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034.
“음....”
강변에는 바위먹는자가 속만 뽑아먹고 버렸던 물고기들의 비늘가죽이 널려있었다.
스캔을 해서 살펴보니, 역시나 방어력 같은 걸 기대하긴 어려운 수준이었다.
“어쩐지 총알이 잘 박히더라.”
그래도 아주 가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비린내만 제거하면 천막 같은 걸 만들 용도로 쓸 수도 있을 법 했다. 아니면 각 비늘들을 긁어내서 활용할 수도 있겠고.
‘근데, 넣을 데가 없잖아.’
천막을 만들자면야 전투복 원단을 쓰면 되겠지만, 그것들은 방수가 아니다. 이건 방수가 가능하니 챙기고 싶은데, 공간이 될까 모르겠다.
“음....”
그래도 이곳에서 죽은 물고기들을 지불해 얻은 인벤토리가 70칸 정도는 되지만, 개수만 많을 뿐이지 실제 공간은 그리 대단치 못했다.
‘그래도 몇 장 정도는 될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루팅을 해보았다. 계속 집어넣어보니, 어떻게든 꾸역꾸역 들어가긴 했다.
기존에 들어있던 것들도 더욱 더 압축되어서, 제 위치를 정확히 파악해두지 않으면 꺼내는 데 시간이 필요할 듯 보였다.
“그래도 다 집어넣긴 했네.”
인벤토리가 필요하다.
아주 많이.
‘총알이 박힐 정도면, 창으로도 뚫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최강혁은 아직도 근방의 물 속에서 얼쩡대고 있는 놈들을 보았다.
바위먹는자 때문인지, 강물 속으로 번진 피가 거의 사라져 묽어지고 있음에도 접근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총알은 좀 아낄 필요가 있어.’
멀리 달아났던 들개들도 돌아오지 않았다.
“.......”
그는 옆쪽을 돌아보았다.
바위먹는자는 아까와 달리 촉수 다리를 굽혀 그곳에 내려앉거나 하지 않고, 여전히 서있는 상태로 꾸물렁거리고 있었다.
“왜. 돌 달라고? 근데 여긴 돌이 없는데.”
최강혁은 녀석이 싫지 않았다.
그가 총알을 부어가며 사냥한 것들 중 10마리가 사라졌지만, 나름 구해졌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
“난 저쪽으로 가야 해. 저쪽 보이지? 강물 너머 말이야.”
녀석이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것임을 알면서도 그는 거듭 강조하듯 말했다.
왠지 그런 식으로라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조금 쓸쓸해질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래도 네가 여기 있어서 저 놈들이 접근을 안 하고 있으니까. 나름 기회 같은데 말이야.”
계속 지켜보니 분명했다.
저놈들은 이 녀석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몬스터들이라서 비선공 같은 개념은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아니, 애초에 무슨 평화주의자도 아니고 비선공이 뭐야.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오겠어.”
그렇게 중얼거린 최강혁은 들고 있던 소총을 인벤토리에 넣으려다 멈추었다.
“와, 씨. 어쩐지 아까 잘 들어간다 했다. 이거 넣을 자리까지 다 채운 거네.”
소총을 넣을 공간이 없었다.
어떻게든 집어넣어보려고 하는데, 반 정도 들어가다가 도로 밀려나오길 반복했다. 도저히 공간이 없다는 뜻이었다.
“내가 봐도 참 알뜰하게 채워놨구만.”
어쩔 수 없나.
일단 탄창과 약실의 탄을 제거하고, 그것만이라도 집어넣었다.
‘잠깐 젖는 건 나중에라도 수습할 수 있어. 녹이 슬거나 하기 전에 물기를 제거하면 돼.’
근데, 생각해보니 그건 또 좀 아닌 것 같았다. 차라리 악어물고기의 비늘가죽 몇 장을 제거하면 자리가 생기지 않을까?
‘3마리 분량을 줘야 1칸을 준다고? 야이....’
그래서 시스템을 열어 확인해보니, 역시나 후려치기 당했다. 그래도 3마리 분량을 넘기고 나니 소총이 여유롭게 들어갔다.
“후우.”
그는 자리에서 가볍게 체조를 행한 후, 한 걸음 한 걸음 물로 향했다.
“간다. 건강해라.”
그가 물로 들어가고 있지만, 악어물고기들은 역시나 접근하지 않았다.
하여 어느새 무릎까지 들어가있던 그는 두어 번 숨을 고른 후 본격적으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대충 20미터 정도 될 것 같은데.’
좀 더 강을 따라 내려가면 가느다란 곳이 나올 것 같긴 하지만, 그곳이 이곳보다 안전할 거라 장담할 수가 없었다.
‘속도를 내자.’
바위먹는자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거리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었다.
강의 중간 즈음을 지나며, 그는 마나를 소모해 헤엄 속도를 높였다.
‘그래도 수영을 할 줄 알아서 다행이야.’
얼핏 물고기 놈들이 접근하려 하는 모습이 보였지만, 이 정도 속도면 별 문제 없이 건너편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그런데 이상했다.
접근하던 놈들이 다시 우루루 흩어졌다.
의아해하면서도 헤엄을 멈추지 않은 최강혁은 건너편 강둑에 도착하고 나서 얼른 인벤토리를 열었다.
젖은 몸을 털기도 전에 소총을 꺼내 잡은 그는 이어서 탄창을 채우고 사방을 경계했다.
“음?”
그 때 보인 것.
바위먹는자가 강의 중간 즈음에 불쑥 그 거대한 바위대가리를 내민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물에 떠있기라도 한 것처럼 둥실둥실 움직이는 모습이, 원래부터 그곳에 살고 있던 녀석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 강바닥엔 돌이 있을 수도 있지.”
어쩌면 지금 물 속에서 녀석의 촉수들이 바삐 움직이는 중일 수도 있을까.
‘아무튼 잘 됐어.’
녀석 덕에 더 안전하게 강을 건넌 것 같다.
“고맙다.”
최강혁은 맑디 맑은 강물을 빈 페트병 여러 개에 가득 채우고 인벤토리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야 몸과 옷 위에 남아있던 물기를 흡수해 제거한 그는, 마치 이쪽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의 바위먹는자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여 인사하고 돌아섰다.
“달리자.”
운이 좋았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생존과 관련된 상황이라면 그런 말은 형편없는 농담이 되어버린다.
‘솔직히 개뽀록이었지.’
자기객관화가 필요하다.
일단 첫날밤 바위 아래에 구덩이를 파고 들어갔을 때 그 벌레들을 마주쳤다면, 제대로 도망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둠 속이었고, 다른 몬스터들도 멀지 않은 곳에 있었으니까.
이후에도 마찬가지다.
여러 모로 운이 좋았다.
아니, 애초에 각성을 한 것부터가 운이 좋았다고 봐야 할 것 같은데.
‘각성자가 아니었으면, 정말로 하루를 버티지도 못했을 거야. ...운이 아니라, 진짜 실력이 필요해.’
캠프에서부터 꾸준히 체력단련을 해왔다.
하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들, 특히 빠른 달리기 능력이 그것을 통해서 얻은 건지... 아니면 단순히 각성자의 육체에 마나를 연료로 써서 가능한 건지 명확하지 않았다.
‘헛고생을 한 건 아니겠지?’
지금도 조금 먼 거리를 그렇게 달리고 나면 근육에 경련이 와서, 잠시지만 제대로 걷지 못할 때도 있다. 그런 걸 보면 육체 자체는 그리 강해지지 못한 것 같기도 한데.
‘아니야. 애초에 보통 사람은 그렇게 뛰지도 못하잖아.’
어떤 걸 기준으로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반인을 기준삼으면 왠지 자만하게 될 것 같은데, 그렇다고 이쪽에 돌아다니는 놈들을 기준으로 하면 밑바닥인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하네.’
차라리 밑바닥이라 가정하고 행동하는 게, 첫날처럼 모든 것에 신중하게 생각하는 게 바람직할까.
다소 겁쟁이같긴 하지만. 그래도 덜 위험하지 않을까.
‘잠깐.’
가볍게 달리던 그는 천천히 속도를 줄였다.
주변에 널려있는 종아리 높이의 잡초들 사이로, 언뜻 다른 것이 보인 것 같았다.
‘총?’
살아 움직이는 종류가 아니었다.
금속 느낌의 검은색.
언뜻 바람결을 따라 움직이던 잡초 이파리 사이로 다시금 보인 그것은 분명 소총으로 보였다.
‘왜 이런 곳에 총이....’
그는 주변을 훑어보았다.
혹시 모를 몬스터들이 있는지 잔뜩 긴장되었지만, 당장 눈에 띄는 것도 공기에 섞인 이질적인 냄새도 없었다.
“.......”
조심스럽게 소총이 떨어져있는 곳으로 가보던 그는 곧 얼굴을 구겼다. 그쪽엔 단순히 총만 떨어져있던 게 아니었다.
‘이런 경우도 있다고 했었지.’
해당 소총은 여전히 그것을 움켜쥔 주인의 팔과 함께 있었다. 그 팔의 주인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이곳엔 보이지 않았다.
‘미안합니다.’
이름 모를 이에게 속으로 사과를 전한 최강혁은 반쯤은 썩고 반쯤은 말라붙은 팔뚝을 발로 밟고 그 손아귀에서 흙먼지 묻은 소총을 떼어냈다.
인벤토리에 넣어서 이물질들을 제거하고 나니, 전체적인 형태가 제대로 나타났다.
아마도 비가 오면서 그렇게 된 듯 흙덩어리가 붙어있던 곳도 말끔히 제거되어서, 스캔 결과대로라면 당장 사용해도 큰 문제는 없을 듯 했다.
‘지금 소총하고 다른 회사 제품인가보네.’
스펙은 대동소이했다.
다만 총열이 더 짧아서인지 유효 사격 거리가 그만큼 덜 나오는 것 같았다. 돌격 소총이라고 봐야 할까.
‘연사력은 더 강하네. 같은 총알을 쓰는 것도 다행이고.’
더욱 눈에 띄는 건 소총 옆에 자리한 특이한 장치였다. 착탈식이라서 벗겨낼 수도 있었는데, 그 생김새는 얼핏 군대 사격장에서 사용하던 탄피받이를 연상케 했다.
‘이런 게 된다고?’
스캔 데이터는 해당 장치를 어떻게 사용하는 건지 알려주었다. 실제로 그 장치 옆에 달린 버튼 쪽에 각각 어떤 버튼인지도 새겨져있었다.
‘말도 안 되지.’
오히려 그래서 더 믿기 어려웠다.
‘무음 모드에, 이건 파괴력 강화, 이건 관통력 강화... 레이저 스타일 조준 기능도 있네.’
마나를 충전해서 사용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지금은 방전 상태여서 테스트가 불가능했지만, 고장은 아닌 것 같았다.
‘이것도 아티팩트인가 하는 종류인가?’
특수한 제작 스킬을 가진 각성자들이 만들 수 있다는 제품들.
그의 피를 묻혀 생사를 확인할 수 있다던 장치를 떠올린 최강혁은 이것도 비슷한 도구 아닐까 싶었다.
‘그래도 기능이 너무 황당하잖아.’
마나를 활용해서 여러 효과를 내는 걸까?
좀 더 살펴보니, 모든 효과는 30미터 거리 안에서만 유효하다고 첨언이 되어있었다.
‘20미터까지는 확실하고, 거기서부터 30미터까지는 효과가 점점 반감되는구나. 30미터를 벗어나면 기본 총의 효과만 남는 거고.’
일회성으로, 한시적 효과만 발휘된다고 하니까 그나마 조금 현실적으로 보였다.
‘써보고 싶은데. 마나는 어떻게 넣는 거지?’
혹시나 했는데, 어렵지 않았다.
그가 가진 체내 마나를 그쪽에 넣어보려 하자, 문제 없이 수행되었다.
‘마나 잔량 게이지가 따로 있구나.’
게이지는 999까지 표시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마나와 정확히 일치하는 단위는 아닌지, 그가 체내 마나 50을 떼어 넣었음에도 충전량은 20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오차가 있는 건가? ...손실 같기도 하고.’
이어서 다시금 50을 더 넣었더니, 이번엔 30정도가 찼다. 아마 집어넣는 과정에서 일부가 새어나가는 모양이었다.
‘지금 소총에는 결합이 안 되네. 이쪽 총 전용인가보다.’
지금 소총이 사거리가 더 길긴 하지만, 어차피 멀리에 있는 놈을 쏠 상황은 딱히 없었다.
지금은 돌격 소총이 더 나을 것 같아서, 그는 들고 있던 총에서 탄창을 빼고 인벤토리에 있던 총을 꺼내어 결합했다.
‘다행히 녹슨 곳은 없어.’
하지만 오늘 밤 안전한 곳을 찾으면 제대로 분해해 닦고 기름칠을 해줄 생각이었다.
인벤토리에서도 할 수 있는 조치이긴 하지만, 그래도 직접 눈으로 보면서 하는 게 마음이 놓이니까.
철컥, 철컥.
그동안 몸과 손에 익었던 소총보다는 확실히 가벼운 편이었지만, 그 옆에 특수 장치를 결합하니 무게 균형이 살짝 바뀌어 조금 이상한 느낌이 되었다.
‘어쩔 수 없겠지. 익숙해지는 수 밖에.’
해당 장치의 사용법은 이미 배웠다.
일단 전원을 켜면 실시간으로 소량의 마나가 지속적으로 소모된다.
특정한 기능의 버튼을 누르면 해당 효과가 총, 혹은 장전된 총알에 부여되면서 그만큼의 마나가 더 줄어든다.
‘무음모드는 시간 단위로 닳는구나.’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3초에 1정도의 마나가 줄어들고 있었다. 파괴력 강화와 관통력 강화는 각각 5정도 줄어들었다.
‘한 발에 여러 효과를 중첩해서 입힐 수도 있나보네. 근데 마나 소모가 너무 크잖아.’
이미 부여했던 효과를 다시 회수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복구되는 마나량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건지는 게 어디야.’
일단 전원을 끈 그는 그 사이에 40 안쪽으로 줄어든 마나 배터리 잔량을 보았다.
‘전원을 켜기만 해도 10초에 1정도씩 계속 줄어든다고 했지. 끄고 나면 거의 소모되지 않는다고 하니까 꺼야겠어.’
켜는 데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니 그게 좋을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총을 쏘아야 할 상황이 온다면 버벅댈 수도 있지만, 애초에 아직 각각의 기능 버튼들이 손에 익지 않은 터라 그것부터 연습해야 했다.
‘그나저나....’
아마도 비가 오면서 주변이 청소되었던 것 같지만, 그래도 전투의 흔적들이 아주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아직은 어색한 돌격소총을 고쳐쥔 그는 바닥에 새겨져있던 흔적들을 따라 잠시 이동을 이어갔다.