비록 함께 있던 이들이 죽긴 했지만 그래도 소속된 캠프가 있을 텐데, 아마도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상황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도 배우는 게 있구나.’

최강혁은 서둘러 트럭에 손을 접촉했다.
 부위별로 세분화한 그는 몇몇 부분을 남기고 나머지를 지불했다.

-인벤토리 300칸을 획득하였습니다.

그렇게 얻은 인벤토리 중 100칸을 특수 칸으로 만든 그는, 시스템에게 지불하고 남은 것들을 그러모아 그 안에 넣었다.

‘한 대에 있던 부품들이라 그런가.’

다행히 완전히 해체한 개념으로 인식하지는 않는지, 적당히 뭉쳐놓자 한 칸에 몰아넣을 수 있었다.

‘엄청 무겁긴 했나보네.’

그렇게 남은 부분만 넣었음에도 9백킬로그램이 넘어갔다. 자칫하면 1톤 제한에 걸릴 뻔 했다.

‘이게 안 되면 그냥 통째로 넘길 수 밖에 없었지. 다행이야.’

그렇게 사라진 트럭.
최강혁은 주변에 널려있는 시체들을 돌아보았다.

‘도덕과 양심을 따르자면 묻어주는 게 맞긴 한데, 그러다간 나까지 같은 처지가 될 것 같아서 곤란하네.’

시간을 너무 지체했다.
죽은 이들에겐 유감이지만, 그들을 묻거나 불태워줄 시간은 없었다.

그 대신 얼른 움직여 그들 각각을 스캔해 데이터를 저장해두었다.
나중에라도 해당 캠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그들에 대해 이야기해주기로 했다.

‘어느 캠프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깃발은 챙겨뒀으니까.’

그때였다.

우우-
휘우우-

‘온다.’

늑대를 연상케하는 울음소리.
최강혁은 놈들을 알았다.

‘무슨 의미인지도 대충 알지.’

근처에 먹을 것이 있다는 신호일 것이다.
서둘러 그곳을 벗어났다.

***


목숨을 걸 가치가 있었다.
최강혁은 방금 전 한방에 루팅해버린 짐승 사체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당했을 거야.’

이상한 작은 놈이 후다닥 달려 지나가는데, 그곳에 있던 죽은 사냥감이 홀랑 사라져버린 상황 아닌가.

물론 그 주변에 비슷하게 죽은 것들이 더 있긴 했지만, 그래도 얼마쯤 쫓아오던 걸 생각하면 화가   분명해보였다.

‘적어도 몬스터한테는 소유권을 인정해주지 않으니까, 내 입장에선 좋아.’

그것 또한 야생에서 얻은 경험이었다.
고작 일주일도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많은 것을 시도하며 배워가고 있었다.

‘예상대로 되었고.’

어제, 의문의 처형 현장에서 달아나 적당한 곳에서 숨을 고르던 그는 인벤토리 100칸을 추가로 사용, 특수칸을 하나  늘렸다.

그것은 이미 염두에 두고 있었던, 몬스터나 짐승의 사체를 한 번에 루팅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활용도가 무척 좋았다.

‘심지어 이건 썩지도 않았어.’

야생 짐승 특유의 누린내가 지독하긴 했지만, 그래도 없어서  먹는 상황이니까.

‘이건... 12칸인가.’

인벤토리 안에 들어있는 사체는 일전에 보았던, 사슴과 소를 섞어놓은 듯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당시에 보았던 썩어가던 사체보다는 그 몸집이 많이 작았는데, 아마도 더 어린 녀석인 것 같았다.

원래는 더  놈을 루팅할 생각이었는데, 녀석들을 사냥한 몬스터가 그쪽에 더 가까이 있어서 무리하지 않았다.

‘아직까진 추측이 맞고 있어.’

놈은 곰처럼 생겼었다.
덩치 크고, 살이 많이 찐 포악한 형상.
물론 실제 곰들은 달리기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빠르지만, 적어도 그 수준이라면 도망칠  있겠다고 판단했다.

‘먹잇감을 두고 멀리까지 쫓아올 수 없다는 것도 있었고... 아무튼, 이번에도 무사히 성공했구나.’

스르르 풀리려던 긴장감을 억지로 끌어올린 그는 지평선 근처에 보이는 숲의 전경을 눈에 담았다.

‘이제 겨우 손에 닿을 느낌이네.’

1차 목표는 저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산으로 가기 위한 경로 상에 있는 숲.
그리 넓은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거리가 좁혀지면서 그런 생각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움직이자.’

살짝 경련하던 다리가 멀쩡해지자, 그는 다시금 속도를 높였다.
숲이라면 역시 그 나름대로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 서있는 곳보다는 낫지 싶었다.

‘어젯밤엔 정말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어.’

평소처럼 땅을 파고 들어가 밤을 보내려고 했는데, 이미 그곳에 선객이 있었다.

마치 겨울잠을 자는 뱀처럼 잔뜩 몸을 웅크리고 있던, 얼핏 쥐며느리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던 벌레 괴물.

놈도 그런 곳에 누가 더 들어올 거라는 생각은 못 하고 있었는지, 실뭉치처럼 말려있던 더듬이들을 풀어내며 몸을 버둥거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도망칠  있었지.’

사실 만남과 도망 사이에 약간의 접촉 과정이 더 있긴 했다.

모처럼 꺼낸 알루미늄 합금 창이 놈의 껍질에 생채기도 내지 못했다거나, 그럭저럭 커다란  정도의 크기라 조금 만만하게 여겼더니, 그 안쪽으로 더 깊은 토굴과 다른 벌레들의 모습이 보였다거나.

‘다행히 속도가 느렸어.’

등 뒤에서 쫓아오는 수십 마리 괴물벌레들.
그나마 쥐며느리 형태라 나름 귀여운 느낌이라도 있어서 다행이지, 바퀴벌레 쪽이었으면 무서웠을  같았다.

“여긴 뭐든 큰 건가... 으익!”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볍게 달리던 그는 갑자기 휘청하며 앞으로 고꾸라질 뻔 했다.
다행히 중심을 잃지 않고 멈추었지만, 얼른 뒤를 돌아본 그의 시선이 땅바닥을 향했다.

‘분명 평지였는데... 왜 여기만 움푹 패여있는 거야? 함정도 아니고.’

가까이 가서 살펴본 그는 그것이 왠지 무언가의 발자국처럼 보였다. 스캔을 해보니 확실했다.

‘이건 뭐라고 써있는 거야?’

시스템 상에 대상의 이름이 나오긴 했는데, 그가 알고 있는 문자가 아니었다.

‘지금까진 몬스터 이름도 한글 아니면 영어로 나왔던 것 같은데.’

혹시 아직 발견된 적 없는 몬스터라 이름이 지어지지 않은 걸까?

‘그럴 리가 있나. 사람들이 이쪽 지역으로 진출한 지가 얼마나 됐는데.’

고개를 저은 그는 다시금 발자국을 살폈다.
시스템이 알려준 정보는 읽을 수 없는 이름 뿐이었기에, 나머지는 그가 알아서 파악해야 했다.

‘적어도 몬스터라는 건 표시해주니 다행인가.’

몬스터.
시스템이 그렇게 표시한 종류는 인간을 해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비가 왔던 때에 만들어진 발자국 같고... 시간이 좀 된 것 같아. 방향은... 저쪽인가? 다행히 숲이 있는 쪽은 아니네.’

근처에서  개의 발자국을 더 발견했지만, 모두 한 개체의 것으로 보였다.
집단 생활을 하는 종류는 아닌 모양이었지만, 그렇다고 가볍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발자국만 봐도 덩치가 꽤 클 테고. 혼자서 이런 곳을 돌아다닌다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겠지. 조심해야 해.’

이곳을 지나간 지는 꽤 된 모양이지만, 그것의 영역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경계심을 갖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최강혁은 어깨에 걸쳐 메고 있던 소총을 앞으로 돌려 잡았다. 이제부터는 다시금 속도를 줄이고 걸어가야 할 듯 했다.

‘물이 간당간당한데, 저기서 채워야겠네.’

숲에 이르기 전, 작은 물줄기 하나가 가로로 지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저것 역시 지금 보이는 것보다  큰 물길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그곳에서 물을 보충해야 했다.

다만 그보다 더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어느새 오후에 접어드는 터라, 슬슬 밤을 보낼 장소도 물색해둬야 했다.

‘아직은 괜찮지만, 슬슬 무리가 되는 것 같아.’

수면 부족.
마나를 충분히 회복한다고 해도, 체력에 문제가 없다고 해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삐걱거림이 거슬리고 있었다.

이전보다 더 날카로워진 느낌.
하지만 때로는 오히려 멍해진 기분이 제멋대로 들쑥날쑥 감각을 흩트리는 기분이었다.

‘잠을 자야 해. 잠깐이라도.’

하지만  잠깐이 자신도 모르게 꿀잠이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 확실한 장소를 찾아야 한다.
소총을 고쳐쥔 그는 주변 경계를 행하며 이동을 이어갔다.


***

“일주일을 버텼다고?”
“아직 표시가 바뀌지 않았습니다.”

부하의 보고가 늦어지자 직접 물어보았던 배지현 준장은 자신이 이곳에 대해 잘못 들었던 건가 생각했다.

“기존 최고 기록이 얼마나 된다고 했지?”
“21일입니다만, 비공식입니다.”
“비공식?”
“내부자와 연계해서 캠프와 인접한 장소에 숨어 버텼다고, 추후에 알려졌습니다.”
“그러면 공식은?”
“공식적으로는... 이탈자들을 제외하면 이틀입니다.”
“이탈자라. 와일더에 합류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건들 말인가?”
“예. 맞습니다.”

배지현은 자신이 입에 담은 무리들의 명칭이 탐탁지 않은지, 입술을 아래로 내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왜 아직도 토벌이 안 되고 있는 거지?”
“소재가 불분명하고... 특정 캠프들과 연계하고 있다는 추정입니다.”

와일더.
또는 와일더 클랜.

혹자는 그들이 초기 개척 단계에서 사라져버린 몇몇 캠프들의 생존자라 이야기하기도 하고, 인위적으로 꾸며 만들어진 가상의 조직이라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작이 어떤 식이었든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무리였다.
이쪽 캠프의 외부 정찰대나 수송부대를 습격한 전적도 있었기에, 몬스터들 못지 않게 위험한 자들이기도 했다.

“최강혁도 그쪽에 합류했을 가능성이 있나?‘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만약 열흘을 넘긴다면,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보여집니다.”
“형량을  늘릴 수도 있겠군. 정말로 그렇다면 말이야.”

본국에 관련 사항을 보고해야겠다고 중얼거린 배지현은 마침 최강혁과 관련된 답신을 출력한 것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그저  명의 죄수일 뿐인데 말이지. 다들 각성자라면 벌벌 기는 게 문제야.”

본국에선 그녀가 보낸 자료를 충분히 검토했지만, 형량을 늘리는 건 불가하다고 했다.

법적인 절차와 조치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사항이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그런  아니라는 건 누가 봐도 알 것이었다.

‘그래도 와일더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배지현은 차라리 최강혁이 더 오래 생존하기를 바랐다.

“추방형 기간인 5년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남은 형기가 오히려 더 늘어있으면 어떨까.”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부하 또한 침묵한 채 차렷 자세를 유지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추방되지 않게 넙죽 빌기라도 할걸, 후회할까? 궁금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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